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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4 02:39:00

시와스마츠리


시와스마츠리
師走祭り
파일:siwasu01.jpg
<colbgcolor=#f37321><colcolor=#fff> 개최지
[[일본|]][[틀:국기|]][[틀:국기|]] 미야자키현 미사토초 난고손(南郷村)
개최일 매년 1월 셋째 주 금, 토, 일
주관 미카도 신사(神門神社), 히키 신사(比木神社)
제신 정가왕(禎嘉王), 복지왕(福知王)
웹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상세3. 여담

1. 개요

일본 규슈 미야자키현미사토정 남향촌(南郷村, 난고손)에서 매년 음력 12월(師走, 시와스)에 진행되는 축제이다. 미카도고진코사이(神門御神幸祭)라고도 한다.[1]

2. 상세

현지에는 백제왕족 정가왕(禎嘉王)과 그 맏아들 복지왕(福知王)에 얽힌 전설이 있다. 시와스마츠리는 이 전설에서 시작되어 그 두 부자의 넋을 기리는 마츠리이다. 전설에 따르면 백제의 마지막 왕족으로 전하는 정가왕과 두 아들은 일본 나라 지방에 망명했다가 내란으로 인해 오늘날의 미야자키로 몸을 피했다. 정가왕 삼부자는 그곳에서 철기 문명을 전파한 공로로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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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왕 삼부자의 상. 왼쪽부터 복지왕, 정가왕, 하지왕이다. 정가왕을 모신 미카도 신사

현지에서 직접 보고 들은 전설은 이러하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할 때 소수의 백제 지배층이 로 망명했다. 그 중에는 직계 왕족인 정가왕과 그의 맏아들 복지왕, 둘째 아들 화지왕(華知王)도 있었다. 정가왕 부자는 지금의 나라(奈良) 지방으로 가서 정착하려 했으나 곧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어, 남쪽으로 피신하게 된다.[2] 긴 여정 끝에 정가왕의 맏아들인 복지왕은 휴가(日向)에 터전을 잡았고 아버지인 정가왕은 백 리 정도 더 들어간 내륙 산악의 남향촌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추격군은 오래지 않아 미야자키까지 이들을 쫓아왔다.[3] 정가왕 일행은 있는 힘을 다해 맞서 싸웠지만 추격군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정가왕과 둘째 아들 화지왕은 1년 뒤 살아남으면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흩어져 후일을 도모하기로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첫째 아들 복지왕은 아버지와 동생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소식을 듣고 휘하들을 모아 달려왔지만 이미 때는 늦어 정가왕과 화지왕은 숨을 거둔 후였다고 한다. 전설이나 민담이 으레 그렇듯이 여러 버전이 존재하는데 형제들은 휴가에, 아버지만 남향촌에 정착했다고 하는 버전도 있고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같이 싸우러 온 복지왕이 흩어지면서 꼭 살아서 보자고 했다는 버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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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신을 맞이하는 불을 지나 미카도 신사로 들어가는 행렬 셋째 날, 얼굴에 잿가루를 칠하고 신과 작별하는 의식

정가왕과 두 아들은 추격해온 병사에게 사망한 이후 각기 다른 신사에 모셔졌다. 아버지 정가왕은 미야자키 남향촌의 미카도 신사(神門神社), 아들 복지왕은 휴가의 히키 신사(比木神社)에 모셔져 있다. 정가왕을 모신 미카도 신사는 벽지에 있는 만큼 쇠락한 편이다. 맏아들 복지왕을 모신 히키 신사는 지역 신토 신앙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다.

축제는 형제가 1년에 한 번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준비를 하면서 시작된다.[4]잠깐 음력 12월인데?[5] 전체적인 줄거리는 아들이 백 리 길을 걸어와서 아버지를 만나서 다음날 하루종일 회포를 풀다가 셋째 날 낮에 슬픔을 가리기 위해 얼굴에 잿가루를 칠하고 작별하는 내용이다.

일본에서는 가장 오래 이어지고 있는 마츠리 행사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은 마을 축제 수준으로 작아졌다.밤에 있는 봉화 올리기 행사로만 보면 거의 국가멸망 스케일로 장관이다. 과거에는 9박 10일 간의 도보 대장정이었으나 20세기 들어서는 자동차를 사용하기 때문에 3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축제 시기도 음력 12월에서 양력 1월 셋째 주 금, 토, 일요일로 바뀌었다. 한국인이 참여하게 되면 대단히 기쁘게 받아준다. 집에서 재우려고 드는 사람도 있다!

3. 여담


[1] 신코사이(神幸祭)는 신령이 다른 곳으로 건너가는 유형의 신사 제례를 일컫는 말이다.[2] 마을 사람들은 신라 본국의 추격군이 왔다고도 하고, 당시 신라의 지원을 받는 왜의 세력에게 쫓기게 되었다고도 한다. 후자 쪽이 중론이다.[3] 하천 따라 나 있는 길 말고 산길을 통해서 남향촌으로 들어왔다고 하는데 그 길을 차로 가 보면 어떻게 여기까지 도망을 왔고 또 추격을 해왔나 싶다.[4] 신물을 옮기는 일행들이 가는 길목에 있는 곳곳의 바다와 강물에 뛰어들어 몸을 씻는 의식을 한다.[5] 음력 12월이라고 해봤자 한국 초겨울 정도라서 한낮에 직접 물에 들어가 본 결과 그럭저럭 들어갈 만했다. 물론 밤과 새벽은 산간지방이니만큼 서릿발처럼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