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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훈/선수 경력/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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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패넌트레이스
2.1. 4~5월2.2. 6월2.3. 7~8월2.4. 9월
3. 시즌 후4. 총평

1. 개요

LG 트윈스 소속 외야수 안익훈의 2017 시즌에 대한 문서.

2. 패넌트레이스

2.1. 4~5월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으며 2군에서 3할 5푼을 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4월 말 쯤 1군에 콜업되었다. 5월에는 주로 경기 후반 대수비로 투입되었지만 주전 중견수였던 김용의가 갈수록 공수에서 삽질을 하게 되었다.

2.2. 6월

따라서, 6월 이후에는 안익훈이 선발 출장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었다. 표본은 적지만 6월에는 4할이 넘는 타율을 보여주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6월 27일 0시를 넘긴 12회말 1사 1,2루에서 전준우의 평범한 안타성 타구를 아예 포기하면서 뒤로 빠뜨려 2루 주자 이우민을 홈으로 불러들이면서 627 대첩을 끝냈다. 당시 3루코치는 안익훈이 당연히 잡을 것으로 예상해 2루주자 이우민을 3루에서 멈춰서게 했다. 그러나 안익훈의 타구를 그냥 흘려보내는 성의 없는 플레이로 2루주자는 유유히 홈으로 들어오며 끝내기 득점을 올렸다. 기록은 전준우의 안타와 안익훈의 실책.

6월 28일 또다시 돌입한 12회초에서 노경은을 상대로 인생 통산 첫 솔로홈런을 치며 결승타의 주인공이 되는가 했지만[1] 12회말 이대호의 동점 홈런으로 빛이 바랬다. 그나마 이 홈런이 있었기에 LG가 무승부로라도 경기를 마칠 수 있긴 했지만.

자신감 있는 모습은 좋지만 한 두번씩 너무 지나쳐서 프로인것을 망각할 정도의 어이없는 수비가 나오곤 한다. 자신감과 자만감은 다른 것이고 그러한 수비로 팀 분위기가 꺾여버린다면 없는 것만도 못한 선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2.3. 7~8월

7월 23일 대구 삼성전에서 6대 8 2사에서의 뜬공을 놓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6대 10으로 점수가 벌어지는 결정적 역할을 하고 말았다.

8월 5일 잠실 두산전에서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며 삽질을 이어가고, 그나마 볼넷 이후 동점득점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으나 9회말 2아웃 2사 1루 2대 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껏 안타를 쳐놓고 2루를 공략하는 뇌주루로 결정적인 역적이 되었다. 이 플레이만 아니었으면 2사 1, 3루로 다음 타자 정성훈에게 기대를 걸 수 있는 상황이었다.

8월 16일 잠실 kt전에서 또 홈에서 주루사를 당했다. 다만 동점 상황이었고, 유지현 코치가 무리하게 풍차를 돌린 것이라 그리 까이진 않았다.

2.4. 9월

9월 8일 넥센전, 연장 10회 초에 절묘한 배트컨트롤로 역전 적시타를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 날 LG의 순위는 5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9월 30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9회말 무사 만루의 기회에서 나온 답이 없는 2명인 정성훈, 채은성의 뒤를 이어 2아웃에서 끝내기 내야 안타를 쳐냈다.

3. 시즌 후

시즌 종료 후 상무에 지원한단 소문이 있었다. 작년엔 지원은 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떨어졌는데...(지원한 외야수들 중 가장 성적이 좋았다.) 올해는 무난히 붙을 것으로 보인다. 올시즌 타격에서 아주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아직 타격자세가 불안정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이것을 개선하기 위한 매우 좋은 판단으로 보인다. 물론 일부 엘팬들은 군입대를 미루고 아시안게임을 노리길 바라고 있다... 류중일 신임 감독은 안익훈이 가장 마음에 드는 선수로 정했는데 군입대한다해서 아쉽다는 바를 밝혀서인지 현재 고민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결국 군입대를 미루기로 결정했다. 물론 아직 나이도 어리고 17 시즌 후 국대도 뽑힌 지라(2018 아시안 게임 대표까지 뽑힐 지는 미지수지만) 오지환보다는 상황이 낫긴 하다.

4. 총평

3할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었음에도 스타팅과 벤치를 왔다갔다하며 양상문식 좌우놀이의 피해자 중 하나로 여겨졌으나 다음해 시즌 초 1번 리드오프 고정으로 한달 간 주전으로 나와 1할대 타율에 마이너스 WAR로 민낯을 드러내자 재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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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익훈은 프로 데뷔 전 시절에도 홈런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