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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4 20:11:43

아라카와 무차별 살상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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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건 경위3. 범인은 누구인가4.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다5. 관련 문서

1. 개요

荒川連続自転車通り魔殺傷事件[1]

1959년 일본에서 발생한 무차별 살상 사건.

2. 사건 경위

1959년 1월 27일 오후 6시 40분경 도쿄도 아라카와구의 한 골목에서 빌린 책을 갖다주러 가던 코베 마사코(小部雅子)라는 17세 소녀가 자전거를 탄 소년에게 갑자기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마사코는 칼에 찔린 와중에도 범인을 뒤쫓으려고 했으나 얼마 못 가 그를 놓쳤고 인근 병원으로 실려가 전치 1개월의 중상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한 마사코는 자신과 비슷하게 부상을 입고 실려온 사람들이 9명이나 더 있는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다. 이들은 모두 젊은 여성들로, 마사코처럼 자전거를 탄 정체불명의 누군가에게 습격당한 피해자들이었다. 피해자는 마사코를 포함해 총 10명으로, 이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습격당한 타나베 요시코(田辺喜子, 당시 16세)[2]는 끝내 사망했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도 1월 21일부터 여성 11명이 습격당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는데 이때만 해도 경상에 그치거나 옷이 찢기는 정도의 경미한 피해만 있었던 데다 당시 아라카와구 일대에서 치한이 출몰하는 것이 거의 일상이다시피 했기 때문에 별도로 신고가 접수되지는 않았지만 단순한 장난 정도로 생각되었던 일이 사망자까지 발생한 만큼 이제는 경찰에서도 더 이상 장난으로 치부할 수 없게 되었다. 1월 27일의 사건을 포함하여 피해자는 총 21명으로 늘어났고 대부분 10대에서 20대 후반 사이의 젊은 여성이었으며[3] 범행 시간은 오후 5시부터 7시 40분 사이였다.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경찰은 아라카와경찰서와 오구경찰서에 합동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아라카와구 일대의 경비를 강화했으나 1월 30일에 또다시 같은 수법으로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번에는 이른 아침에 사건이 일어났으며 피해자의 집에 '너무 떠들지 마라(あまり騒ぐな)'는 내용의 협박 편지까지 배달되었다. 이 사건으로 아라카와구 일대는 공포에 휩싸였으며 주민들이 자경단을 조직하여 지역 일대를 순찰했고 젊은 여성들은 저녁 시간에 혼자 다니는 것을 극도로 피하게 되었다.

3. 범인은 누구인가

범인의 인상에 대해 피해자 중 한 명인 코베 마사코는 마치 '숯가게 점원'같은 인상의 15~6세 전후로 보이는 소년이었다고 증언했고 다른 피해자들도 비슷하게 '불량학생', '젊은 공장 직원' 같았다고 증언했는데 검은색으로 추정되는 점퍼를 입고 있었으며 그가 타고 있던 자전거는 낡은 것이었다고 한다.

인상착의나 범행 시각으로 보아 당초에는 직장에 근무해서 낮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는 근로청소년의 범행으로 추정되었으나 사건 현장이 가로등이 얼마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공장지대인 데다 골목길이 복잡하게 얽혀 사각지대가 많다는 특성상 범인의 인상착의를 판별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게다가 범인이 범행을 저지르고 나서는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도주해 버려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는 피해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그나마 범인을 비교적 자세히 목격한 편이었던 마사코도 범인의 대략적인 인상만 기억했을 뿐 구체적인 얼굴 생김새까지는 모르는 상태였다.

마사코는 범인을 뒤쫓다가 상가 앞에서 놓쳤는데 경찰은 이 점에 주목했다.[4] 범인을 놓쳤을 때 문득 옆에 보인 숯가게 앞에서 한 소년이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는 마사코의 증언에서 착안해 마사코가 범인을 놓친 상가에 입주해 있던 숯가게의 3남 A(당시 17세)가 유력 용의자로 거론되었다. A는 1월 27일 밤 극장에 갔다가 영화가 끝난 뒤 이케부쿠로에 있는 삼촌 집에 놀러 갔다가 11시경에 귀가했다고 진술했으나 알리바이 자체가 명확하지 않았다. 게다가 A는 자전거 애호가였고 검은 빛 도는 점퍼 등 피해자들의 증언과 거의 비슷한 차림으로 동네를 돌면서 수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A가 용의 선상에 올랐다는 정보를 입수한 기자들이 A의 가족이 운영하던 숯가게로 몰려들었고 가게를 포위하다시피 한 기자들 때문에 위험을 느낀 A의 아버지가 "무서워서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으니 아들을 보호해 달라"고 경찰에 요청했으며 아버지가 A를 경찰서에 데려가자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것을 우려한 경찰은 A를 닛포리에 있는 경찰 기숙사에 머물게 하도록 지시했지만 다음날 아침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닛포리 경찰 기숙사 주위에까지 몰려들기 시작하자 "이대로는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 철저히 조사해 달라"는 A 아버지의 간곡한 호소에 경찰 간부진 차원에서 회의를 열었고 그 결과 증거로 제시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 A의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수사 제1과장 명의로 담화를 발표했다.

4.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다

경찰은 아라카와구 일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수배 전단을 배포하고 정보 제공을 요청했다.
최근에 갑자기 복장을 바꾼 자
신문을 닥치는 대로 읽는 자
이 사건을 이상하리만치 신경쓰는 자
그 이후의 거동이 불안해 보이는 자
갑자기 말이 없어지거나, 기척이 변한 자
사건 이후 종적을 감춘 자

그러나 이렇다 할 단서는 나오지 않았고 A가 증거불충분으로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음이 판명된 후에도 상점 직원 내지는 주인이 단지 배달을 하고 있을 뿐인데도 "혹시 저 사람 아니야?"라는 단순 의심에서 그치는 정도로 별 의미 없는 정보만 넘쳐났다. 심지어 A와 같은 성씨의 소년 하나가 범인으로 의심받다가 결국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자살을 시도한 사건까지 있었다.

결국 경찰과 주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범인 체포는커녕 특정마저 실패했고 그대로 1974년에 공소시효가 종료되면서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5. 관련 문서


[1] 아라카와 연속 자전거 묻지마 살상사건[2] 마사코가 괴한에게 습격당하고 약 40여분 후에 피습당했다.[3] 피해자 중 1명은 당시 8세의 초등학생이었다.[4] 사건 발생 지역은 각 구역을 연결했을 때 삼각형이 되는 구역 내에서 일어났고 그 삼각지대의 중심에 상가가 있었지만 상가 주변에서는 범행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은 범인이 상가 쪽 사람이고 아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른 곳에서 범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추정했다.[5] 이 사건은 사망자는 없었으나 피해자 중 한 명은 성기가 절단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