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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10:43:09

노부나가를 죽인 남자

노부나가를 인 남자
信長をした男
파일:혼노지의 변 431년째의 진실 (1).jpg
<colbgcolor=#000><colcolor=#909090> 작품 정보
장르 역사
작가 만화: 토도 유타카
원안: 아케치 켄자부로
출판사 파일:일본 국기.svg 아키타 쇼텐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원씨아이
연재처 별책 영 챔피언
레이블 파일:일본 국기.svg 영 챔피언 코믹스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미발매
혼노지의 변 431년째의 진실
~本能寺の変431年目の真実~
연재 기간 2016년 9월호 ~ 2020년 9월호
단행본 권수 파일:일본 국기.svg 8권 (2020. 10. 20. 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미발매
일륜의 데마르카시온
~日輪のデマルカシオン~
연재 기간 2021년 3월호 ~ 연재 중
단행본 권수 파일:일본 국기.svg 6권 (2024. 06. 1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미발매

1. 개요2. 줄거리3. 발매 현황4. 등장인물
4.1. 혼노지의 변 431년째의 진실4.2. 일륜의 데마르카시온
4.2.1. 일본4.2.2. 조선4.2.3. 명&여진(청)4.2.4. 유럽
5. 평가 및 논란
5.1. 오류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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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역사 만화.

아케치 켄자부로(明智憲三郎)[1]가 2013년에 출판한 책 《혼노지의 변 431년째의 진실》[2]을 원작으로 삼아, 아케치 켄자부로가 직접 원안을 담당하고 토도 유타카가 작화를 담당해 영 챔피언에 연재되는 만화다.

2. 줄거리

진실되게 전하는 아케치 미츠히데의 이야기.
우리가 배운 역사는 "거짓말"이었다!!?
아케치 미츠히데가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를 죽인 일본 역사상 최대의 미스터리 "혼노지의 변"!
현대에도 여전히 많은 수수께끼가 남아있는 대사건을 400여년의 시간을 거쳐 풀어낸다!!
— 《혼노지의 변 431년째의 진실》 소개문
태합. 일륜. 천하인.
온갖 칭호를 거머쥔 전국의 패자 도요토미 히데요시.
비천한 몸에서 일본의 황제로 등극해 초유의 규모로 "해외 침공"을 벌인 남자의 알려지지 않은 비밀.
400년 이상 숨겨진 "역사의 진상"이 신빙성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해석"으로 풀어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란 누구였는가…….
그리고, 큰 야망을 담은 "일륜의 데마르카시온"이란 도대체…!?
— 《일륜의 데마르카시온》 소개문

1부격인 《혼노지의 변 431년째의 진실》은 본작의 제목인 '노부나가를 죽인 남자' 아케치 미츠히데가 주인공이며, 8권으로 마무리되었다.

2부격인 《일륜의 데마르카시온》[3]은 아케치 켄자부로의 기존 서적을 원작으로 삼지 않은[4] 코믹스만의 오리지널 스토리로서, 말년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주인공으로 임진왜란[5]을 주요 내용으로 삼아 연재되고 있다.

3. 발매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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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일본 국기.svg 2023년 05월 18일 파일:일본 국기.svg 2023년 11월 20일 파일:일본 국기.svg 2024년 06월 19일


===# 표지 인물 일람 #===

4. 등장인물

4.1. 혼노지의 변 431년째의 진실

4.2. 일륜의 데마르카시온

4.2.1. 일본

4.2.2. 조선

4.2.3. 명&여진(청)

4.2.4. 유럽

5. 평가 및 논란

본작의 원작자인 아케치 켄자부로는 그가 자신의 서적에서 제시하는 역사적 사료의 반영 수준과는 별개로 전문적인 역사학자가 아닌 데다가 그가 주장하는 설에도 문제가 있어 논란이 많은 편이다.

