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출신의 배구 선수에 대한 내용은 이바나 네소비치 문서 참고하십시오.
[clearfix]
1. 소개
붉은 여우에 나오는 가상의 국가.붉은 나라라 불리는 아름다운 나라, 이바나.
이바나는 홍매화가 피는 나라여서 붉은 나라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붉은 여우'가 사는 나라이기에 붉은 나라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바나는 홍매화가 피는 나라여서 붉은 나라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붉은 여우'가 사는 나라이기에 붉은 나라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아사가가 다스렸던 나라이며, 여우로 인한 사건이 난 20년 후에는 아사가의 아들, 29대 군주 유진이 다스리고 있다. 구 왕조의 상징색은 붉은 색이었으나 유진을 시조로 하는 신 왕조가 들어서면서 보라색으로 바뀌었다.
민간 신앙(군주는 곧 하늘이 내린 경외해야 마땅한 신적 존재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중앙집권체제로 유지되며 문치주의 상업국가. 실리주의적, 자본주의적 성향 외에 자국 중심주의, 자민족 중심주의가 강하며 운명론적 가치관이 특징. 폐쇄적이며 가문중심적이다.
관료 제도는 6조 체제지만 그 외에 대신녀 1명과 보좌신녀 2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천신당이라는 기관이 존재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의 이름을 합쳐서 이름을 지어준다. 법적 성인으로 인정받는 나이는 12살이며 혼인이 이때부터 가능해진다.
왕족과 그 인척이 된 일부 고위 관료들만 아는 사실로 신 왕조가 타파하기 전까지 구 왕조 왕족끼리는 적극적으로 자주 같은 가문의 3촌 이상부터 근친혼을 했다. 이에 따라 일부 귀족들도 몰래 조금씩 근친혼을 했다. 붉은 눈을 왕족, 즉 신적 존재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 물론 매번 근친혼을 하지는 않았고, 왕가는 종가, 분가가 나눠져서 분가에 있는 먼 친척과 혼인을 하기도 했다. 여자들은 가문을 바꾸기도 했다. 누국과 더불어 왕가에서 후궁 제도를 실행한 것도 붉은 눈의 후손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왕족 근친혼을 금지하려는 노력은 이전부터 왕왕 있었으나 붉은 눈에 대한 대신들의 집착은 곧 왕족에 대한 충성으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쉽사리 붉은 눈을 그만두진 못했다. 이에 따라 나라는 번영하지만 왕족의 수가 점점 줄고, 상업 발전으로 신분제가 점차 약해지면서 왕족의 권위도 많이 쇠퇴, 하락했다.
일부일처제를 기본으로 하지만 경제적으로 부유하여 여러 부인을 둘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을 가진 경우에는 나라의 허가를 받아 여러 부인을 둘 수 있다.
주위에 대국이자 중심국인 누 외에도 안라, 서야 등의 제후국이 있다. 이방인이 이바나에 정착하려면 귀화해서, 이바나 사람과 혼인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
이 나라의 홍문관 대제학은 실록을 기록하는 밀명을 받들고 있는데 이는 그 가문 사람들만 알고 있다. 가문의 장자는 무조건 밀명을 받드는 것을 소명으로 삼아 대대로 문관을 맡은 문가귀족. 유진의 후궁 아리산의 가문이다. 실록의 이름은 요호록. 아명이 요호였던 군주가 당대 대제학에게 밀명을 내렸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토지의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져있고 바다가 끼어있지 않아 물 공급이 어려워져 논농사를 하지 못해 쌀을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이 한정적이라 대부분은 밭농사, 밀농사를 한다. 국민들 대부분이 자영인, 공업인, 상인으로 주 생산품은 의류, 가구와 같은 생활용품이었는데 국가적으로 예술 산업을 장려, 미적 가치를 지닌 생산품을 많이 만들어내며 타국으로의 수출 활동도 활발하다.
가장 많이 수출하는 품목은 옷감, 가장 많이 수입하는 품목은 쌀과 육류, 어패류와 같은 식품류가 대부분이며 저장식품이 발달했다.
상업 활동을 위해 도로가 발전하면서 운송업, 숙박업이 발달하였으며 국민들 대부분이 생활수준이 높다. 상업 활동 장려를 위해 서민 교육이 행해지면서 문맹률이 낮지만 귀족 사대부들과 같은 수준의 고등 교육이 아닌 기본적인 글과 숫자를 읽는 수준의 교육.
백성들의 생활력이 올라가면서 공연문화가 발전해 예술, 문화적으로 크게 번영했다.
성별에 대한 차별은 없으나 왕족을 신적 신분으로 여기면서 엄격한 신분제도를 유지하여 귀족-평민-노예 계급으로 나눠지는데 평민과 노예의 경계는 차츰 사라지면서 돈만 있으면 평민 신분으로 올라갈 수 있다. 귀족 신분은 자기들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귀족과 평민의 생활을 완전히 분리시키려 하여 귀족들의 거주 지역과 평민들의 거주 지역을 완전히 나누고 생활용품에도 계급을 나누어 귀족들은 귀족들만 쓸 수 있는 물건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 또한 후에는 평민들의 의복과 생활수준이 귀족과 거의 비등한 수준으로 올라가 크게 경계가 없어지면서 거주지역만 구분된다.
