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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14:12:19

에곤 라우드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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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코믹스

1. 개요2. 상세3. 작중 행적4. 여담

1. 개요

エゴン・ラウドルップ

소설 일곱 도시 이야기의 등장인물.

2. 상세

부에노스 존데의 집정관이자 제일시민.[1][2] 서기 2190년 기준 33세로, 부에노스 존데 시 설립 이후 가장 젊은 나이에 취임한 집정관이라는 타이틀을 가졌다.

본래 에곤은 직업군인이었다. 그가 군복무하던 시절 부에노스 존데는 군소정당이 난립하여 정치가 혼란스러웠는데, 에곤은 군부 급진파가 일으킨 두 차례의 쿠데타를 막아내어 명성을 얻었다. 이후 그는 정계에 투신하여 20개의 군소정당을 통합한 '국가 민주당'을 창당하고 스스로 당수가 되었으며, 2188년 시의 집정관에 취임했다. 미남형 얼굴, 현란한 달변, 뛰어난 지도력으로 민중의 지지를 받았으며 입법의회와[3] 군부, 언론을 장악하여 완전한 권력을 손에 넣었다. 그는 동시대 인물인 니콜라스 블룸보다 더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시민들로부터는 도시 설립 이래 가장 영명한 위정자라는 평판을 얻었다. 이 모든 것을 2년 만에 이루어 냈기에, 라우드루프는 25년간 아퀼로니아를 통치한 찰스 콜린 모블리지에 빗대어 고속재생된 모블리지라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으니,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독점욕이었다. 그는 부에노스 존데의 모든 권력을 손에 넣었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했고 다른 도시까지 손에 넣고자 했다. 그 때문에 영웅 라우드루프는 점점 삼류 독재자로 타락해갔다.

한편 그는 집권하면서 라우드루프 일족을 요직에 등용했는데, 안켈 라우드루프를 제외한 나머지 일족들은 콩고물을 얻어먹은 대가로 그를 지지했다. 이 때문에 반대파는 라우드루프를 똑같이 친족을 등용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빗대기도 했다.

3. 작중 행적

3.1. 폴타 니그레 섬멸전

독점욕이 강한 에곤은 취임 이후부터 대외 원정을 준비했다. 그의 첫 목표는 수많은 지하자원을 보유한 남극대륙의 프린스 해럴드 시였다. 라우드루프는 남극 대륙의 대평원에서 활약하는 프린스 해럴드 군의 기갑부대를 억제하기 위해 취임 직후부터 고도 500m 이하를 비행하는 공격헬기로 편성된 공중장갑사단을 육성했다. 오래지 않아 헬기 2,400기를 거느린 공중장갑사단이 완성되었고, 완성되는 순간 라우드루프는 대외 원정을 준비했다. 에곤은 이 공중장갑사단을 국방위원회 휘하가 아닌 집정관부 직속 부대로 만들어 사병,私兵,으로 만들었다.

집권 2년차인 서기 2190년 취임 2주년 기념집회 석상에서 '선제적 자위권'을 언급했다. 라우드루프에 따르면 선제적 자위권이란 '지근거리이자 특정방향으로부터 국가적 위기'가 명백한 이상 선제적 자위권을 확립하여 위험요소를 배제해야 한다는데, 이 개념은 그저 군사력에 의한 외교적 과제 해결을 엄금한 시의 기본법을 회피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반 라우드루프 파는 이 전쟁에 반대했으나 소수라서 라우드루프의 전쟁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동년 2월에 발발한 북극해 전선은 라우드루프에게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고 종식되었고, 그는 프린스 해럴드와의 전쟁에 집중했다. 그리고 동년 5월 프린스 해럴드와 부에노스 존데의 경계인 드레이크 해협에서 사고가 나 부에노스 존데 시민이 죽자 라우드루프는 프린스 해럴드에 배상을 요구했고 즉답하지 않자 바로 선전포고를 날려 전쟁에 돌입했다.

