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7-23 20:52:44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

시에예스에서 넘어옴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1e43, #002654 20%, #002654 80%, #001e43); color: #fff;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국민공회 의장 (1792~1795)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필리프 륄 제롬 페티옹 드 빌뇌브 장프랑수아 들라크루아 엘리 가데 마리장 에로 드 세셸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제10대
앙리 그레구아르 베르트랑 바레르 자크 드페르몽 장바티스트 트레야르 피에르 빅튀르니앵 베르니오
제11대 제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장폴 라보 생테티엔 장자크 브레아르 에드몽루이알렉시 뒤부아크랑세 아르망 장소네 장앙투안 드브리
제16대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장프랑수아 델마스 마르크다비드 라주르스 장바티스트 부아예퐁프레드 막시맹 이스나르 프랑수아르네 말라르메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제25대
장마리 콜로데르부아 자크알렉시 튀리오 앙드레 장봉 생탕드레 조르주 당통 마리장 에로 드 세셸
제26대 제27대 제28대 제29대 제30대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자크니콜라 비요바렌 피에르조제프 캉봉 루이조제프 샤를리에 무아즈 벨
제31대 제32대 제33대 제34대 제35대
피에르앙투안 랄루아 샤를질베르 롬 장앙리 불랑 조르주 쿠통 자크루이 다비드
제36대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마르크기욤알렉시 바디에 조제프니콜라 바르보 뒤 바랑 루이 앙투안 드 생쥐스트 필리프 륄 장랑베르 탈리앵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제45대
장바티스트앙드레 아마르 로베르 랭데 라자르 카르노 클로드앙투안 프리외뒤베르누아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제46대 제47대 제48대 제49대 제50대
엘리 라코스트 장앙투안 루이 장마리 콜로데르부아 필리프앙투안 메를랭 드 두에 앙투안 메를랭 드 티옹빌
제51대 제52대 제53대 제54대 제55대
앙드레앙투안 베르나르 앙드레 뒤몽 장자크레지스 드 캉바세레스 피에르루이 프리외 루이 르장드르
제56대 제57대 제58대 제59대 제60대
장바티스트 클로젤 장프랑수아 뢰벨 피에르루이 벤타볼 에티엔프랑수아 르투르뇌르 스타니슬라스 조제프 프랑수아 그자비에 로베르
제61대 제62대 제63대 제64대 제65대
폴 바라스 프랑수아루이 부르동 앙투안 클레르 티보도 장 펠레 프랑수아앙투안 부아시 당글라
제66대 제67대 제68대 제69대 제70대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 테오도르 베르니에 장바티스트 샤를 마티외 장드니 랑쥐이네 장바티스트 루베 드 쿠브레
제71대 제72대 제73대 제74대 제75대
루이귀스타브 둘세 드 퐁테쿨랑 루이마리 드 라 레벨리에르레포 피에르 도누 마리조제프 셰니에 테오필 베를리에
제76대 제77대
피에르 샤를 루이 보댕 장조제프빅토르 제니시외
||<-3><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rowbgcolor=#002654> 총재정부 의장 (1795~1799) ||
초대 제2대 제3대
장프랑수아 뢰벨 루이마리 드 라 레벨리에르레포 폴 바라스
제4대 제5대 제6대
필리프앙투안 메를랭 드 두에 장프랑수아 뢰벨 폴 바라스
제7대 제8대 제9대
필리프앙투안 메를랭 드 두에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 루이제롬 고이에
통령 (1799~1804)
제1통령 제2통령 제3통령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자크레지스 드 캉바세레스 샤를프랑수아 르브룅
프랑크 · 서프랑크 · 왕국
제1공화국 · 제국 · 7월 왕정 · 제2·3·4·5공화국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Emmanuel_Joseph_Siey%C3%A8s_-_crop.jpg
Emmanuel Joseph Sieyès (1748 ~ 1836)

1. 개요2. 생애

1. 개요

프랑스의 정치가로서 프랑스 혁명의 중심인물이었으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손잡고 총재정부를 무너뜨린 인물이다.

유럽 최초의 인권 선언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의 초안을 쓰는데 참여했다.

2. 생애

시에예스는 프랑스 남부 프레쥐에서 우편배달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소르본 대학교에서 가톨릭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은 뒤 주교가 되었다. 주교가 된 이후에는 교회제도 내에 있는 평민 출신과 귀족 출신 주교의 차이가 크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고 이게 그가 제1신분 소속이었지만 제3신분을 생각하는 책을 쓰는 계기가 된다.

1788년 루이 16세삼부회를 소집하려하자 시에예스는 1789년 1월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저술해 배포하였는데 책 말머리의 적힌 문구가 인상적이다.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모든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은 무엇이었는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무엇을 바라는가?
-무언가 되기를 원한다."

결국 이는 프랑스 혁명 당시 국회 탄생의 촉진제가 되었다.

1789년 5월 열린 삼부회에서 시에예스는 제 1신분(주교)이었지만 제 3신분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활동하였고, 6월 테니스 코트의 맹세 이후 국민의회에 참여하였고, 헌법위원회에서 참여하면서 라파예트와 함께 프랑스 인권 선언의 초안을 작성하였다.

하지만 이후부터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름이 거의 거론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후 진행된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시기에는 책잡혀서 목 안 달아나려고 죽은 듯 숨만 쉬고 있었는데, 그래서 후일 "댁은 공포정치 시기 때 (그것들 안 막고) 뭣 하고 있었소?"라는 힐난조의 질문에 웃으며 "살아있었죠"라고 대답해서 상황을 넘겼다는 일화가 있다. 어떻게 보면 스탈린 격하 연설중이던 니키타 흐루쇼프가 비슷한 야유에 "방금 어떤 새끼야! 굴라크로 가고 싶어!"라고 외친 다음 좌중이 조용해지자 웃으며 "이제 왜 그랬는지 아시겠지요?"라고 말했다는 공산주의 유머의 원조격이다.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한 이후 다시금 정치권의 중심에 서게 된다. 물론 총재정부 초창기에는 반대파도 많아서 총재로 임명되지 못했으나 1799년 5월 5인의 총재 중 한 사람으로 취임하게 된다. 이 당시 총재정부가 막장으로 돌아가자[1] 쿠데타를 계획하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손을 잡는다. 그리고 그는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로 총재정부를 무너뜨린다. 본래 그는 임시 통령정부 제1통령 자리를 노렸지만 나폴레옹에게 밀려 제2통령이 되었고, 결국 실권을 잡는데 실패한다. 그리고 나폴레옹 집권 시대에는 사실상 은퇴에 가까운 상황이 된다.

루이 18세에 의해 왕정이 복고된 뒤 추방되었다가 7월 혁명 때 프랑스로 되돌아온 뒤 1836년 사망한다. 장례는 탈레랑과 다르게 일반적인 장례식으로 치러졌다.[2]

여담으로 사회학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인물이다.
[1] 입법부와 행정부가 상호간의 고위층을 향한 암살을 매일 벌일 정도였다.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던 나폴레옹도 폭탄으로 암살미수를 경험했다.[2] 탈레랑은 죽기전에 파문을 철회 받고 가톨릭 성직자의 신분으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