본편 시점에서는 평민들의 경제력이 향상되면서 귀족들도 상업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고, 이후에는 귀족들이 자본과 지위를 이용한 대규모 상업 활동에 들어가면서 대량생산으로 시장이 변동 중[1]이며 서구 문물이 들어오고 있다.
2. 나라 이름의 유래
나라 이름의 유래는 바로, 붉은 여우의 본명이다. 그의 본명은 '이바나'로 이 나라의 이름은 붉은 여우의 이름을 따 온 것이다.[2]
아주 옛날, 이바나는 붉은 여우가 다스리던 나라였다. 이바나의 왕족들[3]의 동공이 붉은 이유는 붉은 여우의 자손이기 때문. 이 왕족의 붉은 눈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신 왕조의 왕권을 위해 유진이 바리에게 내린 명령으로 지워진다.[4] 기록도 남아있지 않고 시조가 붉은 눈이었다 정도로만 기억되게 되었다. 일시적으로는 신 왕조의 당위성에 도움을 주지만 점차 왕권이 약해지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여우의 자손인 만큼 폭정을 휘두르고 살육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신리가 바리에게 해준 말에 따르면 이 기질은 다른 피도 많이 섞이면서 어느 정도는 희석되었으나 후대 왕족들은 매우 불안정한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3. 역대 군주
- 1대 이바나
이바나 이전에 있던 나라의 군주가 후사없이 전염병으로 죽자 이를 알고 쳐들어온 누국의 3만 군사를 홀로 몰살시켜 추앙받았다. 이 때에 그의 이름을 따서 개국된 이바나는 이전 나라의 정치 체계를 따르며 안라, 누 등과 휴전 조약을 맺고 전쟁으로 인한 국고 손실 회복에 주력했다.
붉은 눈에 노화하지 않으며 풍채가 좋고 키가 6척이 넘는 장신에 얼굴은 여자보다 고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그를 크게 흠모해 신격화했다. 하지만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 술과 여자만 곁에 두며 매일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폭군이었다. 실질적인 정치는 영의정 기리부가 맡았는데 기리부는 왕의 방탕한 생활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그의 놀음에 비위를 맞춰주었다. 이바나의 손에 죽은 신하만 50명, 하인은 300명이 넘었으나 모두가 두려워해 그의 악행은 묵인되었다.
법적으로 5명의 부인, 15명의 후궁이 있었지만 귀족 규수, 여관, 하녀 등 신분을 가리지 않고 많은 여자들과 매일 잠자리를 가졌다. 하지만 한 여성과 많아야 두세 번 잠자리를 했으며 대부분 한 번만 찾았다. 회임한 여성은 3분의 1도 되지 않았으며 회임했다해도 아이와 산모가 같이 죽는 게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은 태어나더라도 이유없이 돌연사해 5살을 넘기는 아이가 절반도 되지 못했지만 재위 기간 태어난 아이는 168명, 그 중 성인이 된 건 30명도 넘지 못했다. 이후 행방불명된다.
- 2대 이도
이바나의 장남. 이바나의 뒤를 이어 군주가 되었지만 아버지를 닮아 성질이 괴팍하고 술과 여자에 빠져 살았다. 재위 2년만에 동생 이한에게 살해당한다.
- 3대 이한
이바나의 차남. 비록 폭군이었으나 그의 시대부터 그나마 군주가 일하기 시작했다.
폭군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하룻밤 상대였던 어머니, 목숨을 걸어야할 정도로 힘겨웠던 자신과 형제들의 탄생에 매우 괴로워했다. 이성적이면서 감성적인지라 자신을 포함한 이바나 일가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자신들은 아버지처럼 되지 말자는 일종의 연대감을 넘은 강박감을 느꼈다.
그런 그로서는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형의 태도에 크게 실망할 수 밖에 없었고 어느순간 형을 목졸라 죽인다. 정신을 차린 그는 대신들이 자신을 아버지를 볼 때처럼 두려워하는 걸 느낀다. 이내 모든 걸 빠르게 잊은 그는 3대 군주가 되었다.
지나치게 예민했던 그는 다른 형제가 자신처럼 왕좌를 탐낼까봐 두려워 남자 형제들과 그 자식들은 모두 죽이고 이도의 가족인 조카와 형수까지 죽인다.
그리고 자신의 붉은 눈은 이바나 군주의 상징이자 하늘이 내린 존재라 주장하며 붉은 눈 왕족을 감시, 보존하기 위한 장소인 정업원을 만든다. 이후 이전 왕국에서부터 이어진 6조 체제를 개편하고 국경선을 따라 성벽을 쌓았다. 여기에 반발하는 자들은 무자비하게 죽였기에 역시 이바나의 혈족이라는 말을 듣는다.
문란한 생활을 경멸해 더 엄격하고 보수적인 예법과 규정을 제정하고 후궁제도를 없애 그의 대부터 이바나는 일부일처제가 시행된다.
첫 부인은 그의 몽유병으로 죽고, 두 번째 부인은 그녀의 아버지가 심기를 거스르게 했다고 죽이고, 세 번째 부인은 아이를 갖지 못해 죽었다.
