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에리 吉田 えり | Eri Yoshida | |
생년월일 | 1992년 1월 17일 ([age(1991-01-17)]세)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
출신학교 | 카나가와현립 카와사키북 고등학교 |
포지션 | 투수 |
신체 | 155cm,55kg |
투타 | 우투우타 |
소속팀 | 아사하 트러스트 (2008) 고베 9 크루즈 (2009) 치코 아웃로스 (2010,2011) 나 코아 이카이카 마우이 (2011) 효고 블루 썬더스 (2012) 나 코아 이카이카 마우이 (2012~2013) 이시카와 밀리언 스타즈 (2013~2016) 도치기 골든 브레이브스 (2017) 에이젝 여자 야구단 (2018~) |
지도자 | 에이젝 여자 야구단 감독 (2018~2019)[1] 에이젝 여자 야구단 코치 (2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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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국적의 여자 야구 선수.여자 선수 최초로 프로지명을 받았고 너클볼을 잘던져서 너클공주로 유명하다.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경력
야구선수였던 오빠에 영향을 받아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공을 잡았다고 한다.중학교 때 까지 연식야구부에서 뛰며 포지션도 1루수였는데 아버지의 권유로 연식야구부를 퇴단하고 경식야구부로 들어가 투수로 전향했다.카와사키키타고에 진학했지만 부상으로 인하여 야구부를 나오게 되었고 남자 선수들과 체력차를 느꼈다고 하지만 TV에서 본 팀 웨이크필드의 너클볼을 보고 너클볼을 던질 수 있게 되면 남자 선수들과 비슷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택 지하주차장에서 계속 연습하여 습득했다고 한다.
그 후 여러 실업팀에 들어갔고 아사하 트러스트에서 여자 경식 클럽 야구 선수권대회에서 3경기를 뛰었다.
2.2. 독립리그 경력
2.2.1. 코베 9 크루즈
2008년 11월 칸사이 독립 리그의 합동 트라이아웃에 합격해, 동리그의 드래프트 회의에서 코베 9 크루즈로부터 7순위로 지명을 받았다.최종 성적은 11경기 11과 2/3이닝 0승 2패 평균자책점 4.63
2.2.2. 치코 아웃로스
애리조나 윈터리그에서 뛰고 있다가 치코 아웃로스가 영입 제안을 하며 입단하게 되었다.
티후아나 시마론즈 상대로 첫 선발 등판해서 3이닝 5피안타 4실점으로 부진했지만 만루찬스에서 145km공을 안타로 만들었다고 한다.[3]
최종 성적은 8경기 25와 2/3이닝 0승 4패 평균자책점 12.27
이후 섬머리그에서 뛰다가 다시 치코 아웃로스로 복귀했지만 나 코아 이카이카 마우이로 트레이드 되었다.
2.2.3. 나 코아 이카이카 마우이 1기
8월 9일 에드먼턴 캐피털스의 경기에서 리그 첫 승을 거두며 아이라 보더스에 이어 미국 독립리그 여자 선수로 두 번째 승리 투수가 되었다.하지만 팀이 재정난이라 시즌을 조기 종료하게 되어서 자유계약 선수로 풀렸다.2.2.4. 효고 블루 썬더스
3년만에 일본으로 돌아와서 5월 3일의 기슈 레인저스전에서, 5회 1실점으로 첫승을 신고했고, 간사이 독립 리그 첫 여성 승리 투수가 되었고,9월에 계약 만료로 자유계약선수가 됐다.2.2.5. 나 코아 이카이카 마우이 2기
2013년은 미국 독립리그 퍼시픽 어소시에이션의 나 코아 이카이카 마우이에서 뛰며 10경기 2승 4패, 평균자책점 5.98을 기록하고 다시 일본 독립리그 팀인 이시카와 밀리언 스타즈에 입단했다.2.2.6. 이시카와 밀리언 스타즈
이시카와 밀리언 스타즈에서는 프런트 업무도 같이했다.최종 성적은 11경 0승 3패 평균자책점 13.29이라는 부진한 성적을 내고 그 후엔 별 다른 활약이 없었다.BC리그에서 여자 선수 최초로 승을 따기도 했다.그 후 도치기 골든 브레이브스[4]와 시가 유나이티드 베이스볼 클럽가 창단되자 도치기에게 지명 받으며 이적했다.
