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2-21 23:32:20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1. 클럽 경력

1.1. 알바세테 발롬피에

스페인 남동부의 알바세테 출신이다. # 축구도 알바세테 발롬피에에서 시작했다. 이후 가족과 코치들에게 축구선수로서 재능이 있음을 확실하게 확인시켜 주었고, 더 큰 클럽에서 축구를 확실하게 배우기 위해서 이적을 준비했다.

사실 처음 이니에스타는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입단 테스트를 치러볼 예정이었다. 그래서 이니에스타의 아버지는 이니에스타를 데리고 마드리드에 갔는데, 마침 레알 마드리드 CF의 유스팀 훈련장 근처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게다가 당시 레알 마드리드 CF의 유스팀 훈련장 근처에는 사창가가 있었다. 따라서 이니에스타의 부친은 마드리드가 이니에스타의 장래에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른 클럽으로 선회하였다. 그것이 바로 FC 바르셀로나였다.

재밌는 점은 어린시절 이니에스타가 당시에 가장 싫어했던 클럽이 FC 바르셀로나였다는 것이다. 이유는 고향팀이었던 알바세테를 처음 직관하러 갔었던 경기가 하필, 원정팀 이었던 바르셀로나가 4:0으로 박살내고 갔었던 이유 때문이라고.

1.2. FC 바르셀로나

사비. 나는 아마 너에게 밀려서 은퇴하게 되겠지. 하지만 너는 이니에스타에게 밀려서 은퇴하게 될 거다.[1]
1999년 여름, 당시 28세의 펩 과르디올라가 19세의 사비 에르난데스에게.[2]

2002-03시즌 첫 바르셀로나 공식 전에 데뷔하였다.

2004-05 시즌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의 부름을 받아 라리가에서 37경기를 뛰며 팀의 리그 우승에 공헌하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뒷목잡게 만드는 플레이를 꽤 자주 보여줬었다. 예를 들어 골이 들어가기 어려운 지점에서 슛을 남발한다던지 무리한 개인플레이를 시도해 볼을 상대에게 넘겨주는 실수 등이 있었다.

2005-06 시즌에는 더 많은 기회를 받음과 동시에 기량이 크게 발전하며 서서히 바르셀로나의 주축 선수로 자리잡아갔다. 또한 차비의 부상으로 리그 초반부터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팀은 에이스 호나우지뉴를 앞세워 라리가 2연패와 14시즌 만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데 성공한다. 이니에스타는 아스날 FC와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후반전 에드미우송과 교체되어 후반전을 소화하였다.

2006-07 시즌은 호나우지뉴가 부진할 경우 가끔 왼쪽 윙포워드로 뛰기도 했다. 바르셀로나는 레알 마드리드에 승자승 원칙으로 리그 준우승과 챔피언스리그 16강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신다. 2007-08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라리가 2연속 우승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챔피언스 리그는 리오넬 메시의 하드캐리로 준결승까지 진출했으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만나 4강 탈락. 시즌 진행중이었던 2008년 1월, 2014년까지 재계약을 채결하였다. 이 때 걸린 바이아웃이 무려 1억 5,000만 유로였다.

2008-09 시즌,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이 떠나고 펩 과르디올라 감독과 함께하게 되었다. 이니에스타는 카를레스 푸욜, 사비 에르난데스, 빅토르 발데스를 이어 4주장으로 합류. 과르디올라의 티키타카 전술에 완벽 적응, 사비와 함께 역사에 남을 미드필더진을 구성하였고, 그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라리가 우승컵을 들어올려 레알의 리그 3연속 우승을 저지하였으며, 11시즌 만의 코파 델 레이 우승,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승리함으로써 트레블을 달성한다. 이니에스타 자신은 당시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첼시 원정에서의 동점골을 자신의 최고의 순간으로 뽑는다.

2009-10 시즌 시작 전 팀이 UEFA 슈퍼컵에서 샤흐타르 도네츠크를 꺾고 우승했으며, FIFA 클럽 월드컵에서 에스투디안테스를 꺾고 정상에 올라 6관왕이라는 대업을 이룩한다. 라리가에서도 다시 한번 우승컵을 들어올리는데 성공했다. 다만 챔피언스 리그는 인테르에게 패배하며 4강에 머물렀고, 코파 델 레이 우승컵은 세비야 FC가 가져갔다. 그리고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2위에 오른다.