초기 프린스 해럴드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기에 라우드루프는 성공적으로 내륙에 진입했다. 그러나 라우드루프는 프린스 해럴드가 보급선이 늘어진 부에노스 존데 군이 철수할 때 반격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정반대로 함정을 팠다. 라우드루프는 고의로 퇴각하여 프린스 해럴드 군을 끌어들인 뒤 코틀랜드 평원 한구석에 반 포위 진형을 구축하고 공격헬기까지 동원하여 프린스 해럴드 전차사단을 모두 고철로 만들었다. 전투의 승리로 우쭐해진 라우드루프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전승기념식을 개최하고, 비서관이 자신의 직함 일부를 빠트렸다는 이유로 해고했다. 그리고 장병들 앞에서 위엄찬 연설을 했는데, 이 연설은 선인의 것을 표절한 것이었다.[4] 그때 해안 교두보와 코틀랜드 사령부를 잇는 보급기지 중 2개가 프린스 해럴드 별동대에 의해 파괴되어 보급선이 늘어졌으나, 라우드루프는 보급기지가 파괴되어도 전투에서 진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웃어넘겼다.

그렇게 프린스 해럴드 군 주력부대를 박살낸 부에노스 존데 군은 바로 도시로 진격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제아무리 일방적인 학살극이었다고는 하나 그 정도 되는 대군을 섬멸하는 것은 부에노스 존데에게도 막대한 물자를 소모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연료 부족 문제가 심각하여 도시를 직격하기도 전에 연료가 동날 지경이었다. 후퇴해서 보급을 받는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다른 도시가 간섭할 가능성과 라우드루프의 성격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가까운 폴타 니그레 협곡에 프린스 해럴드군 대규모 보급기지가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자 라우드루프는 도시를 공격하는 척하면서 보급기지를 점령한 뒤, 그 물자를 소모해서 도시를 점령하겠다고 결정했다. 전투에 앞서 또 연설을 했는데, 이 연설은 후일 '무의미한 승리를 장식하는 독재자의 액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계획대로 부에노스 존데 군은 폴타 니그레 협곡에 진입하여 보급기지에 도달했다. 라우드루프는 이 전투에서 맹장 컨셉을 잡고 스스로 지휘 전차 위에서 상반신을 드러내며 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면서 진두지휘했으며, 전속 카메라맨이 그 위풍당당한 모습을 찍었다. 보급기지에 진입하던 중 프린스 해럴드 군의 반격이 있자 라우드루프는 쓸어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목소리와 날아온 탄환은 사람이 아니라 자동 발사장치가 달린 총과 스피커에서 나온 것이었다. 점점 내부로 진입하던 라우드루프는 프린스 해럴드 군이 설치한 마대자루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가루를 뒤집어썼는데, 그는 뒤늦게 그 가루가 석탄가루임을 깨달았다. 사태를 파악한 라우드루프는 재빨리 후퇴를 명령했으나 좁은 외길인데다가 후속 부대가 계속 진입하고 있어 질서정연한 퇴각은 무리였다. 이후 석탄가루에 불이 붙어 폴타 니그레 협곡은 거대한 화장터가 되었고 라우드루프는 수많은 측근들을 버리고 나서야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그가 맹신하던 공중장갑사단도 모조리 격추 또는 노획당했다.

폴타 니그레의 패배는 라우드루프의 권위를 크게 실추시켰다. 돌아온 에곤은 반대파를 억압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입법 의회를 해산시켰으며, 1천 2백명에 달하는 의원, 저널리스트, 시민운동가를 시의 통합을 방해하는 위험분자로 몰아 체포하고 정치범, 사상범 60명을 처형했다. 그 중에는 자신의 사촌형 안켈 라우드루프도 있었는데, 에곤은 자신의 엄정함을 온 도시에 보여줘야 한다며 그를 처형했다.

