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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27 09:51:34

아부 야쿱 유수프 앗 나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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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마린 왕조의 아미르 & 술탄
5대 아부 유수프 야쿱 6대 아부 야쿱 유수프 앗 나스르 7대 아부 싸비트 아미르

1. 개요2. 즉위3. 안달루스 포기4. 틀렘센 포위 (1299 ~ 1307년)5. 죽음6. 여담

1. 개요

أَبُو يُوسُف يَعقُوب الناصر
아부 야쿱 유수프 앗 나스르[1]

생몰 ? ~ 1307년 5월 13일
재위 1286년 3월 ~ 1307년 5월 13일

마린 왕조의 5대 아미르. 즉위 초반부터 내전에 직면하였고, 그 틈에 안달루스의 거점 타리파를 상실하였다. 타리파 회복에 실패하자 그는 남은 안달루스 영지를 그라나다 (나스르 왕조)에게 넘기고 후방을 괴롭히던 틀렘센의 자얀 왕조를 공격하였다. 하지만 8년에 걸친 틀렘센 포위는 유수프의 암살과 함께 실패하였고 마린 왕조는 북부의 반란에 직면하여 한동안 혼란을 격었다.

2. 즉위

1286년 부왕 야쿱이 안달루스에서 사망하자 계승하였다. 다만 기존의 형제 세습에서 부자 세습으로 전환되면서 동생을 포함한 친척들의 반발이 있었는데, 이들은 틀렘센의 자얀 왕조의 지원을 받았다. 유수프는 우선 그라나다의 무함마드 2세와 신속히 휴전을 맺었다. 그는 타리파, 알헤시라스, 론다, 과디시를 제외한 안달루스 영지를 포기하였다. 한편 마린 조에 복속했던 바누 아쉬킬룰라의 거점 과디시 역시 1288년 그라나다에 점령되었고, 유수프는 바누 아쉬킬룰라에게 모로코의 새 영지를 주어 이주시켰다. 같은해 11월에는 유수프의 친아들 아부 아미르가 음모를 꾸미다가 적발되었고, 후자와 참모들은 틀렘센의 군주 아부 사이드 우스만의 궁정으로 망명하였다. 유수프는 곧 아들과 화해하였고, 틀렘센 측에 모의자들의 처벌을 위해 그들을 넘기라고 지시하였다. 하지만 우스만은 이를 거절하였고, 이에 1290년 마린 함대가 알제리 해안을 봉쇄했으나 별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3. 안달루스 포기

1291년 선대에 체결된 카스티야와의 휴전이 종료되자 안달루스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유수프가 틀렘센에 신경쓰는 틈에 카스티야의 산초 4세는 무함마드 2세와 연합해 안달루스에 남은 마린 조의 영토 (타리파, 알헤시라스, 론다)를 점령하기로 하였다. 1292년 10월 그라나다 군의 도움으로 산초 4세는 타리파를 점령하였는데, 약속과 달리 도시를 무함마드 2세에게 넘기지 않고 차지해버렸다. 분노한 무함마드 2세는 복수를 위해 유수프에게 접근하였고, 1293년 초엽 양측은 탕헤르에서 회동하였다. 유수프는 타리파가 수복되면 마린 조에 귀속시키되 알헤시라스와 론다를 그라나다 측에 넘겨주기로 하였다. 협약의 증표로 무함마드 2세는 아브드 알 라흐만 1세의 도피 후 우마이야 왕가의 가보로 내려오다가 13세기 들어 그라나다의 금고에 안치되었던 칼리파 우스만 시절 쿠란을 유수프에게 선물하였다. 한편 산초 4세와 대립하던 동생 돈 후안 역시 이 연합에 참가하였다.

