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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26 23:35:30

아이신기오로 인샹


청의 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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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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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청 황제 · 역대 청 황태자 · 역대 청의 황녀
※ 기록이 있는 인물만 기재
}}}
<colbgcolor=#00386a><colcolor=#fecd21> 愛新覺羅 胤祥
애신각라 윤상
파일:애신각라 윤상.jpg
봉호 화석이현친왕(和碩怡賢親王)
시호 충경성직근신렴명현(忠敬誠直勤慎廉明賢)
생몰년도 1686년 11월 16일 ~ 1730년 6월 18일(43세))
부친 청 성조 강희제
모친 경민황귀비 장가씨
1. 개요2. 생애3. 가족 관계
3.1. 부인3.2. 자녀들
4. 미디어믹스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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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의 13번째 황자(皇子).

2. 생애

강희제의 후궁 경민황귀비 장가씨 소생의 황13자로 태어났다. 10살 때 친모가 사망하면서 황4자 옹친왕 윤진의 생모인 덕비 우야씨에게 양육되었다.[1] 이런 인연 때문에 젊은 시절부터 윤진을 따랐고 윤진이 수해 이재민을 보살필 흠차대신으로 강남에 파견될 때도 함께 따라가는 등, 줄곧 윤진(그리고 윤진이 따르던 황태자 윤잉)을 지지하며 움직였다. 하지만 강희제 말년에는 다소 의문스러운 이유로 10년을 감금된 채로 지냈다. 시기상으로는 강희제의 2남이자 유일한 적자인 폐태자 윤잉이 유폐된 때와 겹치기 때문에, 망나니 둘째형을 옹호하다 미움을 사서 유폐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옹정왕조> 등 강희 말년을 묘사한 각종 매체에서도 대개 그렇게 묘사되며, 태자를 실드치면서도 적당히 몸을 사리던 옹친왕 대신 행동대장 노릇을 하다 고생을 했다고 설정되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윤상의 이복동생은 장각친왕 윤록이다.

옹친왕 윤진은 이복형제 윤상과는 사이가 좋았지만 정작 자신의 동복 형제였던 14황자 순근군왕 윤제(恂勤郡王 胤禵, 초명은 윤정)와는 사이가 무척 안 좋았다. 윤제 역시 친형인 옹정제를 따르지 않고 8황자였던 염친왕 윤사(廉親王 胤禩)와 함께 행동하다가, 점진적으로 윤사와 거리를 두며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군사적으로 재능이 있었던 윤제는 1720년에 강희제에게 대장군왕으로 임명되어 체왕아라푸탄 정벌에 성공하면서 강희제의 아들들 중 후계자로서 가장 두각을 보였다.

하지만 강희제는 죽으면서 윤제가 아닌 옹친왕에게 제위를 물려주는 유조를 남겼고 옹친왕은 1723년에 옹정제로 즉위하게 된다. 그 후 피휘로 인해 윤상(允祥)으로 개명되었으나, 윤상의 사후에 그의 충성심에 감동한 옹정제가 윤상(胤祥)으로 다시 바꿔주었다.

옹정제는 아버지 강희제가 승하한 후 윤상을 10여년의 감금에서 풀어주고 강희제의 장례에도 참석케 했다. 또한 옹정제는 당시 모든 작위를 박탈당했던 윤상에게 화석이친왕(和硕怡亲王)이라는 최고의 작위를 내리며, 자신의 가장 큰 지지자였던 윤상에게 많은 특혜를 주었다. 심지어 이 작위는 세습을 허락함으로써 청나라에서 세습이 가능했던 12개 철모자왕(鐵帽子王) 중 9번째로 받은, 그것도 순치 시절까지의 개국공신들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임명된 세습망체 철모자왕 작위였다. 또한 옹정제는 윤상의 친모인 장가씨를 경민황귀비로 추존시키고, 후궁으로는 청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황제인 강희제와 합장시켰다. 그걸로도 모자라 윤상의 외가인 장가씨를 포의에서 만군기 상삼기 중의 하나인 양황기로 올려주기까지 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옹정제가 황권 강화를 목적으로 설치한 군기처에 들어감으로써 청나라 최고의 실력자가 되었다. 덕분에 윤상은 옹정제의 다른 형제들이 모두 옹정제에게 비참하게 숙청을 당할 때도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한다. 그러나 군기처에서 악명 높은 일 중독자였던 옹정제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기 때문에, 안그래도 유폐생활로 해친 건강을 더욱 망쳐서 1730년에 45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9남 5녀의 자식을 남겼다. 이 중 4번째 딸이었던 화석화혜공주[2]는 옹정제가 직접 데려다 키웠다고 하며[3] 죽은 후 이친왕의 작위는 7남인 홍효에게 이어졌다.

