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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지아에 대한 논란 및 사건 사고를 서술한 문서이다.2. 여행사진 자작극 의혹
이지아의 신인 시절 2008년 1월 31일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로마에서 이지아를 만났다는 후기가 올라왔다. 그녀는 실물이 훨씬 아름다웠으며 직접 만나보니 친절하였다는 팬의 글이였다. 그러나 네티즌들이 올라온 글의 아이피를 추적해본 결과 아이피가 당시 소속사로 나와서, 홍보 수단으로 소속사가 자작을 하냐며 비판이 쏟아졌다.당시 소속사에서는 사진은 팬이 촬영한 것이 맞고 팬한테 사진을 받았다며, 조작 논란에 대해 억울하다며 해명을 하였다. # 그러나 소속사에서는 해명을 하면서도 당시 메일로 사진을 보냈다는 팬에 관련해서는 일체 함구했으며,[1] # 사진상의 연출 논란이 이어지면서 논란은 식지 않았다. #
3. 조부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력 논란
2011년 12월 19일 이지아의 집안이 대대로 육영사업을 하던 재력가이자 명문가라는 언플 기사가 떴다. 정대철 당시 민주당 상임 고문은 이지아의 조부가 재력은 물론 남다른 인품의 소유자였고 자식인 이지아의 부친에 이어 이지아 역시 유복하고 뼈대 있는 가정환경 속에서 바르게 자랐다고 인터뷰했다.하지만 이후에 이지아의 친할아버지인 김순흥이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의혹이 네티즌으로부터 제기 및 확인되었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어 빼도 박도 못할 처지.
물론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이라는 게 이지아 본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명문가 집안 출신이다.', '할아버지가 부자였기에 해외로 유학을 갔다오고 풍족하게 살았다.'는 등의 회사의 언플은 상당히 쉴드 불가능이라 까였다. 이는 명문가랍시고 언플한 가문이 수탈의 주범인 친일반민족행위자임이 밝혀지고 나서 비수로 돌아왔기 때문에 욕을 먹은 것으로 애초에 이지아 측과 기획사가 신비주의를 타파하겠답시고 가문에 대한 정보를 밝힌다며 명문가라고 자랑하지만 않았어도 아무도 몰랐을 일을 본인들이 나서서 시원하게 까발린 셈이다. 이지아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이혼 사건이 모두 종결된 지금은 서태지와의 일보다는 이 친일 논란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단 이지아는 사과를 한 상태이긴 하다. 그러나 김순흥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사실을 지적하는 글이 대형 카페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삭제되기도 했고[2], 블로그에 올라온 글도 명예훼손으로 신고를 당해 게시 중단된 사실이 있다. *
이지아의 사촌동생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그냥 세금 좀 많이 내면 친일이냐, 자신의 할아버지는 나쁜 친일파가 아니었고 시대의 희생자였을 뿐.'이라며 망언을 해 또 한번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순흥은 단순히 세금을 낸 정도가 아니라 자발적인 기부금을 턱턱 내놨고 독립 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자금도 지원했으며, 강제 징병이 실시된 이후로는 징병제를 찬성하는 성명을 내놓고 일본 패망 직후에 한국민주당의 발기인으로 참석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세탁까지 한 인물이다. 몰상식한 일부 팬들은 어찌 됐든 이후 육영사업에 기여했으니 죗값을 씻은 거라는 둥 지나친 두둔을 하여 반감을 사고 있다.
한편 대한민국은 헌법상 연좌제가 없는 국가이긴 하다.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조상의 친일 반민족 행적을 직접적으로 옹호한 적이 없거나 조상이 친일 반민족 행위로 부당하게 얻은 부와 권력을 국가에 반환하였다면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공격받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를 이지아 측이 '명문가 출신으로 유복했다.'는 식으로 언플을 하였음에는 틀림없다. 게다가 이지아는 김순흥을 존경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또한,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이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것과 달리, 동포를 배신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민족 반역자의 손녀가 배우로서 활동하며 잘먹고 잘사는 모습이 분노를 일으키는 것이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김순흥을 단순한 친일파라고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는 민족반역자로서, 당대 친일파 중에서도 그 누구보다 앞장서 일제의 만행을 지원했고 같은 조선인들을 핍박했다. 광복 후엔 본인의 행적을 지우려고까지 했다.
말 그대로 사익만을 쫓으며 외세에 기대는 역겹고 치졸한 쓰레기인 것이다. 김순흥의 가문 대대로 씨를 말려도 시원찮을 판에 손녀가 연예계에 나와서, 이미지 메이킹을 하며, 더 많은 부를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이지아를 곱게 바라볼 수가 없다.