평생 자신이 죽인 사람들로 인해 끊임없이 괴로워하다가 깨끗이 잊는 것을 반복하다가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결국 43세에 자결한다.
- 4대 이사야
이한의 장남. 권력욕이 높아 제위하자마자 자신의 형제들을 모두 정업원에 보냈다. 일 자체는 열심히 했지만 서류를 처리하는 것도 매우 버거워하였다. 역대 군주 중 가장 무능한 군주였다고 평가받는다. 정확히 말하면 이전 군주만큼 큰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이 시기에 왕권이 가장 약했기에 그런 평가를 듣는 것 뿐이다.
학문은 모자라나 그림을 좋아하고 자식에게 상냥했다고 한다. 그의 치세에 이전 군주들이 행한 정치에 대한 불만(성벽 사업과 정업원으로 바닥난 국고 등)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조정은 날로 방탕해지고 왕권은 약해졌다. 게다가 국토 지형이 대부분 산지이고 토질이 좋지 않아 서쪽 강 일부 부근에서만 농사가 잘 되어 동서 지역 간 격차가 극심한 이바나의 상황에서 가뭄도 몇 년 동안 계속되어 무능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니 하늘이 노했다며 백성들도 불만스러워했다.
이 때 타국에서도 인정받은 고명한 학자인 그의 스승 만도가 실세가 된다. 그의 제안으로 이바나의 무속기구 천신당이 만들어진다.
충신 만도가 급사하기 전까지 만도와 천신당을 기반으로 왕권을 안정시키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다가 40세가 넘어 지병이 악화되어 병사.
- 5대 요이사
이사야의 외아들. 아버지와 달리 학문에 재능이 있고 문예 장려 및 바른 인재 등용으로 현군이라 칭송받았다. 그의 대에 3대 때부터 이어진 성벽 사업이 완료되어 이바나는 유례없는 평화를 누린다. 하지만 성벽이 이바나의 무역 활동을 더디게 만들고 점차 폐쇄적인 국가로 만들어 외교에서 고립된다.
애처가로 군후 아우라와 매우 사이가 좋았으나 자식복이 없어 자식들이 몸이 약해 대부분 요절하고 살아서 장성한 건 큰 딸 요아와 어린 아들 우요 뿐이었다. 아들의 6살 생일을 앞두고 급사하며 아우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
- 6대 우요
요이사의 아들. 몸이 약했으나 심성이 선하고 명민하여 부모와 대신들에게 귀여움받았다. 6살에 군주가 되나 너무 어려 대왕대비( 4대 군주 이사야의 군후로 보인다)가 대리청정을 맡았다. 하지만 외척 세력이 궐내 정사를 장악할 즈음에 7살 생일을 맞기 고작 며칠 전에 병사.
- 7대 노하
최초의 붉은 눈이 아닌 군주. 원래는 정업원에 거주하며 왕족을 모시는 학자였다. 하지만 50세(!)의 나이에 15살(!!)이던 요이사의 딸 요아 공주와 정분이 나고 급기야 그녀를 임신시킨다.[5] 당시 상황을 보면 요아가 일방적으로 노하를 유혹한 듯 하며, 노하는 그런 요아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요아의 임신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연히 공주를 범한 대역 죄인으로 목이 날아갈 뻔했으나, 요아의 눈물어린 사죄로 목숨은 건졌지만 대신 더 이상 남자로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된다. 다만 이후 요아가 노하를 두고 자신의 부군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결국 어떻게든 요아와 정식으로 혼인했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붉은 눈의 아들도 낳았다고 한다.
이후 아내의 결정으로 군주가 되나 그가 즉위한 직후 비가 멈추고 땅이 마르는 등 나라에 악재가 일어난다. 4대 시절보다 약한 가뭄이었지만 백성들은 불만을 가졌고 붉은 눈이 아닌 자가 군주가 되어 하늘이 노했다는 유언비어까지 돌게 된다.
노하 본인도 그 유언비어가 사실처럼 느껴져 고뇌하다가 얻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과도한 업무를 견디지 못하고 급사. 이후 조정 대신과 백성들의 붉은 눈에 대한 경외심은 광기에 가까운 집착으로 변질된다.
- 요아 공주
요이사의 딸. 태어났을 때 천신당에서 그녀에게 "두 남편을 두어 왕족의 큰 일에 휘말릴 것"이라 예언했다. 이를 들은 요이사와 아우라 부부는 애초에 한 남편만 두면 예언을 피할 수 있으리라 보고 그녀를 갓난아기 때 약혼시켰다. 이로 인해 그녀는 하늘의 일과 천신당에 악감정을 갖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정치나 학문에 관심이 없고 시를 쓰거나 그림 그리는 걸 더 좋아했다. 엉뚱한 행동을 많이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자신의 지위와 값비싼 물건을 이용해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정업원에 아버지 몰래 놀러가는 것이었다. 결국 그녀가 정업원의 학자였던 노하와 정분이 나 임신을 하면서 들통난다. 노하에게 빠지게 된 건 자기의 뜻과 상관없이 정해진 약혼에 대한 반발심이 큰게 한몫 했다고 한다.
