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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04 19:25:14

아르다시르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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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 제국 11대 샤한샤
𐭠𐭥𐭲𐭧𐭱𐭲𐭥 |아르다시르 2세
파일:Taq-e_Bostan_-_Ardashir_II.jpg
케르만샤 타케 보스탄의 아르다시르 2세 부조
제호 한국어 아르다시르 2세
중기 페르시아어 𐭠𐭥𐭲𐭧𐭱𐭲𐭥
영어 Ardashir II
존호 샤한샤
생몰 년도 309년~?
재위 기간 379년~383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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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산 왕조의 제11대 샤한샤.

2. 생애

호르미즈드 2세의 아들로, 샤푸르 2세의 이복형제다. 둘이 동년배였다고 하니, 부친이 사망한 309년경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344년부터 아디아베네(Adiabene)의 왕으로서 샤한샤 샤푸르 2세를 섬겼고, 샤푸르가 350년부터 357년까지 쿠샨 일대를 침략한 백훈족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때 협력했다. 363년 율리아누스 황제가 사산 왕조에 쳐들어와서 크테시폰을 위협할 때도 샤한샤를 도왔을 것이다. 376년, 샤푸르는 아디아베네를 비황실 관료가 다스리는 지방으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그는 아디아베네의 마지막 왕이 되었다. 피르다우시의 <샤나메>에 따르면, 샤푸르는 379년 죽기 전에 그를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아들 샤푸르 3세가 장성하면 퇴위하겠다는 서약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전반적인 통치가 어땠는지는 기록이 미비해서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아랍측 학자들의 사료에 따르면, 아르다시르는 재위 기간 중 아랍인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하지만 샤푸르의 기독교 박해 정책에 전적으로 따랐고, 즉위 후에도 박해를 계속했기 때문에, 기독교측 사료에서는 샤푸르에 버금가는 폭군으로 기술되었다. 한편, 그는 즉위 직후 케르만샤 타케 보스탄에 샤푸르와 자신의 부조를 세웠다. 이 부조에서, 두 샤한샤는 한 인물을 짓밟고 있다. 짓밟힌 인물은 왕관을 쓰고 있는데, 363년 크테시폰까지 쳐들어갔다가 목숨을 잃은 율리아누스인 것으로 추정된다.

379년 아르메니아의 장군 마누엘이 로마가 임명한 왕 바라다테스를 폐위하고 아르사케스 3세볼로가세스 3세를 공동 왕으로 선임했다. 마누엘은 로마 제국이 이에 불만을 품고 침공할 걸 우려해 사산 왕조에 구원을 요청했다. 아르다시르는 기꺼이 원군을 보내주고 아르메니아를 페르시아의 보호령으로 삼았다.

그러나 마누엘은 얼마 지나지 않아 페르시아 수비대를 적대시했고, 급기야 1만 명에 달하는 페르시아군을 몰살하고 말았다. 아르다시르는 이에 격분하여 구마드 샤푸르(Gumand Shapuh) 휘하의 군대를 파견하여 아르메니아를 침략하게 하였지만, 마누엘은 사산 왕조군을 격파하고 샤푸르를 죽였다. 바라즈가 이끄는 또다른 페르시아군이 투입되었으나, 마누엘은 이 역시 무찌르고 바라즈도 죽였다. 아르다시르는 포기하지 않고 마카한 장군이 이끄는 군대를 파견하였고, 이번에는 아르메니아 일부 지역을 공략했지만 곧 마누엘의 반격으로 참패하여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로 인해 아르메니아는 7년간 사산 왕조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 그는 아르메니아에게 연이어 수모를 당한 일로 입지가 매우 위태로워졌고, 결국 383년 샤푸르 3세에게 양위해야 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