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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09:31:20

올 나이트 닛폰


<colcolor=#D4D7D9> 올 나이트 닛폰
All Night-NIPPON | オールナイトニッポン
파일:올 나이트 닛폰 로고.jpg
<colbgcolor=#132027> 국가
[[일본|]][[틀:국기|]][[틀:국기|]]
장르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채널 파일:닛폰 방송 로고.svg
방송 시간 월요일 ~ 토요일 / 오전 1시 ~ 오전 3시
방송 기간 1967년 10월 2일 ~
ON AIR
출연 야마다 유키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상세3. 방송의 종류와 진행자4. 역사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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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2. 상세

닛폰 방송에서 일본 전국으로 매일 송출되는 심야방송으로, 닛폰 방송의 대표 간판 프로그램이며 보통 '올나이트'나 'ANN'으로 약칭된다.[1] 1967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인 인기를 자랑하고 있으며, 심야방송의 대표주자가 되어있을 정도이다. 항상 생방송으로 진행하지만 사정이 있을 경우에 녹음방송으로 대체되거나 결방될 때도 종종 존재한다. 무려 [age(1967-01-01)]년이라는 엄청난 장수를 자랑하며, [age(1967-01-01)]년의 세월 동안 이 방송을 통해 수많은 라디오 진행자들이나 예능인을 배출해내어 와카테 게닌의 등용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또한 올 나이트 닛폰의 퍼스널리티 자리 자체가 즉 전국적 유명인이라는 증표가 되기도 해서 게닌뿐만 아니라 일본 연예인들이 가장 선망하는 방송 중 하나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직까지 정치인(참의원, 중의원, 총리, 도도부현지사 등)들의 참여여부는 확인된 바가 없다[2].

3. 방송의 종류와 진행자

2024년도 퍼스널리티진

2024년 기준으로 올 나이트 닛폰 계열 전부를 릴레이하는 방송국은 없다.[7]

4. 역사

올 나이트 닛폰의 역사는 닛폰 방송 아나운서 이토이 고로(糸井五郎)가 퍼스널리티를 맡은 전신격 프로그램 올 나이트 자키(オールナイトジョッキー)로부터 시작된다. 자회사인 '주식회사 심야방송'이 제작하고 있었던 올 나이트 자키는 보통 라디오 스태프들이 해왔던 선곡, 턴 테이블 조작을 퍼스널리티인 이토이가 하는 디스크자키 형식의 방송인데, 방송국으로부터 생력화시킨 방송을 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받아들여 프로그램을 발전시키는 형태로 '올 나이트 닛폰'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1967년 10월 2일 심야부터 방송을 정식 시작. 방송 시간은 화요일-일요일 새벽 1시부터 5시까지로, 당시 퍼스널리티는 닛폰 방송 아나운서였던 이토이 고로(화요일), 사이토 야스히로(수요일), 타카오카 료이치로(목요일), 이마니 테츠오(금요일), 츠네키 타케오(토요일), 타카사키 이치로(일요일)이었다. 참고로 첫방송은 올 나이트 자키의 퍼스널리티였던 이토이 고로가 맡았다.

당시 편성부장은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몇 가지 대원칙을 세웠는데, 그 조건이란 '탤런트가 아닌 아나운서나 디렉터 등 닛폰 방송 내부 사람을 기용할 것', '스폰서를 붙이지 말 것'[8], '좁은 스튜디오를 사용하고 게스트를 부르지 말 것', '시모네타를 하지 말 것'[9]이라는 상당히 빡빡한 조건이었다.

방송을 시작한 1960년대 후반에 일어난 불황과 1964 도쿄 올림픽을 기점으로 우세가 된 텔레비전에 밀려 라디오 광고 수입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바람에 새로운 청취자 층과 광고주를 끌어들이는 일에 쫓겼던 일이 있었다. 그 상황에 대해서 닛폰 방송은 1964년 4월부터 '오디언스 세그먼테이션(オーディエンス・セグメンテーション)'[10] 편성을 도입하는 등의 방침을 검토하고 있었지만, 그 움직임이 심야 방송에 파급한 영향도 있었다.

