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 다발리요의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워싱턴 세네터스 등번호 15번 | ||||
진 버블 (1953) | → | 폼페요 다발리요 (1953) | → | 클라이드 볼머 (1954) |
레오네스 델 카라카스 No.1 | |
요요 다발리요 Yo-Yo Davalillo | |
본명 | 폼페요 안토니오 다발리요 로메로 Pompeyo Antonio Davalillo Romero |
출생 | 1928년 6월 30일 |
술리아 주 카비마스 | |
사망 | 2013년 2월 28일 |
미란다 주 오큐마레 델 투이 | |
국적 | [[베네수엘라|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60cm / 63kg |
포지션 | 유격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53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WSH) |
소속팀 | 워싱턴 세네터스 (1953) |
가족 | 동생 빅 다발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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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네수엘라의 전 야구선수.2. 선수 시절
현역 시절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멕시코 프로야구 리그, 베네수엘라 프로야구 리그에서 뛰었으며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4번째 베네수엘라 출신 선수라고 한다.그러나 동생인 빅 다발리요와는 다르게 메이저리그에서는 1시즌 19경기 출장이 끝이었으며 주로 마이너리그나 멕시코 프로야구 리그 모국인 베네수엘라 프로야구 리그에서 뛰었다. 이 와중에 당시 혁명 전 미국의 속국이나 다름없었던 쿠바에서 뛰기도 했다. 당시에는 마이너리그 트리플 A 구단이 쿠바에도 있었는데 그 구단에 배치되었기 때문.[1]
베네수엘라 프로야구 리그에서는 13시즌간 483안타 3홈런 69도루를 기록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나름 주전으로 뛰었으나 역시 여기서도 동생에 비해서는 떨어지는 실력이었다. 그래도 동생만큼은 아녀도 이 사람도 39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할 만큼 꽤 오래 뛴 선수였다.
3. 은퇴 이후
은퇴 후 거의 코치 일을 하지 않은 동생과 달리 1964년 멕시코 프로야구 리그의 감독으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여담으로 최초의 베네수엘라 국적 외국 프로야구 코칭스태프였다고 한다. 몇 년 후 모국으로 돌아가 선수생활을 보냈던 레오네스 델 카라카스에서 1루 주루코치와 감독을 역임했고[2], 이후에도 티부로네스 데 라 과이라, 티그레스 데 아라과, 아길라스 델 술리아 등 여러 베네수엘라 프로야구 팀에서 감독 및 프런트 고위직을 역임했다. 또한 1970년대와 90년대에 멕시코 프로야구 리그에서 다시 감독을 맡은 경험도 있다.리그 감독 외에도 베네수엘라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베네수엘라 중앙대학 야구부 감독을 맡은 경력도 있다. 또한 메이저리그 경력도 짧게나마 있어서인지 1980년대에는 몇 년 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스카우터를 맡았다.[3]
프로야구 외에도 유소년 야구 훈련센터를 설립하는 등 선수생활은 조금 아쉬웠으나[4] 감독으로 레전드가 된 명 감독.
70세가 된 1998년을 끝으로 감독도 은퇴했고 은퇴 후에도 국영 기업에서 스포츠 자문위원을 맡는 등 야구계 일에 종사하다 2013년 지병이었던 신부전과 뇌혈관 질환으로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공교롭게도 동생 빅 다발리요도 84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게 동일.
그의 사후 레오네스 델 카라카스, 카리베스 데 안소아테기, 아길라스 델 술리아에서는 그의 등번호인 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4. 플레이 스타일
동생과 마찬가지로 홈런이 적은 발 빠른 똑딱이 스타일이었다. 전반적으로 타격과 주루만 보자면 동생과 플레이 스타일은 동일하나 실력이 조금 떨어지는 전형적인 하위호환.[5]다만 동생과는 달리 유격수가 주포지션이라 수비에서는 우위를 봤을 수도 있겠지만 수비로 메이저리그에서 버티지는 못했다.
5. 기타
- 동생 빅 다발리요도 야구선수였고 형과 달리 메이저리그에서도 꽤 잘나갈 정도로 선수생활은 형보다 화려했다. 하지만 감독과 코칭스태프로 유명해진 형과는 다르게 지도자 경력은 거의 없었다. 뭐가 됐든 형제가 모두 베네수엘라 야구 레전드였다는 점은 동일.
[1] 현재 외국에 있는 마이너리그 구단은 도미니카에 존재하는 루키리그 팀들 외에는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밴쿠버 케네디언스(싱글 A)가 유일하다. 이 때문에 싱글 A임에도 불구하고 밴쿠버에 사는 야구팬들이 케네디언스를 보러 꽤 오는 편. 시애틀 매리너스를 보러 가는 것도 그렇게 멀지는 않지만 그래도 외국이니 집근처의 마이너리그를 보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2] 이 팀에서만 감독으로 3번의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3] 애초에 베네수엘라 프로야구 리그는 윈터리그라 메이저리그 코칭스태프나 프런트 일과 겸직하는 것도 가능하다. 선수들도 겸직할 수 있는데 코칭스태프나 프런트라고 해서 못 할 것도 없다.[4] 그것도 메이저리그에서나 아쉬웠던 것이지 멕시코 프로야구 리그나 자국 베네수엘라 프로야구 리그에서는 주전급 선수였다. 당시 베네수엘라는 오히려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나았던 상황이기 때문에 자국 리그에서만 잘 해도 꽤나 잘나갈 수 있었다.[5] 동생은 메이저리그 규정타석 3할도 기록해보았는데, 요요 다발리요는 멕시코 프로야구 리그에서는 규정타석 3할을 기록해봤지만 메이저리그는 3할은 커녕 규정타석 도달도 못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