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연합 공화국 대통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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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5년 5월 8일 |
탕가니카 지역 프와니 | |
사망 | 2024년 2월 29일 (향년 98세) |
정당 | [[탄자니아 혁명당| 탄자니아 혁명당 ]] |
배우자 | 시티 므위니(1932년생, 1960년 결혼) |
자녀 | 후세인 므위니(1966년생), 압둘라 므위니(1974년생) 등 12명(6남 6녀) |
재임기간 | 제2대 탄자니아 대통령 |
1985년 11월 5일 ~ 1995년 11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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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탄자니아의 정치인. 1985년부터 1995년까지 탄자니아 제2대 대통령,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여당인 탄자니아 혁명당(Chama Cha Mapinduzi)의 의장을 역임했다.2. 생애
1984년 탄자니아의 초대 부통령으로 임명되었고 1985년 줄리어스 니에레레의 실각 이후 정권을 장악했다.집권 후 줄리어스 니에레레의 진보적 사회주의 정책을 폐기하고 신자유주의 기조를 고수했다. 성별 할당제를 폐지하고 남성우월주의와 반여성주의가 공개적으로 조장했으며, 경제성장은 침체됐고 빈곤율은 급증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탄자니아의 부패지수는 급증했으며, 부채의 증가와 수많은 공금횡령이 발생했다.
한편, 1991년 대법원장이 이끄는 위원회를 설립하여 다당제 개혁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고 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하여 1992년 다당제를 보장하는 헌법 개정을 지지함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업적도 남겼다.[1]
2021년 회고록을 출간했고 2023년 11월 이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2024년 2월 29일, 향년 98세로 사망했다.
[1] 그러나 한계도 있다. 위원회는 총 20개의 법률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는데 현재까지도 이 20개가 모두 개정되지는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