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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8 14:25:59

악동클럽

파일:악동클럽.jpg
이태근 · 정윤돈 · 임대석 · 권세은 · 정이든


1. 개요2. 방송 악동클럽
2.1. 유명 참가자
3. 그룹 악동클럽
3.1. 멤버3.2. 활동3.3. 수상 경력3.4. 여담
4. 데뷔가 무산된 여성 그룹과 일본 그룹



1. 개요

MBC에서 방송되었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자,
이 오디션을 통해 데뷔한 남성 5인조 아이돌 그룹.

2. 방송 악동클럽

2001년 1월부터 2002년 3월까지 MBC 토요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목표달성 토요일의 한 코너로서 방영되었다.[1] 크게 전국 오디션을 거쳐 그룹 멤버를 선발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성격의 전반부와 선발된 멤버가 합숙을 거쳐 데뷔하는 과정을 그린 리얼리티 프로그램 성격의 후반부로 나뉜다.

오디션은 방송 당시 "미국의 Backstreet Boys, 일본의 SMAP, 한국의 H.O.T.의 뒤를 잇는 그룹을 만든다"는 야심찬 슬로건으로 시작했다. 같은 시기 SBS의 <초특급 일요일 만세>에서 방영한 '박진영의 영재육성 프로젝트'가 비슷한 컨셉의 프로그램이었으나 이 프로그램이 결국 JYP 연습생 모집으로 끝난 것과 달리[2] '악동클럽'은 오디션 끝에 선발된 5명의 남자 고등학생들이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하는 과정을 다뤘다. 10대 멤버로만 구성된 아이돌 오디션을 표방했기 때문에 지원자는 고등학생으로 제한되었으며 전국의 고등학교를 돌면서 오디션이 진행되었다. 성별의 제한은 없었다. 오디션의 심사 위원은 가수 김정민, 가수 겸 제작자 신철, 그리고 개그맨 겸 가수 경력도 가지고 있는 이휘재였다. 이휘재는 사실상 프로그램의 MC 역할도 겸했다.

지상파 방송국에서 즉시 데뷔를 목표로 하는 아이돌을 뽑겠다고 한 첫 사례였다. MBC측에서는 남성 아이돌 그룹, 여성 아이돌 그룹, 해외 활동 아이돌 그룹 3팀을 데뷔시킨다고 발표했었지만 결국 데뷔한 것은 남성 5인조 아이돌 그룹 뿐이었다. 지원자 중에는 V.O.S의 멤버 김경록이 고향인 대전에서 오디션에 개최되었을 때 현역 고교생 신분으로 참가했었으며, 커피프린스 1호점에 출연했던 모델 겸 배우 김재욱, 재즈 밴드 윈터플레이의 보컬 문혜원[3]도 오디션 멤버로 있었다. 더크로스 2기 김경현도 전북지역 오디션에 참여했다.(상산고 출신)

서바이벌 방식으로 멤버를 추리고 추려 우여곡절 끝에 남성 아이돌 그룹이 5인조로 데뷔가 확정된 뒤 멤버들은 방송국에서 제공한 합숙소에서 생활했다. 이때 이휘재가 멘토 역할로 참여했으며, 작곡가 겸 방송인 주영훈이 트레이닝과 앨범에 참여했고 유명 연예 기획자 겸 캔 엔터테인먼트 대표 강승호도 매니저로써 방송에 참여했다. 이외에도 댄스는 터보의 멤버 김정남, 유승준, 노래는 김조한이 트레이너로 출연하는 등 호화로운 라인업을 자랑했다.

이 오디션의 합숙 시스템과 멘토들의 조언, 지역 오디션 같은 형식은 후대의 슈퍼스타K나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으며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2.1. 유명 참가자

3. 그룹 악동클럽

앞서 설명한 프로그램 이름인 악동클럽을 그룹명으로 사용하여 1집 음반을 발매하고 정식으로 데뷔했다.
그룹명, 타이틀곡 모두 시청자 투표를 통해 선정했고,
3개월 내에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에서 3위 안에 들지 못하면 해체를 한다는 가혹한 조건이 붙어 있었다.

다행히 8주 만에 SBS 인기가요에서,
데뷔곡 'Remember'가 3위에 들면서 해체는 면했다.
이후 후속곡 ‘Never’로 활동하면서
KMTV 쇼! 뮤직탱크에서 MC를 맡으며,
나름 성공적인 1집 활동을 마쳤다.