1294년 안달루스에 상륙한 유수프는 타리파를 공격하였다. 시가지는 손쉽게 점령되었지만 카스티야 귀족 알폰소 페레스 데 구즈만은 시타델에서 완강히 저항하였다. 이에 돈 후안이 나서 인질로 잡고 있던 구즈만의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하였지만, 이에 구즈만은 칼을 던져주며 진행하라고 말하는 배포를 보였다. 포위가 장기화될 무렵 유수프는 리프 지역의 베르베르계 와타스 부족이 자얀 왕조의 선동으로 반란을 일으켰다는 비보에 타리파를 포기하고 회군하였다. 반란은 오랜 전투 끝에 힘겹게 진압되었다. 한편 타리파 탈환 실패로 좌절한 유수프는 도시를 얻지 못했음에도 알헤시라스와 론다를 무함마드 2세에게 넘겨주며 안달루스 경영을 포기하였다. (1295년) 안달루스를 포기하고 마그레브에 집중하기로 한 유수프는 지속적으로 마린 조를 후방에서 괴롭힌 자얀 조에 대한 일망타진에 나섰다. 그는 1295년 타우릴트, 1296년 우지다, 1297년 타누트[2]와 네도르마를 점령하였다.

4. 틀렘센 포위 (1299 ~ 1307년)

파일:모로코 틀렘센 1.jpg
유수프가 건설한 병영도시 알 만수르의 성벽
파일:모로코 틀렘센.jpg
알 만수르의 대사원 유적 (1303년 건설)

완벽한 정복을 염두에 두고 4년에 걸쳐 서서히 주변 지역을 점령한 유수프는 마침내 1299년 5월 자얀 조의 수도 틀렘센을 포위하였다. 장기전을 예상한 유수프는 포위 진영으로 알 마할라 알 만수라 (승리의 진영)을 건설하였다. 이는 시장, 공공 욕탕, 궁전, 모스크를 지닌 완연한 도시로 발전하였고, 포위의 본부와 동시에 일대를 지나가는 상인들을 불러모아 틀렘센의 경제를 위협하였다. 포위된 틀렘센은 항복을 거부하였고, 알 만수르에서 파견된 마린 군대는 알제에 이르는 해안 지역까지 장악하였다. 1303년 포위된 도시에서 우스만이 사망하자 주민들은 항복하려 하였으나, 계승한 아들 아부 자얀 무함마드의 굳은 의지에 저항은 계속되었다. 포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파견된 틀렘센의 사자들은 무함마드 2세에게 그의 보호 하에 있던 마린 왕공 우스만 이븐 아빌 울라를 세우타로 보내어 반란을 지속하도록 청하였다. 이는 수용되었고 1306년 우스만은 그곳에서 모로코의 군주를 칭하였다.

5. 죽음

하지만 틀렘센의 붕괴가 임박했다고 여기던 유수프는 후방의 위협을 묵살하고 포위를 이어갔다. 견제받지 않은 우스만의 반군은 아실라, 라라셰, 고마라 일대 (대충 탕헤르 ~ 테투안)를 점령하였다. 그리고 1307년 5월 유수프는 알 마할라 진영에서 하렘의 환관에게 암살되었다. 그를 계승한 손자 아부 싸비트 아미르는 틀렘센 포위를 풀고 세우타의 우스만 진압에 나섰다. 따라서 12년에 걸친 유수프의 알제리 원정은 무위에 그쳤다. 사후 두 장손들이 각각 1년, 2년씩 즉위한 후 막내 아들 아부 사이드 우스만이 계승한다.

6. 여담

우연인지 한세기 이전 무와히드 왕조의 2대 칼리파 아부 야쿱 유수프와 나사브 (부친명)를 제외한 이름이 같다. '칼리파' 유수프의 아들이 야쿱이고 '아미르' 유수프의 부친이 야쿱인 것은 다르긴 하다. 이렇게 야쿱, 유수프가 짝을 지어 부자의 이름으로 쓰이는 것은 무와히드 조와 마린 조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1] Abu Yaqub Yusuf an-Nasr[2] 와타스 부족의 거점이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