결국 본가에서 제명되어 정업원으로 쫓겨난다. 대신들이 우요 사후 요아가 왕위에 오르길 간청하자 그녀는 처음에는 거부했으나 그녀의 어린 시절 스승이자 친왕족 세력이었던 예판의 설득으로 자신은 군후로, 노하를 군주로 올리기로 결정한다. 이는 '공주를 범한 대역죄인'이라는 남편 노하의 죄를 지우고 함께 왕실의 적통을 이어가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남편 사후 붉은 눈의 권위에 대해 이전부터 느낀 회의가 강화되어 대신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정업원의 인재 중에서 차기 군주를 뽑으라 명하고 이후 전 약혼자와 재혼해 정업원에서 조용히 살아간다.
그녀가 왕좌를 거부한 이후 오랫동안 공주가 군주로 즉위할 수 없었다. 노하와의 사이에서 붉은 눈의 아들을 낳았다고 언급된다.
- 8대 요호
정업원 출신 군주. 이바나의 장녀이자 정업원 수장이었던 이야나의 증손자다.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 마호는 대대로 수장의 장녀가 맡게 되어 있는 정업원 수장이다. 이바나의 황금기를 가져온 군주이며 왕실기밀실록 요호록을 기록하게 하였다.
3년 동안 군주가 3번이나 바뀌어 나라 전체가 큰 혼란에 빠져 하루 빨리 군주를 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비, 대왕대비, 정업원 실권자들까지 모두 참가해 왕좌를 두고 치열한 싸움을 벌인 끝에 젋고, 건강하고, 학식이 어느 정도 뛰어난 데다 회임한 아내가 있어 후계 문제도 걱정없기에 뽑혔다.
아내는 정업원의 하녀 출신인 모나지. 자신을 정업원의 사내나 수장의 아들이 아닌 요호라는 인간 그 자체로 봐줬기에 요호는 여기에 매력을 느껴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해 청혼했고 어머니의 반대에도 결혼 허가를 얻어 혼인했다.
사촌누나로 미도가 있으며 어머니끼리 친한데다, 동년배라 어린 시절부터 오누이처럼 친했다. 미도의 남편인 사촌매형 소리마와도 친밀한 사이였다.
왕으로 뽑힌 뒤 아내와 함께 군주와 군후로서의 업무를 수행하게 되지만 둘다 적응하기 힘들어했고 서로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점점 균열이 오기 시작하는데 결정적으로 모나지가 낳은 요호의 장남이 붉은 눈을 갖지 않고 태어나고 말았다.
요호는 괜찮다고 달래주었지만 모나지는 죄책감을 느꼈고 궁에서 고립되었으며, 신하들은 불안해했다. 얼마 뒤 아이는 사망했으며 아들의 죽음에 요호는 누군가가 수를 쓴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이에 큰 충격을 받아 정신이 무너진 모나지는 어떻게든 위로하고 진정시켜 보려는 남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점점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미쳐가다가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이에 요호의 재혼이 결정되는데 붉은 눈을 낳기 위한 상대로 정업원의 여인이 적합하겠다 하여 선택된 게 상술한 사촌누나 미도.
미도는 돈을 통해 정업원에 몰래 들어온 신녀에게서 국모가 될 운명이라고 예언받은 적이 있다. 이 사실을 들은 부녀는 철저히 함구하며 소리마와 혼인해 그와 매우 사이좋은 부부로 지냈지만 3년이나 함께 했음에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뇌했다. 소리마가 왕가의 혈통 유지도 의무라며 다른 부군을 들이라 권유했지만 그녀는 거절했었다.
하지만 미도가 군후로 낙점되자 두사람은 강제로 이혼당하게 되었다. 본래 정업원에서 요호와 모나지 부부, 미도와 소리마 부부는 서로 의형제, 의자매가 될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 그래서 더더욱 괴로워했던 것. 어찌 이럴 수 있냐고 절규하였으나 어림도 없었다.
그렇게 억지로 요호와 미도는 합방을 하게되고, 요호는 소중한 장남과 사랑하는 아내 모나지의 죽음 및 미도와 소리마 부부가 처한 상황에 대한 죄책감과 주위의 압박으로 환영을 보는 등 스트레스를 받다가 자살 시도를 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냐는 미도의 말에 정신을 차린다. 또한 자신들이 겪은 비극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붉은 눈이 아닌 이가 태어나도 왕족으로 인정받을 강력한 왕권을 세우자고 미도와 약속하게 된다.[6]
소리마는 미도와 이혼당한 이후 관직이 제공되어 그는 요호와 미도를 지키기 위해 내금위에 들어간다.[7] 그 뒤 내금위장으로 요호와 미도의 왕권 강화 계획에 협력하였다. 미도가 소리마의 협력으로 내명부 기강을 잡기 위한 목적으로 공포정치[8]를 시행하자 이를 넘어가주면서 차츰 군주로서 발언권을 얻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정업원에서 경험했던 걸 바탕으로 이바나를 상업국가로 만들 구상을 하게 된다.
