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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윈 반 데 사르/클럽 경력/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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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윈 반 데 사르
2005-2011
파일:53231201.jpg
▲ 2005년 계약 당시
소속팀 <colbgcolor=#ffffff,#191919>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프리미어 리그)
등번호 1 (2006-2011)
19 (2005-2006)
기록
파일:프리미어 리그 로고 (07-16).svg
186경기
142실점 94클린시트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가로형 화이트).svg
56경기
41실점 31클린시트
파일:FA컵(잉글랜드)로고(화이트).svg
13경기
7실점 7클린시트
파일:칼링컵.png
5경기
5실점 1클린시트
파일:crR1Bvv.png
3경기
2실점 1클린시트
파일:UEFA 슈퍼컵 로고_white.svg
1경기
2실점
파일:FIFA 클럽 월드컵 로고.svg 2경기
3실점 1클린시트
합산 성적
266경기
202실점 135클린시트

[clearfix]

1. 개요

에드윈 반 데 사르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경력을 다룬 문서.

2. 이적

맨유는 과거 1999년 피터 슈마이켈이 팀을 떠나면서 새로운 골키퍼를 찾기 위해 반 데 사르도 주시했으나 유벤투스로 이적하면서 성사되지 못했는데, 돌고 돌아 2005년 6월 10일에 드디어 인연을 맺게 되었다.

3. 2005-06 시즌

첫 시즌부터 바로 주전을 차지하였으며 남다른 안정감으로 슈마이켈 이후의 골키퍼 잔혹사를 끝내주었다. 팀은 아직 리빌딩이 진행중인 과도기의 시기라 첼시에게 밀려 리그는 준우승에 머물렀고 칼링컵 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4. 2006-07 시즌

2006-07 시즌에는 이전 시즌 이적해온 네마냐 비디치파트리스 에브라가 적응을 마치고 반데사르 본인도 안정적인 선방 능력과 수비 조율로 수비진을 안정시켜 맨유의 4년 만의 PL 우승에 공헌하였고,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비록 굉장히 잘했지만 이미 만으로 36, 37줄에 들어선지라 후임이자 백업으로 전 시즌에 임대했던 토마시 쿠슈차크을 완전영입했다.

여담으로, 이 시즌 리그 26R 토트넘 전에서 로비 킨과 충돌해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문제는 교체카드를 이미 전부 써버린 것. 결국 존 오셰이의 만능땜빵 능력이 발동하여(...) 잠시나마 반 데 사르의 빈자리를 든든하게 지켜내며 클린시트(!)를 지켜냈다.

5. 2007-08 시즌

파일:20210106_103252.jpg파일:20210106_103305.jpg
2007-08 시즌에는 2007년 FA 커뮤니티 실드 첼시와의 경기에서 승부차기를 3번 연속 막아내면서 우승을 만들어내며 시즌을 시작했다. 시즌 초반 약간의 부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맹활약을 펼치며 EPL 2연패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어 맨유의 더블을 이루어냈다.[1] 특히 챔스 결승에서는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니콜라스 아넬카의 슛을 막아내어 맨유의 9년 만의 빅 이어를 이끌었고 공식 MOM에도 선정되었다.

6. 2008-09 시즌

2008-09 시즌에는 노쇠화의 기미 따위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경기력이 계속 유지하였다. [2] FIFA 클럽 월드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95-96 시즌의 1082분의 무실점 기록을 뛰어넘어 14경기, 1,311분의 무실점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선 무려 페트르 체흐의 1,035분이 최장시간 무실점 기록이었는데 이것마저 깨버렸다. 나이 39에 이걸 달성하다니 엄청난 기록이다. 이후 시즌 막바지에도 계속해서 꾸준히 나와 좋은 경기력을 펼치며 결국 리그 3연패를 달성했고 챔스도 4강에서 아스날을 꺾으며 2년 연속 챔스 결승행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챔스 결승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전반전 에투의 득점과 후반 메시의 헤딩 골로 2점을 허용, 메시의 골에는 반응조차 하지 못하는 습을 보였다. 결국 2:0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7. 2009-10 시즌

2009-10 시즌에는 프리시즌에 아우디컵 경기에서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시즌 초반 12경기에 나오지 못했다.[3] 이후 10월 6일 에버튼전에 복귀했으나, 11월 말에 아내의 병간호를 위해 전력에서 이탈하였고, 1월이 되어서야 복귀했다. 결국 2009-10 시즌은 부상으로 21경기 출전에 그쳤고 그 동안 대신 나오던 쿠쉬착과 포스터는 이전에 가끔 나왔을 때의 좋은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아주 불안한 경기력을 보이며 이전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게 했고, 반 데 사르였다면 선방할 슈팅이나 잔실수를 범하며 그의 빈자리를 메꾸지 못했다. 이 시즌에 맨유는 리그 타이틀을 다시 첼시에 내주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에 의해 탈락하면서 8강에 그쳤다. 한편, 2월 26일에 1년 재계약을 체결해 다음시즌도 맨유에서 보게 되었다.