매국노는 민족의 배신자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존재로, 조국을 팔아먹고 외세의 발밑에서 기생하는 역겨운 기회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탐욕을 위해 수많은 무고한 국민들을 짓밟고, 민족의 자존심을 땅에 떨어뜨린 비열한 쓰레기들이다. 이들의 행위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가장 추악하고 혐오스러운 배신이며, 그 대가로 후대의 무한한 경멸과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 친일파는 역사의 오물로, 그 존재 자체가 민족의 치욕이다.
이지아의 가문은 일제강점기와 해방기 시절 명문 재력가였으며 조부 김순흥은 당시 국방금품헌납자이자 대지주로, 2009년 11월 8일 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있다.
김순흥은 서울예술고등학교 평창동 부지를 기부해 육영사업에 일조했으며, 국방헌금으로 월 1만원(현 시가 약 10억원)을 헌납했고, 조선군사후원연맹 사업비로 2,500원을 헌납하는 등의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일선융화를 표방하던 친일단체 동민회 회원으로 활동했고, 1943년 국방헌금 3000원을 헌납하고 1944년 헌납 대가로 히로히토 일왕에게 감수포장(공익을 위해 개인재산을 기부한 사람에게 주는 감색리본기장)을 받는 등 반일운동 대항 활동도 했다.
이 때문에 김순흥은 김구의 친일파 숙청 명단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
4. 서태지와의 이혼 및 정우성과의 열애
2011년 3월 20일 정우성과의 열애설을 공식 인정했다.그러나 2011년 4월 21일 서태지와 비밀 결혼했다가 이혼 후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걸었다는 사실이 <스포츠서울>을 통해 보도되었다. 대한민국은 연예계 소식으로 완전히 뒤집혔다. 어느 정도였냐면 당일 KBS 9시 뉴스에 나왔고, 다음 날 조선일보 2면을 가득 채우는 위엄을 달성. 어지간한 뉴스에서 다 다뤘다. 대중은 슈퍼스타 서태지가 미혼인줄 알았는데, 결혼 소식도 아니고 이혼 소식을 그것도 이혼 관련 소송이 뉴스에 나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웬만한 스캔들에는 반응 안 하는 매체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는데 인터넷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사실을 맨 처음 보도한 스포츠서울은 기사 제목에 당당히 특종을 박았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가 2명 있다는 미확인 정보까지 나돌았다. 후에 아이는 없었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다.
신문에서 나온 이야기로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3년 미국 공연에서 이지아의 언니 소개로 인해 두 사람은 처음 서로를 알게 되었고, 그 후 편지를 주고 받다가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후 미국으로 건너 간 서태지는 이지아와 재회하고 1997년 결혼했다고 한다. 이지아측 발표에 따르면, 이지아가 만 15세 때(1993년) 팬과 스타의 만남으로 서태지와 만난 인연을 가지고 있었으며 서태지가 은퇴 후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미국에서 서태지를 만나 친언니의 증인 참석으로 결혼에 골인했다고 한다. 참고로 당시 혼인신고서에는 서태지의 본명인 정현철과, 이지아의 본명이었던 김상은[3]이 기재되어 있다.
서태지와 부부로 산지 2년 7개월, 이후 별거에 들어갔다. 2000년에 서태지 복귀 후 2006년에 이지아 측에서 홀로 이혼소장을 캘리포니아 법원에 냈다. 그러므로 2011년에 낸 소송은 이혼소송이 아닌 위자료 및 재산 분할소송이다. 이때 이지아는 국내법에 따라 2009년 이혼 성립을 주장, 서태지는 미국법에 따라 2006년 이혼이 성립되었다고 주장했다.
소송 건이 사실이라면 그녀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가 의아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55억이나 청구한다고 해서 전액 받아낸다는 보장도 없고, 설령 다 받아낼 수 있다 쳐도 이미 여배우로 어느 정도 입지를 쌓은 그녀가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할까라는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 게다가 철저하게 자신의 신상을 숨겨 온 그녀가 이런 거액의 소송을 진행하면서 신상이 전혀 안 드러날 거라고 믿을 수가 있나라는 점도 의혹으로 제기된다. 거액의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자연히 신상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지아의 해명글에서 위자료 소송이 돈 때문이 아니었다고 밝히고 있다.
1996년 11월 20일 스포츠서울[4]에서 이를 보도한 적이 있으나, 당시에는 오보 취급당하고 묻혔다.
먼 훗날인 2024년, 일본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나왔다. 마후마후-미케네코 이혼 사건 참고.
