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21:14:40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1. 개요2. 클럽 경력
2.1. 알바세테 발롬피에2.2. FC 바르셀로나2.3. 비셀 고베
2.3.1. 2018-19 시즌2.3.2. 2019-20 시즌2.3.3. 2020-21 시즌2.3.4. 2022-23 시즌
2.4. 에미리트 클럽2.5. 은퇴
3. 국가대표 경력

1. 개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선수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클럽 경력

2.1. 알바세테 발롬피에

파일:external/estaticos03.marca.com/1381829957_extras_albumes_0.jpg

스페인 남동부의 알바세테 출신이다. # 축구도 알바세테 발롬피에에서 시작했다. 이후 가족과 코치들에게 축구선수로서 재능이 있음을 확실하게 확인시켜 주었고, 더 큰 클럽에서 축구를 확실하게 배우기 위해서 이적을 준비했다.

사실 처음 이니에스타는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입단 테스트를 치러볼 예정이었다. 그래서 이니에스타의 아버지는 이니에스타를 데리고 마드리드에 갔는데, 마침 레알 마드리드 CF의 유스팀 훈련장 근처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게다가 당시 레알 마드리드 CF의 유스팀 훈련장 근처에는 사창가가 있었다. 따라서 이니에스타의 부친은 마드리드가 이니에스타의 장래에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른 클럽으로 선회하였다. 그것이 바로 FC 바르셀로나였다.

재밌는 점은 어린시절 이니에스타가 당시에 가장 싫어했던 클럽이 FC 바르셀로나였다는 것이다. 이유는 고향팀이었던 알바세테를 처음 직관하러 갔었던 경기가 하필, 원정팀 이었던 바르셀로나가 4:0으로 박살내고 갔었던 이유 때문이라고.

2.2. FC 바르셀로나

파일:이니에스타_바르셀로나(은퇴).jpg
파일:AndresIniesta_Barca.jpg
674경기 57골 135도움
사비. 나는 아마 너에게 밀려서 은퇴하게 되겠지. 하지만 너는 이니에스타에게 밀려서 은퇴하게 될 거다.[1]
1999년 여름, 당시 28세의 펩 과르디올라가 19세의 사비 에르난데스에게.[2]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선수 경력/FC 바르셀로나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3. 비셀 고베

2.3.1. 2018-19 시즌

2018년 4월 26일 진행된 고별인터뷰에서는 이번시즌이 바르사에서의 마지막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이적 팀은 밝히지 않았다. 충칭 리판행이 기정사실화 되어가는듯 했지만 충칭 리판에서 이니에스타의 이적이 없을것이라고 말했고 2018년 5월 18일 바르셀로나의 메인 스폰서 회사 라쿠텐이 소유한 J1리그의 비셀 고베로 이적이 확정됐다. 계약 규모는 3년 7,500만 유로(한화 약 950억원)규모의 계약으로 디에고 포를란, 루카스 포돌스키의 500만 유로의 5배 연봉을 보장받는다.

그리고 2018년 5월 24일 비셀 고베 이적이 정식으로 발표됐다.

2017년 J리그 팀연봉 1위팀이 우라와 레즈로 115억 가량이며 비셀 고베의 2016년 구단 운영비가 386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무리한 영입은 맞는것이며, J리그 중계권료가 1년에 2,000억 수준이라도 팀별로 나눠가지면 팀마다 몇십억 수준으로 중계권료를 바탕으로 영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이러한 영입의 가장 큰 배경에는 아무래도 비셀 고베의 모기업인 라쿠텐의 자금 지원이 가장 클것이다. 라쿠텐의 회장인 미키타니 히로시 회장이 야구 구단과 축구 구단도 함께 운영하며 평소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며 자기 과시욕이 좀 있는 사람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3]그리고 바르셀로나의 피케와 라쿠텐 회장이 친분있는 사이로 이 친분으로 인해서 피케가 바르셀로나 구단 수뇌부와 히로시 회장을 연결시켜 주었으며 그 결과 4년간 691억원 수준에 바르셀로나의 메인 스폰서쉽 계약을 체결했었다.