그런 그의 곁에 소리마의 아버지와 큰형 이리마[9], 신지, 3대 대신녀 소유[10] 등의 요호의 가능성을 믿고 충성하는 유능한 인재들이 차츰 모이기 시작하고 그들을 통해 미도 시해 계획을 알게 되어 이를 역으로 이용하여[11] 반 왕족 세력으로 추정되는 자들을 그의 후손까지 포함해 133명 정도를 숙청한다.[12] 그리고 본격적으로 무역과 상공업을 장려하여 백성들의 지지를 얻는다.
미도와는 믿을 수 있는 정치 파트너이자 가족, 부부로서 서로를 평생 배려하며 금슬좋게 살았고 사이에서 3남 2녀를 두는데 그의 이후 대부터 왕족은 근친혼을 하게 된다.[13] 자신들이 겪은 비극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한 것이지만 이로 인해 왕족의 붉은 눈에 대한 집착은 더 강해지며 군주들의 재위 기간은 짧아지고 수명도 줄어들었다.
그와 미도의 장남은 9대 군주가 된다. 하지만 부부가 진정으로 원했던 붉은 눈이 아니어도 인정받는 왕족이자 군주는 한참 후대에 탄생했다.
- 11대 도인
요호의 손자. 이바나 본성에 시부인제를 최초로 도입한 군주다. 혼인을 앞두고 유모인 봉보부인에게 성경험이 없는 것을 걱정하며 이 문제에 대해 토로하였고, 봉보부인이 정업원의 암군제에 대해 듣고 군주에게 시부인을 둔 것을 시작으로 쭉 관례로 정착되었다. 도인 이후로 붉은 눈을 지닌 이바나의 왕족들은 성별 불문하고, 모두 15세가 되면 실습상대를 두고 성교육을 받기 시작했다.[14] 정작 본인은 다른 것도 아닌 군후 문제로 엄청난 물의를 일으켰는데 도인의 군후는 딸만 4명을 낳았고 불행히도 그들 모두 붉은 눈이 아니여서, 군후는 외간사내의 아이를 낳은 게 아니냐는 오명마저 쓰게 되었고 이로 인해 도인과 군후의 사이도 점점 틀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도인은 잠행을 나갔다가 기녀인 이소노에게 빠져 회임을 시키고, 아예 그녀를 정식 후궁으로 맞이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바나는 3대 군주인 이한 대부터 왕실을 비롯한 전국민이 일부일처제로 지내고 있었고, 출신이 저급한 기녀를 군주의 부인으로 맞아들이겠다고 하니 신하들은 기겁하며 말렸다. 그럼에도 이소노가 붉은 눈의 아들을 낳음으로서 부인으로 들일 명분이 충분해지자, 도인은 기어코 기존의 군후를 폐위시키고 이소노를 새로운 군후로 책봉했다. 그러나 왕궁의 모든 이들이 이소노의 책봉을 안좋게 여겨서 책봉식에 입을 옷을 이바나의 상징인 붉은 색이 아니라, 흰색으로 만들었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이때부터 군후가 아닌 후궁의 책봉식에서는 흰색의 혼례복을 입게 되었다. 포스타입에서 도인은 두 아들 소인, 사로인을 두었으며 장남 소인이 12대 군주가 되고 사로인[15]은 관례대로 정업원에 갔다고 나온다. 이로 인해 도인은 이소노와 사별하고는 폐위된 군후가 아닌 또다른 여성과 재혼한 것으로 추측된다.
- 20대 나지안
요호의 직계 증손녀인 이나미와 정업원의 데릴사위였던 아지안 사이에서 태어난 요호의 현손. 하마 작가의 포스타입에서 발매된 외전에 의하면 19대 군주였던 형 이지안과 함께 정업원 출신이었다.
요호 못지않은 아바나의 발전을 가져온 명군으로 평가된다. 어느 순간 다리가 자라지 않는 장애를 가져 키가 작았으며 몸이 약했다. 학문만이 아닌 화도에 재능이 있어 그림을 그리고 감상하길 좋아했고 화백에게 시켜 자기 옷에도 자주 그림을 그렸다. 19대 군주였던 형 이지안이 병사하자 그 뒤를 이어 20세에 군주가 되었다.
왕족의 혼인법을 완화시켜 왕족에 한해 일부다처, 일처다부를 허용해 군주는 붉은 눈이되 배우자는 붉은 눈이 아니어도 상관없게 했다.
선천적으로 후계를 생산할 수 없어 독신으로 평생 살았다. 다만 그처럼 평생 독신으로 살아간 15살 연상인 안라 출신자이며 매우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가치관을 가졌고 이바나 귀족의 양녀가 되어 정계에 진출한 예조판서(훗날 영의정이 된다) 단유와 군신이자 반려로 평생 함께했다.
이립이 되어 사망. 이후 단유도 관직에서 물러나며 그의 뒤는 정업원 출신이 잇는다.
- 27대 수가
아사가의 아버지. 전대 군주의 아들이기도 했다. 소이나와 미나 자매의 아버지 무소, 이자의 아버지 이안과 친했다.
그의 부모는 이복남매였는데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하며, 이때문에 수가 자신은 혼인을 하면 부인에게 꼭 잘 해주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또한 근친혼의 영향 때문인지 몸이 약했다고 한다.
