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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27 16:42:01

움베르토 노빌레

<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움베르토 노빌레
Umberto Nobile
파일:노빌레.jpg
출생 1885년 1월 21일
이탈리아 왕국 라우로
사망 1978년 7월 30일
이탈리아 로마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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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조종사, 탐험가, 항공 엔지니어, 정치인

1. 개요2. 생애3. 비참한 말년4. 평가5. 관련 문서

1. 개요

이탈리아의 군인, 조종사, 탐험가, 항공 엔지니어, 정치인.

그러나 이 사람은 로알 아문센과의 북극점 횡단 비행 탐험 관련이라는 굉장히 안 좋은 쪽으로 유명하다.

2. 생애

처음에는 철도 기사였으나, 군의 의뢰로 비행선 제조에 종사하였다. 노르웨이의 탐험가 로알 아문센과 함께 비행선 노르게호(號)로 북극을 탐험, 1926년 5월에 극점을 통과하여 북극해 횡단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이것과는 별개로 동행했던 아문센과 당시 엄청난 갈등을 빚으며 원수 지간이 되고 말았다. 아문센의 주장에 따르면 노빌레는 이탈리아군 장교인 자신의 신분을 내세우면서 협의를 거부하기 일쑤였고, 이탈리아인, 노르웨이인 하는 식으로 차별을 했다고 한다. 아문센은 이후 1927년에는 우라니엔보르그에 칩거하면서 자서전 "탐험가로서 나의 삶"을 집필했는데, 어찌나 노빌레한테 불만이 많았던지 이 책에서는 자서전 전체의 ⅓ 이상을 노빌레와 있었던 갈등을 언급하는 데 할애하기도 했다.

1928년 5월 비행선 이탈리아호로 두 번째의 북극 탐험을 시도하였으나 극점을 통과한 얼마 뒤에 비행선이 조난되었다. 그를 비롯한 승무원은 구조되었으나, 구원에 나선 아문센이 도리어 사망하였다. 북극 통과 비행은 무난히 마쳤으나, 북위 81도 선상에서 이탈리아호가 추락하여 조난당해버린 것이다.

당시 노빌레는 아문센이란 명성과 위상에 가려진 것에 불만을 품고 아문센이 없더라도 노빌레 자신이 대장으로서 얼마든지 북극점에 갈 수 있다고 큰소리를 뻥뻥 치며 무리하게 계획을 추진했다. 이를 본 상관 베니토 무솔리니는 아무래도 너무 성급하니 일단 보류하라고 말렸지만, 고집불통 노빌레는 기각하고 기어코 출발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무솔리니는 분노하여 그가 조난당하자 자업자득이라며 아예 모르쇠로 일관했다.

사실 아문센의 북극 탐험 내내 노빌레의 위치는 비행선 노르게호의 선장이자 탐험대의 일개 대원에 불과했다.[1] 그리고 탐험대장이자 실세는 누가 뭐래도 아문센이었고, 자연히 모든 것들은 아문센의 계획과 지휘 하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노빌레는 노르게호가 이탈리아에서 제작되었고 자신이 선장이라는 이유 때문에[2] 겨우 휘하 대원 주제에 본인의 권한을 넘어서 탐험에 간섭하려 드는 등 과한 월권+갑질을 해댔다.[3] 이래놓고도 아문센에게 불만을 표했으니 아문센이 치를 떨고 사이가 나빠질 만도 했다.

1928년 5월 25일, 아문센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노빌레가 비행선 "이탈리아호"와 함께 추락했다는 사실과 생존자들이 보내온 최초의 조난 신호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노빌레가 보낸 조난 신호를 보고 영국미국, 노르웨이, 소련까지도 노빌레를 구조하려고 하였다. 약 300척에 달하는 배와 비행기가 실종된 이탈리아호의 승무원들을 찾는 데 총동원되었다.

무솔리니도 태도를 바꾼다. 노르웨이 측이 이탈리아와 합동으로 구조대를 보내기로 하지만 무솔리니는 노빌레가 아문센에게 구원받는 건 불쾌해 할 테니 그를 빼버리지 않으면 절대 같이 못 간다라는 억지 요구를 하여[4] 라르센이 대신 노르웨이 - 이탈리아 합동구조대장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결국 이것이 화근이 되어 아문센이 성급하게 구조를 서두르다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만 것이다.

