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안종변(安鍾卞) |
본관 | 죽산 안씨(신) |
생몰 | 1911년 7월 6일 ~ 1969년 10월 1일 |
출생지 | 전라남도 함평군 식지면 나산리 (현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 나산리)[1] |
사망지 | 전라남도 함평군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안종변은 1911년 7월 6일 전라남도 함평군 식지면(현 나산면) 나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9년 10월 광주공립농업학교에 2학년으로 재학하던 중 동교내에 조직된 독서회(讀書會)와 연계, 2학년 중심의 독서회를 결성하기 위하여 유환묵(劉煥默) 등과 함께 협의를 가졌다. 이후 11월 12일 광주학생항일운동에 가담하여 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1930년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언도받고 공소하여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출옥했다.이듬 해인 1932년 2월 상순 그는 전남노농협의회를 조직한 김재동(金載棟)으로부터 야학 및 농민조합 결성을 위해 일해줄 것을 부탁받고 이를 위해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함평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9년 10월 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안종변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5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