켄자부로는 혼노지의 변의 당사자인 아케치 미츠히데의 자손이다 보니, 혼노지의 변에 대해 현대의 정설과 달리 도쿠가와 이에야스 흑막설[15]을 주장하고 있다. 자신의 연구법을 '역사 수사(歴史捜査)'라 명명하며 기존의 역사학계가 쌓아온 연구보다도 훨씬 뛰어나다고 자부할 정도다.[16]

켄자부로의 가설 외에도 혼노지의 변 자체가 현대 역사학자들 입장에선 너무 뜬금없이 벌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보니 여러 낭설과 가설이 있기는 하나[17] 현대 역사학계의 정설로 넣을 만한 근거 있는 가설은 없고, 켄자부로의 가설 또한 신뢰성을 증빙할 만한 핵심적인 증거가 없이 확증 편향에 가깝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음모론 취급을 받는다.

켄자부로의 책 《혼노지의 변 427년째의 진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개정판이 출시되거나 방송[18]에 코믹스화까지 이루어진 것도 추리 소설 같은 역사 서적이라 재밌다는 이유로 인기를 끌어서였지, 학계에서 검증된 역사 서적으로 인정받아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19]

켄자부로의 집안인 아케치 가문이 정말로 아케치 미츠히데의 후손인가도 의문스럽다. 켄자부로의 가문은 본래 아케타(明田) 가문이었으나 메이지 시대에 자신들은 사실 미츠히데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면서 아케치로 복성하였다. 미츠히데와 후첩 사이에서 나온 아들[20]인 오즈루마루(於隺丸)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 연구나 세간의 인식에 따르면 미츠히데는 첩을 두지 않고 정실인 츠마키 히로코(妻木煕子)만을 둔 애처가라는 의견이 강한데, 증명되지 않은 후첩의 자식이라는 점에서 신빙성에 의심이 간다.

아케타 가문이 메이지 시대에 복성을 신청했을 당시에는 족보나 미츠히데의 유품 같은 것을 제출해서 메이지 정부로부터 미츠히데의 후손이 맞다고 복성을 인정받았다고 하나, 현재는 해당 자료들이 관동 대지진으로 전부 소실되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현재는 미츠히데의 후손임을 증명할 증거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케치 가문은 자신들은 미츠히데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고, 아케치 켄자부로도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가문은 미츠히데의 후손이라고 교육을 받아왔고 이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듯하다. 히에이산 엔랴쿠지에서 노부나가의 후손[21]과 함께 토론회를 가지기도 했다.

작품 내에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 나라들이 당시 세계 초강대국인 명나라오스만 제국보다 더 강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전반적인 국력은 몰라도 작중 배경인 16세기쯤부터 군대와 무기의 경우는 서구가 비서구권 상대로 서서히 앞서 나가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15세기 백년전쟁 무렵부터 화포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서구권의 경우엔 화승총이 본격적으로 전장의 핵심으로 떠오른 1525년 파비아 전투부터는 화기를 이용한 군사전술이 극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동서양간의 군사력의 차이가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22] 당대 이런 병기를 이용해 최전성기를 누리던 스페인 제국의 경우엔 자신들의 군대가 강성함을 믿고 명나라 침공을 계획한 적도 있다. 또한 임란 이후 명나라가 서구로부터 수입한 홍이포의 위력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이를 충원해 영원성 전투 등 만주족과의 싸움에서 유리하게 이용한 것도 유명하다. 전반적으로 16세기 서구로부터 이식받은 조총(아퀘버스)나 홍이포 같은 무기가 기존 동아시아 군대의 무기보다 뛰어난 것을 조선, 일본, 중국 모두가 인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성과를 보던 시기였기 때문에 서구가 군사적으로 동아시아보다 강하게 묘사되는게 아주 틀린 묘사까진 아니다.

