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족 Koreanic Languages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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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어의 조상격 언어 중 하나인 신라어의 문법에 관한 설명이다.2. 기본 가설
고대 한국어족 언어들이 전반적으로 자료가 부족하고 그마저도 한자로 적혀 있어서 문법적인 면에서 깊이 있게 다루기 어려우며, 신라어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나마 다행히 향찰을 통해 당대의 문법을 간접적으로나마 살펴볼 수 있는 정도이다.- 어순은 현대 한국어와 같이 SOV(주어 목적어 동사)였다.[1]
- 현대 한국어와 유사한 격 표지가 있었다. 주제(topic) 표지는 '隱(은)'이, 주격 표지는 '伊(이)'가, 목적격(대격) 표지는 '乙(을)' 또는 '肸(ᄒᆞᆯ)'[2]이 쓰였다. 일각에서는 중세 한국어 이래로 나타난 이형태가 당시에는 없었고, 단지 '(으)ㄴ', '이', '(으)ㄹ'과 같은 형태로 있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형태는 중세 한국어에 들어 생겨났는데, '는', '를'은 각각 '(으)ㄴ'과 '(으)ㄹ'이 두 번 중첩되어 발생한 결과로 본다[3]. 이 같은 중첩형은 혼동 방지를 위해 나타난 결과로 추정된다. 예를 들어, '나'에 주제격 '(으)ㄴ'을 붙이면 '난'이 되는데, 이것보다 '(으)ㄴ'을 한 번 더 붙여서 '나는(나-ㄴ-은)'의 꼴로 '나'의 원형을 음절 단위로 살리는 편이 소통에 원활함을 준다는 것이다.
- '되다', '답다', 그리고 어미 '-다'가 모두 '如(같을 여)'로 훈차되었다. 이는 세 단어 혹은 형태소가 모두 같은 어원의식을 공유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실제로 15세기 중반의 중세 한국어 시절만 해도 '답다'와 '되다'가 겨우 형태상 분화를 이루던 시기였으며[4], 이는 15세기 이전의 중세 한국어까지만 해도 '답다'와 '되다'가 '*답다' 혹은 '*다ᇦ다'로 한 단어였음을 암시한다. 한국어의 ㅂ 불규칙 용언의 상당수는 본래 형용사 접미사 '-ㅸ-'과 관련이 있는 바, 이 단어 역시 이를 적용하면 '다-'로 어근이 드러난다. 즉, 고대 한국어 혹은 그 이전에는 '답다', '되다', '-다' 모두 '*다'라는 하나의 단어였을 가능성이 나타난다.
- 명사형 어미와 관형사형 어미가 분화되지 않았다. 이 시절의 어미를 그래서 '동명사 어미'라고도 하는데[5], 이에 따르면 중세 한국어의 미래 시제의 '-(으)리라'는 '-(으)ㄹ'에 '이다'[6]가 결합한 것이며, 현재 시제의 '-ᄂᆞ/느니라'는 동작성 선어말어미 '-ᄂᆞ/느-'[7]에 '-(으)ㄴ'과 '-이다'가 순서대로 결합한 것이고, 과거 시제의 '-(으)니라'는 동작성 선어말어미만 빠진 형태이다. 따라서 고대 한국어에서는 동명사형 어미 뒤에 계사 '이다'를 붙여 문장을 끝맺었으며, 이것이 중세 한국어 이래로 하나의 어미로 굳어졌다는 뜻이 된다.
- 앞서 '*다'와 동명사형 어미를 함께 고려하면 고대 한국어 혹은 고대 이전 한국어에서는 지정성·동일성을 나타내는 '-*다'를 단어나 구 뒤에 붙임으로써 서술어를 만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다시 생각해 보면 용언 역시 그 구조가 본래는 '명사-(선어말 형태소)-*다'의 구성으로서, 철저히 명사 중심적인 언어였을 가능성을 암시한다.[8] 예를 들어, '공덕가(功德歌)'로도 알려진 향가 '풍요(風謠)'에는 '온다'의 뜻으로 '來如'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명사 '*오'에 동작 형태소 '-*ᄂᆞ-'가 붙고 그 뒤에 지정 형태소 '-*다'가 붙은, 명사 기반의 술어구[9]인 '*오ᄂᆞ다'였을 가능성이 있다.
- 높임법이 중세 한국어처럼 세분화되어있지는 않았으며, 대체로 경어-평어의 2가지만 확인된다. 白(ᄉᆞᆲ)은 본래 겸칭(자기낮춤법)이었으나, 점차 독립된 형태소로서의 기능이 희미해져 경어 어미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훈민정음 문헌에서 확인되는 다양한 높임법들은 전기 중세 한국어에 해당하는 고려 초중기 구결 자료에서도 잘 확인되지 않으며, 해당 높임법의 어원이 된 것으로 보이는 원시적인 형태들이 엿보일 뿐이다.[10] 우리에게 익숙한, 세분화된 높임법과 다양한 어말어미들은 고려 후기의 자료에서부터 세세한 높임/낮춤이 더해지면서 비로소 등장한다.