바르셀로나, 日 기업 라쿠텐과 스폰서 계약 체결 '4년 계약'

그리고 라쿠텐의 미키타니 히로시 회장이 직접 이니에스타 영입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직접 회장 개인 전용기로 이니에스타를 일본에 데리고 오며 입단계약을 성사시켰다. 입단 계약식에도 미키타니 회로시 회장이 참석했다.

고베, 950억으로 '바르셀로나의 역사'를 샀다
파일:수정됨_이니에스타 라쿠텐회장.jpg
* 이니에스타 인스타 계정에 올라온 히로시 회장과 이니에스타. 이니에스타는 "친구와 새집으로"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또한 이니에스타의 비셀 고베행에는 지난 2017년부터 10년간 총액 2,100억 엔(약 2조 715억 원)에 달하는 거액을 투자한 중계권사인 DAZN와 J리그 연맹의 입김과 지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니에스타의 연봉은 비셀 고베뿐만 아니라 모기업인 라쿠텐과 관련 계열사가 십시일반으로 나눠낸다. 명목은 광고 관련 예산이다. J리그도 돈을 보태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우 큰 규모의 계약이지만 일본 내에서는 이니에스타 영입의 경제 효과가 1,000억원이 넘는다는 예측을 내놓았으며, 이니에스타가 첫 출전한 경기의 관중 수는 26,000명으로 치솟았으며 이는 비셀 고베 평균 관중 수인 7,000여 명의 4배에 달하는 숫자이다. 그 이후 경기들도 연일 매진 되고 있으며 이니에스타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수준이라고 한다. J리그의 전반적인 흥행을 이끌 것이 분명하기에 J리그 사무국 측에서도 어느정도 지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이니에스타의 고베행 이유, 중계권사와 J리그의 입김

그리고 7월 22일 쇼난 벨마레와의 홈경기에서 후반전 59분에 교체출장하며 J리그에 데뷔했다. 0대2로 승부가 기운 상황에서 좋은 패스들을 날려주며 클래스의 차이를 보여줬지만 웰링턴 등 공격수들이 죄다 날려먹으며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하고 팀은 0:3으로 대패하고만다.

7월 28일 18라운드 가시와 레이솔을 상대로 특유의 롱패스와 탈압박을 보여 주면서 팀의 1:0 승리에 기여했다. 하지만 팀은 이후 추락을 거듭하며 어느새 리그 12위에 강등권 추락 위기까지 겪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니에스타 본인도 부상으로 경기를 빠지고 팀이 원정 경기를 간 날에 가족들과 수족관에 간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프로 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비난도 나오고있다.[4]

그러나 동료 선수 김승규가 한국에서 했던 인터뷰를 본다면 이니에스타는 처음부터 동료들에게 사진촬영도 권하면서 친해지려고 노력했고 다른 외국인 선수들은 혼자서 밥을 먹고 일찍 들어가는 반면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모두 다 먹을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가는 선수라고 한다. 일본어도 체류기간에 비해 많이 늘었다고 하고 훈련에도 성실하게 임하며 배울 점이 많은 선수라고 말했다.[5] 이후에도 시즌이 끝날 때까지 공격 포인트도 착실히 쌓았고 축구 교실을 열어서 재능 기부도 하는 등 프로 의식 결여에 대한 논란은 완전히 없어진 상태다.

2.3.2. 2019-20 시즌

2019년에는 기존 주장인 포돌스키가 계속된 구설수 때문에 주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주장완장을 차게 되었다.[6] 문제는 이니에스타도 경기내내 어슬렁 대거나 의미없는 횡패스위주 경기, 지나치게 적은 활동량으로 비난받고 포돌스키와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 경기에 안 나오는 경우도 가끔 나와서 일부 극성 팬들에게는 대머리 돼지 새끼란 멸칭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팬들은 이니에스타에게 호의적이다. 게다가 팀을 천황배 결승에 올려 놓는 등 한 번 실력 발휘를 하면 클래스를 제대로 보여 준다. 고베의 토너먼트 경험 부족을 단번에 채워 주면서 2019년 천황배 JFA 전일본 축구 선수권대회 우승[7]을 이끌었다.

