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 Jürgen Offer von Pegnitz ユルゲン・オファー・フォン・ペクニッツ | |||
OVA[1] | 후지사키 류 코믹스 | ||
인물 정보 | |||
<colbgcolor=#eee,#222> 신체 정보 | 남성, ???cm, ?형 | ||
생몰년 | ? ~ | ||
가족 관계 | 카타린 케트헨 폰 페크니츠(딸) 보덴도르프 백작의 조카딸(배우자)[2] | ||
국적 및 소속 |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 은하제국 로엔그람 왕조 | ||
최종 직책 | 페크니츠 공작가 당주 | ||
최종 작위 | 공작 | ||
미디어 믹스 정보 | |||
성우 |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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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로 골덴바움 왕가의 방계 후손이자 자작 작위를 가졌던 은하제국의 귀족. 나이는 30대 전반의 청년이다.인명 및 지명에 대한 오역이 많은 해적판인 을지서적판에서는 율겐 오파 폰 페크니츠란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정식판인 서울문화사와 이타카판에서는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로 표기했다.
2. 작중 행적
2.1. 무기력한 황족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는 골덴바움 왕조 은하제국 '오토프리트 5세'의 제3황녀가 낳은 아들로,[3] 오래 전에 제위계승에서 멀어진 방계 황족의 일원이다. 황족의 신분을 가지고 있으니 제위계승에 대한 권리는 있었지만, 프리드리히 4세 시대 즈음에는 차기 황제에 오를 후보를 두고 귀족 사회가 들끓었을 때에도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을 정도로 밀려나 있었다. 더구나 본인부터가 정치에 뜻이 있기는 커녕 상아세공품 수집에 몰두하여 사교계와는 거의 담을 쌓고 있어, 어떤 방식으로든 그가 제국 사회의 중심으로 돌아올 일은 없다고 여겨졌다.프리드리히 4세 사후 벌어진 제위계승경쟁에서 비롯된 립슈타트 전역 시기에도 어느 한 쪽의 편을 드는게 아니라, 아예 관심을 끊고 살고 있던 덕분에 숙청 목록에 이름이 올라가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주력 798년, 페잔 자치령과 거래하여 황제 에르빈 요제프 2세를 팔아넘긴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공작과 수하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상급대장이 꾸민 모략에 의해 본의 아니게 제국 사회의 중심부로 끌려오게 된다.
로엔그람 공작은 권력과 권위를 모두 잃었지만 아직 골덴바움 왕조를 폐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였고, 없어진 에르빈 요제프 2세를 대신할 꼭두각시 황제를 물색하였다. 오베르슈타인 상급대장은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사전에 후보를 물색해 둔 상황이었는데, 하필 이 목록에서 가장 위에 올라온 이름이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 자작의 하나 뿐인 여식 생후 5개월의 카타린 케트헨 폰 페크니츠였다.
5살의 에르빈 요제프 2세가 사라지고 그 뒤를 잇는 것은 1살도 되지 않은 카타린 케트헨 폰 페크니츠. 골덴바움 왕조에 대한 경멸로 가득찬 로엔그람 공작마저도 선뜻 수락하기 어려운 후보였지만, 망해가는 골덴바움의 최후에 걸맞은 황제가 아니겠냐며 페크니츠 자작의 여식을 차기 황제로 승인하였다.[4][5] 물론 이 일은 페크니츠 자작에게 허락을 받기는 커녕,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작은 그저 다짜고짜 자택으로 찾아온 로엔그람 공작쪽 사람에게 '귀하의 여식이 차기 황제로 등극할 것이다'라는 일방적인 통보만 받았을 뿐.
