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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2 10:59:39

애완동물 공동묘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StephenKingPetSematary.jpg

1. 개요2. 줄거리3. 영화화4. 기타
4.1. 타 작품에서의 언급 및 패러디

1. 개요

Pet Sematary[1]

스티븐 킹의 1983년작 장편 공포 소설.

스티븐 킹의 작품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것, 작품성이 뛰어난 것, 재미있는 것 등은 보통 다른 소설이 꼽히지만, 가장 무서운 작품이라고 한다면 샤이닝과 함께 꼭 언급되는 소설이다. 스티븐 킹 본인도 자신이 쓴 소설 중에 가장 무섭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스티븐 킹이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을 한 후[2] 그때를 회상하면서 쓴 작품으로[3] 그런 상황과 트라우마들 덕분에 작품 전체를 휘감는 불길함과 음습함이 압권이다. 특히 앞으로 전개가 빤히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읽을 수밖에 없는 흡입력이 있다. 알고도 당하는 전개의 대표적인 예. 전형적인 미국 장르문학 식의 심플한 what-if 설정(만약 죽은 동물을 묻으면 다시 살려내는 인디언 묘지가 있다면?)[4]에서 시작되지만 죽음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가 얽혀 가며 미칠 듯이 무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2. 줄거리

한 가족이 시카고에서 메인 주 러들로(Ludlow)[5]라는 작은 마을로 이사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역 대학의 응급의료센터 의사로 이직한 루이스 크리드의 가족은 길 건너편에 사는 80대 노부부인 저드, 노마와 곧 친해지고, 이 마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는다.

저드는 주인공 가족에게 집 뒤로 쭉 이어지는 사유지의 샛길에 있는 애완동물 공동묘지에 대해서 알려준다. 소중한 애완동물을 잃은 마을 아이들이 그 사체를 매장하는 공동묘지지만[6] 루이스는 혼돈 속에 가지런하게 정돈된 질서를 느끼고 마치 이교도나 켈트족의 유적을 보는 것 같다는 감상을 느낀다.

이직한 병원의 근무 첫 날 불행하게도 조깅을 하던 청년 빅터 파스코가 차에 치여 엉망이 된 채 대학 부속 응급실로 실려온다. 공교롭게도 앰뷸런스가 수리 중이었기 때문에 두개골이 파열돼 뇌가 드러날 정도로 치명상을 입은 청년은 살릴 수 없었고[7] 루이스는 청년의 죽음을 지켜보게 된다. 주인공과 청년만이 방에 남겨지게 된 순간, 이때까지 제대로 된 소리도 내지 못하던 청년은 애완동물 공동묘지를 언급하면서 절명한다. 집으로 돌아간 주인공은 그날 밤 사고 당시의 끔찍한 모습을 한 청년이 자신을 이끌고 애완동물 공동묘지로 가서 이 너머의 숲으로 가면 안 된다고 경고하는 꿈을 꾼다.[8] 아침에 일어난 주인공의 다리에는 꿈에서 나뭇가지에 쓸린 상처들이 가득했다.

아내와 자식들이 친정에 간 사이[9] 딸이 기르던 고양이 처칠이 이웃집 근처에서 목이 꺾여 죽은 채 발견된다. 이전에 발작을 일으킨 노마를 응급처치로 구해준 루이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저드는 그 보답으로 루이스를 애완동물 공동묘지 너머에 있는 고대의 건축물로 데려가 고양이를 땅에 묻게 한다. 루이스는 그곳으로 가는 도중 괴상한 소리를 듣고, 주변보다 뜨거운 불빛 사이를 지나가는 이상한 체험을 한다.

다음날 죽었던 처칠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무언가 썩는 듯한 고약한 냄새를 풍겼으며 중성화 수술을 했음에도 작은 동물들을 잔혹하게 사냥한다.

저녁에 저드의 집으로 찾아간 루이스는 옛날에 여기에 묻혔다가 살아 돌아온 애완견이 생전과 달리 뭔가 이상한 존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저드는 갑자기 펑펑 울면서 자신도, 자신을 공동묘지 너머로 안내해준 사람도, 또 다른 사람도 마음 속에서 뭔가 알 수 없는 자신이 아닌 존재로부터 이끌려서 타인을 이 비밀에 동참시켜 끌어들였다는 것을 고백한다.