2010-11 시즌에는 그나마 약점으로 꼽히던 유리몸 기질을 털고, 강철왕으로 나타났다. 시즌 내내 국대와 클럽을 가리지 않고 출장하면서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는 중. 덕분에 바르셀로나는 리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거두며 더블로 시즌을 마쳤고, 본인도 메시, 호날두, 사비에 이은 발롱도르 4위에 올랐다. 한국 시각으로 2012년 3월 21일자로 출장한 51경기에서 무패를 기록하고 있다(43승 8무). 이는 레알의 전설 중 한 명인 에밀리오 부트라게뇨의 기록을 뛰어넘은 것으로, 승률에서는 이를 능가하는 기록이다.

2012-13 시즌은 팀 전체가 메시 의존증에 걸리며 불안불안 하던 외중, 메시를 제외하곤 조르디 알바와 함께 팀내에서 유일하게 밥값을 해주던 시즌이었다.[3] 개인 퍼포먼스 자체만 본다면 10-11 시즌보다 뛰어났으며, 이 시즌 이니에스타는 사비 에르난데스의 노쇠화와 세르지오 부스케츠의 탈장으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중원에서 혼자 고군분투 했으며, 알렉시스 산체스, 세스크 파브레가스, 다비드 비야, 페드로 로드리게스 등 여러 공격진들의 부진으로 윙어로도 자주 출장해 메시를 보좌하는데 큰 기여를 하며 라리가 승점 100점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뮌헨과의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선 하비 마르티네스에게 완전히 지워지며 역사에 길이남을 7:0 대패를 막지는 못했다.

2014-15 시즌은 역할 변화와 맞물려 전체적으로 애매했었고 공격포인트도 거의 없이 상당히 부진했었던 이니에스타였으나 시즌을 마무리하는 경기들에서 그의 클래스는 전혀 죽지 않았음을 다시금 증명해냈다. 국왕컵 결승전 및 특히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유벤투스 FC를 상대로 경기 조율 및 패스, 볼 키핑에서 한창 좋았던 모습으로 팀을 이끌었고 이반 라키티치의 선제 결승골을 직접 침투하여 도움을 올리면서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2015-16 시즌, 팀을 떠난 사비 에르난데스의 주장 완장을 이어받았다. 라리가 12라운드 시즌 첫 엘 클라시코에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4:0 대승에 큰 공을 세웠다. MOM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후반 31분 무니르 엘 하다디와 교체될 때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기립 박수를 받았다.[4] 하지만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전에서는 치명적인 핸드볼 반칙을 범해 PK를 내주면서 탈락의 원흉이 되었다.

1.2.1. 2016-17시즌

16-17 시즌에도 주전으로 활약중이며 챔스 조별리그 1차전 셀틱과의 경기에서 후반전 라키티치와 교체되며 들어왔다. 이후 네이마르가 올린 양질의 크로스를 깔끔한 발리슛으로 연결하며 이번시즌 첫 득점에 성공했다. 또한 경기 막판 메시를 향해 절묘한 전진패스를 찔러주면서 수아레즈의 득점에도 상당부분 관여했다. 경기는 7:0, 바르셀로나의 대승으로 끝났다.

셀타 비고 원정에서 후반전에 교체로 투입됐다. 3:0으로 지고 있던 바르셀로나를 피케와 함께 캐리했으나 슈테겐이 역적짓을 하는 바람에 팀의 패배를 막진 못했다.

라리가 9라운드 발렌시아 원정에서 전반 이른 시간에 상대 선수의 거친 태클을 받고 쓰러졌다. 이니에스타 본인도 심상치 않은 부상인 걸 직감한 듯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며 즉시 의료진을 불렀고, 경기장 바닥을 여러 차례 주먹으로 치며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결국 라키티치와 교체되어 나갔다. 부상 기간은 대략 6~8주로 알려졌으나 14라운드 레알 마드리드와의 엘 클라시코에서 복귀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12월, 프리메라리가 14라운드 엘 클라시코에서 후반 25분 즈음에 교체 투입되어 메시에게 택배를 보내는 등 부상을 털어낸 활약을 보여준다. 부상 복귀전이었으나 유감없이 자신의 클래스를 증명했다. 레알 마드리드로서는 이니에스타가 선발 출장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다. 그러나 2월, PSG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정말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파리의 중원에 압살당하며 팀의 4:0 참패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2차전에서는 살아난 모습을 보여주었고, 캄프 누의 기적 2를 탄생시키며 6:1 승리를 통해 8강에 진출했다.