천황배 우승으로 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면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한 조가 되었다. 현재 겨울 이적 시장에서 에스투디안데스 및 MLS 구단들과 링크가 났지만, 잔류를 택했다고 한다. 이후 수원 삼성 블루윙즈AFC 챔피언스 리그를 치르기 위해 무려 16년 만에 수원에 재방문했다. 경기는 1:0으로 고베의 승리다. 하지만 카타르 도하에서 한 조별리그 6차전에서의 리매치는 2:0으로 수원이 승리했다.

2.3.3. 2020-21 시즌

2020시즌은 꽤나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핑크 감독이 나가고 마르코스 비베스 감독 대행하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니에스타 개인도 연속골을 기록하고 있으며 팀도 4연승을 달리고 있다. 2020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비셀 고베의 공격을 전두지휘하며 처음 출전한 팀을 8강까지 끌어올렸으나 16강 상하이 상강전에서 오른쪽 허벅지 근육에 부상을 당하면서 8강에서 다시 만난 수원과의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연장에 들어서까지 승부가 나지 않자 부상 당한 몸으로 113분에 교체 투입되어 7분을 소화했고 연장 종료 이후 승부차기에서 첫 번째 키커로 나서 PK를 성공시키며 팀의 4강 진출에 일조했다.

4강 울산 현대전에서는 누적된 부상으로 결국 명단 제외되었다. 이날 결정적인 장면마다 관중석의 이니에스타가 카메라에 잡혔는데, 야마구치의 선제골에는 환한 미소를 보였고, 존슨의 동점골에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고, 연장전 완벽한 1:1을 날리고 이어진 빈 골대를 향한 슈팅이 실패하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고, 연장 막판 주니오의 페널티킥이 꽂히자 머리를 감싸쥐고 좌절했다. 그리고 비셀 고베와 이니에스타는 여정을 마무리해야 했다.

상하이전에서 당한 허벅지 부상이 상당히 심각하다. 카타르에서 바로 바르셀로나로 날아가 수술했으며 내년 4월 이후에나 복귀가 가능하다. 2021년 4월 9일, 고베는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이니에스타가 약 4개월 만에 훈련에 복귀했음을 전했다.

5월 11일[8] 고베는 이니에스타하고 2년 재계약을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또한 선수의 의사로 연봉을 대폭 삭감하였다고 한다. 이쯤되면 한때 포돌스키와 함께 멘탈로 까였던게 모욕인 수준이긴 하다.

2021년 친정팀 FC 바르셀로나사비 에르난데스가 감독으로 부임하고 이니에스타보다 한 살 많은 다니 알베스를 복귀시키자 이니에스타도 복귀설이 돌고 있다.

2.3.4. 2022-23 시즌

2022년 10월 스페인 매체 <마르카>는 이니에스타가 이번 시즌 이후 선수를 은퇴하고 FC 바르셀로나의 유스 코치로 부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고 포르투갈 매체 <레코드> 는 그가 펩 과르디올라 사단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파일:Fw8YyQMaYAM3Drt.jpg
2023년 5월 25일. 7월 1일 콘사돌레 삿포로 경기 후 비셀 고베를 떠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다만 은퇴는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파일:비셀 고베 마지막 경기.jpg
파일:이니에스타 비셀 고베 마지막 경기 가족 사진.jpg
7월 1일 고별 경기를 마지막으로 비셀 고베를 떠났고 고별 경기에 가족들이 함께 참석하였다.

