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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8 04:28:38

아이신기오로 호오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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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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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청 황제 · 역대 청 황태자 · 역대 청의 황녀
※ 기록이 있는 인물만 기재
}}}
<colbgcolor=#fecd21><colcolor=#00386a> 愛新覺羅 豪格
애신각라 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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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화석숙무친왕(和碩肅武親王)
별호 패륵(貝勒) ⇒ 화석숙친왕(和碩肅親王)
출생 1609년
사망 1648년 (향년 38~39세)
부친 청 태종 숭덕제
모친 계비 울아나라씨

1. 개요2. 생애3. 가족 관계
3.1. 부인3.2. 자녀들
4. 대중매체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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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나라의 제2대 황제인 태종 숭덕제 홍타이지의 장자이며 세조 순치제 풀린의 이복형으로 어머니는 계비 울아나라씨였다.[1] 숭덕제의 장자로 전공을 세워 황위 계승자로 내정되었으나, 이복숙부이자 라이벌인 아이신기오로 도르곤과 팽팽히 맞서면서 황위를 계승하지 못했다. 홍타이지의 사후 순치제가 즉위하자 그의 섭정직을 놓고 도르곤과 경합을 벌였으나 결국 패배하고 옥사했다. 시호는 숙무친왕(肅武親王).

2. 생애

1609년 홍타이지와 우라나라(오랍나랍)씨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무용이 뛰어나 몽골족 및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부친인 홍타이지를 따라 출정하여 종종 무공을 세웠다. 청 숭덕 원년(1636년)에는 숙친왕(肅親王)에 봉해졌다.

1643년 홍타이지가 급사한 후, 황위를 계승할 유력한 후보로 그의 숙부인 도르곤을 옹립하려는 세력과 대립했다. 그러나 숭정전을 둘러싸며 무력시위를 하던 양황기와 정황기 대신들은 정실인 숭덕오궁 소생 중 가장 연장자인 6세 풀린의 황위 계승을 지지했다. 황기 대신들이 호오거가 황제, 풀린을 태자로 봉하도록 제안하자 종친의 수장이자 홍타이지의 이복형이었던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다이샨은 호오거가 이를 받아들이길 바라였으나 호오거는 얼굴마담 노릇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의정왕회의에서 퇴장했다. 이후 다른 팔기왕들도 대부분 퇴장하고 도르곤과 지르갈랑이 순치제를 옹립하며 좌우섭정왕을 맡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순치제의 시대에 섭정왕으로서 권세를 가진 도르곤은, 정적인 호오거를 실각시키기 위해 무고를 했고 결국 호오거의 작위를 박탈한 후, 유금했다. 호오거는 순치 5년(1648년) 옥중에서 사망했다.

호오거가 죽은 후 그의 정람기는 도도의 양백기와 환기하게 된다.

순치제는 도르곤의 사후, 형 호오거의 원죄를 풀어 명예를 회복시켰고, 1651년 아들인 부수에게 숙친왕을 잇게 하는 한편 도르곤의 작위를 박탈했다.[2] 시호는 '무'(武)로 정식 칭호는 숙무친왕(肅武親王)이다. 순치제의 친정 이후에 작위가 복권되었다.

3. 가족 관계

3.1. 부인

3.2. 자녀들

4. 대중매체

5. 여담

호오거의 아들 중 작위를 받은 것은 아들 부수로 현친왕이었으며, 다섯째 아들인 맹권(猛瓘)은 온량군왕(温良郡王)의 작위를 받았다.

호오거로부터 시작된 숙친왕 작위은 영구 세습이 가능한 철모자왕 중 하나로 제11대 헌장(憲章)까지 이어졌다. 헌장은 제10대 숙친왕 선기(善耆)의 장자로 카와시마 요시코로 잘 알려진 셴위(顯玗)의 이복오빠다.

[1] 울아나라씨는 홍타이지의 대복진으로 그녀의 아들인 호오거도 본래는 적장자였으나 울아나라씨가 폐출되면서 측생자로 격하되었다. 이는 조선의 기록에서도 교차 검증 가능한 사실이다. 현재 중국 학계에서 누르하치에게 폐출된 복진이 울아나라씨가 아니라 원비 니오후루씨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 주장에서도 울아나라씨의 아비가 다이샨에게 참살당하면서 울아나라씨가 홍타이지에게 버려졌다고 보고있다. 사료 오독으로 인한 오류다. 치르거이의 누이이자 호오거의 어머니가 폐출되었다는 구절 중 후자만이 발굴되어 울아나라씨가 폐출된 걸로 알려졌지만 만주어 1차 사료 기록에서 치르거이의 누이라 명시된 앞 구절이 발굴되어 폐출된 복진은 니오후루이고 이전 설은 사료 오독임이 발견되어졌다. 홍타이지의 모든 자식은 원비인 니오후루의 자식이고 호오거는 적장자로서 청태종의 자식 중 가장 권위가 있었기에 누르하치가 언급한 것이다. 해서여진 멸망이 1619년이고 울아나라씨가 폐출된 니오후루씨를 대신해 대복진이 된 해가 1623년이니(만문노당(滿文老檔)) 친정이 멸망한 후에도 울아나라씨는 권위 있는 대복진이었다 무엇보다 청나라 공식 역사서인 《清史稿》에서 울아나라씨를 계비라 칭하는데 그녀 외에 계비로 칭해진 이는 현조 계비 나라씨, 계비 부차씨로 모두 적처였으며 특히《太祖实录》에서 계비 푸차씨는 효자고황후보다 먼저 소개되어 서열이 높게 여겨졌다. 누르하치에게 장손 대 대표로 여겨질 만큼 확고한 적장손이었고 홍타이치에게도 황위 계승자로 다뤄졌으며 다만 어머니 친정이 멸망한 탓에 입지가 미묘했던 건 사실. 중국 학계에서도 호오거가 적장자인지 아닌지 논란이 많으나 최근 울아나라씨가 폐출되지 않았고 계비의 위치가 높았다는 기록이 발굴되면서 호오거 적장자 설이 더 굳어졌다. 王新玮. 《清代宗室嫡庶现象及其影响》참조[2] 그 뒤 아들 부수의 작위는 숙친왕에서 현친왕(顯親王)으로 변경되었다.[3] 태조 천명제 누르하치의 외손녀였으나 숭덕 원년에 망고이태와 망고제격격이 죄를 지어 죽임을 당하자, 그녀 역시 호오거(호격)의 손에 의해 살해되었다.[4] 몽골 코르친부(호르친부, 과이심부) 명안 패륵의 손녀이며 효단문황후에겐 당질녀, 효장문황후와는 당자매지간이다.[5] 몽골 차하르부(찰합이부) 링단 칸(임단한)의 부인이었으나, 후금에 투항하여 호격의 부인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