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 함종 어씨[1] |
출생 | 1906년 12월 30일 |
경상남도 동래부 읍내면 옥미정동 (현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 |
사망 | 1977년 10월 28일 (향년 70세) |
부산시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5묘역-148호 |
상훈 | 대통령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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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1906년 12월 30일 경상남도 동래부 읍내면 옥미정동(현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서 아버지 어달선(魚達善, 1878 ~ 1933. 6. 8)과 어머니 전주 이씨(1881 ~ 1957. 4. 13) 사이의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그는 평소 투철한 항일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부산제2상업학교에 재학하던 1927년 봄, 김규직·양정욱(梁正彧)·윤태윤(尹兌潤)·윤병수(尹炳洙) 등 같은 학교 학우 10여 명과 함께 민족정신의 함양 및 항일투쟁을 목표로 비밀독서회를 조직하였다.
그러다 그는 학생 중심의 비밀독서회 활동으로는 항일투쟁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고, 이에 같은 해 가을 김규직의 집에서 독서회원들과 함께 독서회를 해산하는 대신에 비밀결사 흑조회(黑潮會)를 결성하였고, 조직 강화 및 동지 규합, 적극적인 항일투쟁 전개 등을 목표로 사회 인사와 학생들의 연대를 강화하고자 했다.
또한 앞서 조직했던 비밀독서회의 전통을 이어받아 매달 정기모임을 갖고 비밀리에 월간지 「흑조(黑潮)」를 발행하여 같은 학교 학우들에게 몰래 배포하는 등 동지 규합 및 민족의식 고취에 힘을 쏟았다.
그 뒤 그는 1928년 교내 일본인 교사의 반민족적인 교육 행태에 분노하고는 흑조회 간부들과 함께 일본인 교사의 배척과 한국어 잡지·신문의 구입 등을 조건으로 그해 6월 18일 부산제2상업학교와 동래고등보통학교의 동맹휴학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1928년 11월 29일 일본 유학을 목적으로 일본을 오가던 흑조회 간부 양정욱이 연락선을 타고 귀국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이때문에 일전에 결성했던 비밀독서회와 흑조회의 전모가 노출되었다. 이에 어소운을 비롯한 동지들이 모두 검거되었다.
검거된 어소운은 미결수로서 수개월간 투옥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1929년 9월 24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형,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출옥하였다.
출옥 후에는 은거하다가 1977년 10월 28일 부산시에서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어소운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7년 5월 6일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5묘역에 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