프리메라리가 32라운드 엘클라시코에도 선발출전했고, 고전했으나 공격진의 맹활약에 힘입어 3대2로 승리하며 리그 선두 경쟁이 치열해졌다. 하지만 챔스 8강 탈락과 리그 준우승에 그쳤다. 남은 국왕컵은 우승하며 다행히 무관은 아니게 되었다.

16-17 시즌은 전술한 내용에서도 보이듯이 근 두 시즌 동안 이니에스타가 보여왔던 퍼포먼스에 비교했을 때 절대 특별한 수준은 아니었고, 이니에스타의 폼 저하는 그의 존재를 통해 그나마 유지했던 바르셀로나 중원 장악력 약화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 아무래도 전반기 발렌시아전에서 당했던 무릎 부상이 치명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아직 나이가 완전히 꺾인 것도 아니니 다시 폼을 회복할 여력은 충분하고, 본인도 아직 커리어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터라 여전히 팬들은 기대를 놓지 않고 있다.

1.2.2. 2017-18시즌

17-18 시즌 발베르데 감독의 전술에서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체력적 문제로 인해 풀타임 출전은 힘들지만, 지난 시즌 부진했던 안드레 고메스가 로테이션을 통해 폼이 살아나며, 이니에스타의 대체자 역할을 잘해주고 있다. 세르지 로베르토 역시 오른쪽 풀백보단 본연의 포지션인 미드필더로 출전하는 횟수가 많아지며, 적절한 휴식을 부여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발베르데 체제의 바르셀로나 4-4-2 포메이션에서 측면 플레이메이커로 출전하고 있다. 그리고 10월 22일 프리메라리가 9라운드 말라가전에서는 메시의 패스를 받아 정말 간만에 리가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하였다. 풀타임으로 자주 뛰지 못하고 은근히 잔부상으로 결장하는 경기도 많지만 이니에스타가 출전할 때와 결장할 때의 경기력 차이는 확실히 큰 편이며, 이니에스타가 없으면 라키티치, 파울리뉴조차 볼 배급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이니에스타의 대체자를 하루빨리 찾아야겠지만 워낙 역대급 선수라 과연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선수가 있는지 의문이다.

2017년 12월 23일 프리메라리가 17라운드 엘 클라시코에선 여전히 세계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며 본인의 기량을 뽐냈다. 전반전은 레알의 총공세에 매우 고생했으나 후반전에 들어서는 이내 페이스를 되찾고 라키티치, 부스케츠, 파울리뉴와 중원을 휘저었다.

후반기 들어서도 미드필더의 핵심으로 활약 중이며 적절한 체력안배를 통하여 폼을 유지 중이다. 일찍 경기장에서 빠지는 일이 많지만 그래도 올 시즌 바르사 멤버 중에서 출전시간이 상위권에 속하는 편. 오히려 첼시전을 기점으로 벌써 저번 시즌의 출전 시간인 1336분을 뛰어넘었다.

챔피언스리그 16강 첼시전 메시 징크스를 깨주는 어시스트를 해주며 1:1 동점골에 크게 관여했다.

라리가 27라운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에 선발로 나왔으나 종아리 부상으로 36분만에 안드레 고메스와 교체되었고, 최장 4주 가량 아웃으로 예상되었으나 일주일만에 부상에서 회복되어서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 선발 출전했다.

챔피언스리그 8강 로마전에서는 1차전 4;1 승리에도 불구하고 2차전에서 0:3으로 완패하며 탈락했다.

2018년 4월 21일에 펼쳐진 바르사 소속 마지막 결승전이었던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선발출전하여 한 골을 기록하면서 5:0 승리에 기여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그리고 2018년 5월 20일, 캄 노우에서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화려한 바르사 경력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 경기에서는 필리페 쿠티뉴의 선제 득점을 지키며 1:0 승리를 거두었고 바르사의 배려를 통해 상대 소시에다드의 레전드이자 원 클럽 맨 사비 프리에토의 간단한 은퇴식도 함께 진행되었다. 프리에토의 은퇴식 이후 이니에스타의 은퇴식을 같이 보고 갈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준 바르사의 제안도 있었지만 이 날의 주인공은 이니에스타라며 소시에다드 선수들과 스태프들은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이후 1시간 40분 가량 차비 에르난데스, 카를레스 푸욜, 에릭 아비달 등 바르사의 모든 레전드들이 참여한 상황속에서 바르사의 첫 야간 은퇴식이 진행되었다.
파일:AI_YOUNG.jpg
파일:AI_SB.jpg
파일:AI_1314.jpg
파일:AI_BARCA_TROFEO.jpg
{{{#ffd400 [math(\infty)]
#Infinit8Iniesta
CAMP NOU · 20 DE MAIG}}}
파일:AI_LAST_SHOT.jpg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퇴단식 연설 내용]