오베르슈타인이 카타린 케트헨을 후보로 올린 이유 중의 하나는 차기 황제의 아버지가 될 사람인 페크니츠 자작이 무능하고 흉악한 문벌귀족 틈바구니에서 대단히 보기 힘든, 유순하고 선량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립슈타트 전역 때 적극적으로 라인하르트에게 협력하진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립슈타트 귀족연합에 가담하지도 않았기에 역적의 자식이 황제가 될 수 있느냐는 트집을 잡힐 일도 없었고, 세상만사에 관심이 없다보니 평민들을 학대하거나 해코지[6]하는 것에도 전혀 관심이 없어서 평판도 나쁘지 않고 쓸데없이 라인하르트에게 도전하지도 않아 부담없이 꼭두각시로 세워두기 딱 좋은 인물이었다.
다만 한 가지 결점이 존재했는데, 당시 어느 상인에게 상아 세공품을 구입하고 지급하기로 한 대금 7만 5천 제국마르크를 지불하지 못해서 그 상인에게 소송을 당한 상태였던 것. 이 사실을 보고받은 로엔그람 공작 라인하르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그래도 명색이 다음 황제의 아버지 되실 분인데 그런 소송에 휘말려서야 되겠나"라면서 궁내성 예비비로 대납하는 선에서 소송을 마무리지으라 지시하였다.
2.2. 제위를 넘겨주다
우주력 798년 7월, 문벌귀족 잔당들이 에르빈 요제프 2세를 납치하여 자유행성동맹으로 망명, 동맹 정부와 손잡고 은하제국 정통정부 수립을 발표하자 라인하르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동맹을 상대로 선전포고했다. 그리고 3개월 뒤 에르빈 요제프 2세를 폐위한 뒤 카타린 케트헨 1세를 골덴바움 왕조 38대 황제로 옹립하였다.본인은 동의하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하던 일이었지만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 자작은 공작위를 수여받은 한편, 황제의 아버지로써 제국 사회의 최정점에 등극하게 되었다.
다만 최고권력자 '자리'에는 앉았으되, 실제 '권력'은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다. 제국의 실권은 이미 로엔그람 공작 라인하르트가 장악하고 있었기에, 황제 카타린 케트헨 1세는 물론 황제의 아버지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 공작 모두 자리만 유지하는 번듯한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은하제국의 주요 의사 결정은 오직 로엔그람 공작의 재상부에서 이루어졌고, 황제와 페크니츠 공작은 아예 현안에 대한 보고에서도 제외되어 있었다.[7]
심지어 허울 뿐이라는 권위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페잔 점령 작전의 성공 직후, 승리에 도취된 제국 장병들이 기함에서 내리는 로엔그람 공작을 두고 "지크 카이저(황제 만세)!"를 외치는 반역에 준하는 사고가 벌어졌는데. 공작 본인은 이에 손을 들어 응답해주고, 현장에 있는 제국의 관료, 장군, 귀족 그 누구도 이 행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8]
바라트 화약으로 동맹이 제국의 속국으로 전락하자 외정과 내정 앙면에서 골덴바움 왕조 황제들을 능가하는 성과를 쌓은 라인하르트는 수도 오딘으로 귀환하여 이제 허수아비들을 치우고 직접 황제가 되려고 했다.
우주력 799년 6월 20일, 페크니츠 공작은 제국 군무상서 오베르슈타인 원수의 호출을 받고 재상부에 출두하였다.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일이 무엇일지 불길함에 사로잡혀 공포에 떠는 공작은 이내 오베르슈타인에게 2장의 서류를 건네받았는데, 하나는 카타린 케트헨 1세의 퇴위선언서였으며 다른 하나는 제국 황제의 직위를 로엔그람 공작 라인하르트에게 넘긴다는 양위선언서였다.
서명을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서명을 한 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페크니츠 공작은 두려움에 식은땀을 연신 내뿜으며 퇴위선언서와 양위선언서에 서명을 마쳤다. 이를 받아든 오베르슈타인은 또 다른 서류를 1장 내밀었는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는 페크니츠 공작의 두려움을 한번에 떨쳐내게 해주는 내용이었다.
