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 의사 폭동[1] Doctors' riot | ||
<colbgcolor=#bc002d> 발생일 | 1788년 4월 | |
발생 위치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
유형 | 폭동 | |
원인 | 의사들의 시체 도굴 및 영향력에 대한 반발 | |
인명피해 | <colbgcolor=#bc002d><colcolor=#fff> 사망 | 6 ~ 20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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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788년 뉴욕에서 의사들의 무분별한 시체 도굴 및 과하다 싶을 정도의 영향력[2]에 분노가 쌓인 민중이 폭발했던 사건.
2. 전개
한 의사의 집 앞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자 그 의사는 아이들을 내쫓기 위해 시체의 팔을 그들에게 흔들며 "이건 너네 어머니의 팔이다! 이렇게 되기 싫으면 썩 꺼져!"라며 아이들을 내쫓았는데 아이 중 한 명은 울며 아버지에게 찾아가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고 분노한 아버지가 묘지에 가 무덤을 파보자 진짜로 시체가 사라져 있었다. 이것을 계기로 의사 폭동이 시작되었다.3. 배경
해부연구용 시체, 그러니까 카데바가 공식적으로 공급되기 전까지는 의사들, 특히 외과적이나 직접적인 조치를 취해야 했던 의사들은 해부학용 시체가 필요했고 시체 도둑질을 했는데 기원전부터 생물학에 연관이 있던 우리가 알만한 과학자들도 상당수가 시체를 훔쳤다.[3] 해부 자체가 망자의 육체를 훼손하는 만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망자를 모욕하는 행위였고 서양권에서도 공식적인 해부는 대역죄인들에게만 행해졌을 정도였다. 그럼 왜 18세기가 다 돼서야 이 사건이 터졌냐면 이전까지는 의사들의 도굴 대상은 유색인종, 하층민, 외부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었고 사회에서도 알 사람들은 아는 암묵적인 병폐였지만 의사들은 그것만으로는 만족을 못 했고 결국 일반 시민들의 묘까지 건드렸기 때문이다.당시 의사들은 의학과 전혀 관련없는 부분에도 간섭하고 자문, 감독을 맡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의술과 의사들의 수준은 형편없어서 공식적인 자격제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도제식[4]과 2년제 대학에서 졸업하는 것만으로 너무나도 간단하게 의사가 되는 등 의사 집단의 병폐가 끝을 달리고 있었다.
4. 과정
아이의 아버지를 중심으로 사람들은 뭉쳐서 그 의사를 포함한 뉴욕의 의료시설들을 습격했지만 높으신 분들 및 의사들은 진작 다 도망가고 수습인원들만 연구자료를 지키고 있었고 갈 곳을 잃은 분노는 폭동으로 번졌는데 감옥을 점거해 죄수들을 풀어주었고 정부에 숨겨놓은 의사들을 내놓으라고 했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군대가 투입되었고 시민들은 설마 시민들에게 총을 쏘겠냐며 대치하고 있었지만 시민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기를 주저했던 경찰들과는 달리 군대는 주저없이 시민들에게 방아쇠를 당겨 버렸다.[5] 결국 그들은 진압당했고 이후에도 사람들은 모였지만 더이상 이만큼 대규모로 뭉칠 수 없게 되었다.5. 결과
이 사건은 의학 연구와 교육의 발전을 위한 시체 확보 문제와 관련된 윤리적,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오늘날에도 의학 연구를 위한 시체 확보는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으며 이를 위한 윤리적 기준과 법적 규정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이후 시민들의 묘를 도굴하지 않겠다고 확답을 받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전부터 끊임없이 시체도굴을 당하던 흑인들과 하층민들도 이 폭동에 참여했음에도 그들의 시선 밖에 있었는데 여전히 의사들의 도굴 먹잇감이었고 교대로 무덤을 경비하는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몇백년간 문제는 여전했다.FM에 올라온 미국이 실제로 일으킨 사건들 모음들[6]]
이 사건이 결정타가 된 건 아니지만 이 사건과 일련의 사건들로 인하여 하층민들의 의료계에 대한 감정은 악화 일로를 걷게 되었다. 그 중 한 예가 코로나19 당시 백신 반대[7]라고 볼 수 있다.
6. 기타
이 사건 3년 전에 미국이 독립했고 1년 후 프랑스 혁명이 터졌고 또다시 몇년 후 쿠바가 독립한 만큼 지배계층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던 걸 생각하면 당시 미국 시민들이 의사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의외로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건인데, 다룬 책도 한두 권이 전부이며 인터넷상에도 관련 글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참고로 해부학을 위해서는 죽은지 얼마 안 된 신선한 시체가 좋으며 당시의 기술상 완벽한 사망 진단이 힘들어 묘지에 묻힌 사람들 중 일부는 아직 살아있었기 때문에 '의사들 중 일부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생체실험을 했을 수도 있다.'는 무서운 상상도 가능하다.
[1] 후술된 대로 의사들이 폭동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에 의사 폭동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의사가 폭동을 일으킨 주체가 아니다.[2] 근세부터 근대까지 의사들은 유대인의 랍비 그 이상의 권리를 행사했는데 의학과 전혀 관련없는 부분에도 의사들이 간섭하고 자문, 감독을 맡았다고 한다.[3] 대표적인 사례가 아이작 뉴턴이다.[4] 현재 대학원생들이 박사가 되는걸 생각하면 된다. 물론 더 형편없었지만[5] 극단적으로 줄이면 이 말이 맞기는 한데, 사실 당시 사령관은 폭력 진압을 막으려 했는데 시위대가 던진 것에 맞아 눈이 돌아가버려 그만...[6] 전부는 아니다[7] 실제로 터스키기 매독 생체실험사건나 20세기 초 의사들의 환자들의 의사와 무관한 비인도적인 방사선 실험등이 일어났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