2.2.7. 도치기 골든 브레이브스
부상 때문에 육성선수 신분으로 지냈지만 공식전 등판 없이 1년만에 팀을 나오게 되었다.
3. 지도자 경력
3.1. 에이젝 여자 야구단
새로 창단하는 에이젝 여자 야구단에 감독으로 선임되었다.투수,외야수로 선수로도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그 후 히로하시가 감독으로 취임하여 코치로 남기로 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2010년까지는 사이드암으로 최고구속 101km/의 직구와 80km대의 너클볼과 커브를 던졌다.2011년부터는 투구 폼을 스리쿼터로 변경하였고 구종도 커브,슬라이더,너클볼로 다양해졌다. 또한 이전과 같은 너클볼 원피치가 아니라 커브,슬라이더를 중심으로 한 피칭 스타일로 변했다. 구속은 전성기때는 최고속도 113km/h까지 올라갔었다.
그러나 너클히메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너클볼은 좋은 평가를 못 들었다. 회전이 죽질 않아 사실상 체인지업에 가깝다는 평가. 구종을 추가한 것도 너클볼이 안 통해서이다.
5. 기타
2018년 독립리그 운영부 직원과 결혼해 현재는 기혼자다.일본 내에서는 여론이 안좋은 인물이기도 한데, 쉽게 말해 스타병에 취해서 무리하게 계속 남성부 리그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
위의 선수경력을 보면 알겠지만 독립리그에서 처절한 실패를 맛본 선수로서 남성부에서는 기량미달이라는 점이 10년 가까이 성적으로 증명되었는데, 언론에서는 계속 너클히메라고 띄워주고 있기 때문에 독립리그 구단들도 선수로서는 뛰기 힘든 실력임에도 그녀가 있으면 기자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사실상 티켓팔이용, 홍보용으로 사용할 뿐인데 그 뽕에 차서 무리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 다른 종목이지만 축구의 미우라 카즈요시나, 한국의 최향남이 듣는 비판과 결은 거의 비슷하다. 물론 꿈을 쫓는 게 죄는 아니라지만, 누가 봐도 가능성이 없고 10년 가까이 도전해서 이미 실패가 명백히 증명되었고 이젠 선수로서 더이상 기량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닌데, 소프트볼이나 여자야구리그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독립리그에서 '남성의 벽에 도전하는 멋진 여성' 이라는 언론의 띄워주기를 받기 위해 무리하게 독립리그를 전전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여성부를 제패하고 적수가 없어서 남성부에 도전하는 것도 아니고, 요시다는 여성 기준으로도 실력이 뛰어나지 않다. 구속이 전부는 아니라지만 요시다의 평속은 95~100km대인데 여자야구 최고구속은 120km대로, 여자 선수중에서도 평범한 편이며, 너클볼의 완성도도 높지 않아 사실상 체인지업에 가깝다는 평가를 듣는데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기량미달로 국가대표에도 뽑히지 못했다. 미우라는 한때 일본 축구계의 레전드였고, 최향남은 한국에서 최고가 되지 못한 선수이지만, 막상 마이너에 가서는 제법 괜찮은 성적을 냈다. 하지만 요시다는 여성 중에서도 최고가 되어본 적이 없고, 현재 실력도 뛰어나지 않으며, 남성부에서도 처절한 실패를 했다.
애초에 남성부에 도전할 만한 실력은 커녕 여성 기준에서도 그저그런 선수임에도 독립리그 구단의 티켓팔이용으로 기용되며 성적은 전혀 못 내고 있는데, 언론의 띄워주기와 언플로 만든 '남성의 벽에 도전하는 멋진 여성' 이미지로 TV출연 및 각종 강연회와 광고 촬영으로 돈을 달달하게 빨고 있는데, 이게 맞는가?
일본의 독립리그는 단순히 야구하는 곳이 아니라 프로 방출생이나 사회인에서 온 엘리트 선수들이 진지하게 프로를 목표로 하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렇게 요시다가 자리를 차지하면 누군가 하나는 자리를 잃게 된다. 특히 일본은 '이치닌마에' 라고 해서 성인이 되면 언제까지나 철없이 굴지 말고 1인분은 하고 남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정서가 강하기 때문에 더더욱 비판의 목소리가 강하다.
덕분에 일본어로 너클히메라고 검색하면 '너클히메 바보짓' 같은 연관검색어가 딸려오는, 점점 여론이 안좋아지는 인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