이 순간은 너무 힘들지만 22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소중했습니다.
그 동안 이 클럽의 엠블럼을 대표할 수 있던 것은 너무나 큰 행운이었습니다.
또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세계 최고의 클럽은 바르셀로나입니다.

팀 메이트 각각에게 너무 고맙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울 거에요.
소년으로 시작해 남자가 되어 떠날 수 있게 해준 팬 여러분의 사랑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여러분 모두를 제 마음 속에 영원히 새겨 두겠습니다.

Visca El Barça
Visca El Catalunya
Visca El Fuentealbilla[5]

FC 바르셀로나 통산 기록: 674경기 57골 137도움
라리가 9회: 2004-05, 2005-06, 2008-09, 2009-10, 2010-11, 2012-13, 2014-15, 2015-16, 2017-18
UEFA 챔피언스 리그 4회: 2005-06, 2008-09, 2010-11, 2014-15
코파 델 레이 6회: 2008-09, 2011-12, 2014-15, 2015-16, 2016-17, 2017-18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7회: 2005-06, 2006-07, 2009-10, 2010-11, 2011-12, 2013-14, 2016-17
UEFA 슈퍼컵 3회: 2009-10, 2011-12, 2015-16
FIFA 클럽 월드컵 3회: 2009-10, 2011-12, 2015-16

1.3. 비셀 고베

2018년 4월 26일 진행된 고별인터뷰에서는 이번시즌이 바르사에서의 마지막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이적 팀은 밝히지 않았다. 충칭 리판행이 기정사실화 되어가는듯 했지만 충칭 리판에서 이니에스타의 이적이 없을것이라고 말했고 2018년 5월 18일 바르셀로나의 메인 스폰서 회사 라쿠텐이 소유한 J1리그의 비셀 고베로 이적이 확정됐다. 계약 규모는 3년 7,500만 유로(한화 약 950억원)규모의 계약으로 디에고 포를란, 루카스 포돌스키의 500만 유로의 5배 연봉을 보장받는다.

그리고 2018년 5월 24일 비셀 고베 이적이 정식으로 발표됐다.

2017년 J리그 팀연봉 1위팀이 우라와 레즈로 115억 가량이며 비셀 고베의 2016년 구단 운영비가 386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무리한 영입은 맞는것이며, J리그 중계권료가 1년에 2,000억 수준이라도 팀별로 나눠가지면 팀마다 몇십억 수준으로 중계권료를 바탕으로 영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이러한 영입의 가장 큰 배경에는 아무래도 비셀 고베의 모기업인 라쿠텐의 자금 지원이 가장 클것이다. 라쿠텐의 회장인 미키타니 히로시 회장이 야구 구단과 축구 구단도 함께 운영하며 평소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며 자기 과시욕이 좀 있는 사람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6]그리고 바르셀로나의 피케와 라쿠텐 회장이 친분있는 사이로 이 친분으로 인해서 피케가 바르셀로나 구단 수뇌부와 히로시 회장을 연결시켜 주었으며 그 결과 4년간 691억원 수준에 바르셀로나의 메인 스폰서쉽 계약을 체결했었다.

바르셀로나, 日 기업 라쿠텐과 스폰서 계약 체결 '4년 계약'

그리고 라쿠텐의 미키타니 히로시 회장이 직접 이니에스타 영입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직접 회장 개인 전용기로 이니에스타를 일본에 데리고 오며 입단계약을 성사시켰다. 입단 계약식에도 미키타니 회로시 회장이 참석했다.