8. 2010-11 시즌

2010-11 시즌, 올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어차피 지난 시즌부터 지속적으로 마지막 시즌 떡밥이 나오기도 했고 나이도 40대에 다다른 만큼 팬들도 그다지 놀라지 않는 분위기지만, 시즌 막바지에 이른 첼시와의 사실상 우승 결정전에서도 눈앞에서 오는 헤딩슛을 동물적인 반사신경으로 막거나 프리킥을 슈퍼세이브 하는 등 꼭 은퇴를 해야만 하나...? 라는 반응을 이끌어 낼 정도로 마지막까지도 활약은 상당했다. 퍼거슨 감독이 한 시즌은 더 뛸 수 있다고 설득했는데도 거절했는데 그 이유가 감동적이다. 뇌졸중으로 투병 중인 아내를 간호하기 위해서라고.[4]

반 데 사르의 대체자가 누가 될 것일지도 관심사였는데 당초 후계자로 지목됐던 토마스 쿠슈차크나 벤 포스터는 선방 능력에 비해 안정감에서 부족한 모습으로 나사 빠진 플레이를 보여준 데다가 벤 포스터는 지난 시즌에 잦은 실수를 범하면서 결국 여름 이적시장에 팀을 떠났다.[5]

2011년 2월 2일에 펼쳐진 아스톤 빌라와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어시를 기록했다.[6]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박지성의 골이 나왔을 때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7]
파일:20210106_102601.jpg
그렇게 리그에서는 우승을 거머쥐었고, 리그 최종전인 블랙풀과의 홈 경기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다. 2실점을 허용하긴 했지만 4골을 터뜨린 공격진 덕분에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자신의 축구 커리어 마지막 경기인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의 압도적인 공격을 투혼의 선방으로 선보였지만 결국 3-1로 무릎을 꿇었다. 이 날 반 데 사르는 8개의 슈팅을 막아냈다. 그리고 반 데 사르는 40세 211일의 나이에 결승에 출전한 것이며 UEFA 챔피언스 리그 최고령 결승 진출자로 기록되었다.[8][9]

시즌이 끝나고 예정대로 은퇴하였다.

9. 총평

이적하자마자 팀의 부동의 주전을 꿰차면서 슈마이켈 이후부터 골칫거리였던 골키퍼 불안을 해소했다.[10] 이들의 뒤를 이어 입단한 반 데 사르도 사실 처음에는 길어봐야 2~3시즌만 하고 은퇴하거나 이적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무려 6시즌동안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며 맨유의 골문을 든든히 지켰다. 물론 나이가 나이인지라 간혹 실수가 나오기는 했다.[11]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에 비하면 매우 훌륭하고 든든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1] 1994-95 아약스 시절에도 을 기록했었다.[2] 덕분에 자신이 차세대 No.1으로 활약할 것이라고 믿고 맨유로 이적한 쿠쉬착은 그냥 커리어를 날릴 수 밖에 없었다.[3] 벤 포스터가 이로 인해 선발 기회를 많이 잡았으나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이며 반 데 사르를 그리워하게 만들었다.[4] 반대로 보면 기량 하락에 따른 은퇴를 결심한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다.[5] 훗날 밝혀진 바로는 한창 폼이 오를 때 반 데 사르의 후계자로 영입되었던 쿠슈차크는 맨유를 떠나고 싶었으나 놔주지 않았음을 밝혔다. 그러다가 결국 2012년에 임대로 맨유를 떠나고 11-12 시즌이 끝나고는 완전히 이적해버렸다. 2군 골키퍼인 벤 아모스도 마뜩찮은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덴마크의 아네르스 리네고르 이적에 합의하여 2011년 1월 1일에 영입하기로 결정했다.[6] 전반 1분만에 자신의 진영에서 길게 차준 롱킥을 루니가 트레핑 이후 바로 슈팅으로 연결하여 선취골을 뽑아냈고 이것은 정식으로 판데르사르의 어시로 기록됐다.[7] 여담으로 울버햄튼전에서 두 골로 팀의 승리를 이끈 박지성을 경기 끝난 후 돌아갈 때 에브라와 함께 들어 올려주어서 한국 팬들의 훈훈함을 얻으셨다.[8] 2위인 잔루이지 부폰이 2016-17 시즌 결승에 진출할 당시 39세 126일이었다. 당시엔 UEFA 챔피언스 리그 개편 이후 역대 최고령 출전이였으며 마지막까지 좋은 활약을 하였으니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9] 단 이는 UEFA 챔피언스 리그 개편 이후 한정이다. 개편 이전 유러피언컵 시절을 포함하면 유벤투스의 디노 조프1983 유러피언컵 결승전에 41세 86일의 나이로 출전한 것이 최고 기록이다.[10] 슈마이켈 이후로 맨유는 알다시피 골키퍼 문제가 많았는데, 예를 들자면 마약을 한 마크 보스니치에 야신상 경력이 있으나 기름손에다가 절친 앙리에게 패스해주는 파비앵 바르테즈, 맨유에서 처음에만 잘하고 이후 자신감을 상실한 팀 하워드, 아스날을 상대할 때만 잘했던 로이 캐롤, 맨유 골키퍼 암흑기의 상징으로 평가 받는 마시모 타이비 등 슈마이켈 이후의 골키퍼들은 문제가 많았다.[11] 예를 들면 06-07 시즌 포츠머스와의 경기에서 리오 퍼디난드와의 콜이 맞지 않아 어이없는 자책골을 내주기도 하고, 10-11 시즌 웨스트 브롬위치와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범해 무승부를 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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