고베에서 5년간 머문 이니에스타는 눈물을 흘리며 "나는 거쳐가기 위해 일본에 온 것이 아닌 가족과 함께 일본에서 살기 위해 왔던 것이며 오늘은 이별을 말하는 날이지만 일본을 좋아하고 언젠가 다시 올 것이기 때문에 안녕이란 말은 하지 않겠다. 다시 만나자" 라고 작별사를 남겼다.#

현재 전 FC 바르셀로나 동료인 리오넬 메시세르히오 부스케츠, 조르디 알바가 이적한 인터 마이애미 CF와 링크가 뜨고 있다.

8월 8일 파브리지오 로마노에 의해 아랍에미리트 프로 리그에미리트 클럽에 HERE WE GO가 떴다.#

2.4. 에미리트 클럽

파일:1000007651.jpg
2023년 8월 8일, 에미리트 클럽으로의 이적 오피셜이 떴다. 계약 기간은 1년이며 1년 연장 옵션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니에스타의 나이를 감안하면 사실상 프로 선수 시절 때 마지막으로 뛸 클럽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바르셀로나에서 함께 뛰던 파코 알카세르와 재회했다. 합류하자마자 주장에 선임됐다.

시즌 20경기를 뛰면서 5골 1도움의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그가 활약한 에미리트 클럽은 14개팀이 속한 UAE 1부리그에서 4승(5무16패)만 거두며 리그 13위를 확정, 최종전을 남겨놓고 강등이 확정됐다. 이니에스타의 선수 생활 첫 번째 강등이다.

은퇴를 결정했다고 한다. 10월 8일 발표할 예정이다.[9] 은퇴식은 바르셀로나에서 할 예정이다.

2.5. 은퇴

2024년 10월 8일, 공식적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

12월 15일. 은퇴 경기를 치뤘다.#

3. 국가대표 경력

파일:2006spainhomeiniesta.jpg
2006년 5월 27일, 국가대표에 데뷔하였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 23인에도 포함되었고, 1경기 출전했다. 그 1경기는 스페인이 이미 16강 진출이 확정되어서 비주전 선수들을 내보냈던 3차전 사우디와의 경기였다. 그리고 스페인은 16강전에서 지단의 프랑스에 1:3으로 완패하며 탈락했다.
파일:이니에스타 결승골.gif
파일:이니에스타 라스트 미닛 골.jpg
조국에 우승을 선사한 최고의 라스트 미닛 골
UEFA 유로 2008에서도 사비와 함께 활약한 스페인 국대의 주전 미드필더지만, 국대에서의 역할은 공미가 아니라 측면 미드필더이다.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형 미드필더인 다비드 실바도 이니에스타와 마찬가지로 측면에서 뛰게 된다. 또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에도 주요 멤버로 참전했지만 스위스와의 1차전에서 허벅지 부상으로 후반에 교체되었다. 이 여파로 온두라스와의 2차전도 결장. 그리고 칠레와의 3차전에서 복귀함과 동시에 추가골을 터뜨리며 스페인이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8강 파라과이 전에서는 엄청난 드리블로 다비드 비야의 골을 간접적으로 도왔으며, 네덜란드와 붙은 결승전에선 결승골을 뽑아내며 월드컵 결승전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결승골을 넣은 후 다니엘 하르케를 기리는 세레모니를 하였고, 당연히 옐로카드를 받았다.
파일:attachment/iniesta1.jpg
파일:Netherlands+v+Spain+2010+FIFA+World+Cup+Final+rpJs2Lo-rqWx.jpg
DANI JARQUE SIEMPRE CON NOSOTROS.
(다니엘 하르케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다.)
여기 나오는 다니엘 하르케는 2009년 여름에 심장마비로 급사한 불운의 수비수이다.[10]

UEFA 유로 2012 대회에서는 대회 내내 그야말로 약빤 듯한 활약을 선보이면서 안드레아 피를로의 이탈리아를 결승전에서 누른 끝에 스페인의 메이저대회 3연패를 진두지휘하며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11][12] 유로에서의 활약만 보면 메시와 호날두 부럽지 않은 완벽한 모습을 보이며 무적함대를 이끌었다.

