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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9-06 13:44:19

양재모

이름 양재모(梁在謨)
본관 우인(又仁)
출생 1920년 1월 27일
경상북도 상주군[1]
사망 2018년 8월 19일 (향년 98세)
학력 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2] (졸업)
미국 미시간 대학교 보건대학원 (보건학 / 석사)
직업 예방학 의사

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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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의사. 연세대학교 의료원장, 성심의료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가족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였다.

2. 상세

우인(又仁) 양재모는 1920년 1월 27일 경상북도 상주군(현 상주시)에서 태어났다. 서울로 유학을 와서 휘문고등보통학교를 1938년에 졸업하고 6년 뒤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現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948년에 졸업하였다. 의과대학 재학 시 신탁통치반대운동, 한글 보급운동 등 사회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졸업 후 1953년 봄부터 세브란스의과대학 위생학 강사로 교수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듬해 미국 미시간 대학교에 유학하여 보건학 석사를 마치고 1955년에 귀국하여 의과대학 학생과장을 맡았다. 의료정책과 관리분야에 관심을 갖고 의료이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였다. 이후 정부의 요청에 따라 1960년 1월 2일부터 ~ 4월 28일까지 약 4개월간 세계보건기구, 국제노동기구, 스위스, 서독, 영국,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중화민국, 일본을 순방하여 각국의 사회보장제도, 특히 의료보장제도를 연구 시찰한 후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하였다. 그가 정부에 공식제출한 "사회보장제도 창시에 관한 건의"는 한국 최초의 구체적 의료보험계획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이것이 최초의 의료보험제도 국민건강보험의 한 기반이 된다.

이후에는 의료보험분야 보다는 인구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으며, 사단법인 가족계획협회를 창설(1961)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특히 산아제한정책이 필요하고, 이것이 경제발전에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당시 정책결정자들에게 어필시켰으며, 이것이 성공하여 가족계획이 진행되었다. 이 산아제한정책이 성공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당시에는 큰 업적으로 여겨졌으며,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가족계획의 성공적인 도입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하였다.

이후에는 예방의학분야에서 활동하였으며, 특히 산아제한정책을 진행하면서 지역사회에서의 연구에 필요한 사회조사방법론을 도입하고 보건통계학, 보건사회학, 보건경제학 등 관련 학문들과 연결함으로써 의학, 특히 예방의학과 보건학 분야에 터전을 잡도록 하는데 절대적인 기여를 하였다. 한편 의과대학 교무과장을 거쳐 1972년부터 4년간 학장을 역임하면서 지역사회의학의 개념을 비롯한 새로운 교육과정을 도입하였고, 강화지역사회의학사업을 통해 의과대학생과 간호대학생의 교육 및 지역사회의학 발전에 심혈을 기울였다.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을 1977년에 설립하여 초대 원장으로 일하였으며,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에 4년제 보건과학대학을 1979년에 국내 최초로 설립하였다. 1982년에는 연세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으로 취임하여 광혜원 100주년사업 등을 추진하였으며, 국내 최초로 재활병원을 설립하는 등 철학 있는 행정가로서 역량을 발휘하였다.

상허문화대상을 1991년에 수상하였으며, 같은 해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 창립 75주년 때 세계적인 보건인(75 Heroes of Public Health)에 선정되었다. 대한보건협회의 보건대상(1992),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에서 수여하는 오천혜(George C. Worth)상을 제1회로 수상(1999)하였고, 국제가족계획연맹에서 수여하는 파이오니어 월드상을 제1회로 수상(2000)하였으며, 제7회 서재필 의학상을 수상(2010)하였다.

저서로 <위생학 상권>(1956), <보건통계학>(1957) 등의 교과서, <국민의료총론>(1984), 자서전인 <사랑의 빚만 지고>(2001) 등이 있다.

[1] #[2]연세대학교 의과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