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16:45:33

옛 보신각 동종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보물
1호 2호 3호
흥인지문 옛 보신각 동종 서울 원각사지 대원각사비

대한민국 보물 제2호
<colbgcolor=#315288><colcolor=#fff> 옛 보신각 동종
舊 普信閣 銅鍾
소재지 국립중앙박물관
분류 유물 / 불교공예 / 의식법구 / 의식법구
수량 1구
제작시기 조선 시대, 1468년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파일:옛 보신각 동종.jpg
<colbgcolor=#315288> 옛 보신각 동종 사진

1. 개요2. 내용3. 의의4. 보물 제2호5. 같이보기

[clearfix]

1. 개요

조선 세조 14년(1468)에 만든 보신각의 초대 .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으로 대한민국의 보물 제2호이다.

2. 내용

종에 있는 명문에 따르면 조선의 7대 왕이었던 세조가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으로 당시 제조(提調)로 있던 황효원(黃孝源)과 감역, 김덕생, 정길산 등에게 왕명을 내려 재위 14년인 1468년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총 높이 318 cm로 현존하는 한국사의 종들 중 성덕대왕신종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초대형 범종이며 조선시대에 주조된 종 중에서는 가장 크다.

여러 번 기구한 운명에 처했던 종으로 처음에는 세조의 명으로 정릉사[1]에 배치하였지만 이후 원각사로 옮겨졌다. 그러나 원각사가 연산군에 의해 폐사지가 된 후 중종은 원각사를 허물고 다시 김안로에게 종을 숭례문으로 옮기게 하였다. 이렇게 계속 강제로 이사다니던 중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화재로 종루가 불타고 종 또한 크게 훼손되었다.

이후 광해군 때 종을 복구하여 사용하였으나 고종 6년, 1869년에 다시 한번 화재로 크게 손상을 입었다. 이후 종을 다시 고치고 고종 32년(1895)에 종각을 새로 건설하면서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이때부터 보신각종이라 불렸다.

1910년 조선이 멸망하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된 후에도 한동안 계속 사용했다. 보신각을 중건한 1953년부터 제야의 종 타종이 연례 행사로 자리잡은 이후 30여년 간 매년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마다 33번의 종소리를 울렸다.

그러나 종이 너무 오래 되어 계속 사용시 훼손이 우려되었기 때문에 1985년에 새 종[2]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제작된 지 517년 만에 퇴역,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3. 의의

오랜 세월 동안 제야의 종으로 조석을 알리는 역할로 사용된 한국 범종사상 의의가 매우 깊은 문화재이다. 다만 역사상 두 차례의 격동의 시기 때마다 우리나라와 운명공동체로 함께 불타서 지금은 많이 훼손된 상태이고, 따라서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로 이전되었다.

21세기 최첨단시대 이전에 제작되어 지금까지 현존하고 있는 여러 대종 유물들 중, 우리나라 역사상 세 번째로 큰 대형 종으로 불교문화와 범종 제작 기술이 극단적으로 발달했던 통일신라고려 시기의 종들과 비교해보아도 종파사, 미술사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가는 매우 완성도 높은 종이다.

세조 시기 국가적 차원에서 만들어진 종으로 화려한 띠장식과 명문이 있고 유려한 보살상 1구가 판각되었다. 여의주를 물고 날아오르는 쌍룡은 매우 역동적이고 용맹하여 당시 수준 높은 조각기술을 가늠해볼 수 있다. 화재로 많이 훼손되어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주조 당시에는 네 구의 보살이 교대로 배치되어 있는 등 더욱 화려했으리라 추정한다.

4. 보물 제2호

조선시대 만들어진 종으로, 1985년까지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제야(除夜)의 종을 칠 때 사용되었다.

조선 세조 14년(1468) 만들어 신덕왕후정릉 안에 있는 정릉사에 있었으나, 그 절이 없어지면서 원각사로 옮겨졌고 임진왜란 이후 종루에 보관했다. 고종 32년(1895) 종루에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걸게 되면서 보신각종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서 보관 중이다.

총 높이 3.18m, 입 지름 2.28m, 무게 19.66톤의 큰 종이며, 전형적인 조선 초기의 종 형태를 하고 있다. 음통이 없고 2마리 용이 종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어깨부분에서 중간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중간 지점부터 입구 부분까지 직선으로 되어 있다. 몸통에는 3줄의 굵은 띠를, 종 입구 위로는 일정한 간격으로 2줄의 띠를 두르고 있고, 종의 연대를 알 수 있는 긴 문장의 글이 있다.

이 종은 2번의 화재를 겪으면서 원형에 손상을 입고, 음향도 다소 변했으나 명문(銘文)이 남아있어 주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5. 같이보기


[1] 평양의 정릉사가 아닌 태조의 왕비인 신덕왕후 정릉의 능침사[2] 지금까지 걸려있는 이 새 보신각 종은 경주의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을 복제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