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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1 22:22:02

이수진(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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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 이수진
Lee Su-jin
파일:ked202107150023.jpg
<colbgcolor=#ff3478> 출생 1978년
충청북도 충주시
학력 두원공업고등학교 (졸업)
천안공업전문대학[1] (금형 / 전문학사)
경력 야놀자 창업자, 총괄 대표
호텔모텔펜션 대표이사
재산 15억 달러[2] (2024년 5월 / 포브스)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기업인. 야놀자의 대표를 맡고 있다.

2. 생애

1978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에는 매일 김치 도시락만 가지고 다닐 정도로 가난했다. 13살 때는 오토바이를 타고 신문 배달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그 후 두원공업고등학교에서 기계를 전공하고 천안공업전문대학(現 국립공주대학교 천안캠퍼스) 금형공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1997년 프레스 금형 설계를 하는 방위산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3년간 복무했다. 이때 주식을 했는데 3개월 만에 탕진해서 좌절을 겪었다고 한다.#[3] 힘들게 모은 4000만 원을 주식 투자로 모두 잃자 갈 곳마저 없어 모텔에서 일을 했다.

그 후 샐러드 배달 사업을 하기 위해 샐러드 가게를 차렸으나 실패했고, 하는 일마다 다 망한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고려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다시 모텔일을 하며 2005년 자본금 5000만 원으로 ‘모텔투어’라는 숙박 관련 다음 카페를 인수해 창업했다. 처음에는 광고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으나, 친하게 지내던 모텔 사장님에게 ‘손님이 늘지 않으면 전액 환불’해주기로 하고 100만 원 짜리 광고를 계약하기로 한다. 광고를 낸 뒤 손님들에게 치킨도 시켜주고 룸서비스도 해주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해당 모텔의 월 매출이 크게 올랐다. 입소문으로 한 번에 50여 개의 모텔 광고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상표권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모텔투어의 상표권을 경쟁사에 빼앗겼다. 경쟁사가 상표권의 대가로 3억 원을 요구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카페 이름을 야놀자로 변경했다. 기사회생으로 2007년 지금의 야놀자를 공식 출범했으며 현재의 대한민국 대표 숙박업 중개 플랫폼이자 글로벌 여행/여가 서비스 테크 기업으로 일궜다.


[1]국립공주대학교 천안공과대학[2] 2023년 12월 기준 야놀자 지분 16.37%를 보유하고 있다.[3] 본인이 직접 언급하지만 않았지만 당시는 한국이 한창 1997년 외환 위기를 겪고 있었던 때인지라 웬만한 종목에 투자를 해도 크게 손해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