1960년 후반은 베이비붐 세대가 대학생 정도 되는 나이가 된 시대였기에 그에 맞춰 그 동안 TV나 다른 라디오 방송에서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던 비틀즈레드 제플린, 지미 헨드릭스 등의 해외 락 음악부터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 등 일본의 포크송까지 당시 젊은 세대들의 최첨단을 달리는 음악을 내보내어 호평을 받았다. 그 때문에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는데, 얼마나 인기였냐 하면 1967년 9월 해산 콘서트를 연 인디 밴드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의 졸업 기념곡 '돌아온 술주정뱅이(帰ってきたヨッパライ)'가 올 나이트 닛폰에 소개되었을 뿐인데 앨범 출시 2개월만에 180만 장이나 되는 판매고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1972년 올 나이트 닛폰은 2부제에 진입하였고, 1985년까지 마츠야마 치하루[11], 나카지마 미유키[12] 등 뉴뮤직 가수들과 쇼후쿠테이 츠루코[13], 타모리, 비트 타케시 등 게닌들이 주축이 된 제2황금기를 맞이한다. 1986년부터는 안정기 상태를 유지하다 1999년까지 장기적으로 하락세에 들어섰다. 그러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LF+8 시기에 진입하였는데, 이때 한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바로 심야 새벽1시~3시 프로그램 aiko의 @llnightnippon.com이다. LF+8 시기가 종료된 이후 2012년부터 다시 올 나이트 닛폰이 인기를 얻으며 현재 부활기에 놓여 있다.

5. 기타


[1] 이중에서 ANN은 TV 아사히를 키국으로하는 올닛폰 뉴스 네트워크 의 약칭인데 이중 규슈 아사히 방송이 이 네트워크에 가입하고 있다.[2] 다만, 일본 황실의 일원이 DJ를 맡은 사례는 있는데, 1975년에 토모히토 황자가 황족으로서는 유일하게 이 방송을 진행한 바 있다.[3] 18세 미만은 밤에 근로할 수 없도록 한 현행 법상 심야 방송에 출연할 수가 없기 때문에 18세 이상의 정규 멤버가 3명씩 교대로 진행하며 출연하는 경우에는 녹음 방송으로 대체한다. 그리고, 2019년 3월 27일부터 AKB48 멤버들이 마지막으로 출연을 종료하고 노기자카46의 멤버들이 뒤를 이어서 출연이 확정되었다.[4] 요시모토 흥업 소속의 오카무라 타카시와 야베 히로유키의 콤비. 2014년 9월에 야베가 레귤러를 강판한 이후 오카무라 단독 진행체제로 이어졌으나, 오카무라가 2020년 5월에 구설수 스캔들에 휘말리자 야베가 설교역으로 다시 출연한 이후로 2주간 정기 게스트로 출연하다, 후에 본격적으로 2기로써 부활하였다.[5] 21년 개편으로 산시로와 시간대 교환[6] 요시모토 흥업 소속의 오와라이 콤비. 2020년 M-1그랑프리 챔피언이다.[7] 그나마 STV 라디오가 전부에 가깝게 릴레이하기는 하지만 새터데이 스페셜은 릴레이하지 않고 HBC 라디오에서 방송된다.[8] 스폰서로부터 압력을 받는 것을 극히 싫어했기 때문에, 방송 개시 후 반년 정도는 스폰서를 일절 붙이지 않았었다. 어쩔 수 없이 스폰서를 붙이게 되더라도 '절대로 방송 내용에는 간섭하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걸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9] <올 나이트 닛폰>이 방송되기 이전의 심야방송은 온통 시모네타 투성이였다. 시모네타에 면역력이 없으면 도저히 듣고 있을 수 없을 정도.[10] 청취자의 연령대, 직업 등에 따라 시간대를 나누어 방송을 편성하는 걸 가리킨다.[11] 홋카이도 출신 싱어송라이터.[12] 1979년 4월부터 1987년 3월까지 월요일 1부 진행을 맡았다. 차분한 노래 분위기와 상반된 저세상 텐션 진행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13] 가미카타(간사이) 라쿠고 협회 소속 라쿠고가. 토요일 1-2부를 11년간 맡으면서 한동안 금지되었던 심야 방송의 시모네타를 부활시켰다.[14] 단, 올 나이트 닛폰 10은 다른 곡을 쓴다.[15] ANN 새러데이 스페셜만 릴레이 중.[16] 2023년부터 1년간은 월~목요일에는 LF 대신 QR(분카 방송) 프로그램을 릴레이하고 금요일에만 자체 방송을 하기도 했다. 토요일에는 QR 편성과 자체 편성을 혼합해서 방송.[17] 그래도 ANN 0(제로)는 도카이 라디오에서 방송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