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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0 16:58:22

윤성환/선수 경력/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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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즌 전2. 페넌트 레이스
2.1. 4월2.2. 5월2.3. 6월2.4. 7월2.5. 8월2.6. 9월
3. 총평

1. 시즌 전

도박 사건의 여파로 스프링캠프 때 제대로 훈련하지 못했던 2016시즌과 달리 이번에는 제대로 훈련하면서 더 좋은 컨디션과 실전감각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아 2017시즌도 좋은 활약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롯데 자이언츠, 넥센 히어로즈와의 두차례 선발 등판 경기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2. 페넌트 레이스

2.1. 4월

2일 KIA전에서 선발 등판해 6이닝 7피안타 6탈삼진 2볼넷 3실점(2자책점)으로 시즌 1승을 수확했다. 6회초 도중 벌에 왼쪽 팔을 쏘여 경기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계속 투구했다.

8일 KT전에서 선발 등판해 8이닝 84구 3피안타 1실점(무자책점)으로 엄청난 호투를 보여주었지만 팀 타선이 무사 만루와 1,3루에서 삽을 푸는 등 점수를 내지 못해 완투패했다.

14일 롯데 전에서 6.1이닝 6실점 으로 부진했다. 1회말에 2사후 급격히 제구력 난조를 보여 4실점한것이 아쉬운 점이다.

20일 1회에 2루타 2개 맞고 실점 주고 불안하게 시작 했으나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다.

26일 KIA 전에서 3회를 제외한 6회 2아웃까지 잘 잡았으나 집중타로 6이닝 6실점으로 부진했다.

2.2. 5월

2일 두산 전에서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지만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다.

10일 6.2이닝 1자책으로 호투했지만 불펜의 불질과 물빠따로 노디시전.

16일 인천 SK전에서 7이닝 2실점 8K 3피안타 4사사구 기록하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날 나름 명언을 남겼는데, 6.2이닝 막은 상황에서 실점 위기에 몰리자 투수코치가 올라갔고, 윤성환이 교체를 거부하면서 한 말이
파일:근데 진짜 누가 막지.gif
"누가 막아요 누가 막아 예?[1]"
누구한테 맡기고 갑니까 예?
누가 막아요 씨x 예?
누가 막아요, 정말, 씨
현재 삼성의 현 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란 소리까지 들었다. 참고로 자기가 막았다. 괜히 몰락한 왕조를 지탱하는 최후의 황태자 소리를 듣는게 아닌 듯 하다...

5월 21일 경기에서 김태균의 몸을 맞혀 출루시키자 김태균과 논쟁이 살짝 있어 보였는데[2], 그 후에 윌린 로사리오의 몸마저 맞추는 바람에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고 말았다. 결국 벤클 도중에 덤벼든 정현석에게 밀쳤을 뿐인데 퇴장당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상대팀 한화의 선발투수 비야누에바와 삼성의 동료 외인 투수 재크 페트릭까지 4명이 퇴장당하고 말았다. 윤성환은 벤클로 인한 퇴장은 아니다. 기록을 보면 다른 3명은 폭력행위로 퇴장이지만, 윤성환은 빈볼로 퇴장당했다. 1차 벤클 이후 첫타자인 윌린 로사리오에게 138km짜리 패스트볼을 바로 던진건 명백히 빈볼성이 다분한 것으로 보인다.[3]

결국 6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게 되면서 로테이션을 최소 한번은 거르게 됐다.

그러데 이 사건의 여파인지 5월 23일 한화의 김성근 감독이 경질되었다! 한화 팬들의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졌고 노리타를 뺀 한화팬들은 칰복절이 왔다며 기뻐하고 있으며 한화팬들에게 욕을 먹던 윤성환은 '빅픽쳐를 그린 적폐청산의 윤열사라며 한화 팬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삼성전에서 펼쳐진 집단 난투극이 기폭제가 되어 한화 이사진들은 삭혀왔던 불신을 드디어 대폭발했다는 의견이 많은데 만원관중 홈경기에서 대형사건이 터졌고 이틀 후 한화 그룹은 사령탑 경질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스포츠단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룹 입장에서 철퇴를 가하기 이보다 좋은 타이밍은 없다는 기사까지 떴다. 결국 윤성환의 빈볼이 김성근 경질에 결정적 역할을 한 셈. [4]

5월 30일 대구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7이닝 1실점의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팀타선이 상대 선발 박세웅에게 완전히 막히며 또다시 불운의 패전투수가 되었다.

2.3. 6월

6월 4일 대구 기아전에서 4.2이닝 9자책으로 인생 최고로 털렸다. 이날 제구가 잘 안잡히며 많은 피안타를 만들었고 득점권에서 실책+안타가 나오며 망했다. 믿던 윤성환이 폭탄을 던져버려서 5연승에 차질이 생길 줄은 아무도 몰랐다.