그래도 노빌레 본인은 간신히 구조되어서 생존했지만, 말년은 평탄하지 못했다. 아문센을 시기해 준비도 제대로 안 하고 성급하게 출발했다가 아문센을 죽게 했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아문센과 노빌레 간의 분쟁에서는 물론 아문센에게도 아주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태가 이렇게까지 확대돼버린 건 8할 이상이 노빌레 때문이었다. 노빌레는 자신이 노르게호의 선장임을 내세워 항상 아문센의 결정에 간섭하려 했지만, 사실 베테랑 중의 베테랑 탐험가였던 아문센과 젊은 노빌레 간의 차이는 매우 컸다. 무엇보다도 일개 비행선 선장에 불과한 노빌레가 어엿한 탐험대장이자 이 단체의 가장 높은 사람인 아문센의 일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건 그냥 월권행위였다. 결정적으로 아문센은 원수 노빌레를 구하려다 죽었으니 아문센을 비난하는 게 좋게 보일 리가 만무하다.

무솔리니도 본인의 충고를 쌩까고 제멋대로 행동한 노빌레를 당연히 전혀 좋게 보지 않았기에 재판장에 끌고 가서 모욕을 주었다.[5] 거기다 수사 과정에서 노빌레 본인의 실수로 비행선이 추락했고, 노빌레가 구조를 받을 당시에 자신의 팀을 사고 장소에 그대로 남겨두었다는 것까지 밝혀져서 군인으로서 비겁한 자라는 오명까지 드러나 더욱 치욕을 당하고 말았다.

더불어 육군에서도 불명예 전역당했기에 연금도 전혀 받을 수 없었고, 이탈리아의 수치라는 이탈리아 언론 보도까지 나오면서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하나뿐인 딸 마리아의 양육권도 뺏기고 친척들에게도 외면받았다. 노빌레는 1931년에 자국 이탈리아를 떠나 소련으로 가서 이오시프 스탈린의 요구대로 비행선을 만들며 새출발을 했다. 그러다가 1939년에 미국으로 또다시 이주해서 살았는데, 그냥 조용하게 숨듯이 살았다. 그리고 무솔리니가 몰락하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조국 이탈리아로 돌아왔지만 조용하게 살았고, 1970년대에 언론이 인터뷰를 하러 찾아오자 화를 내면서 아무 말도 할 게 없다고 내쫓았다.

3. 비참한 말년

그렇게 살다가 극소수 지인들이 보는 자리에서 아문센이 죽은 지 딱 50년 지난 1978년, 93세 장수를 누리며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온갖 욕을 다 얻어먹으면서 아내에 딸에 친척들까지 죄다 그와 인간관계를 끊어버렸고, 돈도 제대로 못 벌고, 심지어 그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국가 망신을 줬다고 대못이 박힌 채로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야 했으니 그다지 반갑지는 않은 장수였을 것이다.

4. 평가

5. 관련 문서


[1] 사실 그보다는 고용된 선장이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지만...[2] 물론 노빌레는 비행선의 선장인 만큼 비행선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가 가장 전문가이긴 했다.[3] 말할 것도 없이 이제까지 위대한 업적을 쌓아놓은 아문센에 대한 질투과 열등감과 자격지심 때문이었다.[4] 사실 무솔리니도 개인적으로 아문센을 싫어했는데, 그 이유는 위에 나온 노르게 1호 때의 일이 컸다.[5] 사실 이건 굳이 무솔리니가 아니더라도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노빌레의 준비 과정이 너무 성급해보이니 좀 보류하라는 명령은 엄연히 상관의 정당한 지시였고, 결과적으로도 그 판단이 옳다. 그리고 노빌레는 군인 신분인 이상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는 무조건 복종할 의무가 있는데, 그걸 어기고 제멋대로 탐험을 추진했을 뿐더러 그 탐험도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탐험가 아문센도 죽게 만들어서 나라 망신을 제대로 시켜놨으니 법정행은 모욕이라 불릴 것도 못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