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로마 제국의 황후에 대한 내용은 이리니 팔레올로기나(마테오스)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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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Irene Palaiologina
생몰년: 1315년 ~ ?
재위 기간: 1340년 ~ 1341년
1. 개요
트라페준타 제국의 13대 황제. 트라페준타 여제 3명 중 2번째 여제이다. 안드로니코스 1세 기도스와 함께 트라페준타 역대 황제 중 유이한 비(非) 메가스 콤니노스 가문 출신 황제.2. 생애
이리니 팔레올로기나는 동로마 제국의 황제 안드로니코스 3세의 사생아로, 트라페준타 제국의 황제 바실리오스는 그녀를 황후로 삼아 동로마 제국과 결혼 동맹을 맺었으나 그는 황후에게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이리니라는 동명이인의 다른 정부(情婦)를 두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았다. 황후 이리니 팔레올로기나는 이런 남편의 행태에 불만을 품었고, 결국 1340년 그를 독살하고 제위를 찬탈함으로써 앙갚음을 하였다.이리니 팔레올로기나는 바로 자신을 여제로 칭했다. 그러나 그녀의 반대파 역시 바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녀가 데려온 용병 등은 이리니 팔레올로기나를 지지하는 세력이었고, 스콜라리 세력이나 트라페준타의 호족 연합은 이리니 팔레올로기나에 반대했다. 그러나 반란군은 단결력이 매우 형편 없었기 때문에 곧 이리니의 조직적인 진압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동시에 투르크 족이 침공해 왔는데, 첫 번째 공격은 어찌어찌 격퇴할 수 있었지만, 2번째 공격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투르크 측에 전염병이 퍼지며 가까스로 막아낼 수 있었다. 2차에 걸친 투르크의 침공으로 완전히 피폐해진 이리니의 세력에 전에 살아남았던 반란군 세력이 다시 결집하여 도전을 해왔다. 호족 연합은 이미 수녀가 되어 있던 안나를 옹립해 트라페준타로 진격했고, 스콜라리 세력은 지난날 바실리오스와 함께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피해 있던 미하일을 옹립했다. 안나는 이리니를 쫓아내는 데 성공했고, 뒤이어 미하일도 트라페준타에 도착했다. 이리니 팔레올로기나는 배에 태워져 친정인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려보내졌고 이후의 행적은 불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