물론 아직 이 시대는 근대 이전인 시기로, 유럽이 이제서야 막 성장하고 있는 단계라 근대시대에 비서구권을 압도하던 그 서구 열강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당시 누르하치가 통일하기 시작한 여진족의 팔기군은 서구 학계에서도 이들의 군사력 능력을 당대 서구권 군대와 대등하거나 더 높게 보는 학자들이 존재하며, 동시기의 명나라는 쇠락기인 시대였긴 했으나 아직은 이런 여진을 막을 군사력 정도는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오스만 제국의 경우엔 당시까진 서구와도 대등하게 맞서던 최전성기였기 때문이다.[23] 그렇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작중 배경인 16세기 후반 시점을 기준으로 당시 여진족은 하나의 세력으로 뭉치지도 못한 상황이었고, 명은 만력제 치하에서 쇠퇴하던 중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여전히 군사력으로는 강력했지만 경제적으로 활기를 잃고, 군사력마저도 서구권에게 점차 역전당하고 있었다. 당대 스페인은 잉글랜드, 프랑스, 네덜란드와 동시에 전쟁을 치르면서도 독일과 이탈리아의 여러 소국과도 분쟁을 겪고 있었지만, 오랜 전쟁으로 단련된 유럽을 호령하던 육군, 알레산드로 파르네제, (약간 후대지만) 암브로시오 스피놀라 같은 명장, 아메리카에서 들어오는 막대한 은,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을 잘 엮어내어 강력한 군사력을 외부로 투사할 수 있게 만든 행정체계[24]를 통해 유럽의 패권을 쥐고 있었다. 즉 전세계적으로 이미 이 시기(16세기)부터 서구권은 나날히 그 세력을 신장하는 반면 비서구권은 이에 뒤떨어지고 있거나 쇠락하는 국면이었기에 이를 고려하면 스페인의 군사력을 당대 최강국으로 본 것도 아예 틀리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25]

또 자기 조상인 아케치 미츠히데를 매우 존경하여 상습숭배를 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 틈만 나면 아케치 미츠히데를 칭송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작품 내에서 히데요시는 자기가 죽인 아케치 미츠히데를 아직도 두려워하고 있고[26] 노부나가 암살을 주도한 흑막이라는 설정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아케치 미츠히데를 무척 존경하여, 그의 원수를 갚는 게 히데요시와 싸우는 이유 중 하나일 정도다.

일본사를 잘 모르던 독자들도 입소문이나 극중에서 튀어나오는 미츠히데 상습 숭배, 음모론의 내용 덕분에 일본 역사 재현에는 문제가 많은 작품인 걸 알게 되었지만 조선 파트에 대해서는 평이 매우 좋다. 전쟁 직전 조선 조정의 상황이나 당파 싸움 같은 내용도 상당히 세밀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일본 작가가 어떻게 여기까지 조사했냐며 감탄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 심지어 부산, 동래가 함락되었을 때 민간인들이 학살당하는 묘사마저 기록을 바탕으로 그대로 재현했다. 또한 한국사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조선계 일본인인 오타 줄리아 등이 그 예다.

5.1. 오류


* 34화 벽제관 전투에서 가장 황당한 묘사가 나오는데 타치바나 무네시게가 무슨 두 개의 탑나팔산성 전투 마지막 장면마냥 눈갱 공격(금삐까 갑옷으로...)으로 명나라 군에 CC 걸어서 물리쳤다고 한다... 사실은 그런 거 없이 연승으로 자만하는 명나라 군을 유인하고 양쪽에서 공격해서 이긴 전투다.