그리고 참가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팀 전체가 최악의 모습을 보인 와중에 톡톡히 본인의 몫을 해냈다. 1,2차전에서는 팀 부진에 휘말려 별다른 활약을 보이진 못했지만, 3차전 호주와의 경기에서는 다비드 비야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한 후안프란에게 킬패스를 찔러줬고 페르난도 토레스의 추가골을 어시스트 했으며, 후안 마타의 쐐기골을 어시스트한 파브레가스에게도 패스를 해주는 등 스페인이 만들어낸 3골에 모두 직접/간접적으로 관여하는 활약을 펼치며 승리를 이끌었다.

3.1. UEFA 유로 2016

파일:external/img.uefa.com/GettyImages-539878432_20160613_150402.jpg

UEFA 유로 2016 조별리그 1차전 체코전에서 대회 MVP 하나 더먹겠다는듯 양 팀 선수들중 가장 빛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스페인 전방 공격수들이 전체적으로 체코의 두줄 수비벽에 가로막혀 답답한 모습을 보이며 후반 87분까지 0:0이 유지되었는데, 결국 제라르 피케의 선제골을 돕는 택배 크로스로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1-0 승리에 기여했다. 당연히 경기 MOM에 선정되었다.

2차전 터키전에서도 3:0 스코어로 팀이 승리한 가운데,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3번의 찬스 메이킹과 100번에 가까운 패싱을 성공시키면서 또다시 MOM에 선정되었다. 3차전 크로아티아전에서 모드리치가 빠진 크로아티아에게 일격을 맞고 조 2위로 떨어져 16강에서부터 이탈리아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3차전의 이 변수로 인해 스페인은 16강에서 일찍 짐을 싸게 된다.

16강 이탈리아 전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필드플레이어중 명성에 걸맞은 활약을 펼쳤지만 수비진의 부진과 부스케츠의 봉쇄, 파브레가스의 공기화, 놀리토-모라타 라인의 삽질등이 겹쳐 2대0으로 완패하고 말았다. 그와 데헤아만이 그나마 활약했지만 2명만으로 승리를 만들어내기엔 무리였다.

3.2.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이후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팀이 조 1위 자리에 올랐으나 월드클래스급 활약을 펼쳤다고는 하기는 어렵다. 1차전인 포르투갈전에서는 팀 패스가 잘 이어지다가 이니에스타에서 패스미스가 나고 턴오버되어 역습을 맞게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럼에도 여러번의 파울 유도를 만들어 내고 측면을 계속 위협하는 패스를 시도하였다. 2차전인 이란전에서는 후방 플레이메이커 롤을 부여받았으나 이니에스타 특유의 킬러패스나 공격적으로 위협적인 장면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3차전 모로코와의 경기에선 경기 내내 위협적인 돌파와 킬 패스를 여러번 찔러주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라모스와 함께 패스를 주고받다 칼리드 부타이프에게 틈을 허용해 선제 실점을 헌납하는 실책을 저지르고 말았다. 5분 후에 이스코에게 어시스트를 하나 적립했다고는 하더라도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답지 않은 실책이었다.

결국 16강에서 러시아에 패하면서 탈락했다. 67분에 다비드 실바를 대신하여 교체 투입되었고, 단체로 버로우를 탄 팀메이트들을 대신하여 킬패스도 시도해보고 중거리 슛도 때려보면서 그야말로 젖먹던 힘까지 다하여 고군분투하였다. 그러나 이번 대회 스페인 공격수들 특유의 골 결정력 부족으로 역전골을 만들지 못하면서 결국 승부차기로 이어지게 되었다. 러시아와의 승부차기에서 1번 키커로 나와 득점을 성공시켰으나 3번 키커인 코케가 실축하면서 패색이 짙어지자 표정이 어두워지는게 눈에 잡혔다. 그리고 마지막 키커인 이아고 아스파스가 공을 차기 직전에는 아예 뒤돌아서버리고 말았다.[13] 그 경기 이후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공교롭게도 이니에스타의 국가대표 데뷔 경기가 2006년 5월 27일 러시아 전이였는데, 국가대표 마지막 경기도 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 러시아 전이 되었다.

