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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2 10:30:45

알렉세이 나발니/생애

1. 개요2. 여린 시절3. 반부패 조사 활동4. 정치 활동5. 독살 미수 사태6.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의 탄압7. 사망

1. 개요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의 생애를 다룬 문서.

2. 여린 시절

1976년 소련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러시아 민족 우호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예일 대학교에서 유학하여 영어도 유창하게 구사했다.[1] 영상 그의 자식들도 유학 생활을 한 터라 영어를 잘한다. '미래의 러시아(Россия будущего)'라는 정당을 이끌었으며[2] 완전히 독재화된 러시아 정치판에서 명망 있는 정치인들 중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과 그의 통합 러시아에 맞서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꼽혔다. 이념으로는 참여민주주의친유럽주의, 자유주의를 내세웠다.

생전 지속적인 탄압으로 대다수의 정적이 축출, 제거된 러시아에서 얼마 남지 않은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으며 블라디미르 푸틴의 유력한 정적이고, 푸틴도 대놓고 그를 비국민으로 취급하며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일반적인 반대파들과는 아예 다르게 대응하였다. 선관위에 의해서 출마가 막히다 보니 겐나디 주가노프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 등 주류 야권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정계 주류에 진입하지 못 하고는 있지만 언제까지나 푸틴이 적극적으로 탄압해서 정계에 못 가는 것뿐이고 실제 정치력이 없는 인물은 아니다.

특히 야당 주자로 모스크바의 선거 판세를 움직일 정도의 영향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반푸틴 재야 정치인들과는 격이 다른 인물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암살당한 보리스 넴초프[3]와는 격이 전혀 다를 정도로 영향력이 센 인물이기에 푸틴으로서는 더욱 경계와 제거의 대상이었다.

3. 반부패 조사 활동

2008년 나발니는 로스네프트, 가스프롬, 가스프롬 네프트, 루크오일, 그리고 수르구트네프트 가스, 이렇게 5개의 가스 회사 주식을 30만 루블 어치 사들였고, 이를 통해 해당 주식회사들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행동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회사들이 소유한 금융 재산의 투명성을 노렸다. 이것은 법적으로 이미 요구되는 사항이었지만, 해당 회사들의 상위 직원들은 횡령과 회사 투명성을 차단하는 행위에 연루되었다는 혐의가 있었다. 다른 활동가들은 이러한 경우 경찰에 의하여 해결하려 했는데, 세르게이 마그니트스키의 경우 주 정부의 부적절한 예산 지출과 부실한 주 정부 서비스 등을 지적했다.

2010년 11월, 나발니는 트랜스네프트 가스 회사의 비밀 회계 감사 자료를 공개했다. 그의 블로그에 따르면 트랜스네프트 가스 회사의 주요 경영자들은 동부 시베리아에서 진행되던 태평양 석유 파이프라인 공사 도중, 무려 40억 달러를 빼돌렸다.

2010년 12월, 나발니는 러시아 연방정부의 행정 조달 과정에서 벌어지는 부패행위를 낮추기 위한 로스필 프로젝트를 선언했다. 프로젝트는 행정상 필요한 물자 조달 등을 모든 러시아 연방 정부가 온라인에 게시 및 공고하여 입찰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낙찰 정보 또한 온라인에 반드시 게시되도록 했다.

2011년, 나발니는 로스야마 프로젝트를 개시했다.

4. 정치 활동

특히 청년층에게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는데 블로그를 통해 대중과 의사소통하는 방법으로 지지자들을 늘려왔다. 젊은층의 주 활동 무대인 인터넷을 공략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를 사용하여 푸틴 대통령을 공격했으며, 정치 시위를 조직했다. 또한 푸틴 대통령과 그의 부적절한 행동을 고발하는 문서를 올렸으며, 선거 운동을 홍보하기 위해 블로그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2011년 2월, 나발니는 라디오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통합 러시아를 '사기꾼과 도둑놈들의 정당'이라고 부르는 패기를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사기꾼과 도둑놈들'이라는 말은 인기를 얻어 통합 러시아의 별명이 된다.[4] 그렇게 점차 인지도와 세를 불리다가 2011년 러시아 총선 사태에서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민주화에 대한 연설을 하는 것으로 그 존재감을 확실히 대중에 각인시켰다. 그러나 이는 푸틴 정권이 그를 본격적으로 예의주시하고 경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듬해인 2013년 지방선거에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지만 27%의 득표율을 얻으며 낙선했다. 다만 득표율 자체는 부정 선거의 여부와 정당 기반이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선전한 편이었고, 주요 선거전문가들이 소뱌닌이 60% 이상을 득표해서 안정적인 재선을 거둘것이라는 예상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실제 선거에서는 51%를 득표했다.) 조금만 더 선전했어도 모스크바 시장 선거를 결선으로 끌고갔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결과였다. 여론조사에서도 6월에는 소뱌닌 77%대 나발니 11%로 나발니가 현저하게 밀리고 있었는데, 불과 3개월만인 9월 선거에서는 격차를 51%대 27%로 줄인 것이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신진 정치인사로 주목받으면서 출마에 방해를 받았고,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러시아 경제 위기까지 여러 커다란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졌던 2012년~2015년 동안은 눈에 띄는 활동이 없었다. 사실 해당 기간 동안은 푸틴의 지지율이 한창 80%대를 찍었을 정도로 고공행진하던 시기로서 상대적으로 눈에 띌일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2016년에 인터넷을 통해 다시 한 번 러시아 정권 우두머리들의 부패, 특히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의 부패 혐의를 폭로했다.링크 2017년 3월에는 대규모 반부패 시위를 주도하여 러시아 민주주의 불씨를 살려나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8년에는 지신이 이끌던 진보당을 해산하고 미래의 러시아라는 당을 창당했다.