3. 가족 관계

정실인 적복진 조가씨를 총애한 것으로 유명하며, 14명의 자녀들 중 7명이 조가씨 소생이다. 다른 황족들이 정략혼을 통해 맺어진 적복진이 아닌, 측복진이나 서복진 사이에서 자녀를 많이 낳은 것과 대조적이다. 아무래도 반세기 전 조선의 소현세자민회빈 강씨처럼 힘든 유폐생활을 함께 버티며 정신적으로 큰 위안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적복진인 조가씨의 나이는 이친왕과 동갑으로, 부군과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

안타깝게도 자식농사는 전부 망했다. 어려서 죽은 아들들을 빼면 대부분 멍청하고 성격도 나빴다고 한다. 심지어 이친왕의 아들 중 장남 홍교를 비롯한 몇몇은 백부인 옹정제와 사촌인 건륭제는 후궁 소생의 서자니까[4], 폐태자 윤잉의 아들이 더 정통성 있다는 헛소리를 일삼다 옹정제와 건륭제에 의해 전부 쫒겨나거나 죽었다.[5] 그나마 당시에 나이도 어리고 권력싸움에 휘말리지 않은 이친왕의 7남 홍효가 이친왕의 작위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홍효 역시 자기 형들과 똑같이 멍청하고 성격도 더러워서 건륭제도 그를 싫어했지만 이친왕의 유일한 후계자라 싫어하면서도 살려두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희친왕 홍효의 후손(윤상의 5대손)인 재원(1816-1861)은 함풍제 사후 정친왕 단화, 단화의 동생 숙순 등과 함께 동치제의 섭정인 보정8대신에 올랐으나 서태후공충친왕 혁흔과 함께 친위 쿠데타(신유정변)를 일으켜 숙순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재원 역시 자결을 명받고 작위를 박탈당한다. 이 과정에서 작위는 같이 반란에 가담한 정친왕 작위와 함깨 세습망체 철모자왕에서 8등급 강등된 불입팔분보국공이 된 후 후손 중 하나인 재태에게 간다. 원래 재태는 이친왕의 7남인 홍효의 아들 영만의 후손이지만 이친왕의 장남인 이혁패자 홍창의 후손이 끊어짐에 따라 홍창의 사손이 되어 그위 제사를 모시고 있었다. 그런데 1864년 이친왕 작위를 복권시키며 재태의 작위를 봉은보국공으로 1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후 이친왕 작위는 앞에서 말한 윤상의 차남인 영랑군왕 홍교의 직계손인 재돈(1822-1890)에게 간다.[6]

