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데오 비아바티의 수상 이력 | |
{{{#!folding ▼ |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
이름 | 아메데오 비아바티 (Amedeo Biavati) |
생년월일 | 1915년 4월 4일 |
사망년월일 | 1979년 4월 22일 (향년 64세) |
국적 | 이탈리아 |
출신지 | 이탈리아 왕국 볼로냐 |
포지션 | 아웃사이드 라이트 포워드 |
신체조건 | 172cm | 74kg |
소속팀 | 볼로냐 FC 1909 (1932-1934) 칼초 카타니아 (1934-1935) 리미니 1912 FC (1935-1936) 볼로냐 FC 1909 (1936-1948) LFA 레조칼라브리아 (1948-1949) 이몰레제 칼초 1919 (1949-1950) AC 마젠타 (1950-1951) 만두리아 (1951-1952) AC 시타 디카스텔로 (1952-1953) 몰페타 스포르티바 1917 (1953-1954) AC 벨루노 1905 (1954-1955) |
국가대표 | 18경기 8골 (1938-1947) |
감독 | 이몰레제 칼초 1919 (1949-1950) AC 마젠타 (1950-1951) 만두리아 (1951-1952) AC 시타 디카스텔로 (1952-1953) 몰페타 스포르티바 1917 (1953-1954) AC 벨루노 1905 (1954-1955) 카스텔마조레 (1967-1968) 알쇼르타 트리폴리 (1968-1969) 로베레토 (1969-19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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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 감독.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볼로냐에서 태어난 비아바티는 1932년, 그의 선수 커리어 대부분을 보낼 고향팀 볼로냐 FC 1909에 입단했다.1933년 5월 21일, 18세의 소년이었던 비아바티는 볼로냐가 카살레 FBC를 7대0으로 깨뜨린 경기에서 하프백으로 데뷔했고 이 경기에서 2분 만에 2골을 넣었다. 비아바티는 2주 후의 경기에서도 AC 밀란을 상대로 또 멀티골을 넣었지만 기존 주전 멤버들이 부상 복귀하자 벤치로 밀려났다.
결국 비아바티는 칼초 카타니아와 리미니 FC를 거친 2년간의 타팀 생활 후 다시 볼로냐로 돌아왔고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그 사이 볼로냐는 스쿠데토를 다툴 만한 강팀으로 성장해 있었고 비아바티가 다시 볼로냐에서 생활한 12년간 3번의 스쿠데토를 추가했다. 그리고 비아바티는 로소블루에서 258회의 리그 경기에 출전했고 70골을 넣었다.
1948년에 볼로냐를 떠난 비아바티는 하부 리그 팀들의 선수 겸 감독으로 1949년부터 1955년까지 활동했다.
2.1.2. 국가대표
볼로냐에서 활동하던 비아바티는 1938년 월드컵에 처음으로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첫경기는 벤치를 지켰지만 8강 프랑스전에서 데뷔, 후반에만 실비오 피올라에게 2개의 어시스트를 몰아주면서 이탈리아의 3대1 승리에 기여했다. 비아바티는 이 대회에서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남은 2경기에서도 정확한 크로스로 오른쪽 측면 공격을 책임지며 이탈리아의 FIFA 월드컵 2연패에 크게 기여했다.1939년 5월 13일, 밀라노의 산시로 경기장에서 있었던 잉글랜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2대2로 비겼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비아바티는 에디 햅굿과 골키퍼 빅 우들리까지 제치고 골을 넣어 자신의 인생골을 만들어냈다.
비아바티는 1947년까지 대표팀에서 18경기에 출전, 8골을 넣었다.
2.2. 이후
비아바티는 선수 겸 감독직을 끝낸 후 한동안 친정팀의 유소년팀을 지도했다.1967년부터 카스텔마조레, 알쇼르타 트리폴리, 로베레토 등에서 감독직을 맡았지만 유의미한 성과는 거두지 못했고 볼로냐의 스포츠 시설을 관리하며 여생을 보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비아바티는 빠르고 창의적인 선수였다. 또한 득점 기회를 포착하는 직감이 있었고 스텝오버를 비롯한 각종 현란한 테크닉과 정확한 크로스 능력도 보유했다.브루노 콘티와 견줄만한, 이탈리아 출신 윙어 중 최고 반열에 드는 선수이다.
누군가 무모가 그의 오른발[2]로 공을 잡아놓기 위해 스텝오버(헛다리)를 구사했다고 주장한다면 난 그것은 가까스로 묘사하는 수준이라고 말해야겠다. 비아바티가 그것을 완벽히 마스터했다. 관중들은 그의 사이드라인 돌파를 기다렸고 상대 수비수들도 돌파를 기다려야 했다. 최고 속력으로 비아바티가 공중에 도약할 때 그는 마치 공중에서 백힐이라도 하고 싶어하는듯 했다. 수비수가 잠시 주춤하자 비아바티는 반대발로 공을 터치한 후 수비수를 따돌렸다.
비토리오 포초
비토리오 포초
4. 뒷이야기
- 비아바티는 평발이었다.
5. 수상
5.1. 클럽
- 세리에 A 우승 3회: 1936-37, 1938-39, 1940-41(볼로냐 FC 1909)
- 세리에 A 준우승 1회: 1939-40(볼로냐 FC 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