2019년 지방선거에서 모스크바 의회 선거에 출마하려고 했지만 선관위에 막혀 출마하지 못했다. 그 대신 타 야당을 찍어달라고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당부했고, 그 결과 모스크바 의회 선거에서 러시아 연방 공산당, 공정 러시아, 야블로코당 등 타 좌파 성향 야당이 약진한 동시에 통합 러시아의 의석수가 크게 줄어 통합 러시아는 사실상 패배를 당했고 이를 계기로 푸틴을 견제할 정도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며 그 이전과는 격이 전혀 다른 인물이 되었다. 여담으로 당시 친 푸틴 성향이었던 극우 야당 러시아 자유민주당은 한 석도 건지지 못했다.

2019년 12월 25일에 알렉세이 나발니의 측근이 재징집당해 러시아 북극 기지에 보내졌다고 보도되자 야권인사들은 반발했다. # 26일에는 나발니의 사무실이 경찰에 의해 압수수색을 당했다.# 29일에 러시아 법원에서 나발니에게 푸틴 측근이 운영하는 급식업체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결정했고 나발니는 항소했다.#

2020년 3월에 나발니의 가족과 부모의 계좌가 정부에 의해 강제로 동결되었다.# 6월에 나발니가 무고 혐의로 형사 입건 되었다.#

7월에는 러시아 개헌 국민투표는 사기라고 주장했다.#

2021년에 유럽의회부터 사하로프 인권상을 수상받았다. 나발니는 유럽의회에 감사를 표하며 막중한 책임이라고 밝혔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유럽의회를 비난했다.#

2022년 1월에 러시아 금융당국에 의해 테러리스트 목록에 오른 것이 알려졌다.#

2022년 2월 15일 러시아 검찰은 나발니에게 기부금 횡령 혐의와 판사 모독 혐의를 추가했다. 이에 나발니는 재판에 출석하여 모든 것이 러시아 정부의 위협이라고 비판하며 침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나발니의 딸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프랑스로 가서 유럽 연합에서 수여한 사하로프 인권상을 받았으며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위해 유럽 국가들이 신경써달라고 밝혔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교도소에서 독립언론 도즈드와 인터뷰를 했는데 여기서 푸틴이 자신의 부패를 숨기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며 비난했다.#

3월 22일, 러시아 법원은 나발니에게 제기된 거액 사기와 법정 모욕 혐의 모두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9년 징역형과 함께 1,200,000루블(약 14,000,000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에 국제 인권 단체들과 서방 국가들은 정치적 판결이라고 비난하며 석방할 것을 촉구했다.#

4월 8일, 애플은 나발니의 선거 앱 서비스를 재개했다.#

4월 14일, 나발니는 트위터에 서방의 빅테크 회사들에게 러시아 정부의 허위선전에 대적해달라고 촉구했다.#

7월 11일, 나발니는 옥중에서 '국제 반부패재단'(ACFI)를 창설했다고 밝혔다.#

8월 16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나발니는 동료 수감자들에게 노동조합 결성을 권유하다가 러시아 당국이 그에게 가석방 조건 위반과 사기, 법정 모욕의 혐의를 추가시켜 징역 11년 6개월을 선고했다. 현재 나발니는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블라디미르 인근 멜레호보에 있는 IK-6 형무소에 있는 것으로 전해다. 또한 나발니는 자신의 변호사와 지지자들에게 현재 독방에 수감되었고 수감된 독방이 매우 열악하며 친척들의 면회까지 금지시켰다고 밝혔다.#

9월 21일, 나발니는 변호인을 통해 공개한 옥중 영상 메시지에서 2022년 러시아 동원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악화되고 있다는 증거이며 많은 러시아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고 비판했다.#