6. 기타


[1] 혼노지의 변을 일으켜 오다 노부나가죽게 만든 아케치 미츠히데의 후손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역사 연구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사학 학위를 보유한 전문적인 역사학자는 아니고 본래는 게이오대 공학부 출신으로 미쓰비시에서 정보시스템 관리자까지 역임한 기술자였다.[2] 2009년에 출판된 《혼노지의 변 427년째의 진실》의 개정판이다. 작가가 4년 동안 추가적으로 수집한 자료를 기반으로 개정한 뒤 다시 출간한 것. 혼노지의 변이 1582년에 일어났기 때문에 2009년은 427년째, 2013년은 431년째가 된다. 참고로 아케치 켄자부로는 혼노지의 변 시리즈 외에도 오다 노부나가아케치 미츠히데와 관련된 서적을 주기적으로 출판하고 있다.[3] 일륜은 도요토미가 자신을 천황조차 넘어선 태양(日輪)의 자식이라 자칭한 것에서 따온 것. 그리고 데마르카시온은 경계와 구분 그리고 분획을 뜻하는 스페인어 Demarcación으로, 엄밀히 말해 앞으로 발견하게 될 식민지 영토의 지배권을 미리 정해놓은 대로 나눈다식민주의적 합의와 사고 방식을 뜻한다. 따라서 일륜의 데마르카시온은 자신의 세력을 일본 너머까지 확장하고, 점령한 나라마다 관백들을 배치하고자 했던 히데요시의 정복욕과 활동을 말한다. 그리고 이 부제 그대로 히데요시는 1화에서 전성기의 식민제국인 스페인을 최종 목표로 삼는다. 사족으로 히데요시가 메인주인공인 태합입지전 5에서 가장 처음에 플레이할 수 있는 1560년 시나리오 이름도 "일륜의 장"이다.[4] 원작이 없을 뿐, 스토리 원안은 여전히 아케치 켄자부로가 담당하고 있다.[5] 일본 작품이므로 작중에서는 임진왜란이란 명칭 대신 조선출병 또는 분로쿠(문록)의 역이라는 명칭이 사용된다.[6] 어린 시절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이자 작중 소개되는 그의 옛 이름. 히데요시의 아명은 히요시이고, 집을 나간 뒤에야 기노시타 도키치로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집을 나가기 전인데도 도키치로라고 소개된다.[7] 사이카슈의 지휘관이었던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8]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아들.[9] 히데요시의 친부.[10] 히데요시의 계부.[11] 옆에 있던 프로이스는 크게 놀라 히데요시에게 '차마 번역할 수 없는 말'이라고 얼버무렸지만, 히데요시도 가스파르가 자신을 욕하는 줄은 알고 있어서 처소에 돌아와 크게 화를 낸다. 가스파르가 히데요시를 노려보는 눈빛이 어린 시절 천출이라며 히데요시를 차별하고 멸시하던 자들의 눈빛과 같았기 때문.[12] 유명한 호코지 대불이다. 지진으로 무너지자 "나라 지키라고 세웠는데 니 몸도 못 지키냐"며 히데요시가 불상에 화살 쏜 일화를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오지만. 그리고 히데요시 사후 도요토미 집안 몰락의 단초가 된 사건도 이 호코지에서 일어났음을 생각하면 만화에서의 묘사는 부질없다 못해 기가 찬다.[13] 현재의 나가사키현 미나미시마바라시[14] 실제로 그가 은거했던 카즈사(미나미시마바라시) 지역의 농민들은 대부분 난에 가담했으며, 막부의 토벌 이후 지역 인구가 증발해 히로시마 등 타지에서 이주해온 이들로 충원해야만 했다.[15] 원래 노부나가가 아케치에게 이에야스의 사살을 명했으나 역심을 품은 아케치가 이에야스와 협력해 노부나가를 역으로 쳤다는 것.[16] "진실되게 전하는 아케치 미츠히데의 이야기. 우리가 배운 역사는 "거짓말"이었다!!?"라고 강렬한 소개문으로 책을 홍보할 정도였다.[17] 실제로 켄자부로가 주장한 이에야스 흑막설 외에도 히데요시 흑막설, 조정 흑막설 등 아케치 독단이 아니라는 가설은 꽤 많다. 그러나 앞뒤 상황이 안 맞거나 제대로 된 물증이 없어서 가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18] BS 닛테레에서 방송한 프로그램인 《카타오카 아이노스케의 해명! 역사 수사》는 프로그램의 '역사 수사'라는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서적을 기반으로 삼았는데, 실제로 1화에서 켄자부로가 게스트로 출연했다.