자신의 친척이었던 아사라는 그의 시부인이기도 했으며 12살에 군후로 맞이해 15살 때부터 정식 부부로 살다 19살에 겨우 아사가를 두었다. 정략결혼이긴 했지만 사이가 좋았으며, 무소와 이안의 이야기를 듣고 15세 때 아사라에게 빗을 선물하며 정식으로 청혼했다.[16]
임종을 몇년 앞두고 무소를 찾아와, 아사가의 부인은 무소의 딸들 중에서 정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 28대 아사가
- 29대 유진
- 30대 유라
유진의 맏이이자 장남. 서자로 누국 출신 차비 무라의 아들. 20세에 돌연사한다. 누군가 음식에 독을 탔으리라 추정됐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 31대 유온
유진의 막내이자 차남. 군후 우온의 아들로 유진의 유일한 적자였다. 우성 유전자에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이바나 왕실 특유의 외모는 하나도 닮지 않고 모계쪽만 쏙 빼닮았다. 8세에 군주가 되지만 아직 어려서 어머니 우온이 수렴청정했다. 15세에 음식을 먹다 기도가 막혀 사망.
- 32대 유리아
유진의 둘째이자 장녀. 이바나 최초의 여군주. 서녀로 안라 출신 후궁 오리아의 딸. 어머니의 간통죄로 어머니와 같이 냉궁에 유폐되어 지내다가 대신들의 회의 끝에 풀려나 26세에 즉위했다. 오랫동안 갇혀 지냈지만 아버지를 닮아 매우 총명했으며, 어머니를 닮아 꾸미는 걸 좋아했다. 처음으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고 교역을 한 군주이다.
어려서부터 방탕한 어머니를 보며 지냈고 그 어머니가 자기가 즉위하자마자 매일 처소로 젊은 사내들을 불러들이고 심지어 자기 남편과도 동침했기에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또한 남녀간의 교합을 역겹게 생각하고 남자를 혐오해 3명의 남편이 있었지만 단 한명과도 동침하지 않았다.
그녀가 즉위할 때 홍문관 대제학 아리산과 호조판서 오로 부부가 힘을 실어줬으며, 그들의 아들 산로는 유리아가 재위하고 10년이 다 되어가던 18세에 장원으로 급제해 만나게 되는데 산로는 당시 자신보다 20살 많던 그녀를 첫눈에 흠모하게 된다.
산로는 유리아 앞에서 초대 군주 이바나의 후궁이었던 린이나 20대 나지안의 신하였던 영의정 단유같은 존재로서, 신하로서 함께 하고 싶다 고백하며 평생 지극정성으로 그녀를 보좌한다. 유리아도 산로만은 곁에 있길 허용해 둘은 정사를 같이 논의하고 꽃장기도 함께 두는 등 둘도 없는 군신이자 친우가 되었다.
그렇게 오빠, 남동생과 달리 장수하다가 노환으로 사망할 때 아이가 없었기에 산로에게 후계자 선정을 부탁했다.
종합적으로 보면 어머니로 인해 고생하고 뒤에서 여러 말도 들었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유능하고 소중한 신하와 소통하면서 훌륭한 군주로서 나라를 발전시켜 존경받으며 살았고, 끝에는 평온하게 숨을 거둬 영원한 안식을 얻었다.
- 33대 군주
에필로그 시점의 군주이며 에필로그에서 나온다. 정업원 출신. 기방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 조사에 소노산이 참여하는 것을 허락한다.이바나 왕실의 미인 계보가 끊겼다.
4. 정업원
3대 군주 이한이 만든 장소. 이한이 남자형제들과 그 자식들을 죽이고 남은 여자형제들과 형수 및 제수들, 가족들을 모두 강제로 이주시켜 거주하게 했다. 붉은 눈이 외부 혈족과 섞이는 걸 막기 위해 큰 벽으로 둘러싸고 외부인 출입 금지 및 그 안의 누구도 죽을 때까지 나가지 못하고 지내게 했다. 그리고 이들을 감시할 경비병들을 두어 내부인의 외부 출입이 적발될 시 바로 척살했다.오직 혼인을 위해서만 외부인이 들어왔는데 이 혼인도 출가외인은 되지 못하고 아들이 너무 많은 귀족이 보낸 데릴사위만 받아들였다. 미도의 남편 소리마와 나지안의 아버지 아지안이 이렇게 데릴사위로 정업원에 들어왔다. 데릴사위를 보내는 집안의 경우 어차피 정계에서 힘을 쓰지 못하면 정업원에서 차라리 편하게 무위도식하라는 의도도 있었다. 심지어 데릴사위로 들어온 남자의 아내가 남편보다 먼저 죽으면, 그 데릴사위는 즉시 외부인으로 간주되어 처형당하는 규율도 있다.
포스타입에서 나지안 이후 군주가 타국 왕족이나 귀족과 혼인하게 되기 이전에 다른 나라와의 정략 혼인은 주로 정업원 왕족들이 도맡아했고 이바나 왕족이 다른 나라 왕족이나 귀족과 결혼하기 위해 떠나야 할 경우에는 정업원의 이바나 왕족들 중에서 눈이 붉지 않은 자들을 보냈다고 한다.
