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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相國
1952년 1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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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해태 타이거즈의 제4대 단장이다.1952년 전라남도 나주시 출생. 살레시오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졸업.
2. 해태제과 사원
1975년 해태제과에 입사한 직후 판매왕에 오를 만큼 뛰어난 영업 수완을 드러냈다.3. 해태 타이거즈 사무국
1982년 해태 타이거즈 창단과 함께 야구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러 요직을 거쳐 1992년부터 단장직까지 올랐다. 특히나 이상국의 제안으로 83년도에 선수단 헬멧에 써니텐 광고 스티커를 붙여 화제를 모았으며 같은 해 삼성 라이온즈의 서정환을 트레이드를 통해 해태 유니폼을 입혔다.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서정환이 술회하기를 삼미 슈퍼스타즈, 해태 타이거즈를 놓고 고민하던 중 이상국 당시 과장이 본인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며 '서 선수는 우리 팀 차영화와 키스톤 콤비 아니었냐'는 이 말에 서정환이 해태행을 결심했다고 한다.[1]한국프로야구 최초 억대 연봉을 시작한 선동열의 1억 5천만원의 연봉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1995 시즌 종료 후 선동열의 일본 진출 관련 협상 문제로 구단주와 마찰을 빚어 노주관 사장과 함께 경질했다. 1996년은 마의웅 대표이사 혼자 구단을 이끌었고, 1997년부터 김철규 해태 타이거즈 관리본부장이 단장으로 승진해 새롭게 부임했다.
이후 2000년부터 6년간 한국야구위원회에서 사무총장을 지낼 정도로 구단을 벗어나서도 야구계에서 신임이 두터웠다. 타이거즈 OB 모임에서도 여러 선수와 연락할 정도였다. 게다가 선동열은 일본에 보내준 이상국 단장에게 항상 감사한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처음에 이상국은 일본 진출을 반대했지만 정작 일본 진출 과정에서 이상국 단장의 화려한 스킬로 1억엔의 연봉이 3억엔으로 세배나 뛰었기 때문에 항상 감사할수 밖에 없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KBO 총재 특별보좌직을 수행하였다.
현재도 해태 타이거즈 모임에 종종 얼굴을 비추고 있다.
[1] 서정환의 후배인 차영화는 서정환과 함께 실업 선발팀, 육군 경리단 야구단에서 같이 뛰며 호흡을 맞췄으며 서정환은 1년 선배인 김봉연, 김준환, 동기인 김일권 등과 친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