9월 30일, 나발니는 자신의 법률팀을 통해 워싱턴 포스트와 한 인터뷰의 칼럼에서 푸틴이 몰락해도 러시아의 문제는 여전하기에 러시아의 체제를 내각제로 바꾸는 근본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독립적 사법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10월 21일, 러시아 정부에 의해 나발니는 테러 조장 혐의로 기소되었다.#

11월 27일, 나발니의 비서실장에 의하면 나발니는 현재 비좁은 독방에 수감되었고 가족의 면회도 금지당하며 변호사 면담조차 제한적이고 불투명한 유리 너머로 이야기만 간신히 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12월 21일, 나발니는 바그너 그룹의 창립자 프리고진이 보안이 엄격한 교도소로 와서 용병을 모집했고 죄수 80~90명이 지원했다고 밝혔다.#

2023년 1월 10일, 러시아의 의사 200명이 러시아 정부에 나발니에 대한 학대를 중단할 것이며 나발니에 대한 종합건강 검진과 치료를 요구했다.#

1월 11일, 나발니의 아내 율리아가 그녀의 인스타그램에 밝힌바에 따르면 나발니가 좁은 감옥에서 학대당하며 건강이 나빠졌다고 한다. 또한 율리아는 나발니에게 치료약을 달라고 호소했다.#
8월, 러시아 법원에게서 19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2023년 12월 멜레호보에 있는 IK-6 형무소에서 시베리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하르프 IK-3 형무소로 이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5. 독살 미수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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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의 탄압

러 반체제인사 나발니 "서방, 푸틴의 덫에 빠져들고 있다"

"러시아, 민주 지도자 나발니 즉각 석방해야"

러시아의 부정부패와 권위주의에 지친 러시아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푸틴의 정적으로서 가장 큰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러시아 민주화 세력의 핵심 인사중 하나이며 푸틴과 권위주의 세력이 붕괴할 경우 러시아를 이끌 차기 지도자로 꼽히고 있다.

푸틴 정적 나발니, 징역 3년 6개월...시위 다시 열려

러 법원, ‘푸틴 정적’ 나발니에 9년 징역형 추가 선고

가로 2m·세로 3m 우리 갇힌 ‘푸틴 저격수’ 나발니…부인 SNS에 “약 좀 달라”

‘푸틴 정적’ 나발니, “하루 16시간 철제의자에” 징벌적 투옥 비판

나발니, 수면 허용 안돼 체중 8kg 감소…"건강 우려"

그러나 푸틴 정부의 정적이 되면서 러시아 정부에게서 탄압을 받고 있다. 질병에 걸려도 약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는가 하면, 가로 2m, 세로 3m의 방에 갇혀 생활하고 있으며, 하루에 16시간동안 강제로 철제의자에 앉아 있도록 하고 이에 심각한 허리 통증에 시달려 의사를 요청해도 단 5분만 진료를 하고 가버리는가 하면 나발니에게 설명없이 정체불명의 약을 주사하였다.

나발니 변호사들도 체포되거나 압수수색을 당하고 있다.# 나발니의 변호인들이 러시아 테러리스트 및 극단주의자로 지정됐다.# 나발니의 정치 사무소를 이끌던 크세니야 파데예바에게 '극단주의 조직'을 운영한 혐의로 징역 9년 6개월 형을 선고했다.#

7.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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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껄껄' 웃는 영상 공개 하루 만에 나발니 옥중 의문사…배후는 푸틴? 시신은 어디로?

2024년 2월 16일 교도소에서 향년 47세의 나이로 옥사하였다. 러시아 연방교정청시베리아 최북단에 소재한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 교도소에서 산책 중 의식을 잃고 숨졌다고 밝혔다. 정확한 사인은 조사 중이라고 발표했다. #


[1] 다만 러시아어 억양이 강한 편.[2] 다만 선관위는 몇 년째 해당 정당의 등록을 거부하고 있다. 덕택에 나발니 지지자들은 선거 때마다 별 수 없이 공산당, 야블로코당 등 다른 정당을 찍고 있다.[3] 보리스 넴초프는 1990년대 당시에는 주지사와 부총리를 지낼 정도로 정계 주류에 속했던 인물이었지만 푸틴과 사이가 벌어진 이후로 통합 러시아에 합류하지 않고 따로 정당을 차렸는데 자신이 참여한 정당들은 하나같이 군소정당에 머물렀고, 그 결과 정계 주류에서 밀려나도 한참 밀려나다보니 그저 반푸틴 인사 중 하나로 여겨졌을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다. 그러나 푸틴이 과거의 연 때문인지 보리스 넴초프에 대해서 계속해서 신경 썼고, 넴초프도 반푸틴 활동을 한터라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게 된 것이다.[4] 통합 러시아는 이에 '사기꾼들과 도둑놈들의 정당을 찍는게 강간범들과 살인범들의 당을 지지하는것보단 낫다' 라고 응수했다가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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