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에른스트 테오도어 아마데우스 호프만 Ernst Theodor Amadeus Hoffmann | |
본명 | 에른스트 테오도어 빌헬름 호프만 Ernst Theodor Wilhelm Hoffmann |
출생 | 1776년 1월 24일 |
프로이센 왕국 쾨니히스베르크 | |
사망 | 1822년 6월 25일 (향년 46세) |
독일 베를린 | |
학력 |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 |
직업 | 작가, 작곡가, 법조인, 화가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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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작가, 작곡가, 법조인.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원작자로 유명하다.
2. 생애
프로이센 왕국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으며,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시험에 합격한다. 그렇게 그는 낮에는 법관으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거나 작곡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생활을 하게 된다.1814년, 작품집을 내면서 본격적인 예술가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이때, "호두까기 인형" 을 작곡했다. 이후, 1822년 항년 46세로 생을 마감한다.
3. 작품
-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
- 밤의 풍경
- 모래 사나이
- 적막한 집
- 그 외 다수
4. 기타
-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과 비슷해서 표절 의혹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박경리 작가가 "소세키는 고작 표절 작가"라는 뉘앙스로 자주 이야기 했다.[1]
[1] 다만 이해해야 할 것은 박경리 작가는 일제강점기를 살아온 인물이고 무엇보다 소세키 표절설은 당대에도 이미 일본에서 한 번 논란이 있었다. 그후 표절은 아니다라는 결론이 나기도 했지만 박경리 작가는 기본적으로 반일 작가로 보여도 상관없다고 여길 만큼 일본에 대해서는 문학을 비롯해 그 어떤 긍정적인 면을 찾아서도 안된다는 태도였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평가다. 즉 소세키가 유독 박경리 작가에게 폄훼 당한 것이 아니라 박경리 작가 스스로 일본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인정할 수 없어 의도적인 폄훼를 취했던 것이다. (출처: 박경리 작가와 도올 김용옥의 대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