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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03 14:34:36

신축조약

1. 개요2. 원인3. 조약 서명국
3.1. 열강 대표3.2. 청나라 대표
4. 내용5. 결과6. 여담

1. 개요

北京議定書(辛丑條約)

신축 각국 화약, 베이징 의정서, 의화단 의정서로도 불린다. 1901년 9월 7일 체결된, 청과 열강 11개국(영국, 프랑스, 독일국, 미국, 러시아 제국,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스페인, 벨기에, 네덜란드) 사이의 조약이다.

2. 원인

1899년 청나라에서 부청멸양(扶淸滅洋 : 청을 도와서 서양과 일본을 멸하자!)[1]을 슬로건으로 앞세운 의화단 운동이 일어난다. 이러자 실권자인 서태후는 의화단 운동을 이용해서 서양 세력들을 혼내줄 계획을 세운다.[2] 그리고 곧 선전포고를 한다. 그에 대항하여 서양과 일본은 8개국 연합군을 결성하여 청나라 군대와 의화단을 박살내고 베이징을 점령한다.[3] 그리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청나라에서 이홍장아이신기오로 이쾅이 전권대표로 나서서 서양의 요구대로 체결한게 바로 베이징 의정서이다. 이 조약으로 청나라는 사실상 서구열강과 일본의 반식민지로 전락하고, 껍데기만 남게 된다.

3. 조약 서명국

3.1. 열강 대표

3.2. 청나라 대표

4. 내용

1. 배상금 원금 4억 5,000만냥, 연리 4%로 1902년부터 1940년까지 39년간에 걸쳐 총 9억 8,200여만 량을 지불할 것.
1. 의화단 운동의 주모자를 처벌할 것.
1. 외국군의 베이징 주둔을 허가할 것.
1. 대고포대를 비롯하여 베이징에서 해안가에 이르는 통로에 방해가 되는 각 포대를 모두 철거할 것.
1. 베이징과 산해관에 걸친 철도연변의 주요 지역 12곳(황촌, 낭방, 양촌, 톈진, 군량성, 당고, 노대, 탕산, 난주, 창려, 친황다오, 산해관)에 열강 군대가 주둔하도록 할 것.
1. 청나라는 총리아문 대신 외무부를 설치해 6부의 위에 둘 것.

5. 결과

청나라의 시한부 인생 스타트. 청은 망해가기 시작하고 결국 1911년 신해혁명으로 뒤집어진다.

6. 여담

체결에 1년 가량이 소모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기네들이 보다 더 많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1] 조선의 동학 농민 운동때도 척양척왜 구호를 썼다. 여기서 양은 洋鬼子의 줄임말로 양놈이라고 하는게 정확한 번역이다.[2] 당시 광서제는 서양세력과의 타협을 주장했으나 서태후에 묵살당한다.[3] 서양은 아니지만 일본도 있다.[4] 이탈리아의 외교관이자 식민지 총독, 정치인으로서 베니토 무솔리니의 탄생과 죽음을 보았고 죽기 직전에는 이탈리아의 군주제 종식을 승인하는 국민 투표 승인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