이바나 왕실에도 많은 영향을 줬는데 대표적으로 군주들의 성교육 상대인 시부인 제도도 정업원의 암군제에서 유래되었다. 정업원의 여성들은 붉은 눈의 아이를 많이 낳기 위해 어려서부터 빨리 남자를 받아들이도록 성교육을 시켰는데 이 교육 상대를 암군이라고 불렀다. 특히 정업원에서 권력을 갖고 후사를 많이 낳으려는 여자들만이 암군을 두고 성교육을 했다. 사실상 군주의 첫번째 부인이나 다름없다는 중요성 때문에 신분과 혈통부터 정치적인 이유까지 철저히 고려해가며 뽑던 시부인과는 달리, 암군은 그저 성교육을 위한 상대에 불과했기에 교육을 받는 여자 왕족이 원하는 상대를 결정할 수 있었고 교육이랄 것도 없이 거의 방중술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교육 시기는 여자 왕족이 초경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시작했다고. 이 암군제를 가져와 군주에게 도입한 것이 시부인. 눈이 붉지 않은 왕족들은 성교육을 받지 않았다.
정업원이 세워졌을 당시 구성원은 전부 여자였고 자연스레 권력은 왕족인 이바나의 딸들이 쥐게 되었으며, 그 권력을 물려받아 대대로 여자들이 가장이 된다. 특별히 생산활동을 하지 않아도 붉은 눈 생산은 오직 여자들의 몫이라 한 여자에게 여러 남편이 붙어 붉은 눈을 낳는다. 요호의 어머니도 병약한 정실 남편인 요호의 아버지 외에 다른 남자들을 남편으로 맞아 그의 동생들을 낳았다.[17]
이 경향은 초대 대신녀 라리사의 주술 이후 더 심해져 친척끼리 몰래 합방하는 경우도 생겼으나, 근친혼으로는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지 못하는 게 정설인데다가 타국도 근친혼을 피하던 시기라 공식적으로 근친혼이 기록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정업원의 많은 이들은 하루 종일 놀고 쉬는 것 외에 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정업원에도 신분 격차가 존재해 붉은 눈이 아닌 자는 왕족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붉은 눈으로 태어나도 누구의 적통이냐에 따라 서열이 나뉘었다.
왕족 뿐만이 아니라 왕족의 시중을 들 하인들까지 함께 지냈으며, 이들 또한 정업원 안에서 혼인해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도 부모의 일을 이어받았다.
이후 정업원은 이바나 왕실의 분가를 부르는 명칭이 되었고, 많은 인원을 수용하다보니 하나의 고립된 마을이 되었다. 초기에는 재정 문제로 말이 많았지만 사람 수가 줄면서 200년 후에는 늙은 부인들만 남을 정도가 되어 점점 불만은 가라앉는다.
세월이 흘러 붉은 눈의 왕족이 줄어들면서 후사가 없는 군주가 다음 후계자를 정업원 출신자에서 정하게 되고, 죽은 군주의 군후와 후궁들이 모여 사는 장소가 된다. 이후 아리산의 아들 산로의 언급으로 붉은 눈을 가진 왕족은 이미 대가 다 끊겨 버렸다고 한다.
그래도 유리아의 후계자가 정업원에서 나왔다거나 붉은 눈은 아니라도 왕가의 피를 이은 자들이 남아 있긴 했던 듯하다. 이후 외전 구혼담에서 오유와 유진의 대화에서 밝혀지길 유진이 성장한 시점에서, 정업원에는 유진 또래의 여성은 커녕 수장의 지위를 이어받을 딸도 없어서 곧 아들로 수장이 바뀔 예정이라고 한다.
이후 하마 작가의 포스타입에서 발행된 외전 '아침에는 구름, 저녁에는 비'에서 정업원의 실체가 드러났는데, 과연 여우의 자손들답게 온갖 막장이 판을 치는 곳이였다. 정업원의 여성들은 오로지 붉은 눈의 자손만을 낳는 것에 집착해 친척과 거리낌없이 동침했는데, 여기에는 사촌부터 남매지간은 물론이고 모자지간도 해당된다. 후술할 소린이 어머니와 아들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여인. 소린의 아버지이자 오빠는 자기가 어머니를 임신시킨 걸 알자마자 자살했다고. 요호의 증손녀 이나미도 조부모가 친남매였다.
그만큼 색도 매우 밝혀서 마음에 드는 사내가 있으면 그 사람이 미혼이든 기혼이든 친족관계든 상관없이 손을 댔다. 외전의 등장인물 중 하나이자 소린의 어머니인 미기는 정업원 내 다른 여성의 남편과 아무렇지않게 불륜을 저지르는 건 물론 심지어 딸 소린의 남편, 즉 자신의 사위인 아지안에게까지 미모가 뛰어나다는 이유로 눈독을 들였다.
결국 딸 소린이 병사하고 규율에 따라 그녀의 남편인 아지안도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자, 기다렸단듯이 아지안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그를 자신의 정부로 삼아 관계를 맺었다. 사실 미기는 정업원 내에서 자신의 사위와 불륜을 저지른 게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아지안이 들어오기 전에는 또다른 딸 후라의 남편과 동침해 그녀를 격노케 했다고 한다. 참고로 후라도 소린 사후 여동생의 남편이 되는 아지안과 동침하며 어머니와 별다를 것 없는 모습을 보인다.