고베, 950억으로 '바르셀로나의 역사'를 샀다
파일:수정됨_이니에스타 라쿠텐회장.jpg
* 이니에스타 인스타 계정에 올라온 히로시 회장과 이니에스타. 이니에스타는 "친구와 새집으로"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또한 이니에스타의 비셀 고베행에는 지난 2017년부터 10년간 총액 2,100억 엔(약 2조 715억 원)에 달하는 거액을 투자한 중계권사인 DAZN와 J리그 연맹의 입김과 지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니에스타의 연봉은 비셀 고베뿐만 아니라 모기업인 라쿠텐과 관련 계열사가 십시일반으로 나눠낸다. 명목은 광고 관련 예산이다. J리그도 돈을 보태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우 큰 규모의 계약이지만 일본 내에서는 이니에스타 영입의 경제 효과가 1,000억원이 넘는다는 예측을 내놓았으며, 이니에스타가 첫 출전한 경기의 관중 수는 26,000명으로 치솟았으며 이는 비셀 고베 평균 관중 수인 7,000여 명의 4배에 달하는 숫자이다. 그 이후 경기들도 연일 매진 되고 있으며 이니에스타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수준이라고 한다. J리그의 전반적인 흥행을 이끌 것이 분명하기에 J리그 사무국 측에서도 어느정도 지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이니에스타의 고베행 이유, 중계권사와 J리그의 입김

그리고 7월 22일 쇼난 벨마레와의 홈경기에서 후반전 59분에 교체출장하며 J리그에 데뷔했다. 0대2로 승부가 기운 상황에서 좋은 패스들을 날려주며 클래스의 차이를 보여줬지만 웰링턴 등 공격수들이 죄다 날려먹으며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하고 팀은 0:3으로 대패하고만다.

7월 28일 18라운드 가시와 레이솔을 상대로 특유의 롱패스와 탈압박을 보여 주면서 팀의 1:0 승리에 기여했다. 하지만 팀은 이후 추락을 거듭하며 어느새 리그 12위에 강등권 추락 위기까지 겪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니에스타 본인도 부상으로 경기를 빠지고 팀이 원정 경기를 간 날에 가족들과 수족관에 간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프로 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비난도 나오고있다.[7]

그러나 동료 선수 김승규가 한국에서 했던 인터뷰를 본다면 이니에스타는 처음부터 동료들에게 사진촬영도 권하면서 친해지려고 노력했고 다른 외국인 선수들은 혼자서 밥을 먹고 일찍 들어가는 반면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모두 다 먹을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가는 선수라고 한다. 일본어도 체류기간에 비해 많이 늘었다고 하고 훈련에도 성실하게 임하며 배울 점이 많은 선수라고 말했다.[8] 이후에도 시즌이 끝날 때까지 공격 포인트도 착실히 쌓았고 축구 교실을 열어서 재능 기부도 하는 등 프로 의식 결여에 대한 논란은 완전히 없어진 상태다.

2019년에는 기존 주장인 포돌스키가 계속된 구설수 때문에 주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주장완장을 차게 되었다.[9] 문제는 이니에스타도 경기내내 어슬렁 대거나 의미없는 횡패스위주 경기, 지나치게 적은 활동량으로 비난받고 포돌스키와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 경기에 안 나오는 경우도 가끔 나와서 일부 극성 팬들에게는 대머리 돼지 새끼란 멸칭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팬들은 이니에스타에게 호의적이다. 게다가 팀을 천황배 결승에 올려 놓는 등 한 번 실력 발휘를 하면 클래스를 제대로 보여 준다. 고베의 토너먼트 경험 부족을 단번에 채워 주면서 2019년 천황배 JFA 전일본 축구 선수권대회 우승[10]을 이끌었다.

천황배 우승으로 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면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한 조가 되었다. 현재 겨울 이적 시장에서 에스투디안데스 및 MLS 구단들과 링크가 났지만, 잔류를 택했다고 한다. 이후 수원 삼성 블루윙즈AFC 챔피언스 리그를 치르기 위해 무려 16년 만에 수원에 재방문했다. 경기는 1:0으로 고베의 승리다. 하지만 카타르 도하에서 한 조별리그 6차전에서의 리매치는 2:0으로 수원이 승리했다.