[19] 한국에서 뿌리깊은 나무바람의 화원이 '소설'로서 인기를 끈 것과 그나마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20] 참고로 아케치 가문은 야마자키 전투 이후 멸족을 당했기에, 남은 후손은 가라샤를 비롯한 미츠히데의 딸들의 자식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케치 가문의 주장에 의하면 오즈루마루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신관의 아들로 위장해 살았다고 한다.[21] "오다 시게카즈(織田茂和)"라는 사람으로, 당연히 이쪽도 확실치 않다. 실제 후손은 오다 코이치라는 사람이다.[22] 단적으로 명나라 대 유럽이 싸운 해전이었던 1521년 타마오 해전(툰멘 해전)에서는 강력한 화력으로 무장한 소수 포르투갈 캐러벨 선단들이 중국 정크선 함대를 화력면에서 대등하게 상대하고 도망에 성공한 바가 있다. 특히 1522년의 시사오완 해전에선 명나라 군함대들 상대로 단 여섯대의 소형 캐러벨 선단들이 화력면에서 우세한 싸움을 하여 1대만 격침되고 1대만 나포된 채, 나머지 선단은 전부 탈출에 성공한 적도 있다. 물론 명나라 시대 정크선들은 해금령 등으로 해양 진출이 저지된 상황에서 제대로 발전을 하지 못해 동남아 국가들의 강력한 전투선도 이기지 못할 정도로 약체였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사실 일본조차 1609년 포르투갈 무장상선을 공격하려다 오히려 반격을 받아 큰 피해를 당한 일이 있었다#[23] 다만 오스만 제국 군대도 1532년 9월 19일 레오베르스도르프 전투에서 오스트리아 군대한테 거의 전멸당했거나#, 1616년 7월 14~16일의 켈리도니아 곶 전투에서 훨씬 우세한 병력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스페인 함대한테 박살이 난 사례도 있었다.#[24] 네덜란드 독립전쟁 당시 스페인은 본토에서 수 백 킬로미터는 떨어진 저지대 국가를 향해 '스페인의 길'이라 불린 육로로 막대한 군수 보급을 유지했다. 저지대 국가에는 약 6~8만 명의 스페인군이 주둔했는데 본토에서 수 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몇 만명이나 되는 정예병들을, 그것도 수 십년간 그 규모를 유지하며 상시 투입하는 것은 명나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25] 이런 서구권과 비서구권의 정치, 경제, 사회, 군사력의 차이가 점차 현격해지면서 서구의 패권이 시작되는 시기를 역사학에서는 이른바 대분기(大分岐, Great Divergence)라고 한다. 전통적으로는 16세기 이후로는 서양 전반이 동양보다 생활 수준의 우위에 있었다고 파악하며, 현재 학계의 시각은 18세기까지 동서양의 생활 수준이 비슷했음을 인정하지만, 영국이나 네덜란드 등 북서유럽의 일부 국가는 예외적으로 16세기부터 다른 국가들보다 생활 수준의 우위에 있었다고 파악하여 산업 혁명이 영국적 현상이라는 전통적 결론을 고수한다.[26]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뛰어난 전술에 전투에서 패배하자, 마치 아케치 미츠히데가 생각난다며 벌벌 떨기까지 한다.[27] 선조(조선)가 신립에게 하사한 기록이 있다.[28] 작가의 후일담을 보면 한국에 직접 와서 부산 수안역의 동래성 해자 전시관 등 임진왜란 관련 유적지까지 탐방하고 간 것으로 보이는데, 어째서인지 수안역에 전시된 찰갑은 전혀 묘사되지 않았다. 전시관을 둘러본 것만으로는 자료가 부족했거나, 드라마의 디자인이 더 낫다고 판단한 듯하다.[29] 불멸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투구[30] 이런 투구는 오히려 같은 시즈카타케의 칠본창인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와키자카따위라고 디스했던 후쿠시마 마사노리의 투구에 가깝다.[31] 실제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투구[32] 당시 일본은 육지에서 나는 동물 전반의 고기를 섭취하는 것에 대해 터부가 있었다. 675년부터 1872년 거의 1200년 동안 고기 섭취를 금했기 때문. 