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알리스 페리는 1974년 10월 12일 캘리포니아 스탠퍼드 대학교 교내 스탠포드 기념 교회에서 살해된 19세 여성으로, 이 사건은 44년간 미제사건이었으나 용의자가 자살한 후 범인으로 밝혀지면서 해결되었다.2. 피해자
본명 | 알리스 케이 페리(Arlis Kay Perry)[1] |
출생 | 1955년 2월 22일 |
미국 노스다코타주 린턴 | |
사망 | 1974년 10월 12일(향년 19세),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 대학교 내 기념교회 |
직업 | 지역 법률 회사 접수원 |
3. 살인
1974년 10월 12일 밤 11시 30분경 알리스 페리와 남편은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을 벌였고 페리는 남편에게 스탠포드 기념교회 에서 혼자 기도하고 싶다고 말하고 헤어졌다. 남편 브루스는 아내가 오전 3시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어 스탠포드 경찰에 전화하여 실종 신고를 했지만 산타클라라 카운티 보안관 사무실의 경찰관들이 확인했을 때 교회의 모든 문은 잠겨 있었다.전직 스탠포드 경찰이었던 캠퍼스 경비원 스티븐 크로포드(Stephen Crawford)에 의해 10월 13일 오전 5시 45분경 교회 동쪽 수랑 제단 근처에서 페리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상의만 입은 채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얼굴이 위로 향하고 있었고 머리 뒤쪽에는 얼음 송곳이 튀어나와 있었지만 손잡이는 부러져 없어졌다. 사망 원인은 두개골에 생긴 총에 의한 관통상이었지만 목이 졸린 흔적도 있었다. 1미터 길이의 제단 양초가 그녀의 질에 삽입되어 있었고 또 다른 양초는 그녀의 가슴 사이에 놓여 있었다.
4. 조사
크로포드는 내부에 누군가 없음을 확인한 후 자정이 조금 지나 교회를 닫았으며 오전 2시쯤에 문을 다시 확인했는데 문은 그때도 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2] 크로포드는 이날 오전 5시 45분에 교회를 열기 위해 교회를 방문했을 때 서쪽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고 이는 내부에서 외부로 강제로 열려 있린 상태였다고 증언했다.수사관들은 페리 시신 근처의 베개에서 정액을 발견했고 양초 중 하나에서 부분적인 지문을 발견했지만 정액도 지문도 브루스 페리나 크로포드와 일치하지 않았다. 페리의 남편은 초기 용의자였지만 결국 배제됐다.
10월 12일 밤과 10월 13일 아침 동안 스탠포드 기념교회에는 최소 7명이 방문했고 그중 페리와 크로포드를 제외한 5명 중 다른 4명의 신원은 확인되었고 사건과 무관함이 밝혀졌다. 하지만 마지막 일곱 번째 남자만이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는데 지나가던 한 주민은 이 청년이 자정 무렵에 막 교회에 들어오려고 했으며 그는 모래색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고 키가 5피트 10인치 쯤 되는 시계를 차지 않은 청년이었다고 한다.
한편 페리가 살해된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근처에서는 다른 3건의 살인사건이 더 발생했다. 1973년 2월 16일, 당시 21세의 법률사무소 직원이자 스탠포드대 대학원생인 레슬리 메리 펄로프(Leslie Marie Perlov)가 캠퍼스 인근 풋힐에서 팬티스타킹이 입에 물리고 스커트가 허리까지 올려진 채 살해당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1974년 3월 24일에는 당시 21세의 자넷 앤 테일러(Janet Ann Taylor)의 시신이 샌드힐 로드 옆 도랑에서 목이 졸려 사망한 채 발견됐다. 이 사건들도 2018년까지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었으나 재조사를 통해 존 게트로이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5. 사건 해결
해당 사건은 이후 별다른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채 콜드 케이스 상태로 유지되었지만 2018년 산타클라라 카운티 지방검찰청 및 보안관 사무실의 미해결 사건 부서에서 더욱 발전된 DNA 검사를 통해 당시 증거였던 정액의 DNA가 시신 최초 발견자인 크로포드와 확실히 일치함이 밝혀졌다. 2018년 6월 28일 경찰이 수색 영장을 가지고 스탠포드 대학 에서 32km 떨어진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의 캠든 애비뉴에 있는 크로포드의 집에 도착하고 문을 열라고 경고했을 때 크로포드는 집에서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를 통해 크로포드가 범인임이 밝혀졌으며 사건은 해결되었다.범인 검거를 평생의 소원으로 원했던 페리의 아버지는 살인범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고 3개월 전에 사망했으며 페리의 어머니 진 디케마 여사는 88세가 되어서야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