2020시즌은 꽤나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핑크 감독이 나가고 마르코스 비베스 감독 대행하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니에스타 개인도 연속골을 기록하고 있으며 팀도 4연승을 달리고 있다. 2020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비셀 고베의 공격을 전두지휘하며 처음 출전한 팀을 8강까지 끌어올렸으나 16강 상하이 상강전에서 오른쪽 허벅지 근육에 부상을 당하면서 8강에서 다시 만난 수원과의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연장에 들어서까지 승부가 나지 않자 부상 당한 몸으로 113분에 교체 투입되어 7분을 소화했고 연장 종료 이후 승부차기에서 첫 번째 키커로 나서 PK를 성공시키며 팀의 4강 진출에 일조했다.

4강 울산 현대전에서는 누적된 부상으로 결국 명단 제외되었다. 이날 결정적인 장면마다 관중석의 이니에스타가 카메라에 잡혔는데, 야마구치의 선제골에는 환한 미소를 보였고, 존슨의 동점골에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고, 연장전 완벽한 1:1을 날리고 이어진 빈 골대를 향한 슈팅이 실패하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고, 연장 막판 주니오의 페널티킥이 꽂히자 머리를 감싸쥐고 좌절했다. 그리고 비셀 고베와 이니에스타는 여정을 마무리해야 했다.

상하이전에서 당한 허벅지 부상이 상당히 심각하다. 카타르에서 바로 바르셀로나로 날아가 수술했으며 내년 4월 이후에나 복귀가 가능하다. 2021년 4월 9일, 고베는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이니에스타가 약 4개월 만에 훈련에 복귀했음을 전했다.

5월 11일[11] 고베는 이니에스타하고 2년 재계약을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또한 선수의 의사로 연봉을 대폭 삭감하였다고 한다. 이쯤되면 한때 포돌스키와 함께 멘탈로 까였던게 모욕인 수준이긴 하다.

2021년 친정팀 FC 바르셀로나사비 에르난데스가 감독으로 부임하고 이니에스타보다 한 살 많은 다니 알베스를 복귀시키자 이니에스타도 복귀설이 돌고 있다.

2022년 10월 스페인 매체 <마르카>는 이니에스타가 이번 시즌 이후 선수를 은퇴하고 FC 바르셀로나의 유스 코치로 부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고 포르투갈 매체 <레코드> 는 그가 펩 과르디올라 사단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파일:Fw8YyQMaYAM3Drt.jpg
2023년 5월 25일. 7월 1일 콘사돌레 삿포로 경기 후 비셀 고베를 떠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다만 은퇴는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파일:비셀 고베 마지막 경기.jpg
파일:이니에스타 비셀 고베 마지막 경기 가족 사진.jpg
7월 1일 고별 경기를 마지막으로 비셀 고베를 떠났고 고별 경기에 가족들이 함께 참석하였다.

고베에서 5년간 머문 이니에스타는 눈물을 흘리며 "나는 거쳐가기 위해 일본에 온 것이 아닌 가족과 함께 일본에서 살기 위해 왔던 것이며 오늘은 이별을 말하는 날이지만 일본을 좋아하고 언젠가 다시 올 것이기 때문에 안녕이란 말은 하지 않겠다. 다시 만나자" 라고 작별사를 남겼다.#

현재 전 FC 바르셀로나 동료인 리오넬 메시세르히오 부스케츠, 조르디 알바가 이적한 인터 마이애미 CF와 링크가 뜨고 있다.

8월 8일 파브리지오 로마노에 의해 아랍에미리트 프로 리그에미리트 클럽에 HERE WE GO가 떴다.#

1.4. 에미리트 클럽

파일:1000007651.jpg
2023년 8월 8일, 에미리트 클럽으로의 이적 오피셜이 떴다. 계약 기간은 1년이며 1년 연장 옵션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2. 국가대표 경력