6월 13일 포항구장에서 벌어진 KT전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팀도 4대0으로 완승했다.

6월 18일 대구 sk전에서 7.2이닝 2실점이라는 호투를 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1회에 투구수가 24개만 아니었으면 완투를 노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팀도 아슬아슬하게 7대5로 승리함으로써 승리투수가 되었다.

6월 24일 대구 한화전 7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다. 타선의 지원에 힘입어 이날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2.4. 7월

7월 6일 포항 롯데전에서 6이닝 4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올해 롯데에게 단 한 차례도 이기지 못하고 있다.

7월 12일 수원 kt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지난 초기에 1실점 패전투수와는 대조적으로 타선지원을 잘받았다.[5]

7월 20일 울산 롯데전에서 6이닝 3실점으로 퀄리티스타트를 했으나, 팀은 4:4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로써 17년 시즌 롯데전 무승기록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7월 27일 대구 홈경기, nc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깔끔한 투구내용을 보여주며 시즌 평균자책점을 3.84까지 끌어내렸다.

2.5. 8월

1일 대구 두산전에서 4이닝 6실점(5자책)으로 털렸다.

12일 대구 롯데전에서 초반에 뚜들겨맞았다가 이내 무실점 투구를하며 7이닝 5실점(4자책)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1,2이닝 5실점 후 3이닝부터 추가실점없이 뛰어난 위기관리능력을 보여주었다.이날 타선의도움으로 대역전과함께 롯데전 첫승리를 챙길수 있었다.

18일 수원 kt전에서 9이닝 1실점 하고 승리를 하지 못하는가 하였으나 10회초에 4득점하여 시즌 9승을 챙겼다. 연장으로 완투는 하지못했지만 총 투구수 110개를 기록하며 에이스의 건재함을 보여주었다.[6]

2.6. 9월

9월 7일 사직 롯데전에 선발등판해서 6이닝 7피안타 2피홈런 4실점 4자책을 기록하였고, 타선의 지원의 힘입어 시즌 10승째를 거두었다. 이는 본인 커리어에서 5시즌 연속 시즌 10승달성이기도 하다. 개인 통산 120승 역시 기록하였다.

9월 13일 한화전에서 11승에 성공했다. 6이닝 4탈삼진 5피안타 2볼넷 4자책을 기록하였는데 적지않은 실점에도 불구하고 타자들의 도움으로[7] 승리투수가 되었다. 역시 아홉수를 넘으면 뭐든 쉽다.

9월 21일 LG전 12승째를 거두었다. 6이닝 7탈삼진 5피안타(1피홈런) 2볼넷 1자책으로 매우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에이스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6년 연속 170이닝 소화를 달성했다.역시 이닝이터!!! 이만하면 꾸준함의 대명사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9월 27일 어깨 통증으로 관리 차원으로 최충연과 함께 1군에서 말소되며 시즌을 마감했다. 개인통산 1200삼진까지 1개만 남겨둔 상황이었으나, 기록 달성은 내년으로 미뤄지게 됐다.

3. 총평

삼성의 정상급 투수로 활약해준 마지막 시즌이자 이 해에도 10승 이상을 기록했다. 윤성환의 전성기 2011-2017년의 마지막 시즌.

나이도 이제 37세로 투수로써 노쇠화가 오지 않는게 이상할 나이인지라 롤러코스터 모드를 보였지만 그래도 와르르 무너지지 않고 어떻게든 로테이션을 지켜서 10승 이상을 달성했으니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고 할 수 있다.


[1] 근데 두번째 누가 막아요는 누가 막아요보단 후술하는 정말에 가까워 보인다.[2] 훗날 김태균이 방송에 나와 봉중근 해설과 벤치클리어링 관련해서 얘기하길 그 선배(윤성환)는 공 반개를 존에 넣었다 뺏다 하는 사람인데 이건 일부러 들어온거다라고 바로 느꼈다고.[3] 훗날 윤성환의 승부조작 혐의가 드러난 뒤에는 이 빈볼 역시 승부조작 제의로 볼넷이나 사사구 내주기를 요청받은 게 아니었냐는 추측이 팬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4] 마카오 도박 사건도 그렇고 지도자를 날려버린 덕인지 삼갤에서는 재규환이라고도 부른다. 타갤에선 간혹 칩규환이라고도 부르는 듯.[5] 이날 라이온킹이 홈런과 3타점 적시타로 하드캐리했다.[6] 이 날 통산 1600이닝을 돌파했다.[7] 특히 5안타 6타점의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다린 러프의 활약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