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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게치 카스하의 아들. 명나라에서는 태평(太平)이라고 기록되었다.2. 생애
초반 생애는 알려진 바가 없다. 에르덴 톱치에 따르면 그는 우게치 카스하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의 이름 에세크는 몽골어로 평화를 뜻하는데 중국에서 이걸 그대로 중국말로 풀어서 태평이라 적은 것으로 보인다. 우게치 카스하 사후 바툴라, 바투 볼라드와 함께 오이라트를 다스렸다. 1408년 10월 2일 바툴라가 몽골의 공격에 시달린 후 봉작을 내려줄 것을 청했다. 다음해 영락제는 오이라트의 세 유력자에게 봉작을 내려주었는데, 이 때 에세크도 현의왕(賢義王)에 봉해졌다. 하지만 바툴라의 위세가 워낙 강해서 실질적으로 크게 하는 것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1414년 영락제가 오이라트를 정벌할 때 맞서 싸웠으나 영락제의 화포 공격에 밀려 도망간다.1416년 바툴라가 사망한 후 오이라트를 장악했다. 영락제는 바툴라의 사망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사신을 보냈다. 에세크는 자신들은 명나라를 싫어하지 않으며, 명나라에 반항한 것은 전부 바툴라의 탓이라고 설명했다. 영락제는 오이라트가 자신의 편이 된 것이라 판단하고 적개심을 풀었다. 그리고 사신을 한번 더 보낸다. 에세크는 아들을 보내 사신을 마중시켰다. 에세크의 아들은 중간에 도적이 나타나 사신을 공격하려 하자 이를 물리치고 안전하게 에세크가 있는 곳까지 호송했다.
에세크가 실권을 잡은 것과 비슷한 시기에 동차가타이 칸국에서 우와이스 칸이 집권했다. 그는 같은 무슬림을 공격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북쪽의 오이라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둘 사이 수십번의 전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장기간의 전투로 에세크는 시간이 갈수록 힘을 잃어갔다. 아룩타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1419년 에세크를 공격해서 크게 물리쳤다. 1421년 에세크는 하미를 공격했다. 당시 하미가 서역에서 명나라로 가는 대상들의 허브같은 곳이었기 때문에 하미의 부를 차지하려고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영락제는 에세크에게 하미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고, 빼앗은 물자들을 모두 돌려주라고 경고했다. 결국 에세크는 이듬해 하미를 공격한 것에 대해서 사죄했다.
1424년 바툴라의 아들 토곤에게 습격당해 세력을 크게 잃었다. 이후 별다른 등장이 없는 것으로 보아 1424년 혹은 1425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명나라에서 그의 아들에게 현의왕의 지위를 잇게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현의왕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토곤에게 좋지 않은 꼴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