어느날 아들 게이시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으레 2, 3살배기 애들이 그렇듯이 부모가 쫓아오면 도망가는 놀이를 하다가 집 바로 옆 도로에서 대형 트럭에 치여버린 것이다. 루이스가 잡으려고 했으나 넘어지는 바람에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트럭 운전수는 모범적인 사람이었고 술도 마시지 않았으나 그 도로를 지나가던 도중 문득 과속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10]

루이스는 게이지를 되살려내고픈 충동에 사로잡히고, 이를 눈치챈 저드는 게이지의 장례식 전날 밤 2차 세계 대전에서 아들을 잃었던 이웃이 아들의 시신을 애완동물 공동묘지 너머에 묻었던 이야기를 해주며 강하게 만류한다.[11] 그 아이는 살아나긴 했으나 본래의 착한 17살 소년이 아닌 사람들의 추잡한 비밀을 폭로하며 악담을 퍼붓는 좀비 같은 사악한 존재로 돌아왔고 종국에 그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을 쏴 죽이고 자신도 집에 불을 지른 뒤 총으로 자살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슬픔을 견디지 못한 루이스는 마음속의 뭔가 다른 존재의 속삭임에 넘어가, 아내 레이첼과 딸 엘리가 친정에 간 사이 게이시의 시신을 파내어 공동묘지 너머로 데려간다.

하지만 딸아이가 악몽을 꾼 것에서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든 아내는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저드도 뭔가 낌새를 느껴서 주인공의 집을 감시하지만 사악한 존재가 영향력을 행사해 저드를 깊이 잠들게 하고 아내의 차량에서 점화플러그를 뽑는 등 훼방을 놓는다. 아들의 시신을 애완동물 공동묘지에 묻고 돌아온 주인공은 만약 사악한 존재로 살아났을 경우 자신이 모르핀을 주사해 처리하려고 하지만 그 또한 깊게 잠이 들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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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돌아온 존재는 역시나 진짜 아들이 아닌 뭔가 사악한 존재가 깃든 것에 불과했고, 주인공이 잠시 잠든 사이 딸의 꿈처럼 가방에서 메스를 꺼내 자신을 방해하려던 저드에게 악담을 퍼부으며 수차례 찔러 살해하고, 겨우 차를 고쳐 돌아온 주인공의 아내 또한 메스로 난도질해 살해한다. 주인공은 뒤늦게 일어나 장인으로부터 딸아이가 아내가 죽는 꿈을 꿨다는 말을 들으며 모든 것이 끝났음을 직감하고 밖으로 나선다. 그리고 우선 고양이 처칠을 먹이로 유인해 주사기로 다시 한 번 죽이고, 저드의 집에서 저드와 노마의 시신을 발견하고 악령과의 사투 끝에 되살아난 아들도 세 번의 주사로 다시 죽인다. 그리고 아내의 시신을 수습하고 집에 불을 지르고 나온다. 이웃이자 직장 동료인 스티브가 불타는 집을 보다가 주인공이 공동묘지 너머 숲으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다. 완전히 미쳐버린 주인공은 아내마저 부활시키려고 했던 것.[12] 스티브는 갑자기 주인공이 하는 짓을 도와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지만, 따라가던 도중 나무줄기에 걸려 넘어지고 그 순간 정신이 돌아와 황급히 달아난다. 이 사람은 다시는 그 마을로 돌아오지 않고 미중서부로 갔으며 종종 악몽에 시달렸다고 한다.

에필로그에서는 폐인이 된 주인공[13]의 뒤에서 아내가 거친 목소리로 "여보" 하면서 손을 어깨에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때 그녀(she)가 아닌 그것(it)이 말했다는 문장으로 소설이 끝난다.

결말부에서 일단 확실하게 생존한 것은 친정집에 맡겨진 주인공의 딸뿐이다.

1989년 영화판에선 끝나기 전에 돌아온 아내와 키스하는데 아내가 주인공 몰래 식칼을 집어든다. 그리고 화면이 암전되며 남성의 비명이 들리는 것으로 종료. 1989년 영화판 그것이 빙의한 아내의 모습은 눈 하나가 뻥 뚫려서 사라진 고어한 모습이므로 심장이 약한 사람은 찾아보지 않기를 추천한다.

2019년 영화판은 극장판과 DVD/블루레이에 수록된 엔딩 이렇게 2가지이다. 일단 극장판은 좀비가 돼서 돌아온 딸인 엘리[14]를 제압하려던 루이스가 뒤에서 쇠꼬챙이에 찔려서 사망한다. 찌른 사람은 아내인 레이첼. 이후 레이첼과 엘리가 함께 루이스도 좀비로 만들고 가족들과 고양이 처칠이 차 안에 숨어 있던 게이지를 노려보며 엔딩.[15] 광매체에 수록된 다른 엔딩에선 엘리 좀비가 루이스를 "아빠"라 부르자 차마 죽이지 못한 루이스가 엘리와 함께 레이첼을 묘지에 묻어서 좀비로 만들어 버린다.[16] 이후 혼백이 나간 듯한 루이스가 공포에 벌벌 떠는 게이지와 함께 좀비가 된 레이첼, 엘리, 고양이 처칠과 같이 집 안에 앉는 것이 엔딩. 극장판 엔딩만큼은 아니지만 암울한 엔딩이다.

