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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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 심씨 문정공파 묘역 | 신선경과 류인호 묘역 | 문양군 류희림 묘역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8호 | |
신선경과 류인호 묘역 慎先庚과 柳仁濠 墓域 | |
소재지 |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송파구 오금로 363 (오금동, 오금근린공원) |
시대 | 조선 시대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기타 |
수량 / 면적 | 분묘 3基, 석물 8基, 토지 655.5㎡ |
지정연도 | 1991년 12월 24일 |
관리자 (관리단체) | 거창 신씨 종친회 |
<colbgcolor=#C00D45> 거창 신씨 묘역[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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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전기의 문신이었던 신선경과 그의 후손들, 그리고 신선경의 사위 류인호와 그의 자손들의 묘역이다. 서울특별시 송파구 오금동 오금근린공원 경내에 있다.2. 상세
신선경과 류인호는 장인 - 사위 관계이다. 즉, 처가와 사위 가문의 묘역이 한데 있는 모습이다. 이는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사위가 처가에서 생활하고 성별 구분 없이 공평하게 상속권을 주던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류인호가 처가 묘역에 안장되면서 류인호 자손들의 묘도 그 일대에 같이 자리잡게 되었다.1991년 12월 24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8호로 지정받았다. 첫 지정 당시 이름은 '거창 신씨 묘역'이었다. 그러다가 2008년 10월 30일에 서울특별시에서 거창 신씨 묘역 동쪽에 있던, 유형문화재 제79호 문화 류씨 묘역과 통합하여 '신선경과 류인호 묘역'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문화 류씨 문중의 반발이 있었고, 이에 따라 5년 뒤인 2013년 7월 18일에 서울특별시에서 다시 두 묘역을 분리했다.# '신선경과 류인호 묘역'은 그대로 냅두었고, 문화 류씨 묘역은 '문양군 류희림 묘역'이란 이름으로 개칭했다.
3. 인물
3.1. 신선경
본관은 거창이다. 의금부도사를 거쳐 세조가 즉위한 뒤 원종공신으로 책록받고 정6품 승훈랑으로 가자받았다. 이후 사헌부 지평 직을 맡았고 성종 때에는 동지중추부사로 제수받았다.# 부인은 정부인 청주 한씨이며, 딸 중 한 명은 덕종의 후궁 숙의 신씨이다.3.2. 류인호
신선경의 사위로, 본관은 문화이다. 1447년(세종 29년)에 태어나 성종 시기에 사간원 정언 직을 역임했는데, 사가로 쫓겨난 폐비 윤씨의 일을 고하다 봉상시 주부로 좌천당했다.#[2] 이후 이조와 예조의 좌랑을 지냈고 사헌부 장령을 거쳐 사간원 사간과 공조 참의로 임명받아 일했다. 중종 때까지 관직 생활을 하다가 1522년(중종 17년)에 세상을 떠났다.4. 묘
4.1. 신선경의 묘
신선경과 한씨 부인의 묘는 쌍분이며, 봉분 가운데에 묘비와 상석이 있다. 묘비의 머릿돌에 연꽃무늬 장식을 해두었는데 묘비에서 이런 모습을 보기는 매우 드물다. 묘 양 옆에는 문인석 1쌍이 서 있다.4.2. 류인호의 묘
신선경의 묘 동쪽에는 류인호와 그의 부인이자 신선경의 딸 숙부인 신씨의 묘가 있다. 합장묘로 봉분 역시 하나이며, 묘비와 상석이 각각 1기 씩 있고, 묘 양 옆에 망주석이 1쌍 서 있다.[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뭔 말을 했길래 좌천당했나 싶겠지만, 사실 별말 아니었다. 폐비 윤씨의 집에 도둑이 들자 집에 담을 쌓게 해달라고 요청한 게 다였다. 그런 말 조차 받아들이기 싫을 정도로 성종의 폐비 윤씨에 대한 감정은 굉장히 나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