육식금지령 참조.[33] 그나마 왜구 침입이 잦았던 제주도는 방비가 잘 되어 있었는데 제주도에서 2차 을묘왜변의 경우 74명으로 13배가 넘는 1,000명의 적을 무찌른 엄청난 대첩이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당시 고려척계광원앙진 전법을 도입한 명나라군조차 13:1이라는 숫적 열세인 상황에서 이긴적은 없었다.[34] #[35] 이때문에 척계광 이전까지는 조선인들 스스로 왜구 토벌에 대해서는 명나라보다 조선이 한수위라고 여겼는지 "왜적들이 중국에 죄를 얻었는데, 중국 사람들이 우리 나라가 쉽게 왜적들을 사로잡는 것을 보고 우리 나라를 통하여 통분함을 씻으려고 한다면, 원 세조(元世祖)처럼 우리 나라로 하여금 일본을 함께 정벌하도록 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보장하기도 어렵습니다."라고 명나라가 조선에 왜구 토벌 협조를 요청할까 우려하는 기록이 있다.[36] 실제로 파천하면서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한것 자체는 사실이고 명나라에 구원 요청을 한것까지는 당시 국왕 입장에서 할일을 한것이다. (명나라 구원군이 올때까지 조선을 떠나 명나라로 망명하려한게 문제였을뿐)[37]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halmi&logNo=220973264685&referrerCode=0&searchKeyword=%ED%95%9C%EC%96%91[38] 이를 보면 선조왜군에게 약탈당할바에 궁궐을 직접 불태워버리라는 어명[46]을 비밀리에 내려 불태웠고 이후 성난 백성들 손에 불태워졌다는 식으로 왜곡되었을 여지도 있다. 실제로 사료적 가치가 높은 당대기록인 쇄미록에서는 한양 백성들이 피란가기 바빴다고만 나오지 백성들이 궁궐을 불태웠다는 언급은 없다.[39] 특히 2부의 부제인 주인공 히데요시의 야망 데마르카시온을 저지한 인물로 존재감을 드러내니 표지 주인공으로 등장할 만하다.[40] 효게모노에서 이순신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바 있으나, 단편적인 대립자일 뿐 스토리의 중심 인물은 아니다.[41] 부하 장수들과 함께 무람없이 술잔을 나누거나, 홀로 계신 모친을 걱정하며 우는 모습 등등.[42] 사실 작가가 아케치 후손이고, 아케치의 열성팬임을 감안하면 도요토미의 최대 실책인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을 띄워주는 건 당연할 수도 있다.[43] 이는 2부 5권부터가 아닌 2부 1권에서도 나왔던 것이다. 조선 민중들이 '도와(달라)' '도망쳐'라고 비명을 지르는 장면이 나온다. 다만 번역기를 돌린 영향인지 당시 시대상 풍신수길로 불렀을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카타카나로 썼거나, 정황상 '쏴라'라고 했을 대사가 '놓아라'라고 직역했는데, 과거엔 撃つ(쏘다, 우츠)보다 放つ(놓다, 하나츠)를 많이 썼기 때문이다. 한국도 과거에는 놓다를 쏘다는 의미로 사용했고 지금도 사전에 해당 의미가 남아있다. III-6 총이나 대포를 쏘다. 그 밖에도 조선군 복장 사료를 불멸의 이순신으로 참고했는지 이 작품 특유(...)의 조선 수군의 수(水)자 포졸복과 갑옷이 그대로 나온다. 그 밖에도 작중에서 한산도 대첩에서 이순신이 '네놈들의 조총은 이 바다에선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순신의 대사에서는 조총이라 한자를 쓰고 카타카나로 쓰인 한국식 독음을 루비로 적어 놓고, 당시 일본에서는 화승총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당시 조선에서는 화승총을 조총이라 불렀다.'는 각주를 달았다.[44] 원균옹호론 문서를 참고하면 알겠지만 '이순신의 공은 사실 원균이 한 공인데 이순신이 빼앗은 것이다!'라고 하고 원균의 역사적 기록은 '승자인 이순신과 권율이 역사조작을 했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억지주장을 한다.[45] 한편 선조는 송강호를 닮게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