3. 영화화

4. 기타

4.1. 타 작품에서의 언급 및 패러디



[1] 원래 Cemetery라고 쓰지만 의도적인 오기이다.[2] 서문에 나오는데, 작중 주인공들이 살던 동네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집 앞에 대형 차들이 오가는 도로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어린 아들이 놀다가 도로로 뛰어들 뻔하자 킹이 몸을 던져 구했는데, "내가 못 잡았다면?"이란 끔찍한 상상에 기반해 쓴 책. 뿐만 아니라 작중에서 주인공 루이스는 메인 대학교에 재직중이며 가족은 아내와 어린 딸, 그리고 아주 어린 둘째 아들이 있는데 당시 킹 본인의 상황과 동일하다(킹 부부는 이후 막내 아들 하나를 더 낳는다). 실제로 작가의 딸도 애완 고양이가 죽는 경험을 하는 등 본인의 경험을 많이 넣었다. 고양이가 죽자 밤에 킹의 딸이 울면서 "내 고양이야! 하나님은 내 고양이 데려가지 말고 자기 고양이 가지라고 해!"라고 한 말 역시 작중 주인공의 딸 엘리의 대사로 차용되었다.[3]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캐리로 본격적으로 작가데뷔를 한 후 처음으로 초고를 쓰다가 도저히 전개가 안 되어서 중간에 포기할 뻔한 책이라고 한다. 스티븐 킹이 겨우 초고를 완성하고 아내에게 보여줬는데 아내도 너무 무서워서 끝까지 못 읽었다고 한다.[4] 실제로 메인 주에서 미국 건립 이전부터 오래 살았던 미크맥 원주민들의 전설 중 웬디고 괴물과, 어느 깊은 산속에서 죽은 자를 묻으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이 실존하는 전설에서 착안하여 킹은 소설을 집필했다.[5] 실제 있는 곳이다.[6] 제목의 오기는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아이들 중 누군가가 공동묘지를 Cemetery가 아니라 Sematary라고 잘못 쓴 것. 물론 그 외에도 이야기의 줄거리는 잘못 쓴 철자처럼 흘러가게 된다.[7] 다만 작중 묘사에 따르면 당시 빅터는 차에 치일 당시 이미 치명상을 입었기에 구급차가 멀쩡했어도 살릴 순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8] 애완동물 공동묘지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볼 때, 빅터 역시 공동묘지와 뭔가 연관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참고로, 이때만 등장하는 건 아니고 중간중간에 계속 주인공이나 주인공 가족의 꿈에 나와서 경고를 하며 도와주려고 한다.[9] 주인공의 변변찮은 배경 때문에 장인과는 사이가 매우 나쁘다. 의대에 다닐 때 아내의 파트타임 월급과 장학금으로 등록금을 충당했다는 말이 있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루이스가 아내 레이첼에게 "20만 달러 연봉 받는 심장전문의처럼 보이냐"고 농담을 하고 아내가 가벼운 일 하는 대가로 연봉6만7천이면 괜찮은 거 아니냐고 하는 등 본인의 평범한 벌이 때문에 고민하는 대사가 있다. 사실 80년대 미국에서 연봉 6만7천이면 중산층 중에서도 최상위권인 상당히 여유있는 집이다. 고액연봉자들인 일반적인 의사 수준에 못 미쳐서 그렇지.[10] 문서 상단에도 나와 있듯이 이건 스티븐 킹이 실제로 겪을 뻔한 사건을 토대로 쓰였으며, 다크 타워에서도 이 사건이 잠깐 언급된다.[11] 저드가 처음으로 애완동물 공동묘지 너머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때 주인공이 혹시 그곳에 사람이 묻힌 적은 있느냐고 질문하는데, 이걸 들은 저드는 벌벌 떨며 절대로 그런 일은 없었고 다시는 궁금해하지도 말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물론 진실은 본인이 그런 사례를 직접 목격했기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12] 이때 루이스는 게이지를 묻는게 너무 늦어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서 아내를 바로 묻어야 한다고 하고, 스티브에겐 공동묘지로 가는 길에서 중간에 들리는 괴성에 대해 신경쓰지 말라고 하는데 처음에 저드가 루이스를 데려갈 때 했던 충고와 내용이 똑같다. 즉 저드가 루이스를 공동묘지로 데려갈 때 그 역시 공동묘지에 홀려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13] 머리가 완전히 세어버리고 노인의 얼굴이 되었다.[14] 2019년 영화판은 설정이 바뀌어서 딸 엘리가 죽었다가 좀비가 되었고 아들 게이지는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다.[15] 여기서 화면이 암전되고 끝난다. 이후 전개는 나오지 않았지만 좀비들이 어린 게이지를 봐줄 리도 없으니 게이지 역시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 원작 소설, 1989년판 영화에 비해 온 가족이 살해당하는 끔찍한 결말.[16] 이때 레이첼은 살아 있었다. 즉, 생매장한 셈.[17] 윈스턴 처칠은 처음 부활한 고양이 이름이며, 작은 신의 늪(Little God Swamp)이라는 명칭이 나오기도 한다.[18] 남자아이들이 동서남북을 여자아이들의 미래 예언 장치로 착각했다. 그걸 얻으려고 이 난리를 피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