파일:2006spainhomeiniesta.jpg
2006년 5월 27일, 국가대표에 데뷔하였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 23인에도 포함되었고, 1경기 출전했다. 그 1경기는 스페인이 이미 16강 진출이 확정되어서 비주전 선수들을 내보냈던 3차전 사우디와의 경기였다. 그리고 스페인은 16강전에서 지단의 프랑스에 1:3으로 완패하며 탈락했다.
파일:이니에스타 결승골.gif
파일:이니에스타 라스트 미닛 골.jpg
조국에 우승을 선사한 최고의 라스트 미닛 골
UEFA 유로 2008에서도 사비와 함께 활약한 스페인 국대의 주전 미드필더지만, 국대에서의 역할은 공미가 아니라 측면 미드필더이다.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형 미드필더인 다비드 실바도 이니에스타와 마찬가지로 측면에서 뛰게 된다. 또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에도 주요 멤버로 참전했지만 스위스와의 1차전에서 허벅지 부상으로 후반에 교체되었다. 이 여파로 온두라스와의 2차전도 결장. 그리고 칠레와의 3차전에서 복귀함과 동시에 추가골을 터뜨리며 스페인이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8강 파라과이 전에서는 엄청난 드리블로 다비드 비야의 골을 간접적으로 도왔으며, 네덜란드와 붙은 결승전에선 결승골을 뽑아내며 월드컵 결승전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결승골을 넣은 후 다니엘 하르케를 기리는 세레모니를 하였고, 당연히 옐로카드를 받았다.
파일:attachment/iniesta1.jpg
파일:Netherlands+v+Spain+2010+FIFA+World+Cup+Final+rpJs2Lo-rqWx.jpg
DANI JARQUE SIEMPRE CON NOSOTROS.
(다니엘 하르케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다.)
여기 나오는 다니엘 하르케는 2009년 여름에 심장마비로 급사한 불운의 수비수이다.[12]

UEFA 유로 2012 대회에서는 대회 내내 그야말로 약빤 듯한 활약을 선보이면서 안드레아 피를로의 이탈리아를 결승전에서 누른 끝에 스페인의 메이저대회 3연패를 진두지휘하며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13] 유로에서의 활약만 떼어놓고 보면 메시? 호날두? 그게 뭐임? 수준으로 상대팀들을 아주 그냥 통째로 씹어먹었다.

파일:external/www.koreatimes.com/B2-1.jpg
기본적으로 바르셀로나에서 메시 다음가는 수준의, 때로는 메시보다도 뛰어난 활약을 매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상기한 유로에서의 대활약으로 그 메시와 호날두를 제치고 2011-12 UEFA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쥐었다.[14]

그리고 참가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팀 전체가 최악의 모습을 보인 와중에 톡톡히 본인의 몫을 해냈다. 1,2차전에서는 팀 부진에 휘말려 별다른 활약을 보이진 못했지만, 3차전 호주와의 경기에서는 다비드 비야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한 후안프란에게 킬패스를 찔러줬고 페르난도 토레스의 추가골을 어시스트 했으며, 후안 마타의 쐐기골을 어시스트한 파브레가스에게도 패스를 해주는 등 스페인이 만들어낸 3골에 모두 직접/간접적으로 관여하는 활약을 펼치며 승리를 이끌었다.
파일:external/img.uefa.com/GettyImages-539878432_20160613_150402.jpg

UEFA 유로 2016 조별리그 1차전 체코전에서 대회 MVP 하나 더먹겠다는듯 양 팀 선수들중 가장 빛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스페인 전방 공격수들이 전체적으로 체코의 두줄 수비벽에 가로막혀 답답한 모습을 보이며 후반 87분까지 0:0이 유지되었는데, 결국 제라르 피케의 선제골을 돕는 택배 크로스로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1-0 승리에 기여했다. 당연히 경기 MOM에 선정되었다.

2차전 터키전에서도 3:0 스코어로 팀이 승리한 가운데,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3번의 찬스 메이킹과 100번에 가까운 패싱을 성공시키면서 또다시 MOM에 선정되었다. 3차전 크로아티아전에서 모드리치가 빠진 크로아티아에게 일격을 맞고 조 2위로 떨어져 16강에서부터 이탈리아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3차전의 이 변수로 인해 스페인은 16강에서 일찍 짐을 싸게 된다.

