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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산국이 여진족 해적에 의해 멸망하게 된 사건.2. 전개
512년 신라-우산국 전투 이후, 신라에 복속되어 있다가, 후삼국시대, 호족들이 난립한 이유, 930년대 신라에서 고려로 복속노선을 바꾼 이후로, 고려사에 의하면 1018년에 여진족 해적의 공격을 몇 차례 받았고 약탈 때문에 농사를 짓지 못했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여진족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고려 초기엔 지금의 함경도에 여진족이 거주했고, 지도를 보면 함경도에서 내려오면 울릉도가 그렇게까지 멀지는 않다. 참고로 1019년 여진족 해적들은 쓰시마 섬, 일본 본토 일부까지 약탈할 정도였으니 중간에 끼인 우산국은 뭐 말할 것도 없다. 전투 당시 상황은 알 수 없으니 수많은 여진 해적들이 여러 척의 군함을 이끈채 맹렬한 공격을 가하여 우산국 병력이 무너진듯 하다. 1350년 고려 말 왜구의 침입 같은 상황과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3. 이후
전투 전개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우산국 백성들은 1022년 여진해적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배를 타고 한반도 인근 해안으로 도망쳤고 이에 고려조정은, 고려로 도망쳐온 우산국 백성들을 예주[1]에 잠시 거주하게 했다. 우산국이라는 나라가 이 때 망했다는 명시적 기록은 없지만 고려중기에 관리가 확인했을 당시, 텅 빈 섬이 되었다고 기록한 걸 봐선 예주에 거주하게 되어 고려인과 융화되고, 우산국이라는 나라는 백성이 없어져 그대로 고려에 흡수되어 이 때 사실상 멸망했다 추정된다.4. 기타
[1] 현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