외전의 등장인물 중 하나이자 붉은 눈의 왕족으로 정업원에 지내던 소린은 저들과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는게 너무 끔찍하다고 치를 떨 정도였다. 결국 소린도 근친상간에 의한 유전병으로 죽어가면서 이런 자신을 비롯한 정업원의 일원들을 가리켜 '문란하게 색을 밝히는 혈족에게 오는 저주'라고 자조하며 사망한다. 이나미 역시 사이가 굉장히 나빴던 자신의 조부모와 그들 때문에 사내를 싫어하다가 말년에 정체도 모르는 남자와 동침해, 자신을 낳은 어머니 때문에 아예 부부에 대한 환상 자체가 없었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의지도 없어서 독신으로 살고 싶어했다.[18]
또한 정업원 왕족 중에서는 자신이, 혹은 자신이 불가능하면 적어도 자신의 자식만이라도 정업원 밖으로 나가길 간절히 원하는 자들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1] 이 과정에서 노동 착취 문제가 불거진다고 한다.[2] 후에 밝혀지길 그의 본명이 아닌, 그가 모종의 경위로 취하게 된 모습의 주인의 이름이다.[3] 20년 후, 유진이 군주인 시점에서는 구 왕조 왕족이 거의 없다.[4] 천신당 사람들과 군주 유진은 제외되었다.[5] 정업원은 본래 외부인 출입 금지 구역이었지만 요아는 직계 공주라는 자신의 지위와 값비싼 물건을 이용해서 몰래 정업원에 들락거렸다. 이렇게 정업원을 출입하던 중 노하와 만나게 된 것.[6] 참고로 합방시 수두룩하게 궁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 약속을 할 때는 모두 내보냈다. 궁인들의 뒤에 있는 신하들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7] 원래대로라면 삼남인 그는 관직에 진출할 수 없었고, 때문에 정업원에 데릴사위로 들어갔던 것이지만 미도와 이혼당하는 대신 예외로 관직에 오를 수 있게 해준 듯 하다.[8] 군후가 된 이후 역사상 내명부를 가장 잘 통솔한 동시에 잔혹한 군후로 기록된다. 암살을 우려해 옷을 여러 겹 입고 다녔던 그녀로 인해 귀한 신분일 수록 옷을 많이 껴입는 관습이 생겼다.[9] 그가 바로 요호록을 기록하는 밀명을 받게된 홍문관 대제학 일족의 시조이자 아리산의 조상이다.[10] 그녀의 어머니가 바로 미도의 운명을 예언한 신녀이다.[11] 미도 암살에 포섭당한 시녀를 미도가 역으로 포섭해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었다. 고문은 가했으나 요호와 미도가 몰래 도망시켜주기까지 한다.[12] 특히 요호를 가장 무시하며 전횡을 일삼고 미도의 암살까지 획책한 좌의정은 효수되었지만, 그의 외아들은 타국에 양자로 보내 형벌을 면하면서 살아남은 후손들이 이후 새로이 반 왕족 세력을 결성한다. 대표적인 예가 아사가 시절에도 나오는 좌의정의 6대손 부마사. 부마사의 손녀인 우온과 우나도 따지고 보면 좌의정의 후손이다.[13] 포스타입에서 발매된 외전 '아침에는 구름, 저녁에는 비'에서 나온 요호의 증손녀 이나미가 자신의 조부모는 친남매였다고 언급함으로서 요호의 자식들은 아예 남매간의 근친혼을 했다는 게 밝혀진다.[14] 최초로 성교육 상대를 둔 군주의 직계 공주도 도인의 딸이다. 신분과 상관없이 순결하지 않은 능숙한 사내에게 딸의 첫경험 상대를 맡긴다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긴 도인이 첩지를 돌려, 엄중하게 공주의 남편이 될 만한 신분을 가진데다 성경험도 없는 순결하고 문제없는 사내를 골라 딸에게 붙여주었다고. 이런 식의 남자 시부인을 시군이라고 불렀으며 시군 역시 그대로 공주의 첫 남편이 되었다고 한다.[15] 형과 매우 우애가 깊은 사이였는데 사실 형을 사모하고 있었다. 정업원에 가기 전에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가 붉은 여우를 만났으며 형의 모습을 취한 그와 동침하고 다음 날 깨어난다. 그리고 형을 축하해주면서 자신이 여우에게 홀렸단 걸 깨닫는다.[16] 그 전까진 어른들이 정해준 대로 어릴 때부터 정략결혼을 했던지라 정식으로 청혼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17] 정업원에서는 고위 혈통일 수록 정군(일종의 정실)과 후군(일종의 첩)을 두며 동침상대를 엄숙하게 지정해두는 일반적인 가정의 형태를 이룬다고 한다. 대대로 정업원의 수장을 지내온 요호의 어머니가 그 예시.[18] 정작 이나미는 아지안과 결혼한 뒤로 금슬이 좋았고 다른 남편을 들이지도 않았으며, 두명의 아들이 모두 군주가 되면서 역설적으로 정업원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