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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31 19:19:16

이시카와 카즈마사

파일:Ishikawa_Kazumasa.jpg

石川 数正
1533-1593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

1. 개요

이시카와 카즈마사는 센고쿠 시대의 무장이자 다이묘이다.

2. 생애

1533년 미카와에서 태어났다.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인질이던 시절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기게 되었다. 1560년 요시모토가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전사하고 이에야스가 독자 세력으로 독립하자 이마가와 우지자네와 교섭하여 이에야스의 장남 마츠다이라 노부야스와 정실 츠키야마도노를 되찾았고, 이후 오다 노부나가와의 교섭으로 오다-도쿠가와 동맹 성립에 공을 세웠다.

이후 미카와 잇코잇키에서는 아버지는 잇코잇키에 가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야스의 곁을 지켰고, 이후 이에야스의 장남 노부야스의 후견인이 되는 등 신뢰를 받았다. 미카타가하라 전투나가시노 전투 등에서도 활약했고, 노부야스 할복 이후 오카자키 성주대리가 되었다.

혼노지의 변 이후 하시바 히데요시와의 교섭을 담당했고, 히데요시와의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에도 참전했다. 이에야스에게 히데요시와 화친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 이후 1585년 히데요시에게 귀순하였다. 그 이유로는 히데요시와 화평을 주장해 가문 내에서 고립되었다는 설, 히데요시에게 설득을 당했다는 설, 아버지의 잇코잇키 가담으로 불이익을 받아 불만이 생겼다는 설, 노부야스 할복 사건으로 후견인으로써 이에야스나 가신들과 불화가 생겼다는 설, 이에야스와 짜고 한 일이라는 설 등이 있다. 카즈마사는 도쿠가와 가문의 중요 정보들을 많이 알고 있어 이는 도쿠가와 측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다만 도쿠가와 측에서 카즈마사에 대한 제재를 하려는 움직임이 크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암암리에 도쿠가와와 도요토미 양쪽의 소통 창구로 쓰였다는 설도 있다. 특히 대망(소설)에서 이 설을 지지하여 '두 가문의 사이를 중재할 수 있는건 나뿐이다'라고 고뇌하다가 도요토미로 들어가는 카즈마사의 모습이 그려진다.

히데요시에게 카와치국에 8만석을 받았고, 이후 오다와라 정벌에도 출전해 시나노 마츠모토 10만석을 받게 되었다. 1593년 사망했다.

그의 세 아들 야스나가, 야스카츠, 야스츠구는 야스나가가 마츠모토를 물려받는 등 모두 영지를 가졌으나 1613년 오쿠보 나가야스 사건에 말려들어 모두 개역되었다.

3. 대중매체에서




[1] 마츠카타 히로키가 이에야스 역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