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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37B55><colcolor=#fff> 시리아 아랍 공화국 임시 대통령 아흐메드 후세인 알샤라 أحمَد حُسين الشرع Ahmed Hussein al-Sharaa | |
이명 | <colbgcolor=#fff,#191919>아부 무함마드 알줄라니 أبو مُحمّد الجَوْلَانِي |
출생 | 1982년 10월 29일 ([age(1982-10-29)]세) |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 |
학력 | 다마스쿠스 대학교 |
종교 | 이슬람 수니파 |
현직 | 임시 대통령 |
2025년 1월 29일 ~ | |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 총사령관 | |
2017년 10월 1일 ~ | |
참전 | 이라크 내전 시리아 내전 |
가족관계 | 배우자: 라티파 알샤라[1] 슬하 2녀 또는 3남 |
[clearfix]
1. 개요
2. 생애
1982년 10월 29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골란 고원 출신의 시리아인 부모로부터 태어났다. 석유 엔지니어였던 아버지가 나세르주의자여서 시리아 정부의 탄압을 받았고, 이에 사우디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도중 아흐메드를 낳았다. 참고로 아버지는 바그다드 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이며 어머니는 지리교사였다고 한다.1989년 귀국 후 다마스쿠스의 부촌인 메쩨(Mezzeh)에서 살았다. 평범하게 학창시절을 보내다가 알라위파 출신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로 방황을 하던 중 2000년 제2차 인티파다,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이슬람 극단주의에 심취했으며, 다마스쿠스 대학교 미디어학과에서 공부하다가 2003년 이라크로 건너가 테러조직 유일신과 성전에 입단해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의 측근이 되었다.
2006년 이라크 주둔 미군에 체포되어 부카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2008년 수용소에서 석방된 이후 이라크 이슬람 국가 모술 책임자로 있다가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자 시리아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던 이라크 이슬람 국가 수장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와 알카에다 수장 아이만 알자와히리의 요청으로 귀국해 알누스라 전선 총사령관에 부임했다.
2016년 알카에다와 결별을 선언하고, 2017년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으로 조직을 확대개편하여 시리아 내 이슬람 근본주의 반군의 주도권을 잡았다. 2024년 시리아 반군 공세로 아사드 정권을 붕괴시켰다.
2019년 미국측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수장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를 사살하는 과정에서 HTS와 알줄라니의 도움이 있었다고 한다.#
2024년 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 시리아 과도정부에서 지하드 네임을 쓰지 않고 본명인 아흐메드 알샤라로 활동하며 정치인으로 국가 재건에 힘쓰는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현지시간 2025년 1월 29일 승리 연설을 발표하였으며, 과도정부의 임시 대통령으로 정식 선출되었다. 이날 바트당 정권 의회 해산, 바트주의 헌법 정지, 시리아 아랍군과 HTS를 비롯한 모든 무장단체 해산, 바트당 해체도 발표하였다.
3. 여담
2024년 이전 | 2024년 이후 |
한때는 테러조직 수장이었던 만큼 미 국무부와 FBI에서 그의 목에 1천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어 두었었다. 이 수배령은 미국 특사단이 알 샤라를 만나 회동한 직후인 2024년 12월 21일 공식적으로 철회되었는데, # 아프가니스탄 정권 장악 이후로도 탈레반 지도부가 국제 테러조직으로서 수배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미국 정부가 시리아 정국에 전향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평가가 있다.
외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알카에다 가담을 '철 없던 어린 시절의 일탈'이라고 주장하며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다. 당연히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무슨 일탈을 그런 식으로 하냐는 경악스러운 반응이 많았다.
[1] 오랫동안 이름과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았다. 아사드 정권 축출 전까지 아메드 알샤라가 가족관계에 대해서 함구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2025년 1월 29일에 있었던 미국 대표단과의 회동에서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름과 존재가 알려졌다.#[2] 반군 거점인 이들리브에 "슬라바 우크라이나"라는 그래피티가 쓰여진 모습이 발견되기도 했다.[3] 사실 젤렌스키와 알 샤라가 유독 비슷하게 보였던 이유는 알샤라는 반군 수장이기 때문에, 젤렌스키는 국토가 전장인 상황에서 군 통수권자로의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해 컴뱃셔츠를 입고 다녔기 때문인 점도 있다. 알 샤라가 정국 안정 후 양복을 입기 시작하면서 공통점이 좀 사라진 편.[4] 알샤라 본인은 이전에는 전쟁 중이었기에 군복을 입었으나, 이제 전쟁이 끝났기에 군복을 입지 않는다고 밝혔다.[5] ISIS나 탈레반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현재에도 양복과 넥타이 착용을 서구의 상징으로 보고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