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4년 ~ 1711년 11월 20일
1. 개요
에도 시대 초기의 인물로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측실. 남색에 빠져 있던 이에미츠가 그녀에게 반해 오오쿠에 들였고,[1] 그 뒤 이에미츠의 여성혐오증도 가라앉혔다는 야사로 유명하다.에이코인은 법명으로 당대에는 보통 오만노카타(お万の方)로 불렸다.
2. 생애
교토 공가 귀족인 로쿠죠 아리즈미(六条有純, 1623 ~ 1686)의 딸로, 13세에 때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이후 이세의 절 케이코인(慶光院)[2]의 주지로 임명되어 이를 알리기 위해 겐나 16년(1639년)에 도쿠가와 이에미츠를 알현했는데, 이때 이에미츠가 에이코인에게 반하고, 이를 알게 된 이에미츠의 유모인 카스가노츠보네가 그녀를 환속시켜 오오쿠에 데려왔다.[3] 이렇게 되어 이에미츠의 측실이 된 에이코인은 오만(お万)이라는 속명을 새로 받았는데, 삭발했던 머리카락이 다시 자랄 때까지, 덴안야시키(田安屋敷)[4]에서 지내야 했다고 한다.이에미츠와 금슬 좋게 지냈던 오만이었지만, 슬프게도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다.[5] 그렇지만 오만은 이에미츠의 첩 중에서 가장 총애를 받았고, 카스가노츠보네 사후에 오오쿠 최고 대우이자 총관리관격인 오토시요리(御年寄り)가 되었다.
오만은 관리들과 오오쿠의 시녀들의 태도를 철저히 이에미츠에게 보고했고, 에도 막부 관료들과 전국 다이묘들이 오만을 카스가노츠보네의 재래로 두려워할 정도로 권위와 권력이 막강했다. 당시 카스가노츠보네가 오오쿠를 구축한 무가 가풍을 교토 귀족 가풍으로 바꾸었고, 이는 훗날 오오쿠를 사치스럽게 만들어 막부의 재정을 압박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6]
이에미츠 사후 출가하여 거처를 바꾸거나 사저(私邸)를 받아 나간 측실들과 다르게 오오쿠에 남았다. 메이레키 대화재 때 이에미츠의 정실 타카츠카사 타카코(應司孝子, 1602 ~ 1674)과 함께 코이시카와의 무량원으로 피신했다는 기록이 있다.
쇼토쿠 원년 10월 11일(1711년 11월 20일)에 88세에 사망했다.
3. 기타
이에미츠 사후 오우메노 츠보네(お梅の局)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일수도 있다고 한다.드라마 등으로 이에미츠가 첫번째로 사랑한 여자으로 알려져 있지만, 오만이 오오쿠에 들어오기 겨우 2년 전에 이에미츠가 첩인 오후리(お振) 사이에서 맏이 치요히메(千代姫)가 있었기에, 정말 그런 건지는 의견이 갈라고 있다.[7]
카스가노츠보네가 이에츠나의 어머니인 오라쿠(お楽)가 오만과 닮아서 오만 대용으로 오오쿠에 넣은거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실제론 오라쿠가 오만보다 훨신 먼저 오오쿠에 들어 온데다가 치요히메와 도쿠가와 이에츠나는 3살 차이밖에 안난다. 애초에 닮았다는 기록도 없다.
측실이었을 적의 직속 시녀 중, 이에미츠의 측실 중 한명이자 도쿠가와 츠나요시의 어머니인 오타마(お玉)[8]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창작물에서는 오타마 역시 오만의 시중을 들기 위해 같이 오오쿠로 따라 들어온 비구니 혹은 하녀라는 설정이 붙기도 한다.
4. 대중 매체
1968년 방영된 드라마 오오쿠에서 배우는 사쿠라마치 히로코(桜町弘子), 1983년 오오쿠에서는 콘노 미사코(紺野美沙子).2000년 방영된 드라마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에서는 배우는 모치다 리사(持田理沙).
2004년 방영된 드라마 '오오쿠-제1장'에서는 격하고 거친 오에요와 카스가노츠보네와 대조적인 신앙심 깊은 호인이자 귀족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오만의 이미지는 여기서 만들어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다 사실 츠나요시의 친엄마로, 후계자 다툼을 피하기 위해 오만을 어머니처럼 따른 충신 오타마(케이쇼인)에게 맡긴 것으로 나온다. 배우는 세토 아사카.
만화 오오쿠에서 마데노코지 아리코토란 이름으로 ts되어 등장한다. 만화 자체가 드라마 오오쿠 오마주다 보니 성격이나 행적이 역사가 아닌 드라마 그 자체다.[9] 그러나
[1] 오오쿠에 들어오게 된건 카스가노츠보네 덕분이다.[2] 미에현 이세시에 있는 임제종 절이지만 1869년 훼불 정책에 인해서 없어졌지만 21년후에 이세 신궁의 부속지 겸 신관의 휴식처로 전락했다.[3] 평범한 비구니도 아니고 주지였던 오만을 어떻게 환속시킨 건지는 알려지지 않았다.[4] 에도성에 있는 건물이다. 출입문만 남아있다.[5] 오오쿠 음모론 중, 황족이나 공가 귀족 여자가 아기를 낳으면 황실과 조정이 정치적으로 개입할까봐, 이를 우려하여 피임약 또는 낙태약을 꾸준히 먹였다는 야사가 있다. 오만의 친정집인 로쿠죠 가(家) 역시 공가 귀족이니, 이와 같은 이유일지도 모른다고 추측된다.[6] 그 결과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는 재정확보를 위하여 교호개혁을 시행하였고 이 과정에서 350명의 여인들을 내쳤다고 한다.[7] 치요히메가 태어난 뒤 이에미츠는 다시 여자에게 관심없어 하다가 오만에게 반해 그녀를 측실로 삼았다. 이러한 행적 때문에 오후리는 이에미츠가 떠밀려서 측실로 삼은거고 오만은 진심으로 좋아해서 첩으로 삼은거라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냥 오만을 띄워주려고 하는 문학적 상상력이며, 오만이 보이시한 외모여서 이에미츠가 반했다는 이야기도 사실 오후리의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모든 대중매체에서 오후리의 존재가 무슨 흑역사인거 마냥 없애버린다(...).[8] 법명은 케이쇼인(桂昌院)으로, 막부의 공식 기록으로는 교토의 하급 무사집안 출신이라고 언급되나, 본래는 그보다 더 낮은 출신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중에서는 잘 알려져있는 설은 야채가게 출신.[9] 치에 설정 역시 드라마의 오만에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10] 츠나요시의 친부는 아리코토를 따라 환속한 교쿠에이(오오쿠에서의 예명은 오타마)이며, 상술한 케이쇼인의 ts이다. 여기서는 아리코토와 환속 전부터 같이 지내온 스님으로 등장했다.[11] 치에와 스테조(상술한 오라쿠의 TS)의 딸[12] 드라마 후속작에서 츠나요시 때 오오쿠의 총괄직관인 에몬노스케로 다시 등장한다. 설정상 아리코토와 닮았다는 것을 방영해 같은 배우를 기용한 것이라고 한다.[13] 요시와라 유곽의 유녀들을 불러 홀리려 하고 아리코토가 끝까지 유녀들에게 홀리지 않자, 아리코토에게 그들을 껴안고 환속에 동의하는 것으로 강제 명령을 해서 유녀들을 껴안지 않으면 동료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