이후 멤버들의 개인 카페가 생길 정도로 일정 규모의 팬덤도
확보되었다. 또한 지상파 가요프로그램 순위에 진입하기
위한 노력을 방송을 통해서 계속 다루어 주었고,
덕분에 팬덤의 집결과 화제성 몰이에 큰 몫을 했다.
그 해, 2002 KMTV Korean Music Awards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2003년 발매한 2집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집의 퀄리티는 심각한 수준이었으며, 노이즈의 곡인 '착각', 일본 DA PUMP의 곡인 'If' 등 리메이크곡이 많았다. 악동클럽의 소속사는 김광수가 이끄는 GM기획이었는데, 앨범 활동 도중 악동클럽 팬클럽 살인 사건 (원본기사 아카이브)이란 악재가 터지며 2집 활동을 중단했다.[4]

이후 소속사 이적을 하는 과정에서 2005년 1월 20일에 멤버 권세은이 서울 강남구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서 전 여자친구에게 데이트 폭력을 저지른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면서 팀에서 퇴출[5]된 것을 시작으로 리더 임대석이 음악에 대한 의견차이로 탈퇴, 남은 멤버들도 차례차례 군입대를 하게 되면서[6] 소리소문 없이 2006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해체 이후 원년 멤버 정이든, 이태근, 정윤돈과 새 멤버로 영입된 양치환[7]은 '디 에이디 (The Another Dream)'라는 이름으로 재데뷔를 하였으나 묻혀 버렸다.

이후 알려진 근황들에 따르면, 2012년 리더였던 임대석은 뮤지컬 배우로 새 출발을 하게 된 인터뷰를 통해 근황을 밝힌 바 있다.

멤버 정윤돈은 2013년에 슈퍼스타 K에서 얼굴을 비춘 적이 있었고, 이 당시 다른 멤버들의 근황을 공개했는데, 임대석은 뮤지컬 배우 활동 이후 쉬면서 다른 일 준비하고 있으며 이태근은 PD로 전업했다. 권세은은 연기자로의 전업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정이든은 아쉽게도 근황을 알 수 없었다. 정윤돈은 이후 2016년 8월 26일, 듀엣가요제유성은의 파트너로 출연했다.

2022년 2월 3일에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이태근의 안타까운 근황이 각종 기사를 통해 보도되었다. 이태근의 아내가 국민청원에 올린 내용에 따르면 2021년 12월경 코로나19 백신 부스터샷 접종 후 지주막하출혈로 중태에 빠졌으며, 체중도 20kg 이상 빠져 뼈만 남은 위중한 상태라고 한다. 후속보도가 이루어지지 않아 3월 현재의 상태는 불명. 기사1 이후 2023년 3월 현재 상태가 악화되었다는 근황이 나왔다. 기사2

3.1. 멤버

3.2. 활동

악동클럽 - Remember (1집 타이틀곡)
악동클럽 - 착각 (2집 타이틀곡)
디 에이디 - 신 희망사항(1집 후속곡)

3.3. 수상 경력

<rowcolor=#FFFFFF> 연도 시상식명 수상 부문
2002년 KMTV Korean Music Awards 신인상(그룹부문)

3.4. 여담

4. 데뷔가 무산된 여성 그룹과 일본 그룹

파일:여자 악동클럽.jpg

당초 국내 활동 남성 그룹, 일본 활동 남성 그룹, 여성 그룹으로 세 팀을 데뷔시킨다고 하였으나 데뷔한 것은 5인조 국내 남성 그룹뿐이었다. 남성 그룹은 방송 프로그램의 기획으로 데뷔까지 책임져줬지만 해외 활동을 위한 멤버나 여성 4인조 그룹으로 내정된 멤버들은 제대로 된 방송국의 서포트가 없었다.

여성 그룹[9]은 방송을 통해 지속적으로 상황이 공개되었지만 결국 데뷔는 무산되었다. 이들은 방송 후 스타넷 아시아라는 회사에 소속되어 '오디션'이라는 이름으로 4인조 그룹을 준비했으나, 계속 떡밥만 날리다가 데뷔가 무산되었다. 2002년 10월 즈음에 앨범을 발매한다는 얘기가 있었다가, 2003년 4월로 한차례 연기, 그리고 2004년 공식적으로 데뷔가 무산되었음이 알려졌다.[10]

그러나 이 4명중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끝내 데뷔에 성공한 이가 있었으니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재즈 밴드 윈터플레이의 보컬로서 활동했던 문혜원[11]이며, 2016년 이후 윈터플레이를 탈퇴, 본인의 성인 MOON이라는 예명으로 솔로 재즈보컬리스트로서 지금도 활동중이다. 그리고 멤버 중 손새봄의 경우, 2009년 모 케이블 방송에서 진행하던 <주부 쇼핑호스트 도전>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근황도 공개한 바 있었다.

일본 활동 그룹은 한일 합작으로 악동클럽을 통해 선발된 3명(김지성, 김효인, 박제진)[12]에 일본 멤버 2명을 추가하여 데뷔할 예정이었지만 아무 소식 없이 무산되었다. 여행에 가까운 수준으로 일본에 잠깐 다녀온 촬영분이 공개 된 이후로는 소식이 끊겼고 데뷔에 대한 이야기도 아예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나름 뮤지션으로서 데뷔한 케이스가 있었으니, 김효인의 경우, 쌍둥이 동생 김효추[13]와 더불어 2014년 11월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팝핀 형제 IN&CHOO 로 출연하여, 녹슬지 않은 댄스 실력을 보여주기도 하였고, 현재도 팝핀 기반의 언더 그라운드 뮤지션으로 활동 중에 있다. In & Choo - I'm Not Cool.

