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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24 20:14:40

유진 스미스

윌리엄 유진 스미스
William Eugene Smith
파일:유진 스미스.jpg
<colbgcolor=#fff,#191919> 본명 윌리엄 유진 스미스
(William Eugene Smith)
출생 1918년 12월 30일
캔자스주 위치타
사망 1978년 10월 15일 (향년 59세)
애리조나주 투손
가족 아버지 윌리엄 H. 스미스
어머니 네티 스미스[1]
배우자 에일린 미오코 스미스[2] (1971년 결혼)
직업 사진가, 저널리스트
활동 1934년 ~ 1978년
1. 개요2. 생애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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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사진 저널리스트.

2. 생애

미국 캔자스 주 위치타에서 출생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비행기 따위의 항공기에 관심이 많아 부모님께 항공기 사진을 사 달라고 졸랐는데,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사진기를 주며 비행기 사진을 사는 대신 집 근처에 있는 비행장에서 직접 찍어보지 않겠냐고 하여 사진 촬영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10대 시기부터 지역 잡지에 자신이 찍은 사진이 실리는 등 사진에 조예가 깊었으며, 아칸소강이 말라붙은 사진을 촬영해 중남부의 가뭄 문제에 대해 고발하는 등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대학교에 진학해 잠깐 공부를 하다 중퇴한 뒤, 다양한 잡지사에서 일하다 라이프 사에 입사했다. 라이프에서 일하던 중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종군작가의 신분으로 1943년부터 사이판, , 이오지마, 오키나와태평양 전쟁의 주요 격전지를 돌아다니며 미국 해병대와 일본군 포로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남기며 활약하여 명성을 얻었다.

일본의 미나마타병을 고발하여 세상에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하였으나, 1972년 공해를 일으켜 미나마타병의 원흉이 된 회사인 신일본질소비료(新日本窒素肥料, New Japan Nitrogenous Fertilizer Company)[3][4]가 고용한 폭력배에게 보복성 폭행을 당하여 척추 손상 및 한쪽 눈 실명을 당하는 중상을 입었다.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이후 1978년 뇌출혈로 사망한다.

3. 기타


[1] 결혼 전 성씨는 (Lee)[2] 혼전 성씨는 "스프레이그"(Spraig).[3] 현재는 사명을 칫소(チッソ, Chisso)로 바꾸었다.[4] 당시 신일본질소비료 주식회사 대표이사 사장 요시오카 키이치(吉岡喜一)와 미나마타시장인 하시모토 히코시치(橋本彦七)와 나카무라 토도무(中村 止)가 정경유착 관계라서 신일본질소비료의 범죄 행위를 미나마타시가 눈감아 주었다. 특히 하시모토 시장은 신일본질소비료 임원(공장장) 출신이라서, 정경유착 관계 초석을 다지고나서 미나마타병의 단초를 제공했다.[5] 유진 본인을 포함, 대외적으로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조선인 무장단체로 공표되어 있으나 실제론 21세기 필리핀 파병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