- 모음 교체(ablaut)를 통한 기본 어휘의 의미 분화가 신라어 혹은 그 이전부터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예 이에 해당할 것으로 추론되는 사례들만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도 있다. 얹다/앉다, 나/너/누(구), 불/밝(다), 검다/감다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3. 조사
- 주격조사
- '-是[이]': 民是愛尸知古如(백성이 사랑을 알리라) 안민가4
- 부사격조사
- 보조사
- 주제
- '-隱[은]': 善化公主主隱 (선화공주님은) 서동요1
- 한정
- '-沙[사]': 毛冬居叱沙哭屋尸以憂音 (모ᄃᆞᆯ 잇사 울ᄆᆞᄅᆞᆯ이 시름 → 못 살아 계셔 울어 마를 이 시름) 모죽지랑가2
- 첨가
- '-置/刀[도]': 倭理叱軍置來叱多 (왜군도 왔다) 혜성가3
- 각자
- '-每如[마다]': 刹刹每如邀里白乎隱 (절마다 모셔 놓은) 예경제불가6
- 선택
- '-那/乃[나]': 紙作伯士那經冩筆師那經心匠那 (지작백사나 경사필사나 경심장이나) 신라화엄경사경조성기
4. 대명사
- 2인칭
- '-汝[너]': 巴寶白乎隱花良汝隱 (솟아나게 한 꽃아, 너는) 도솔가2
- 3인칭: 학자에 따라 존재를 부정하기도 한다.
- '-伊[뎌]': 伊於衣波最勝供也 (뎌를 닙어 최승공이여 → 저를 입어 최승공이여) 광수공양가10
5. 활용어미류
- 동명사어미
- 연결어미
- 어말어미
- '-如[다]': 功德修叱如良來如(공덕 닦으러 오다) 풍요4 (평서)
- '-齊[져]': 心未際叱肹逐內良齊(ᄆᆞᅀᆞᄆᆡ ᄀᆞᅀᆞᆯ 좃ᄂᆞ라져 → 마음의 끝을 쫓고 있노라) 찬기파랑가8 (평서)
- '-去[가]': 四十八大願成遣賜去(사십팔대원 이루실까) 원왕생가10 (선택의문)
- '-古[고]': 放冬矣用屋尸慈悲也根古(어디에 쓸 자비라고 큰고) 도천수관음가9 (설명의문)
- '-良[라]': 彌勒座主陪立羅良(미륵좌주를 모셔라) 도솔가4 (명령)
- '-賜立[시셔]': 慕人有如白遣賜立(그릴 이 잇다 ᄉᆞᆲ고시셔 → 그리는 이 있다 사뢰소서) 원왕생가8 (청유)
- 선어말어미
- '-賜-[샤]': 吾肸不喩慚肸伊賜等(나ᄒᆞᆯ 안디 붓그리샤든 →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시든) 헌화가3 (존경법)
- '-白-[ᄉᆞᆸ]': 刹刹每如邀里白乎隱(찰찰마다 모리ᄉᆞᆸ은 → 절마다 모셔 놓은) 예경제불가6 (겸양법)
- '-內-[ᄂᆞ]': 吾隐去内如辝叱都(나ᄂᆞᆫ 가ᄂᆞ다 맔도 → 나는 간다는 말도) 제망매가3 (시상법)
- '-音叱-[ㅯ]': 國惡太平恨音叱如(나락 太平ᄒᆞ으ᇝ다 → 나라가 태평할지니라) 안민가10 (양태법)
[1] 예시: 나는(S) 사과를(O) 좋아한다.(V)[2] 서동요 등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신라시대에는 肸, 고려시대에는 乙이 더 많이 쓰였다.[3] 이 중가형(重加形)은 함경도와 강릉, 경북 동해안 지역어에서 '-으는, -으를'로 이어지고 있음을 증거로 든다.[4] 형태에 따라 둘 다 '다ᄫᅬ-'로 아예 같아지기도 했다.[5] 이에 대한 조명 자체는 20세기 중반부터 일찍이 이루어져 왔다. 이기문 교수 등이 이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했다.[6] 일부 선어말어미 뒤에서 '-다' 대신 '-라'가 이형태로 나타났다.[7] 이 선어말어미는 신라 시대의 기록에서 內, 臥 등으로 표기된다. 전자는 보편적인 진실도 포함해서, 후자는 일시적으로 벌어지는 현재에 대해서 사용되었다는 차이가 있으나 점차 혼용되었다. 혹은 둘이 같은 어원에서 출발했으나 잠시 분화되어 사용되었다가 다시 하나로 수렴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를 두고서 현대 한국어의 동사 '눕다'와 어원을 공유한다고 추정하는 의견도 있다.[8] 이기문 등은 이를 알타이 제어의 명사문과 연관해 많은 연구를 한 바 있다. 20세기 중후반 무렵까지만 해도 알타이 제어는 이른바 '알타이 어족'이라는 하나의 어족으로 묶는 것이 거의 정설처럼 여겨졌는데, 그만큼 이처럼 닮은 문법적 특징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9] 이 관점에서 이 '*오ᄂᆞ다'는 한 단어가 아니고 명사 '*오'와 지정성 단어 '*다'로 최소한 두 개의 개별 단어로 이루어진 구이다.[10] 중세 한국어의 세분화된 높임법을 구성하는 데 영향을 준 신라어~전기 고려어 어근들로는 -겨-(在), -샤-(賜), -ᄉᆞᆲ-(白), -이시-(敎), -고-(遣), -온-(乎) 등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