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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20:51

스페인 외인부대

파일:Tercio_Legion_Extranjera_y_Royal_West.jpg
사진: 2014년 11월 15일부터 29일까지 알바테세 친치야(Chinchilla) 육군 훈련센터에서 열린 다국적 합동훈련 '이베리안 스타 2014' 훈련 중 스페인 외인부대원이 프랑스 외인부대원, 영국군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1. 개요2. 역사3. 입대 자격4. 복장5. 편제

1. 개요

La Legion(라 레히온).

스페인군 육군 소속의 외인부대.

사실 스페인은 라틴계 외국인의 일반 군입대를 허용하는 국가이며 스페인 외인부대 또한 다른 부대와 같은 기준으로 자국인 또는 라틴계 외국인만을 선발하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스페인군의 독립적인 외인부대로서의 성격은 많이 퇴색되었다. 현재는 전투지역 파병이나 NATO 평화유지군 파병임무를 주로 담당하는 신속대응군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즉, 과거 외인부대였던 시절 명칭 등 전통만 부대 단위로 계승중인 것이다.

비공식적 별명은 "테르시오" 또는 "El Novio de la Muerte". 죽음의 신랑이라는 뜻으로 부대의 공식 군가 제목이기도 하다.
Nadie en el Tercio sabía
Quién era aquel legionario
Tan audaz y temerario
Que a la Legión se alistó
Nadie sabía su historia
Mas, la Legión suponía
Que un gran dolor le mordía
Como un lobo, el corazón
Mas, si alguno quién era, le preguntaba
Con dolor y rudeza le contestaba
Soy un hombre a quien la suerte
Hirió con zarpa de fiera
Soy un novio de la muerte
Que va a unirse en lazo fuerte
Con tal leal compañera
Cuando más rudo era el fuego
Y la pelea más fiera
Defendiendo su bandera
El legionario avanzó
Y sin temer al empuje
Del enemigo exaltado
Supo morir como un bravo
Y la enseña rescató
Y al regar con su sangre la tierra ardiente
Murmuró el legionario con voz doliente
Soy un hombre a quien la suerte
Hirió con zarpa de fiera
Soy un novio de la muerte
Que va a unirse en lazo fuerte
Con tal leal compañera
Cuando, al fin le recogieron
Entre su pecho encontraron
Una carta y un retrato
De una divina mujer
Y aquella carta decía
"Si algún día Dios te llama
Para mí, un puesto reclama
Que a buscarte pronto iré"
Y en el último beso que le enviaba
Su postrer despedida le consagraba
Por ir a tu lado a verte
Mi más leal compañera
Me hice novio de la muerte
La estreché con lazo fuerte
Y su amor fue mi bandera

2. 역사

스페인군의 육군 외인부대는 1920년 1월 28일 당시 국왕 알폰소 13세에 의해, 프랑스 육군 외인부대를 모델로 스페인령 모로코에서의 전투를 수행할 목적으로 창설되었다. 당시 이름은 테르시오 데 엑스트란헤로스(Tercio de Extranjeros). 창설 구성원은 대부분 쿠바 출신자였으며 창설 지휘관은 호세 미얀-아스트라이 육군 중령[1]이 맡았다. 전간기시절 모로코에서 리프 전쟁에 참가해 많은 실전을 치렀다. 후일 스페인의 독재자가 된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이 시절 외인부대 사령관[2]이기도 했다.