페크니츠 가문의 작위와 재산, 안전 일체를 보장한다. 또한 제위에서 물러난 '카타린 케트헨 폰 페크니츠'가 사망하는 날 이전까지 매년 150만 제국마르크의 연금을 지급받는다.
서류에는 이 내용을 보장한다는 '로엔그람 공작의 서명'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를 본 페크니츠 공작은 크게 안도하며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흔쾌히 서명을 마쳤다. 용무가 끝난 공작은 그간 흘렸던 식은땀을 손수건으로 마구 닦으며,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재상부를 떠나 자택으로 돌아갔다. 이후 더 이상의 등장 없이 딸과 함께 평화롭게 작품에서 퇴장.3. 여담
- 어떻게 보자면 양 웬리가 그토록 원하던 삶을 거머쥐게 된 인물. 타고난 성품이 유순하고 평범한 덕후로서 살며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과분한 지위를 받았지만 권력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고, 나라가 망했는데도 신 체제에서 대접받은 승리자로 남았다. 어린 나이에 즉위해 권신의 꼭두각시로 살며 음모에 희생당하다가 끝내 실종되어 생사조차 불분명해진 에르빈 요제프 2세, 내란을 일으켰다가 모조리 끔살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 아버지들의 욕심에 휘말려 에르빈 요제프처럼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브라운슈바이크의 딸과 리텐하임의 딸과는 하늘과 땅 차이의 결말이다.
- 딸 카타린과 마찬가지로 언급은 꽤 되지만 등장 횟수는 단 1회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대사 한마디도 없다. OVA에서도 10초 정도밖에 안 나왔다.
[1] 라인하르트에게 선양하는 장면이다.[2] 성명 불명.[3] 그의 외조부인 선선제에 대해서 원작과 후지사키 류 코믹스판, DNT에서는 루트비히 3세, OVA에서는 오토프리트 5세라고 나오는데 외전 2권의 황제 리스트를 보면 오토프리트 5세가 맞다. 원작의 경우에는 다나카 요시키가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계보도를 그려놓고 시작한 게 아니고, 계보도를 그릴 때도 작품 내용을 세세하게 반영해가며 작성한 게 아닌지라 족보에 없는 황제가 등장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생긴 일.[4] 엄밀하게 말하자면 후보 1순위로는 카타린 케트헨이 아니라, 아버지인 페크니츠 자작 본인이 올라와있어야 한다. 30대의 나이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문제도 없으니 응당 황제가 되기에 부족한 점이 없기 때문. 그런데 오베르슈타인이 자작을 후보에 넣지 않은 이유는 혹여라도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한 사람을 후보로 올렸다가 귀찮은 일이 발생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5] 결국 로엔그람 공작과 오베르슈타인이 원했던 것은 오직 허수아비로써 잠시 옥좌에 있을 존재, 여기에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 세운 골덴바움 왕조의 권위와 전통을 송두리째 무시하고 몰락한 골덴바움 왕조와 구 문벌귀족 잔당들을 조롱한다는 의사를 한껏 담아올린 것이다. 미치하라 카츠미 코믹스 판에서도 카타린 케트헨 1세의 대관식에 참석한 대신들이 일곱 살짜리 황제에 이어 생후 8개월짜리 아기가 즉위하는 걸 지켜보며 골덴바움 왕조의 권위와 전통도 모두 끝났다고 생각한다.[6]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비롯한 다른 문벌귀족들이 평민들을 같은 인간으로도 취급하지 않고 학대를 일삼다가 끝내 희대의 학살사건을 일으킨 것과 대조적이다.[7] 자유행성동맹에 대한 대규모 원정계획인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승전 이후 동맹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성립한 바라트 화약 등은 모두 제국 재상 라인하르트가 수하들과 논의하며 원하는대로 처리하였다.[8] 다만 굴욕이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는 가운데에서도 야심은 커녕 권력에 대한 관심도 없던 페크니츠 공작은 불만을 갖기는 커녕 로엔그람 공작이 언제 생각을 바꿔서 자신과 딸을 제거할지 공포에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