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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08 00:53:02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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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유미리
柳美里|Yu Miri
파일:external/trendy.nikkeibp.co.jp/01.jpg
출생 1968년 6월 22일
일본 이바라키현 츠치우라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직업 극작가, 소설가
학력 요코하마 공립 학원 고등학교 중퇴
종교 천주교 (세례명: 테레사 베네딕타)[1]
수상 1993년 기시다 구니오 희곡상[2]
1996년 이즈미 교카 문학상[3]
1996년 노마 문예신인상[4]
1997년 아쿠타가와상[5]
2020년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6]
1. 개요2. 생애3. 소송 문제4. 근황5. 저서6. 여담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공식 사이트 트위터

재일교포 일본 소설가. 고등학교를 중퇴하는 등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으며 유부남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서 화제가 되었다. 대표작 중 하나인 <가족시네마>로는 아쿠타가와상[7]을 수상했으며 박철수 감독이 영화화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인터뷰

오쿠다 미와코가 부른 곡들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으며 개인사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분위기는 우울한 편이다.

2. 생애

유미리는 1968년 6월 22일 이바라키현 츠치우라시에서 태어나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츠루미구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실어증과 부모의 별거, 가출, 정신병원 입원, 자살 시도 등 불행의 연속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실어증을 겪고 이지메를 당해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했으며, 중학생 시절에는 술, 담배에 빠져들었고 2학년 때 위스키를 마시고 물에 뛰어들어 또다시 자살을 시도했다.[8] 이후 요코하마 공립 학원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나 가출과 무단결석이 잦았고 성적도 좋지 않아 1년만에 퇴학당했다.

퇴학 이후 도쿄 키드 브라더스에 입단해 17세부터 희곡을 작성했으며 1986년 극작가로 데뷔한다.

3. 소송 문제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소설을 둘러싼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를 침해했다고 고소당했다. 2002년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까지 가서 싸울 정도로 격화되었고, 결국 출판금지명령이 내려졌다. 소설가들이 지인 등 주변인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허락을 구하지 않고 소설의 주제로 남용하는 것은 어제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라서, 2020년 한국에서도 유미리의 이같은 논란이 김봉곤 작가[9] 논란으로 재현되기도 하였다. 사적대화 노출, 초유의 소설 환불·작가상 반납 사태 불렀다(종합)[10]

4. 근황

후쿠시마 원전 근처에 서점을 낸다는 소식이 2018년 3월에 알려졌다. 기사

유미리는 원전 사고가 난 뒤 1년이 지난 뒤부터 미나미소마 시 재해방송국에서 방송을 진행하며 재난 피해자들을 위로해주다가 2015년 4월 살고 있던 가나가와 현 가마쿠라의 집을 처분하고 남편, 동거인과 함께 미나미소마 시로 이사했다.

서점을 개업한 동기는 인근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전차를 기다리는 동안 들를 곳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라고 한다. 해가 저물면 전차는 1시간 반에 1대밖에 오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열악하다고 한다.

2020년 11월 18일, 71회 전미도서상에서 소설 <우에노역 공원출구>라는 작품으로 번역 문학 부문을 수상하였다. 중앙일보 기사

5. 저서

1996년 《풀하우스》
1997년 《가족 시네마》[11]
1997년 《물가의 요람》
1997년 《타일》
1998년 《골드 러시》
1999년 《여학생의 친구》
2000년 《남자》
2000년 《생명》
2000년 《가족 스케치》
2001년 《루주》
2201년 《세상의 균열과 혼의 공백》
2002년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2003년 《그 남자에게 보내는 일기》
2004년 《8월의 저편》
2005년 《비와 꿈 뒤에》
2014년 《우에노역 공원 출구》[12]

6. 여담

고등학생 시절 '기다'라는 선생이 있었는데 언제나 유미리를 지지해 주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서 유미리의 퇴학 조치에 대한 교무회의에서 오직 기다 선생만이 유미리를 두둔하고 퇴학을 반대하였다. 결국 유미리는 퇴학당하고 말았지만 이후 기다 선생은 연극을 시작한 유미리의 희곡이 공연될 때마다 극장을 찾으며 격려하였다. 폐암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계속 극장을 찾으면서 격려엽서[13]도 수시로 보냈다고 한다.

2020년에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그이를 '자랑스러운 일본 작가'로 띄우려 시도한 일본 언론계에 "나는 한국인이다."라고 선언해 화제가 되었다. 불우한 과거에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

7. 관련 문서


[1] 성녀 에디트 슈타인의 수도명에서 따온 세례명이다. 2020년에 세례 받았다.[2] 수상작 <물고기의 축제>, 24세의 나이로 최연소 수상[3] 수상작 <풀 하우스>[4] 수상작 <풀 하우스>[5] 수상작 <가족시네마>[6] 수상작 <우에노역 공원 출구>[7]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이다.[8] 나중에도 수면제 복용이나 동맥 끊기 등으로 계속해서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9] 1985년생. 시인이자 청학동 훈장인 김봉곤과 다른 사람이다.[10] 링크의 연합뉴스 기사에서는 김봉곤 사태와 유사한 사례로 유미리의 사례를 들고 있다. 주변인의 경험을 허락없이 소설 등 작품의 주제로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표절인데다, 작가 스스로 자신의 창작능력을 부정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훔쳐 제것인 양 포장한 것이기 때문에 작가생활로써는 끝나는 것과 다름아니다. 실제로 2020년 이후 김봉곤이 주로 활약하던 문학동네와 창비에서는 김 씨의 수상실적과 작가 경력을 모조리 말소시켰다.[11] 1997년 116회 아쿠타가와상 수상[12] 2020년 전미도서상 번역 부문 수상. 이후 국내에서 영역본 제목 그대로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으로 재출간되었다.[13] "미리의 목소리로, 미리의 노래를 평생 쉬지 않고 부르도록 하세요. 그 노래에 공감하는 사람, 그 노래로 용기를 얻은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