1930년대 스페인 내전 당시 무자비한 잔학 행위로(실제 잔학행위와 프로파간다가 뒤섞였기는 했지만) 꽤 악명을 떨쳤다. 말이 좋아 외인부대지 대부분 모로코, 사하라 같은 식민지에서 끌어모은 병사들이었고, 이들 북아프리카 무어인들은 레콩키스타 등으로 인해 스페인에 대한 역사적으로 악감정이 깊었으며, 식민지 출신으로서 평소에 억눌려 있었던 것도 많았기 때문에 질이 떨어지는 스페인 정규군 공화파나 아예 민간인이었던 민병대 상대로 맹활약을 했지만 그만큼 악랄한 잔혹행위도 심했다. 공화파 진영에서는 이들을 무어인들이라 까며 가톨릭 성전 운운하는 프랑코군 장본인들이 그 무어인들을 데리고 와 스페인인들을 학살한다고 맹렬하게 욕하며, 공화파 군가인 제5여단 만세에도 이러한 내용이 수록되어있다. 반면 공화파는 공화파 나름대로 전 세계에서 좌익계 및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서방쪽 자원 의용병들을 모집해서 편성한 국제 여단을 운용했는데, 이들 또한 파시스트를 멸한다는 동기 부여가 철저하고, 특히 국제 여단 전체의 25% 정도 지분을 차지했던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같은 본국이 이미 파시스트 정권에게 넘어간 이념에 구애받지 않는 의용병들은 돌아갈 고향도 없으니 치열한 사기와 전투 의지를 보였다. 이들은 원래는 그냥 국제여단으로 불렸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국제여단 출신자들은 국내외적으로 여러 말썽의 대상이 된데다[3] 국제정치적 계산[4]도 있어서 해산되었지만 이런 식으로 돌아갈 나라가 없는 이들은 스페인 국적을 받고 인민군에 편제되었다. 이는 앤터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은 물론이고 안드레 카스텔의 국제여단이라는 책에서도 전하고 있는 사실이다. 치아노의 일기에 따르면 1939년 1월 바르셀로나 함락 직전 여전히 400여명의 국제여단원들이 수감되었다고 했고 엔터니 비버는 이를 혼란한 상황에서 정부의 무능과 관료의 나태 탓으로 보았다.

부대 내에 마약 중독자와 같은 사람이 상당수 있다는 소문이 있지만 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프랑스군보다 질이 떨어지는 수준이다. 프랑코 정권 말기 60-70년대에 스페인군은 마지막 식민지 스페인령 사하라를 유지하기위해 모로코와 서사하라 독립 무장반군 폴리사리오 전선을 상대로 이프니 전쟁을 치렀는데, 당시 정권 분위기나, 국제적 여론이나, 군사적 상황이나 딱 스페인판 베트남 전쟁이라서 군의 사기와 기강 저하가 심했다.[5] 따라서 당시 파견돼있던 외인부대원들 중심으로 모로코산 해시시를 비롯한 마약 문화가 많이 퍼졌고 이들이 귀국하며 프랑코의 사망과 민주화가 잇다르며 마약, 히피 문화가 라 모비다 마드릴레냐라고 불린 80년대의 스페인판 68혁명이 터지는데 영향을 끼친 바가 있는데 여기서 비롯된 이미지로 추정된다. 물론 현재 와선 옛말일 뿐이다.

1986년 3월 21일 군복무에 대한 칙령(Real Decretó 611/1986) 제정에 따라 시민권이 입대자격에 포함되면서 외국인의 군입대는 중단되었다. 이로 인해 명칭 또한 외인부대(Tercio de Extranjeros)에서 군단(La Legión)으로 변경되었고, 정규군 소속의 즉응군으로 탈바꿈 하였다.

한편, 1980년대 이후로 출산율이 급속히 저하된데다가 모병제로의 전환을 추진하면서 외국인 입대의 재허용 필요성이 제기되자 스페인군은 2001년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의 스페인계 이민자 후손들을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임용을 추진하였다. 이 당시에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실업률이 20%대를 훌쩍 넘고, 특히 아르헨티나는 디폴트를 선언하고 대통령이 일주일안에 4명씩이나 바뀔 정도로 경제가 안 좋았던 시절인지라 먹고살길을 찾아 스페인군 입대를 자원하는 사람들이 위낙 넘쳤기때문에 선발에 어려움을 겪었고, 2002년부터는 스페인에 거주하는 스페인어권 국적자들을 대상으로 임용하고 있다. 현재는 외인부대는 없고, 스페인군 자체가 외국인 입대가 가능한 용병부대라고 보면 되겠다.

3. 입대 자격

스페인 국적 보유자이거나 스페인 식민지 출신 국가 국적자(라틴계 아메리카 국가 또는 적도 기니)로서 스페인 내에서의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갖춘 18세부터 29세의 남녀가 지원 가능하다.[6] 즉,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칠레,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적도기니, 온두라스, 멕시코, 니카라과, 파나마, 파라과이, 페루, 도미니카 공화국, 우루과이 및 베네수엘라 국적자 중 합법적인 스페인 체류자격을 갖춘 자만 지원이 가능하다. 지원하는 부대에 따라 2~3년의 계약기간에 사인할 수 있고, 복무연장 또한 2~3년 단위로 가능하다. 스페인 국적을 취득한 경우 5년차부터는 45세까지의 장기복무 지원이 가능하다.