그 당시 악동클럽이 그야말로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기반이 마련되기도 전에 최초로 시도되었던 프로젝트였던 만큼 사후관리 등에서 상당히 미흡한 면모를 보였던 것이 아쉽게도 데뷔가 무산된 여성 그룹과 소리소문도 없이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일본 활동 그룹이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14]
그리고 15년뒤, 한 대형 기획사에 야심차게 추진했던 어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이와 같은 참극이 벌어지고 말았으니...


[1] 사실 해당 프로그램의 부제는 <꼴찌탈출> 시즌 3로서, 이전 시즌까지는 실제로 학교에서 성적이 형편없는 친구들 중 5명을 선별해서 열심히 공부를 해서 성적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진행했던 프로그램이었다.[2] 다만 '박진영의 영재육성 프로젝트'는 이름 그대로 영재를 뽑는 프로그램이라 참가자들 나이가 대부분 초등학생일 정도로 상당히 어렸다. 프로그램 자체는 큰 반향이 없었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원더걸스선예, 2AM조권, 지소울 등을 배출한 오디션으로 기록되었으니 JYP 회사의 이익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악동클럽보다도 성공을 거둔 이상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다.[3] 뷰렛의 보컬 문혜원과는 동명이인이다.[4] 그런데 범행의 이유도 어처구니가 없었던 게 단지 착한 척을 했다는 것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해당 가해자 2명은 구속되었으며 이를 방조한 가해자의 누나 등 3명은 불구속 기소되었다.[5] 게다가 권세은은 이 사건 이전에도 이미 폭력 문제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으며 음주 상태에서 흉기로 자해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사건의 피해자였던 여자친구는 권세은의 만행 때문에 참다 못해 사건이 일어나기 5개월 전 즈음에 결별한 상태였다.[6] 2000년대 초반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아이돌들의 경우 멤버(특히, 메인보컬급)의 군입대는 자연스러운 팀 해체 및 연예계 은퇴로 이어질 수 있었던 분위기였다. 2000년대 후반부터 멤버 일부만 활동하는 유닛이라는 개념이 생겼고, 솔로가수 활동이나 예능, 연기와 같은 개인 활동도 활발하게 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웬만한 아이돌은 멤버 몇 명이 군입대를 하더라도 팀을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7]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출신이고, 이특, 동해와 스마일이라는 5인조 그룹으로 데뷔 음반까지 녹음하고 데뷔가 무산되어 연습생을 그만두었던 경력이 있었다.[8] 임대석은 형, 정이든과 권세은은 누나, 이태근과 정윤돈은 외동이다.[9] 최종 무대에 4명(문혜원, 원은지, 손새봄, 김아람)이 올라와서, 원래는 3명만 합격시키기로 했으나, 워낙 잘했다는 이유로 4명 모두를 합격시켰다.[10] 이 당시만해도 대형 기획사라는 개념도 없었고, 나름 당시에도 이름있던 대형 기획사나 중견 기획사 같은 곳도 정기적인 오디션과, 육성등의 체계가 완전히 잡히기 전이어서, 아이돌이 오디션이었음에도 방송사가 데뷔를 안정적으로 지원해줄 기획사를 세심하게 골라가며 기획할 처지가 못되었던 것이 결국 여성팀 데뷔 무산이라는 결과를 만든 셈이 되었다. 당장 데뷔의 꿈을 이룬 남자 아이돌 팀도 따지고 보면 지금처럼 어떤 기획사에 섭외되는 식이아니라 일단 업계에서 유명한 제작자겸 매니저가 방송사와 함께 데뷔를 챙기는 식으로 활동을 시작했었다.[11] 그녀가 윈터플레이로 활동했을 때의 대표곡 윈터플레이 - Gypsy Girl(집시걸)[12] 일본 DVA라는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최종 선발 멤버 가운데 김지성, 김효인을 지목하였고, 전국 본선무대에서 안타깝게 탈락했던 박제진을 추가로 합격시켜서 한국인 멤버를 구성하였다. 이것으로 인해 전국 본선인 2차 테스트에서 진작에 탈락했던 멤버가 최종합격까지 피말리는 승부 끝에 올라온 두 명의 합격자와의 형평성 논란이 있기도 하였다.[13] 형인 김효인과 같이 최종 데뷔조 무대까지 함께 올랐다가, 거기서 형제가 운명이 갈리고 말았다.[14] 다만 제작진은 나름대로 일본 기획사를 섭외해 데뷔를 준비시키는 등 데뷔를 시켜주기 위해 미리 준비한 플랜들은 있었고, 방송 직후만 하더라도 데뷔 자체만 성공한다면 적극적으로 이들을 지원해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다리를 놓아준 회사들이 각자의 사정 등으로 데뷔 기획을 백지화 했고, 이 데뷔 무산 자체가 방송 직후가 아닌 방송이 끝나고 수 개월에서 수년이 흐른 시점에 공식화 되었기 때문에, 추후 다시 데뷔 지원을 해주기는 애매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