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195cm의 촉망받던 장신 세터였다. 문일고 졸업 당시 한양대학교 진학을 원하는 학교와 경희대학교 진학을 원하는 부모님 사이에 휘말리며 1년을 무적 선수로 쉬었다. 이듬해에야 성균관대학교에 겨우 입학했지만, 2학년을 마치고 삼성화재에 입단할 때 또 스카우트 파동으로 곤욕을 치렀다. 삼성화재 입단 후 신치용 前 감독의 권유로 세터에서 센터로 변신했고, 빠른 발을 이용한 날카로운 속공 및 위력적인 서브로 '삼성화재 왕조' 구축에 힘을 보탰다.
삼성화재가 겨울리그 77연승의 대기록을 수립했을 당시의 주축 멤버이며, 커리어 통틀어 총 10번의 리그 우승(실업 5회+프로 5회)을 차지했다. 2001 배구슈퍼리그에서 베스트6를 수상하였고, 2003 배구슈퍼리그와 2004 V-투어에서는 2시즌 연속으로 블로킹상과 서브상을 석권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국가대표 센터로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하였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남자배구가 24년 만에 금메달을 따는 데 공헌했다. 또한, 2001년과 2003년에는 아시아 선수권 2연패를 달성하기도 했다.
프로배구 V리그 2008-09 시즌까지는 주전으로서 코트를 누볐으나,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 발목을 잡아 결국 2010-11 시즌을 끝으로 실업 시절을 포함한 12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하였다. 2012년 1월 15일 대전 충무체육관에 진행된 공식 은퇴식을 통해, 그 동안 팀에 기여한 공로와 우승 경력 등을 인정받아 삼성화재 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은퇴한 후에는 라멘 가게도 한 적이 있고, 또한 해설위원으로도 일하다가, 김상우의 후임으로 모교인 성균관대학교 배구부 감독을 맡았다.
그러나 2019년4월에 배구부 학생을 14바늘이나 꿰매도록 폭행하여 물의를 빚었다. 이 사건으로 경기도배구협회로부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으며 감독직에서 물러났다.[7] 게다가 금품 상납 논란까지 일으켜 직위가 해제되는 결과까지 낳았다. 후임으로는 김상우가 다시 돌아왔다. 그 이후 OK금융그룹의 수석 코치로 현장에 복귀했지만 2022-23 시즌 후 석진욱 감독이 물러남에 따라 같이 구단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