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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12 13:38:20

아라르 전투

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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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58년 6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끄는 로마군과 헬베티족이 맞붙은 전투이다. 갈리아 전쟁을 단행한 카이사르가 첫 번째로 승리한 전투였다.

2. 상세

기원전 58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전직 집정관의 자격으로 갈리아 키살피나, 갈리아 나르보넨시스, 그리고 일리리쿰 속주 등 3개 속주의 총독으로 부임했다. 집정관은 임기가 끝나면 원로원에 의해 속주 한 곳의 총독으로 부임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제1차 삼두정치를 결성해 폼페이우스크라수스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기에 카이사르는 3개 속주를 5년간 이끌면서 군대를 모집하고 전쟁을 마음대로 이끌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주어졌다.

카이사르는 집정관을 한 번 맡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큰 성공을 갈망했다. 그러려면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군사적 위업을 달성해야 했고, 이를 위해 갈리아를 제패하겠다는 야망을 불태웠다. 헬베티족의 대이동은 그런 그에게 갈리아 정세에 개입할 절호의 기회를 마련했다. 헬베티족은 알프스 산맥과 론 강, 그리고 갈리아 키살피나 속주와 레만누스 호수로 둘러싸인 영역에 거주했다. 그들은 게르만족의 침략에 끊임없이 시달렸고, 사람 수에 비해 영토가 너무 작다고 여겼다.

그러던 중 헬베티족의 가장 강력한 귀족이었던 오르게토릭스가 갈리아 내로 이주해 새로 정착하자고 주장하자, 수많은 이가 이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오르게토릭스는 하이두이족의 지도자였던 디비키아쿠스의 동생이며 형의 지위를 빼앗을 야심을 불태우던 둠노릭스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 인척 관계를 맺었고, 세콰니족의 유력자의 아들인 카스티쿠스로부터도 협조 약속을 받아냈다. 세 사람은 서로 협력하여 각 부족의 족장의 지위에 오른 뒤 갈리아 전역을 3분하여 통치하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들통났고, 오르게토릭스는 부족민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자 자살했다. 하지만 그의 이주 정책만큼은 호평받았기에, 헬베티 족장 디비코는 이주를 그대로 감행하기로 했다.

기원전 58년 봄, 헬베티족은 마을을 불태우고 가져갈 수 없는 것을 모두 파괴한 뒤, 라우리치족, 퉁링기족, 라도브리기족, 보이족과 함께 서쪽으로 이동했다. 카이사르가 저술한 《갈리아 전기》에 따르면, 이주 행렬에 동참한 이는 300,000명에 달했으며, 그중 1/4이 전사였다고 한다. 카이사르는 헬베티족이 대이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1개 군단을 이끌고 제네바로 이동해, 론 강 하류에 자리잡았다. 헬베티족이 론 강을 건너 로마의 속주 영토를 지나가 갈리아로 진입하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하자, 카이사르는 일부러 15일 후에 답변하겠다고 한 뒤 론 강 남쪽 제방에 요새를 구축하고, 강 위의 다리를 파괴했으며, 추가 병력을 불러들였다. 15일 뒤 헬베티족의 사절이 재차 오자, 카이사르는 도하를 거부했다. 일부 헬베티족이 이를 무시하고 강을 무작정 건너려고 했지만, 로마군의 요격으로 사살당했다.

로마군의 경계가 삼엄하여 론 강을 건널 수 없게 되자, 헬베티족은 차선책으로 세콰니족의 영토를 통과하기로 했다. 그들은 둠노릭스의 중재로 세콰니족의 영토를 통과하는 걸 허락받고 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주변 영지를 심하게 약탈하고 하이두이족의 영토로 진입하려고 했다. 카이사르는 헬베티족이 이대로 하이두이족의 영토까지 침략하여 자리를 잡는다면 로마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 보고, 2개 군단을 새로 편성했으며 다른 갈리아 속주의 3개 군단을 합류시키고 국경 지대를 지키고 있었던 1개 군단까지 불러들여 총 6개 군단을 편성해 갈리아에 개입할 적절한 시기가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헬베티족의 침략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하이두이족의 지도자 디비키아쿠스는 근처에 6개 군단을 거느린 채 대기 중이었던 카이사르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카이사르는 즉시 받아들이고, 헬베티족을 추격했다. 당시 헬베티족은 20일이 넘도록 아라르 강을 도하하고 있었고, 전체 병력의 1/4이 아직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에 3개 군단을 이끌고 야간 행군하여 그들을 습격해 대거 섬멸했다. 아라르 강을 이미 건넜던 헬베티족은 강 건너편의 동지들이 무참하게 살육당하는 걸 무력하게 지켜보다가 도주했다.

이후 로마군은 다리를 하루만에 완공하여 아라르 강을 건넜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디비코가 사절을 보내 강화를 요청하자, 카이사르는 하이두이족과 세콰니족에게 보상하고 볼모를 제공하며, 본래의 땅으로 돌아가라고 요구했다. 헬베티족은 이를 거부하고 계속 행군했으며, 카이사르는 그들을 추격했다. 그러나 군량이 떨어지자 하이두이족의 도시로 방향을 돌렸는데, 디비코는 로마군이 후퇴한다고 여기고 즉시 추격했다. 이리하여 양측은 비브라테 전투에서 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