4.1. 비판론
비판하는 여론의 주장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정우성을 속인 것은 심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하나.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입장에서 자신을 굳이 이혼녀라고 밝힐 이유는 없지만, 전 남편과의 관계가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시점에서 연애를 한 것은 경솔하다는 주장. 덕분에 애꿎은 정우성만 졸지에 서태지와 이지아 사이에 끼인 꼴이 되어서 언론의 이목이 집중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은 두말 할 것 없고. 또 다른 것은 서태지에게 건 거액의 소송을 이유로 남자를 등쳐먹으려는 악녀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서태지가 이지아 덕을 본 부분도 상당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갈린다.4.2. 동정론
본질적으로 얻을 것이 많지 않은 소송을 굳이 해서 이지아가 얻을 만한 것이 없다는 결론에서 출발하는 동정론도 있다. 신비주의로 일관하며 따라다니는 일본 화류계 출신이라든가 텐프로 출신이라든가 하는 루머들에 계속 침묵으로 일관해왔는데 제대로 된 과거를 가졌다는 걸 증명할 방법은 서태지가 직접 나와서 인정해주는 것 이외엔 없었다. 사실 '나 서태지의 전 부인이었어요'라든가 '비공식 결혼해서 이름까지 바꿨어요' 이런 걸 말한다고 믿을 사람도 없을 뿐더러 이혼까지 한마당에 굳이 말할 이유도 없으니 본인의 과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소송을 했다는 의견이다.1997년 결혼 이후 "서태지의 비공식 아내"로 숨어 살아온 시간에 대해서 동정하는 입장도 있다. 실질적으로 2000년에 이미 별거(서태지측 주장)에 들어갈 만큼 결혼 생활보다 소송 기간이 더 길었다. 2006년에 이혼 소송을 할 때까지 결혼생활의 끝마무리를 이지아 혼자 해야 했다고[5] 하니.
그러나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은 결혼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는 디스패치의 반박 기사가 나왔다. 디스패치가 네바다 등기소까지 뒤져서 취재한 결과 결혼식의 증인이 다름아닌 이지아의 이복 언니였다는 것. 이는 “양 측이 동의를 했고 많은 지인들은 두 사람의 교제나 결혼 사실을 알고 있었다”라는 서태지 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또한 같은 기사에서 확인된 이지아의 교통법규 위반[6] 사실이나 쇼핑, 가족 왕래 증언 등으로 볼 때, 결혼 생활에 자유가 없었다는 이지아 측의 주장을 무작정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4.3. 정우성에 대한 여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애꿎게 덤터기를 쓰게 된 이유는 역시 정우성. 옹호/비판이 대립하는 서태지, 이지아 측과는 달리 이쪽은 절대적인 동정을 받고 있는 처지다.[7]2011년 6월 9일 정우성은 이지아와 결별하였다. #
2012년 11월 29일, 12월 6일 무릎팍도사에서 (정확히는 12월 6일 방송분) 이지아의 과거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해당 방송에서는 파리 여행을 갔을 당시에 과거의 상대가 누구였는지 털어놓았다고 했고, 파리에서 이지아가 "과거에 긴 시간 동안 어떤 사람과 교제한 적이 있다"고 말하자 오히려 데뷔 초부터 이지아에게 상처가 되었던 수많은 루머들이 거짓이라는 근거가 생긴 것에 안도했다고 한다.
위자료 청구소송에 관해서는 해당 기사가 터지기 바로 직전에 이지아가 정우성에게 정중하게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얘기하면서 알게 되었다고.
소송사실 보다 오히려 자기 때문에 더 난처한 상황이 올까 걱정되어, "자신은 신경쓰지 말고 지금 처해진 상황 현명하게 잘 대처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건 당시 정우성이 침묵했던 것은 자신이 말을 꺼낼 경우, 이를 확대 재생산된 기사들이 나와 두 사람의 과거를 정리하는 데 방해되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성격상 침묵하기 힘들었다고.
이후 무릎팍 도사 섭외요청에 응한 이유는 그와 관련된 여러 오해들을 풀기 위해서라고 한다. 영상
방송 말미에 정우성은 이지아를 가리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 친구는...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한 죄밖에 없어요...그게 그렇게 잘못인가요?
그 친구는...세상 사람과 소통하고 싶었던 사람이에요...
그 친구는...세상 사람과 소통하고 싶었던 사람이에요...
[1] 사실 그 팬이 실제 팬이라 해도 그 팬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건 개인정보보호법 상 문제가 될 수 있어 공개를 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기도 하였다.[2] 원작성자가 다른 커뮤니티에 자기 글을 다시 올려 커뮤 곳곳에 그 흔적이 있기는 하다.[3] 여담으로 지금은 개명을 하여 본명이 '김지아'라고 한다.[4] 그런데 15년 후에 이혼기사를 가장 처음으로 보도한 언론도 스포츠서울이었다.[5] 서태지 측에서 2004년 이혼에 대한 합의, 2006년 이혼 요구를 받았다며 인정한 내용이다.[6] 자동차 속도위반[7] 특히나 정우성은 이지아 외의 인물과는 열애설이 난 적이 없기에 더 그런 듯하였다.