3.2. 페루 해협 공방전

권위가 실추된 라우드루프는 더 이상 자신이 무언가를 해내서 권위를 확립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처벌하여 권위를 확립하는 길을 택했다. 라우드루프는 도시를 일인독재체제로 전환하여 안켈 라우드루프를 시작으로 1만여 명을 처형했으며, 도시 전체에 도청기를 뿌려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리고 군부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했는데, 관구사령관 중 한 명은 산다라 시의 공모 혐의, 한 명은 쿠데타 미수 공범, 한 명은 공금 횡령, 한 명은 동성애 스캔들이라는 누명을 씌워 모두 처형해버렸다. 그리고 자신은 도시에 처박혀 사치와 전횡을 일삼았다. 이 때문에 후일 '라우드루프는 성인군자가 아니었지만, 부하에게는 성인군자일 것을 요구했다.'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렇게 군부를 숙청해서 권력은 안정되었지만, 정작 유사시에 군을 지휘할 사람이 없었다. 거기에다 명목상 대의민주주의를 유지하던 다른 도시들은 라우드루프의 독재를 폭거로 규정하며 동맹을 맺고 부에노스 존데를 침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라우드루프는 방어를 맡을 사람으로 자신이 알고 있던 귄터 노르트를 북부관구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라우드루프는 노르트와 인연이 있었는데, 노르트의 아내 콜네리아가 라우드루프에 편지를 보내 남편의 자리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미담을 좋아한 라우드루프는 이때의 인연을 떠올리며 노르트를 관구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임명 당시 노르트는 중령이었는데, 라우드루프는 이 계급으로는 위엄이 안 산다고 여겨 노르트를 무려 3계급 특진시켜 소장으로 임명했다.

이후 여섯 도시는 부에노스 존데를 침공했으나 귄터 노르트의 활약과 여섯 도시 군대의 상호 공조 부재로 실패했다. 간신히 정권을 지킨 에곤은 1등공신 귄터 노르트를 치하하기 위해 그를 중장으로 승진시키며 전군 총사령관을 맡았다. 대동맹군이 철수하고 하루 뒤 에곤은 5백 명에 달하는 호위대원을 대동하고 직접 격전지 카르데나스 언덕을 찾았으나, 그를 증오하던 노르트는[5] 총을 그에게 겨누었다. 라우드루프는 당황해 중장 직을 주었다느니 뭐니하며 목숨을 구걸하지만, 차디찬 반응과 함께 급소에 피격당해 버렸다. 피를 토하며 쓰러진 그를 부축한 귄터는 "내 아내가 당한 고통을 1초라도 겪어야지, 그냥 이렇게 죽으면 안돼. 1등 시민."이란 냉소를 비치지만 그 바람을 들어주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눈을 뜬 채 죽었다. 그리고 그를 경호하던 호위대원들은 헌신짝처럼 라우드루프를 버리고 노르트를 새로운 지도자로 추대하려 했다. 노르트가 도망치는 바람에 불발되었지만.

4. 여담


[1] 그 외 직위로는 시정평의회 의장, 국방위원장, 공안위원장, 국방군 최고사령관, 국가민주당 당수, 시립대학 명예철학박사, 일등십자훈장 수상자, 코틀랜드의 승리자.뭐 이리 많아 계엄령을 선포한 이후에는 계엄사령관도 겸했다.[2] 원래 이런저런 직위나 직함을 갖다붙이는 건 독재자들이 주로 하는 짓거리이다. 실제로 유명한 독재자 차우체스쿠나 그 아내가 자기들한테 붙인 명칭을 보면 어이가 없어서 기도 안 찰 것이다. 또, 북한의 김일성만 해도 인민의 어버이네 위대한 수령 동지네 하면서 낯부끄러운 명칭을 잘도 갖다 붙였다.[3] 입법 의회 내 블룸의 지지도는 55%였지만 에곤은 84%였다.[4] 작중 누구라고 정확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내용을 보면 나폴레옹이 아우스터리츠 전투 이후 장병들 앞에서 한 연설을 베낀 것으로 보인다.[5] 1년 전 에곤의 퍼레이드에 도로가 막힌 나머지 위급하던 아내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6] 라우드루프는 33세에 독재자가 되었고 루돌프도 41세에 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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