예전에는 포르투갈, 독일 등 라틴계가 아닌 국가의 외국인도 부대원의 다수를 차지했으나, 스페인령 북아프리카 식민지 해체 이후 1987년부터 스페인 정부는 부대의 외국인 선발을 중지했다. 그러면서 외인이란 명칭을 버리고 현대에는 그냥 스페인인들로 구성된 스페인군 소속 독립 특수부대로 돌아갔다. 한편, 2000년 정부가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외국인 모집을 허용하면서 라틴계 출신 외국인은 외인부대를 포함한 스페인 전 부대의 지원이 가능하다. [7]

1990년 첫 여군 입대가 이루어졌고, 2012년 현재 여군의 비중은 약 9%이다. 여군의 해외파병은 이루어지고 있으나, 비전투임무만을 맡고 있다.[8]

4. 복장

파일:LaLegion3.jpg
남성 부대원 군인이 짝다리 짚게 돼 있나? 그것보다 근육량이 엄청나다 거기도 튀어나와있다

파일:LaLegion.jpg
여성 부대원

파스텔톤의 밝은 하늘색 계통 상하의와 가슴팍을 풀어헤친 파격적인 스타일의 정복 패션이 특징적인데, 이는 여군도 마찬가지다. 가두행진이나 행사 때는 팔꿈치 보호대와 어깨끈, 견실 등을 착용한 특이한 복장을 착용하기도 한다. 특히 부활절 기념행사로 말라가 주둔 4연대의 거리행진에서 십자가를 들고 군가를 부르며 행진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동영상)

샤피리(chapiri)라 불리는 붉은 술과 가죽 턱끈이 달린 일종의 개리슨모를 착용한다.

5. 편제


[1]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한 때 이 사람의 휘하에 있었고 둘은 서로 친한 사이고 마누엘 아사냐의 스페인군 구조조정 과정에 휘말려 퇴역한 일 등으로 내전 후 당연히 국민진영에 가담했다. 다만, 리프 전쟁 도중 한 팔과 한 눈을 잃었기 때문에 야전 업무는 아니고 후방 공보 책임자, 상이용사 단체 수장으로 있었다. 참고로 공개석상에서 소설가 미겔 데 우나무노랑 말싸움을 벌인 사람이기도 하다. 단 국민진영의 만행이라고 알려져있으나 후에 제시된 증거나 증언에 따르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고 필리핀 독립운동가 호세 리잘을 상찬했기 때문에 이것이 소싯적에 필리핀 독립전쟁에 참전했던 미얀 아스트라이를 자극했다는 주장도 있다.[2] 애초에 미얀아스트하이가 프랑코의 도움으로 외인부대를 창설했기 때문에 프랑코는 외인부대 창설 멤버 중 한 사람이기도 했다.[3] 초반에는 위에서 말한대로 나름 동기부여도 철저했고 1차대전 참전용사들도 있었기 때문에 특히 마드리드 전투 등 당시 공화파의 없는 살림에 상당히 유용했다. 하지만 1937년 봄이나 중순부터 시간이 지나면서 대우도 안 좋아지고 폭동이 터지거나 전염병도 발생하여 소련인들이 강제수용소를 설치 운영하거나 아니면 그냥 스페인에 입국한 외국어 전문가나 기술자를 강제로 징집하거나 상륙한 선원들을 탈영병으로 체포해 이송하는 등의 식의 폐해가 있었고 이것이 국외에도 알려지면서 국제여단의 평판이 안 좋아졌다.[4] 국제여단을 해산하는 대신 독일, 이탈리아의 의용군 해산도 촉구하려는 의미다. 이 때 국제여단에 속한 외국인들은 7102명 밖에 없었다고 한다.[5] 이 전쟁에 참전한 스페인 청년들이 전쟁터에서 경험한 일들을 만화에 담은 하비에 마르틴의 만화 <잊혀진 전쟁>이 2019년 7월 31일에 국내에 출간되었다.[6] https://www.lalegion.es/alistate.htm[7] # 스페인 국적자만 모집했을 때의 링크[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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