3.1. 부인

3.2. 자녀들

4. 미디어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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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고(淸史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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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높은 위치의 후비가 황자녀를 키워주는 건 청나라 황실의 흔한 관습이였다.생모의 사망과는 관련이 없이 시행되던 관습이다.[2] 1714~1731. 1728년 몽골 객이객(할하부)지용친왕 박이제길특 다이제새포등에게 하가. 화혜공주는 1731년 아들인 상재다이재를 낳은 후 산욕열로 죽는다. 이후 지용친왕 작위는 남편이 죄를 지음에 따라 강등되지만 1755년 아들인 상재다이재가 준가르 정벌전에서 5촌 아저씨인 초용친왕 성찬간포(고륜액부 초용친왕 책릉과 강희제의 10녀인 고륜순각공주의 아들)와 함께 공을 세워 복권된다. 참고로 상재다이재의 복진은 강희제의 21남인 신군왕 윤희의 딸인 다라격격으로 화혜공주와 사촌간이다. 상재다이재 역시 장인인 윤희가 건륭제의 친구이자 총신인지라 꽤나 총애를 받은 듯 하다.[3] 사실 이처럼 청나라 황실에서 황제 본인에게 딸이 없을 경우에는, 자신의 동생이나 친척의 딸을 양녀로 들이는 건 꽤나 흔한 일이였다. 이는 몽골의 박이제길특씨가 청나라의 주요한 군사적 동맹이자 한편으로는 적이 될 수 있는 관계(특히 강희제 때 무력으로 복속시킨 객이객(할하)는 더욱)이기 때문에 공주를 몽골에 시집보냄에 따라 동맹을 강화하고 반란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한가지 예시로 윤상의 할아버지 순치제는 자신의 형인 승택친왕 석새(|윤록이 받은 그 장친왕작 맞다)의 딸을 화석화순공주에 책봉한 후 평남왕 상가희의 딸인 상지륭과 결혼시켰다. 이로 인해 삼번의 난이 벌어지던 당시에 오삼계와 공유덕, 경정충이 신나게 반란을 일으키는 와중에도 상가희는 어느 정도 중립(?)을 지켰다. 참고로 옹정제의 양녀는 화석숙신공주(1708~1785, 강희제의 망나니 황태자 윤잉의 딸로 1726년 몽골 과이심부 박이제길특 관음보에게 하가. 참고로 관음보는 효혜장황후의 조카손자다.), 화석단유공주(1713~1753. 장각친왕 윤록의 장녀로 역시 몽골 과이심부 좌익후기 찰살극 보두얼러거타이 군왕 박이제길특 제묵특다이제에게 하가. 참고로 이 둘 사이에는 자식이 없어 동생이 작위를 계승하는데 동생의 양손자는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 당시 장군인 승격림심이다.)가 있다.[4] 옹정제강희제의 후궁 덕비 우야씨의 소생이고, 건륭제는 옹정제의 후궁 희비 니오후루씨의 소생이다.[5] 이 폐태자의 아들이란 강희제의 차남이자 유일한 적자였던 폐태자 이밀친왕 윤잉의 적장남인 이친왕 홍석을 말한다. 강희제는 임종하는 순간에마저도 옹정제에게 윤잉에 대해 폐태자가 되었지만 그래도 네 형이니 섭섭하지 않게 대접하고, 윤잉의 아들도 조카이니 친왕에 봉하여 잘 챙겨주라고 당부할 정도로(심지어 조선왕조실록에까지 남은 기록이다!) 윤잉을 아픈 손가락으로 여겼다. 이에 이복형제는 물론 동복형제까지 가차없이 숙청했던 옹정제도 아버지의 유언만은 잘 받들어, 윤잉과 그의 아들들을 잘 챙겨줬으나일부 기록에 따르면 윤잉은 지방에 감금되어 생활하였다라는 이야기도 존재한다.(정확하게는 옹정제 초기쯤 지방에 좋은 집을 베이징에서 왔다는 군인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서 인근 주민들이 누가 거주하는지 몰랐다라고 한다.) 옹정제 사후 그의 아들 건륭제가 즉위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건륭제의 십수년 연상의 사촌형인 홍석은 한때 태자였던 윤잉의 적장자라는 엄청난 프리미엄을 갖고 있었기에, 같은 항렬로서 제위를 물려받은 건륭제에겐 큰 위협이 되었고 결국 건륭제 즉위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홍석에 대해 영문도 모르는 숙청이 진행되었다. 이에 홍석은 친왕에서 강등된 군왕작도 동생 홍위에게 내준채 황실 족보에서까지 제명되어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6] 즉 영군왕 계통(홍교계)와 이친왕 본계(홍효계)의 후손들이 작위를 교환한다. 따라서 홍교의 후손인 재돈이 이친왕이 된 반면 홍효의 후손인 재태는 과거 재돈의 작위인 봉은보국공을 받은 셈[7] 보보경심에 등장한 승환공주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