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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54:04

유자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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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인물 ]
||<table width=100%><bgcolor=#180506><-4> 주역 4인방 ||
[[이휘|
파일:이휘 5:7.jpg
]]
[[이적(십이야)|
파일:십이야 이적 5:7.jpg
]]
[[유단아|
파일:유단아 5:7.jpg
]]
[[이원(십이야)|
파일:이원 5:7.jpg
]]
반란군 지원자
[[월영화|
파일:월영화 5:7.jpg
]]
[[선우서인|
파일:선우서인 5:7.jpg
]]
[[길무진|
파일:길무진 5: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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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록하|
파일:장록하 5: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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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국 왕실 관리
[[윤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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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겸|
파일:유자겸 5: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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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미송|
파일:마미송 5: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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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문서 ]
||<table width=100%><width=1000><table bgcolor=#f6b200><tablebordercolor=#942221> 등장인물 ||<width=33.4%> 설정 ||<width=33.3%> 무류 ||
가국의 영의정
유자겸
파일:유자겸.jpg
<colbgcolor=#000><colcolor=#c4a3e8> 현지화명 일본판 | 켄(謙)
나이 불명
가족 배우자
유단아
1. 개요2. 특징3. 작중 행적4. 평가5. 기타

[clearfix]

1. 개요

웹툰 십이야의 등장인물.

2. 특징

3. 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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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평가

딸 단아와 적의 말대로 욕심히 과한 사람. 욕심이 과해서 명을 재촉했고 딸 마저 고통스럽게 한 나쁜 아버지이다.

왕과 맞먹는 권력을 탐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적당히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정도였으면 반란이 일어나기 직전 선우서인에게 붙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다음 왕의 왕후 자리를 노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자겸의 권력욕은 단아 앞에서마저 앞길에 방해가 된다면 전부 자신이 처리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자식 앞에서 본보기를 보이지 못한다는 수치심을 권력욕이 아득히 넘어선 수준이라는 의미이다.

적와정변을 일으킨 전적 때문에 반란군에게 제거대상 1순위였다 하더라도 딸 단아 덕분에 진원왕이 유배를 보내는 선에서 끝낼 수 있었다. 만일 유자겸이 윤연리를 독으로 쓰러뜨리지 않아서[6] 단아가 진원왕에게 부탁했던대로 관직을 빼앗기고 남쪽으로 유배를 갔다면 역으로 반란군으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었고,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단아 또한 진원왕의 곁은 갖지 못하더라도 단아를 누구보다 아껴주는 홍에게 시집가서 잘 살 수 있었다. 당연히 단아가 기억을 잃는 일도 없다. 더 희망찬 상황을 가정한다면 홍은 대군의 신분을 돌려받고 단아는 부부인의 신분으로 셋이서 잘 살 수 있었으며 단아와 홍이 서로가 추억 속의 인연임을 알아보는 것까지도 기대해볼 수 있다. 차후 즉위한 왕은 부모의 죄로 자식을 바라보지 않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아가 비록 죄인의 딸로 유배를 가있다한들 대군과의 혼인을 윤허 못할 이유가 없다.

단아가 누명을 쓴 것은 유자겸의 잘못이 아니지만 고문까지 받은 데에는 유자겸의 잘못이 명백했다. 진원왕이 단아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단아에게 가혹한 형을 내린 목적 중 하나는 유자겸이 스스로 자백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유자겸이 현빈의 폐출을 주도하지 않았다면 그저 구두로 신문하는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고문을 명한 진원왕이 잘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7] 유자겸의 욕심이 없었다면 딸의 다리가 망가지지는 않았다. 아무리 늦어도 억울함을 호소하러 진원왕을 찾아갔을때까지는 기회는 있었다. 유자겸은 분명히 진원왕이 단아를 이용해 자신을 파직하겠다는 의도를 간파했다. 그때라도 관직을 포기했다면 유자겸은 지은 죄에 비해 안온한 결말을 맞을 수 있었으나 본인의 욕심이 너무도 과해 그럴 기회도 없애버렸다.

5. 기타



[1] 때린 이유는 유자겸이 폭탄발언에도 침묵하고 의견을 묵살하자 단아가 끝내 아내를 언급했기 때문이었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었다.[2] 적와정변 당시 윤연리, 유자겸과 뜻을 같이했던 사람들의 이름과 지장이 쓰여있는 명부.[3] 우리가 여전히 한 패라는 증거를 보여주어야한다고 빙빙 돌려서 말한다.[4] 왕은 아들(현빈 소생)이 죽었고 유자겸은 딸이 누명을 써 입지가 위태로워진데다 왕이 이 일로 유자겸을 축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유자겸 하나 없애자고 아들을 죽이지는 않을테니 둘다 손해를 본 셈인데 중전의 자리를 두고 경쟁 중인 황세형은 아무런 손해가 없었기 때문.[5] 반란군. 나비가 단아의 죄를 뒤집어써주겠다고 했고 그 대가로 대비전의 궁인들을 반란군으로 채워달라고 했다. 유자겸은 당시에는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나 대비의 상태를 호전시켜 유자겸의 여죄를 드러내고 진원왕이 유자겸을 처단하게 만들 목적이었다.[6] 황세련이 왕자를 독살하려는 계획은 그대로 진행되었을 수 있다. 처소 곳곳에 사특한 물건과 부적을 놓았고 단아의 텃밭에 독초를 심기까지 했으니 간택되었다하더라도 현빈이 낳은 왕자를 불안하게 생각하여 시해하려 했을지도 모른다.[7] 그 스스로도 죄 없는 단아를 이용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갖고 있긴 했다. 도중에 진범이 나타났을 때 오히려 유자겸에게 기회가 될 수 있는 부분을 간과한 것도 진원왕의 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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