메이저 대회 3연패와 2010 월드컵, 2012 유로 결승전 MOM, 2012 유로 MVP 등을 수상한 이니에스타의 국가대표 커리어는 펠레, 프란츠 베켄바워,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리오넬 메시 등과 함께 가장 궁극에 가까운 국가대표 커리어를 쌓았다고 평가받는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420
, 2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420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420
, 3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420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1] 지금 와서 보면 밀리지 않고 오히려 소울메이트가 됐다는걸 다들 알지만, 저 얘기를 듣던 당시의 이니에스타는 실제 역할이나 포지션상 차비와 역할이 상당부분 겹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니에스타가 테크닉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하프윙이 되면서 축구팬들이 흔히 아는 그 라인이 완성된 것. 물론 펩은 정말로 사비에게 밀려 다른 팀으로 이적했고 얼마 안 가 은퇴하며 감독으로써 전설로 거듭나게 된다.[2] 당시 이니에스타는 딱히 큰 주목은 받지 못하는 15세의 평범한 유소년 선수였다.[3] 다만, 미키타니 라쿠텐 회장의 인터뷰에서처럼 이니에스타는 세계 최고 축구 클럽인 바르셀로나의 유스부터 성인 팀까지 모두 경험했기 때문에 세계 최고 클럽팀의 선수 육성, 운영 노하우 및 시스템을 체득하고 있는 선수이다. 실제로 미키타니는 기자회견에서 이니에스타가 가지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축구 DNA를 빗셀 고베에 접목시켜줄것을 기대하고 있으며 은퇴 이후 빗셀 고베의 운영에 관한 중역을 맡길 수 있음을 시사했던 바있다.[4] 이날 고베는 우라와 원정에서 0:4로 졌다. 그리고 이후 이니에스타 결장 정보를 팀 동료 선수가 일본 내 사설 토토 지인에게 누설하는 바람에 리그 내 불법 도박, 승부 조작 의혹이 생기는 등 여러모로 시끄러웠던 사건이었다.[5] 팀 동료니까 좋은 말만 해 준 게 아니냐 싶기도 하지만 포돌스키는 1년 더 뛰고도 이니에스타보다 일본어를 못 한다고 디스했고 슛이 좋다는 것 이외에는 딱히 좋은 말을 해 주지 않은 걸 보면 이니에스타에 대해서 아부하려는 의도는 아닐것이다.[6] 구단 역사상 세 번째 외국인 주장이며, 첫 외국인 주장은 정우영이다.[7] 결승전이 2020년 1월 1일에 있었으나 2019년 대회를 우승한 것이다.[8] 공교롭게도 이 날은 이니에스타의 37번째 생일날이였다.[9] 본인을 상징하는 등번호인 8번으로 일부러 날짜를 맞추려고 한 것으로 추정된다.[10] 참고로 레알 마드리드 못지 않은 바르셀로나의 라이벌인 에스파뇰의 선수였다. 그 때문인지 에스파뇰의 홈경기로 치러진 더비 1차전에서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후에도 에스파뇰의 홈에서 경기가 치러질 때, 이니에스타만큼은 교체로 나갈 때에도 상대 관중으로부터 아낌없는 박수를 받는다.[11] 스탯으로만 따지면 0골 1어시밖에 안 되었는데도 선정된 것이다. 스탯을 초월한,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며 선수를 평가할때 단순 스탯나열이 얼마나 1차원 적인 사고방식인지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12] 사실 이번 대회에서 최고 평점을 받은 선수는 아니었다. 평점 1위는 겨우 1실점만 기록하고, 사실상 2인분 역할을 한 세르히오 라모스였고, 라모스 외에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3명이 더 있었지만 완벽한 탈압박과 드리블 능력을 선보인 그의 활약이 높게 평가받아 수상할 수 있었다.[13] 물론, 공을 차는 순간에는 다시 아스파스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