16강 이탈리아 전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필드플레이어중 명성에 걸맞는 활약을 펼쳤지만 수비진의 부진과 부스케츠의 봉쇄, 파브레가스의 공기화, 놀리토-모라타 라인의 삽질등이 겹쳐 2대0으로 완패하고 말았다. 그와 데헤아만이 그나마 활약했지만 2명만으로 승리를 만들어내기엔 무리였다. 이후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팀이 조 1위 자리에 올랐으나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고는 하기는 어렵다. 3차전 모로코와의 경기에선 라모스와 함께 패스를 주고받다 칼리드 부타이프에게 틈을 허용해 선제 실점을 헌납하는 실책을 저지르고 말았다. 5분 후에 이스코에게 어시스트를 하나 적립했다고는 하더라도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답지 않은 실책이었다. 포르투갈전에서는 팀 패스가 잘 이어지다가 이니에스타에서 패스미스가 나고 턴오버되어 역습을 맞게되는 경우가 잦았다. 팀도 16강에서 러시아에 패하면서 탈락했고[15] 그 경기 이후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공교롭게도 이니에스타의 국가대표 데뷔 경기가 2006년 5월 27일 러시아 전이였는데, 국가대표 마지막 경기도 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 러시아 전이 되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420
, 2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420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420
, 3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420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1] 물론 지금 와서 보면 밀리지 않고 오히려 소울메이트가 됐다는걸 다들 알지만, 저 얘기를 듣던 당시의 이니에스타는 실제 역할이나 포지션상 차비와 역할이 상당부분 겹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테크닉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하프윙이 되면서 축구팬들이 흔히 아는 그 라인이 완성된 것.[2] 당시 이니에스타는 딱히 큰 주목은 받지 못하는 15세의 평범한 유소년 선수였다.[3] 이니에스타의 개인 커리어하이 시즌이기도 하다.[4] 라이벌 더비전에서 원정팀에게 대패한 후 관중들이 기립 박수를 치는 것은 상대에 대한 경의의 의미도 있지만 자기 팀을 비꼬는 의미도 있다.[5] 바르셀로나 만세, 카탈루냐 만세, 푸엔테알비야 만세[6] 다만, 미키타니 라쿠텐 회장의 인터뷰에서처럼 이니에스타는 세계 최고 축구 클럽인 바르셀로나의 유스부터 성인 팀까지 모두 경험했기 때문에 세계 최고 클럽팀의 선수 육성, 운영 노하우 및 시스템을 체득하고 있는 선수이다. 실제로 미키타니는 기자회견에서 이니에스타가 가지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축구 DNA를 빗셀 고베에 접목시켜줄것을 기대하고 있으며 은퇴 이후 빗셀 고베의 운영에 관한 중역을 맡길 수 있음을 시사했던 바있다.[7] 이날 고베는 우라와 원정에서 0:4로 졌다. 그리고 이후 이니에스타 결장 정보를 팀 동료 선수가 일본 내 사설 토토 지인에게 누설하는 바람에 리그 내 불법 도박, 승부 조작 의혹이 생기는 등 여러모로 시끄러웠던 사건이었다.[8] 팀 동료니까 좋은 말만 해 준 게 아니냐 싶기도 하지만 포돌스키는 1년 더 뛰고도 이니에스타보다 일본어를 못 한다고 디스했고 슛이 좋다는 것 이외에는 딱히 좋은 말을 해 주지 않은 걸 보면 이니에스타에 대해서 아부하려는 의도는 아닐것이다.[9] 구단 역사상 세 번째 외국인 주장이며, 첫 외국인 주장은 정우영이다.[10] 결승전이 2020년 1월 1일에 있었으나 2019년 대회를 우승한 것이다.[11] 공교롭게도 이 날은 이니에스타의 37번째 생일날이였다.[12] 참고로 레알 마드리드 못지 않은 바르셀로나의 라이벌인 에스파뇰의 선수였다. 그 때문인지 에스파뇰의 홈경기로 치러진 더비 1차전에서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후에도 에스파뇰의 홈에서 경기가 치러질 때, 이니에스타만큼은 교체로 나갈 때에도 상대 관중으로부터 아낌없는 박수를 받는다.[13] 스탯으로만 따지면 0골 1어시밖에 안 되었는데도 선정된 것이다. 스탯을 초월한,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며 선수를 평가할때 단순 스탯나열이 얼마나 1차원 적인 사고방식인지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14] 모두가 다 알 듯이, 이 시즌의 메시는 리그에서 50골, 챔스에서 14골로 공식전 통틀어 73골을 때려박으며 한 시즌 최다골 기록을 세웠고 호날두는 리그에서 46골에 승점 100점으로 압도적 라리가 우승을 했음에도 이니에스타가 상을 받았다.[15] 러시아와의 승부차기에서 1번 키커로 나와 득점을 성공시켰으나 3번 키커인 코케가 실축하면서 패색이 짙어지자 표정이 어두워지는게 눈에 잡혔다. 그리고 마지막 키커인 이아고 아스파스가 공을 차기 직전에는 아예 뒤돌아서버리고 말았다.하.. 2010년 스쿼드가 그립다.. 물론, 공을 차는 순간에는 다시 아스파스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