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라마예츠의 역임 직책 | |||||
{{{#!folding ▼ | FC 바르셀로나 역대 주장 | ||||
세사르 로드리게스 (1953~1954) | → | 안토니 라마예츠 (1954~1965) | → | 주안 세가라 (1955~1963) |
안토니 라마예츠의 수상 이력 | ||||
{{{#!folding ▼ | 둘러보기 틀 모음 | |||
개인 수상 | ||||
| 1958-59 · 1959-60 |
스페인의 前 축구 감독 | ||
이름 | 안토니 라마예츠 Antoni Ramallets | |
<colbgcolor=#eeeeee,#191919> 본명 | 안토니 라마예츠 이시몬 Antoni Ramallets i Simón | |
출생 | 1924년 7월 1일 스페인 왕국 바르셀로나 | |
사망 | 2013년 7월 30일(향년 89세) 스페인 빌라프랑카 델 페네데스 | |
국적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82cm / 82kg | |
직업 | 축구선수 (골키퍼 / 은퇴) 축구 감독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산 페르난도 (1942~1944) RCD 마요르카 (1944~1946) 레알 바야돌리드 CF (1946~1947) FC 바르셀로나 (1947~1962) |
감독 | 레알 바야돌리드 CF (1962~1963) 레알 사라고사 (1963~1964) 레알 무르시아 CF (1964~1965) 레알 바야돌리드 CF (1965~1966) CD 로그로녜스 (1966) 에르쿨레스 CF (1968) 데포르티보 일리시타노 (1968~1969) | |
국가대표 | 35경기 (스페인 / 1950~1961) 7경기 (카탈루냐 / 1948~1961) |
[clearfix]
1. 개요
스페인의 축구 선수 출신 전 축구감독으로 안토니 라마예츠, 또는 안토니오 라마예츠의 두 가지 이름을 사용했다.[1]2. 생애[2]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안토니 라마예츠는 바르셀로나의 그라시아 지구에서 태어났고 산 페르난도 지방에서 군복무를 했다. 라마예츠는 1946년까지 마요르카에서 활동하다가 1946-47 시즌에 레알 바야돌리드에서 바야돌리드를 3부 리그에서 세군다 디비시온으로 승격시키는데 성공했다.그 활약을 바탕으로 라마예츠는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지만 2년간 거의 기회를 받지 못했다. 그렇게 기회를 기다리던 라마예츠는 1949-50 시즌 중반 셀틱 FC와의 친선 경기에서 주전 골키퍼 벨라스코가 눈부상으로 경기에서 빠지자 교체로 들어가 큰 활약을 펼쳤고 그 경기로 인해 바르셀로나의 주전은 물론 월드컵에도 참가하게 되었다.
이후 라마예츠는 바르셀로나에서 준수한 활약을 이어갔다. 384경기의 공식 출전 기록과 함께 각종 비공식 경기를 합치면 538경기를 출전한 것.[3] 그리고 사모라 상을 2번 차지하였는데 공식적으로 수상한 횟수는 2번이지만 사모라 상이 처음부터 있었다 가정하면 5회의 사모라 상을 차지한 것. 이는 후배 빅토르 발데스와 동률의 기록이고 역대 최다 기록이다.[4] 그리고 그는 선수 생활 치명적인 실수를 단 한 번 저질렀는데, 1960-61 시즌 SL 벤피카와의 유로피언 컵 결승전에서 자책골을 넣어 팀이 3:2로 패배하는데 일조했다. 이 자책골이 아니었더라면 경기 결과는 어찌될지 몰랐다.
1962년 3월 6일, 그는 캄 노우에서 함부르크 SV를 상대로 은퇴경기를 치렀다.
2.1.2. 국가대표
1950년 월드컵에 출전한 스페인 대표팀에서 라마예츠는 처음에는 주전이 아니었다. 그러나 라마예츠는 에이사기레와의 주전 경쟁에서 승리, 13강 조별리그 2번째 경기인 칠레전부터 골키퍼 장갑을 꼈다. 라마예츠는 첫 경기 미국전과 결선 리그 3차전 스웨덴전을 제외한 4경기에서 골문을 지켰지만 개최국 브라질과의 2차전에서 6골을 먹힌 것이 흠이었다.
그러나 라마예츠가 주전으로 기용되었음에도 스페인이 이후 월드컵에서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라마예츠의 월드컵 출전은 1번에 그쳤다. 라마예츠는 1962년 월드컵 지역 예선까지 골문을 지켰지만 본선에는 나가지 않았다. 또한 라마예츠는 카탈로니아 대표팀에서 7경기를 뛴 전적이 있다.
2.2. 이후
은퇴 후의 라마예츠는 여러 팀에서 감독 생활을 했다. 그중에서도 레알 사라고사에서의 경력이 눈에 띄는데, 지금에야 하부리그를 전전하는 구단이지만 60년대에는 레알 마드리드 CF와 FC 바르셀로나를 견제하던 팀이었다. 라마예츠는 63-64 시즌 사라고사를 리그 4위로 안착시키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또한 코파 델 레이와 인터시티 페어스 컵에서 우승하며 구단 역사상 첫 유럽대항전 트로피를 들어올렸다.3. 플레이 스타일&평가
브라질 월드컵에서 보여준 뛰어난 반사 신경을 이용한 선방으로 그는 마라카낭의 고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4. 어록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약 발데스가 저의 기록을 깬다면 저는 참 기쁠 것입니다.
5. 수상
5.1. 클럽
- 프리메라 리가 우승 6회: 1947–48, 1948–49, 1951–52, 1952–53, 1958–59, 1959–60(FC 바르셀로나)
- 코파 델 레이 우승 5회: 1950–51, 1951–52, 1952–53, 1956–57, 1958–59(FC 바르셀로나)
- 코파 에바 두아르테 우승 3회: 1948, 1952, 1953(FC 바르셀로나)
- 인터시티 페어스 컵 우승 2회: 1955–58, 1958–60(FC 바르셀로나)
- 라틴 컵 우승 1회: 1952(FC 바르셀로나)
5.2. 개인
-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 5회: 1951–52, 1955–56, 1956–57, 1958–59, 1959–60(FC 바르셀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